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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 시대의 대쟁투,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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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 전속의 승정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모교의 교수가 되고, 그 후에 그 대학의 총장까지 되었다. 그리하여 불과 수년만에 구호금의 장학금을 받던 비천한 일개 학생이 보헤미아의 자랑이 되고, 그 명성을 온 구라파에 떨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다른 한 분야에서 개혁 사업을 착수하였다. 성직에 나간 지 수년 후에 그는 베들레헴 회당의 설교자로 임명되었다. 그런데 그 회당의 설립자는 성경을 자국어로 설교하는 일을 참으로 중요한 일로 주장하는 사람이었다. 그 일은 로마에서 반대하는 일이었으나 보헤미아에 있어서는 완전히 중지되지는 않았다. 그 당시에 성경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무지는 실로 컸으며, 모든 계급의 사람들에게 가장 악한 일들이 편만해 있었다. 후스는 이러한 죄악들을 기탄없이 견책하고, 자기가 설명한 진리의 원칙과 순결을 역설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간곡히 호소하였다.
개혁주의로 전향(轉向)함
후에 후스의 절친한 친우가 된 프라하 출신의 제롬(Jerome)이 영국으로부터 귀국하면서 위클리프의 저서를 가지고 돌아왔다. 위클리프의 가르침으로 개종한 영국 왕후는 원래 보헤미아의 공주였으므로, 그의 감화로 말미암아 보헤미아에는 개혁자의 저술이 널리 유포되었다. 후스는 그러한 저술들을 흥미있게 읽었다. 그는 그 저자가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믿었으며 위클리프가 주장하는 개혁주의에 찬동하게 되었다. 비록 후스 자신은 깨닫지 못하였으나 이 때에 그는 그를 로마로부터 멀리 떨어지도록 인도할 길에 들어섰던 것이다.그 때에 프라하에 영국으로부터 학식 있는 두 사람이 왔다. 그들은 진리의 밝은 빛을 받았는데, 그 진리를 전하기 위하여 이렇게 먼 지방까지 찾아왔던 것이다. 그들은 처음부터 법왕의 최상권을 공공연하게 공격하였으므로 즉시 당국으로부터 발언을 금지당했다. 그러나 그들은 처음의 목적을 버릴 수 없었으므로 한 가지의 계책을 세웠다. 그들은 본래 설교자인 동시에 화가였으므로 그들의 기술을 발휘하게 되었다. 그들은 여러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곳에서 두 장의 그림을 그렸다. 하나는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광경이었는데, 그분께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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