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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장
일꾼의 필요성*

일상생활에서의 도움

순결하고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조용하고, 언행이 일치되는 생애에는 유창한 말보다 더욱 강력한 웅변이 있다. 사람의 인격은 그의 말보다 더욱 많은 감화력을 가지고 있다.
예수님께로 파견되었던 관원들은 그분처럼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는 보고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러나 이에 대한 설명은 그분처럼 생애한 사람은 없었다는 뜻이다. 만일 그분의 생애가 당신의 말씀과 일치하지 않았을 것같으면 그분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실 수 없었다. 그분의 말씀에는 그들에게 확신을 주는 능력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 말씀들은 순결하고 거룩하며, 사랑과 동정심이 충만하고, 자비와 진리가 많은 마음에서 나왔기 때문이었다.다른 사람들에게 우리의 감화력을 결정해 주는 것은 우리 자신의 품성과 경험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은혜의 능력을 확신시켜 주려면 우리는 그 능력을 우리 자신의 마음과 생애에서 알아야 한다. 우리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증거하는 복음은 우리 자신의 영혼을 구원해 준 복음이어야 한다. 오직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는 산 믿음을 통해서만 우리의 감화력을 불신의 세계가 느낄 수 있게 할 수 있다. 우리가 급히 흐르는 물결 속에서 죄인들을 건져 내려면,
우리 자신의 발이 만세 반석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굳게 고정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휘장은 겉으로 보여 주는 표지가 아니며, 십자가나 면류관을 달고 다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과 연합함으로 나타내 주는 것이다. 성품의 변화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을 통하여 세상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을 세상의 구속주로 보내셨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된다. 인간의 심령을 감싸 줄 수 있는 어떤 감화력도 이타적인 생애의 감화력과 같은 그런 능력을 가질 수 없다. 복음을 위한 가장 강력한 논증은 상냥하고 친절한 그리스도인이다.
시련의 단련
그와 같은 생애를 하고, 그러한 감화를 끼치는데는 매 발걸음마다 노력과 자아희생과 수양을 요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은 그리스도인 생애에서 너무도 쉽게 낙심해 버린다. 생애를 하나님의 사업에 성실하게 바친 많은 사람들이 전에 결코 경험하지 못했던 장애물을 만나고 시련과 난관에 둘러싸이게 되면 놀라고 실망하게 된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같은 품성을 소유하기 위하여, 또한 주님의 사업에 적합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기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본성에 있는 모든 악을 다 자극하는 것처럼 보이는 환경에 처하게 된다. 그들이 그런 것이 있는 것으로 의심해 보지도 않은 결점들이 나타난다. 그들은 옛날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고 계신다면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닥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의심한다.
이와 같은 일들이 그들에게 다가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시련과 장애는 주님께서 택하신 훈련의 방법이며, 또한 그분께서 정하신 성공의 조건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성품을 그들 자신이 아는 것보다 더 잘 아신다. 그분께서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올바르게 지도하기만 하면 당신의 사업을 발전시키는데 사용될 수 있는 능력과 감수성이 있는 것을 아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섭리로써 그와 같은 사람들을 각기 다른 위치와 여러 가지 환경에 처하게 하심으로 그들이 지금까지 알지 못한 채 감추어 있는 결함들을 그들의 성품에서 발견하게 하신다.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이와 같은 결함들을 교정하고 당신의 사업에 적합하게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 때때로 그분께서는 고난의 불이 그들을 엄습하도록 허락하심으로써 그들이 정결해 지게 하신다.*
우리가 시련을 견디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실은 주 예수님께서 계발시키기를 바라시는 귀중한 무엇을 우리 속에서 보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 준다. 만일 그분께서 우리 속에 당신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아시면 그분께서는 우리를 연단하는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가치없는 돌을 당신의 용광로 속에 던져 넣지 않으신다. 그분께서 연단하시는 것은 가치 있는 것이다. 대장장이가 쇠와 강철을 불 속에 던져 넣는 것은 그것들이 어떤 종류의 금속인지 알기 위해서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택한 사람들이 어떤 기질의 사람들이며 그들이 당신의 사업을 위하여 적합한 자들이 될 수 있을 것인지의 여부를 시험해 보기 위하여 그들이 고난의 풀무 속으로 들어가도록 허락하신다.토기장이는 진흙을 가지고 자기의 뜻대로 형체를 만든다. 그는 흙을 이기고 또 빚는다. 그는 그것을 떼어서 찧고 또 눌러서 뭉친다. 그는 물로 축이고 다시 말린다. 그는 얼마 동안 손을 대지 않고 그것을 놓아둔다. 그것이 완전히 말랑말랑해 지면
