제 43 장
예비하는 사업에 있어서의 근면성
[1869년 3월 26일, 베틀크릭에서의 엘렌 G. 화잇의 단평]
나는 오늘 오후에 그대를 피곤하게 할만큼 오래 말하고자 하지 않는다. 나는 힘이 없으며, 내 감정을 고려하여야 하며, 여기에 결코 있지 말아야 한다. 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깊이 느낀다. 그러나 그들의 현재 무감각한 상태에서 그들을 일으키기 위해 무엇을 말해야 하며, 행해야 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내 생애의 기력은 거의 소모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나의 운명이 된다 할지라도, 나의 직임에서 떨어질 때까지 그대를 위해 간구하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진리의 빛은 이 지역에 크고 분명하게 비쳤다. 그 빛은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면서,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씩 주어졌다. 그러나 그대의 특권으로 누려야 할 진리는 신중하게 간직되지 않았고 실생활에 옮겨지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우리 중에는 아주 적은 능력밖에 없다.
이렇게 묻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왜 우리는 그렇게 적은 능력밖에 없는가? 그 이유는 하늘이 봉해졌기 때문인가? 우리에게 고귀한 교훈들이 비장 되지 않았기 때문인가? 우리의 힘과 능력의 근원이 고갈되었으며, 우리는 더 이상 받을 수 없기 때문인가? 왜 우리는 모두 주 안에서 빛이 아닌가?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분, 우리의 허물을 인하여 찔림을 당하고 우리의 죄악을 인해 상함을 당하신 분,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 그분은 높이 올려졌으며, 그분의 행렬의 영광은 성전을 가득 채웠다. 이 영광이 왜, 죄악과 역경, 슬픔과 비참함, 오염과 불법의 세상에 있는 우리들로부터 가려져야 하는가?
그 어려움은 우리 자신에게 놓여 있다.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은 우리의 불법이다. 우리가 채워지지 않는 것은, 우리가 필요를 느끼지 않기 때문이며,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한다면 우리가 채움을 받는다는 것이 그 약속이다. 내 형제와 자매들이여, 그 약속은 그대들을 위한 것이다. 그것은 나를 위한 것이며,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다. 주리고 목마른 영혼은 채워질 것이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 연약함과 어리석음과 불완전한 그대로 그리스도께 나와, 회개함으로 그분의 발에 엎드려, 믿음으로 우리의 간구를 드릴 것이다.우리의 잘못과 계속적인 배교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초청하시는 구주의 오래 참으시는 음성이 들린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갈급하고 지친 자들, 부담과 염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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