그는 그것으로 그릇을 만드는 일을 계속한다. 그는 그것으로 모양을 만든다. 그리고 녹로에서 깎고 다듬는다. 그는 그것을 햇빛에 말리고 솥에서 굽는다. 그리하여 그것은 사용하기에 알맞은 그릇이 된다. 이와 같이 일꾼의 지도자 되시는 위대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빚어 만들기를 원하신다. 마치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는 것처럼 우리는 그분의 손에 놓여 있어야 한다. 우리는 토기장이의 일을 하고자 노력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할 일은 우리 자신을 바침으로 일꾼의 지도자 되시는 예수님에 의하여 꼴지어지면 된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4:12, 13).*
밝은 대낮에, 그리고 다른 음성으로 된 노래들이 들려오는 동안에는 새장 안에 있는 새가 그의 주인이 가르쳐 주고자 애쓰고 있는 노래를 부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경우에 새는 노래의 한 절 한 절씩을 여기 저기에서 떼어내어 짤막짤막하게 부르는 흉내만을 낼지언정 결코 단독으로 완전한 곡조를 다 부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주인이 새장을 덮고 그 새가 하나의 노래만을 들을 수 있는 곳에 두면 그는 노래를 부르게 된다. 어두움 속에서 그는 되풀이해서 그 노래를 부르고자 노력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는 그 노래를 배워 완전한 곡으로 부르게 된다. 그런 다음에 그 새를 밝은 곳으로 내어 놓으면, 그는 거기에서 그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이 당신의 백성을 취급하신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노래가 있다. 우리가 고통의 그늘 아래서 그것을 배우게 되면, 우리는 그 후에 언제나 그 노래를 부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필생의 사업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환경이 마음에 맞지 않으므로 그럴 것이다. 그들은 보다 높은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역량이 그들에게 있다고 생각되는데도 불구하고, 평범한 일로 그들의 시간을 빼앗기게 된다. 흔히 그들의 노력은 올바른 평가를 받지 못하고 결과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의 장래는 불확실하다.우리가 해야 할 일이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닐지라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택해 주신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을 기억하자.
좋아하는 일이든지 마음이 내키지 않는 일이든지 간에 우리는 우리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의무를 감당해야 한다.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음부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전 9:10).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니느웨로 가서 기별을 전하기를 바라시는데, 우리가 욥바로 가거나 가버나움으로 간다면 그분을 기쁘시게 해 드리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발길을 인도하여 그 장소로 보내는데는 상당한 이유가 있다. 바로 그곳에 우리가 주어야 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어떤 사람이 있을 것이다. 빌립을 이디오피아의 내시에게로, 베드로를 로마의 백부장에게로, 이스라엘의 작은 소녀를 수리아의 장군 나아만에게로 보내어 도우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남녀들과 젊은이들을 당신의 대표자로 하나님의 도움과 지도를 요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로 보내신다
하나님의 계획이 최선임
우리의 계획이 반드시 하나님의 계획과 일치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경우에서처럼 우리 자신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의도를 버리는 것이 우리 자신과 당신의 사업을 위하여 최선의 길임을 보고 계실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한 가지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기 자신들과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을 진정으로 바치는 사람들을 그분께서 축복하시고 그분의 사업의 발전을 위하여 사용하신다는 사실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들의 소원을 허락하는 것이 최선의 일이 아니라고 보시면, 그분께서는 당신의 사랑의 증거를 보여 주시고 그들에게 다른 사업을 맡겨 주심으로 그렇게 거절하신 일에 균형을 이루게 해주실 것이다.
사랑으로 우리를 돌봐 주시고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시며, 흔히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것보다 우리 자신을 더욱 잘 이해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신의 야망을 채우기 위하여 이기적으로 구하는 것을 허락지 않으시고 거절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곁에 있는 평범하면서도 신성한 의무를 지나쳐 버리도록 허락지 않으신다. 흔히 그와 같은 의무는 우리가 더욱 고상한 사업을 위하여 준비하는데 요긴한 훈련을 우리에게 준다. 때때로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우리의 계획은 실패한다.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진정으로 희생하도록 요구받는 일은 결코 없다. 그분께서는 많은 것들을 당신께 바치라고 우리에게 요구하신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하늘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 것을 버리는데 불과하다. 심지어 그 자체가 좋은 것들을 버리라는 요구를
받을 때일지라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심으로써 우리를 위하여 더욱 훌륭한 일을 이루어 주고 계신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장차의 생애에서는 이 땅에서 우리를 괴롭게 하고 실망케 했던 신비들이 밝혀질 것이다. 우리는 응답을 받지 못했던 것으로 보였던 우리의 기도와 좌절당했던 희망이 우리에게 가장 큰 축복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모든 의무를, 비록 그것들이 아무리 비천해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사업의 일부로서 신성한 것으로 여겨야 한다. 우리는 매일 다음과 같이 기도 드려야 한다. “주님, 나를 도와 주셔서 최선을 다하게 해 주십시오. 일을 더욱 잘 하는 방법을 내게 가르쳐 주소서. 나에게 힘과 기쁨을 주십시오. 나를 도와 주셔서 나의 봉사가 주님을 즐거운 마음으로 섬기는 일이 되게 해 주십시오.”
모세의 생애에서 배울 교훈
모세의 경험을 생각해 보라. 그가 왕의 손자로서 또한 장차 왕위를 계승할 후계자로서 애굽에서 받은 교육은 매우 철저하였다. 애굽 사람들은 지혜를 이해하고 있었으므로 그를 현명한 사람으로 만드는 일로 생각되었던 것은 어떤 것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는 문무(文武)를 겸한 최고의 교육을 받았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속박에서 해방시키는 사업을 위하여 충분히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르게 판단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섭리로써 모세를 양을 치는 목자로 40년 간 광야에서 훈련을 받게 하셨다.모세가 애굽에서 받은 교육은 여러 가지 면에서 그에게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평생 사업을 위하여 가장 귀중한 준비는 목자로서 일하는 동안에 받은 것이었다. 모세는 천성적으로 성질이 급한 사람이었다. 애굽에서 성공적인 군대의 지도자로 왕과 국민들의 총애를 받아왔기 때문에 그는 칭찬과 찬사를 받는 일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는 국민의 인기를 끌었다. 그는 자신의 힘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는 과업을 성취하고자 희망하였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대표자로서 배워야 할 교훈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그가 양떼를 끌고 거칠은 산을 통과하여 골짜기의 푸른 초원으로 인도해 다니는 동안, 그는 믿음과 온유와 인내와 겸손과 무아(無我)의 정신을 배웠다. 그는
약한 것을 돌봐 주고, 병든 것을 치료해 주고, 길 잃은 것을 찾아내고, 성질이 사나운 것을 참고, 어린 것을 보호하고, 늙고 쇠약한 것을 간호해 주는 법을 배웠다.
이렇게 일하는 동안 모세는 목자장 되시는 그리스도께로 더욱 가까이 나가게 되었다. 그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과 밀접히 연합하였다. 그는 이제 더 이상 큰 일을 하고자 계획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하나님께 하는 것처럼 성실하게 하고자 힘썼다. 그는 그의 주위에 하나님께서 임재해 계심을 깨달았다. 천연계의 모든 사물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그에게 말해 주었다. 그는 하나님을 개인의 하나님으로 알았다. 그리고 그분의 성품을 명상하는 중에, 그는 그분께서 임재해 계심을 더욱 더 충분히 깨닫게 되었다. 그는 영원한 팔에서 피난처를 찾았다.
그와 같은 경험이 있은 다음에, 모세는 그의 목자의 지팡이를 권능의 지팡이로 바꾸고, 양떼를 떠나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을 때, 그는 자신(自信)이 없고, 말이 느리고, 수줍은 사람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하나님의 대변자가 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어쩔 줄을 모르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주님을 완전히 신뢰함으로써 그 일을 수락하였다. 위대한 그의 사명은 그의 최선의 정신력을 요구하였다. 그가 즐거운 마음으로 순종하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그를 축복하셨다. 그리하여 그는 일찍이 사람에게 위탁된 사업 중 최고의 사업에 적합하리 만큼 능변적이고, 희망에 넘치고, 침착한 사람이 되었다. 성경은 그에 대하여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라고 기록하고 있다(신 34:10).
자신의 사업이 인정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더욱 큰 책임을 맡고자 갈망하는 사람들은 “대저 높이는 일이 동에서나 서에서 말미암지 아니하며 남에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이를 높이시느니라”(시 75:6, 7)는 말씀을 기억하라.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안에 자신의 위치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그 위치를 채우는 여부는 하나님과 협력하는 우리의 성실성에 달려있다.*우리는 자신을 동정하는 일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그대가 마땅히 받을 만큼 평가를 받지 못하고, 그대의 노력이 인정받지 못하고, 그대의 사업이 너무 어렵다는 등의 생각을 결코 갖지 말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참으신 것을 생각하고, 불평하는 생각을 일체 버려라. 우리는 우리 주님께서 받으신 것보다 더욱 좋은 대접을 받고 있다. “네가 너를 위하여 대사를 경영하느냐 그것을 경영하지 말라”(렘 45:5).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지는 것보다 면류관을 얻고자 더욱 갈망하는 자들을 위하여 당신의 사업에 자리를 마련해 두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보수를 받는 것보다 의무를 다하고자 더욱 노력하는 사람들,
곧 승진을 위하여서보다 원칙을 위하여 더욱 큰 열심을 가진 사람들을 원하신다.
겸손하고, 그들의 일을 하나님께 하는 것처럼 수행하는 사람들은 떠들썩하고 잘난 체하면서 일하는 사람들보다 겉으로 나타나는 업적이 크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사업이 더욱 가치가 있다. 흔히 외관을 크게 자랑하는 사람들은 사람들과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아 자신에게로 주의를 집중시킨다. 그러므로 그들의 사업은 실패하게 된다.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무릇 너의 얻은 것을 가져 명철을 얻을지니라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잠 4:7, 8).
많은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를 제어하고 개혁할 결심을 하지 않으므로 잘못된 행동을 기계적으로 되풀이한다. 그러나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최선의 봉사를 할 수 있게끔 그들의 능력을 계발시킬 수 있다. 그리하면 그들은 언제나 봉사의 요청을 받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가진 가치 그대로 인정을 받게 될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들이 높은 위치에서 일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되면, 주님께서는 그 짐을 그들에게 뿐만 아니라 그들을 시험해 본 자들, 그들을 지혜롭게 전진하도록 격려할 수 있는 자들에게도 지우신다. 지정된 일을 매일 충실하게 수행하는 자들이, 하나님께서 정한 때가 이르면, “더욱 높이 올라오라”는 그분의 부르심을 받게 된다.
목자들이 베들레헴의 언덕 위에서 그들의 양떼를 지키고 있는 동안 하늘에서 온 천사들은 그들을 방문하였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에도 하나님을 위한 겸손한 일꾼이 그의 일을 하고 있는 동안,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의 곁에 서서 그의 말을 듣고, 그가 일하는 방법을 주시하고, 더욱 큰 책임을 그의 손에 위탁할 수 있을지의 여부를 보게 된다.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재산과 그들의 교육과 그들의 지위에 의하여 그들을 평가하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그들의 동기의 순결성과 품성의 아름다움에 의하여 그들을 평가하신다. 그분께서는 그들이 당신의
성령을 어느 정도 소유하고 있으며 당신의 형상을 그들의 생애에 어느 정도 나타내고 있는지 살펴 보신다. 하나님 나라에서 위대하게 되는 것은 어린 아이처럼 겸손하고, 믿음이 단순하고, 순결한 사랑을 갖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리라고 말씀하셨다(마 20:25, 26).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실 수 있는 선물 중에서 그리스도의 수난에 참례하는 것이 가장 가치 있고 가장 영광스런 것이다. 하늘로 옮기어 간 에녹이나, 불병거를 타고 승천한 엘리야도 옥중에서 홀로 죽은 침례 요한보다 더욱 위대하거나 더욱 큰 영광을 받지 못하였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빌 1:29).
장래를 위한 계획많은 사람들은 장래를 위하여 분명한 계획을 세울 수 없다. 그들의 생애는 불안정하다. 그들은 현재 하고 있는 일이 어떻게 될 것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것 때문에 그들은 염려와 불안을 갖게 된다. 이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자녀들의 생애는 순례자의 생애임을 기억하자.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생애를 위하여 계획을 세울 지혜가 없다. 우리의 장래를 꼴지어 주는 것은 우리가 아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히 11:8).
그리스도께서는 지상 생애를 하시는 동안 당신 자신을 위한 계획을 세우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받아들이셨고, 날마다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계획을 나타내 주셨다. 그와 같이 우리도 우리의 생애가 단순히 그분의 뜻을 이루는 생애가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을 의지하여야 한다. 우리가 우리의 길을 그분께 위탁할 때, 그분께서는 우리의 발길을 인도해 주실 것이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빛나는 장래를 위하여 계획을 세우는 중에 완전한 실패를 한다. 하나님께서 그대를 위하여 계획을 세우게 하라. 작은 어린 아이처럼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분의 지도를 의지하라(삼상 2:9). 만일 하나님의 자녀들이 처음부터 끝까지를 볼 수 있고, 그들이 그분과 협력함으로 성취하고 있는 목적의 영광을 식별할 수 있다면, 그들이 지도받기를 바라는 바로 그 길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급 료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제자들을 따라오도록 부르셨을 때,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이 세상에서의 어떤 바람직한 전망을 제공해 주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유익이나 세속적 명예를 약속하지 않으셨다. 그들 역시 어떤 보수를 받겠다는데 대하여 계약을 맺지 않았다. 세관에 앉아 있는 마태를 향하여 구주께서는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마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좇았다(눅 5:27, 28). 마태는 그 봉사의 요청을 수락하기 전에 그의 종래의 직업에서 받았던 액수와 비등한 어떤 봉급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는 질문하거나 주저하지 않고 예수님을 따랐다. 그는 구주와 함께 있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과 함께 그분의 사업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였다.
이미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 역시 그러하였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그의 친구들에게 당신을 따르라고 명령하셨을 때, 그들은 즉시 배와 그물을 버렸다. 그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생계를 그들에게 의존하고 있는 친족들을 데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구주의 초청을 받았을 때, 그들은 주저하지 않고, “내가 어떻게 생활하며 나의 가족을 부양할 수 있을 것입니까”라고 질문하지 않았다. 그들은 부르심에 순종하였다. 그 후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내가 너희를 전대와 주머니와 신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고 질문하시자, 그들은 “없었나이다”고 대답할 수 있었다(눅 22:35).
오늘날 구주께서는 마치 당신이 마태와 요한과 베드로를 부르셨던 것처럼 우리를 당신의 사업에 부르고 계신다. 만일 우리의 마음이 그분의 사랑으로 감동을 받으면 보수 문제는 우리의 마음에 제일 중요한 것이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협력자가 되는 것을 즐거워하고, 그분의 보호에 의지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의 힘으로 삼을 것같으면, 우리는 의무에 대한 분명한 지각과 이타적인 욕망을 갖게 될 것이며, 우리의 생애는 세속적 동기를 초월한 고상한 목적으로 고무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심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근심스럽고 불안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그들은 하나님께 완전히 헌신하지 아니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와 같은 헌신에 따르는 결과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와 같은 헌신을 하지 않으면 그들은 평안을 찾지 못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세상의 표준에 도달하고자 애쓰기 때문에 근심의 짐을 지고 마음에 고통을 받고 있다. 그들은 세속적 봉사를 택하였고, 세속적 근심을 받아들였고, 세속적 관습을 적용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의 성격은 망가졌고, 그들의 생애는 근심으로 눌리게 되었다. 계속적인 근심은 생명력을 소모시킨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 속박의 멍에를 벗어 버리기를 바라신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멍에를 메라고 그들에게 초청하신다. 그분께서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 11:30)고 말씀하신다. 근심은 눈을 가리우므로 장래를 식별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보신다. 모든 어려움 중에서 그분께서는 구원해 줄 길을 마련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이다(시 84:11).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도무지 알지 못하는 수 많은 길을 준비해 놓고 계신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최선의 것으로 여기는 원칙을 수락하는 사람들은 난관들이 사라지고 앞길에 평탄한 길이 펼쳐짐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오늘의 의무를 성실하게 감당하는 것이 내일의 시련을 위하여 가장 잘 대비하는 일이 된다. 내일의 부담과 염려를 모두 모아서 오늘의 짐에 첨가하지 말라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마 6:34).희망과 용기를 가지자. 하나님의 사업에서 실망하는 것은 죄악적이며 부당한 일이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온갖 필요를 아신다. 언약을 지켜 주시는 우리의 하나님, 만왕의 왕이신 전능한 하나님은 부드러운 목자의 보호와 친절을 겸하여 가지신 분이시다. 그분의 능력은 절대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분을 신뢰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당신의 약속을 성취시켜 주겠다는 분명한 보증이 된다. 그분께서는 모든 어려움을 제거해 줄 방편을 소유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그분을 존경하고 그분께서 마련하신 방편을 존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분의 사랑은 마치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다른 어떤 사랑보다 더욱 뛰어난 사랑이다. 그분께서는 측량할 수 없이 영원한 사랑을 가지고 당신의 자녀들을 돌보신다.*
가장 어려운 상황인 것처럼 보이는 최악의 시간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라. 그분께서는 당신의 뜻을 이루고 계시며, 당신의 백성의 유익을 위하여 모든 것을 호전시키고 계신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사람들의 힘은 날마다 새로와질 것이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종들에게 그들이 필요로 하는 온갖 도움을 주실 수 있고, 또한 즐거운 마음으로 주신다. 그분께서는 그들의 여러 가지 필요에 따라 요구되는 지혜를 그들에게 주실 것이다.
사도 바울은 시련 중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내게 이르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라”(고후 12:9, 10).
대인관계

생애의 모든 교제는 자제와 인내와 동정이 발휘되기를 요구한다. 우리는 성격과 습관과 교육에 있어서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사물을 관찰하는 우리의 방법도 다양하다. 우리는 서로 다르게 판단한다. 진리에 대한 우리의 이해, 생활에 관한 우리의 생각은 모든 면에서 동일하지 않다. 모든 특수한 점에서까지 꼭 같은 경험을 한 두 사람이 있을 수 없다. 한 사람에게 시험이 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시험이 되지 않는다. 한 사람에게는 가벼운 의무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가장 큰 어려움과 난관이 된다.
인간의 본성은 너무나 연약하고, 무지하고, 오해하기 쉬우므로 각 사람은 다른 사람을 평하는 일에 주의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의 경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별반 알지 못한다. 우리가 행동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 우리에게 별반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만일 우리의 눈이 열리게 되면, 우리는 선악에 대한 가장 중요한 결과가 우리의 언행에 달려있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을 생각해 줌많은 사람들은 그다지 큰 짐을 져 보지 못하였고, 그들의 마음은 진정한 고민을 별로 알지 못하고,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어려움과 고통을 별반 느껴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진정으로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의 일을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이 그의 짐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마치 어린 아이가 짐을 지고 있는 아버지의 걱정과 수고를 이해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어린 아이는 아버지가 염려하고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한다. 그에게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의 생애에 여러 해 동안의 경험이 쌓이게 되고, 그 자신이 생애의 짐을 지게 되면, 그는 그의 아버지의 생애를 돌아보게 되고, 한 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을 깨닫게 된다. 쓰라린 경험은 그에게 이해력을 열어 준다.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의 많은 사업이 이해되지 못하고, 마침내 그들이 죽음의 눈을 감을 때까지 그의 활동이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그가 내려놓은 짐을 지고, 그가 당했던 어려움을 당하게 되면, 그들은 그의 믿음과 용기가 어느 정도로 시련을 받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흔히 그 때에 가서야 그들이 너무도 신속히 비난하던 잘못을 버리게 된다. 경험이 그들에게 동정을 가르쳐 준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책임 있는 지위에 있도록 허락하신다. 그들이 실수할 때 그분께서는 그들을 교정하거나 옮기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심판하는 일을 우리 손으로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다윗이 사울에 대하여 취한 행동에는 교훈이 있다. 하나님의 명령으로 사울은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다. 그가 불순종하였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그에게서 나라를 빼앗을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에 대한 다윗의 태도는 얼마나 부드럽고 예모 있고 관대하였던가. 사울은 다윗의 생명을 빼앗으려고 광야로 왔다. 그리하여 그는 아무런 수행원도 없이 다윗과 그의 용사들이 숨어 있는 바로 그 동굴에 들어왔다. “다윗의 사람들이 가로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붙이리니 네 소견에 선한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 … 다윗이 …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삼상 24:4-6). 구주께서는 우리에게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고 명령하신다(마 7:1, 2). 미구에 그대의 생애의 기록이 하나님 앞에 보여질 것임을 기억하라. 그분께서는 또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고” 말씀하신 바를 기억하라(롬 2:1).*
잘못을 오래 참아 줌
우리는 우리에게 과해진 어떤 실제적 혹은 과학적 피해 때문에 우리의 마음을 짜증스럽게 해서는 안된다. 자아(自我)는 우리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적이다. 어떤 형태의 악이라도 성령의 지배를 받지 않는 인간의 정욕보다 더욱 나쁜 영향을 품성에 미치는 것은 없다.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어떤 승리도 자아를 이기는 승리보다 더 귀한 것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이 쉽게 상처를 받도록 허용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이나 명성을 수호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살아야 한다. 우리가 영혼 구원에 관심을 가지게 될 때, 우리는 상호간의 교제에서 그처럼 흔히 대두되는 사소한 의견 차이를 개념치 않게 된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거나 행동하든지 간에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되고 성령과 교통하는 일에 방해받을 필요가 없다.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벧전 2:20).복수하지 말라. 그대는 할 수 있는 대로 오해의 원인이 되는 모든
것을 제거해 버리라.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 원칙을 희생하지 않는 한 그대에게 있는 모든 힘을 다하여 다른 사람들과 화목하도록 하라.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3, 24).
그대에게 성급한 말을 하거든 같은 정신으로 결코 대답하지 말라. “유순한 말은 분노를 쉬게” 한다는 말을 기억하라(잠 15:1). 그리고 침묵에는 놀라운 힘이 있다. 화를 낸 사람에게 대답으로 말을 하면 때때로 분노를 자극하는 역할만 하게 된다. 그러나 부드럽고 오래 참는 정신으로 침묵을 지키게 되면 분노는 빨리 사라져 버린다.
찌르는 듯이 비난하는 말들이 폭풍우같이 쏟아질 때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에 머물러 있게 하라. 마음과 정신에 하나님의 약속을 저장해 두라. 만일 그대가 학대를 받거나 애매하게 비난을 받으면, 화를 낸 대답을 하지 말고 다음과 같은 귀중한 약속들을 반복하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21).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리로다”(시 37:5, 6).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눅 12:2).
“사람들로 우리 머리 위로 타고 가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불과 물을 통과하였더니 주께서 우리를 끌어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시 66:12).우리는 동정과 도움을 얻기 위하여 예수님을 바라보는 대신에 우리의 동료 인간들을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자비하시고 성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람을 의지하고 육신을 우리의 무기로 삼는 것이 어리석은 일임을 알려 주기 위하여 때때로 우리가 신뢰하는 사람에게서 실망을 당하도록 허락하신다. 진실하고, 겸손하고, 이기심 없이 하나님을 신뢰하자.
그분께서는 우리의 마음 속에 사무쳐 있지마는 표현할 수 없는 우리의 슬픔을 아신다. 모든 것이 어둡고 이해할 수 없을 때에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요 13:7)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억하라.
요셉과 다니엘의 역사를 연구하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해치고자 하는 사람들의 음모를 막지 않으셨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 모든 계책들이 시련과 갈등 속에서도 그들의 믿음과 충성심을 지켜 온 당신의 종들에게 유익하도록 역사하셨다.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는 반대의 세력을 만나게 될 것이다. 성질을 자극하여 화가 나게 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때에 올바른 정신으로 대함으로써 그리스도인 특성이 나타나게 된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게 되면, 우리는 짜증이 나고 화가 날 수 밖에 없는 경우에도 인내하고 친절하고 오래 참게 될 것이다. 매일, 매년 우리는 자아를 정복하고 고상하고 용감한 사람으로 자라나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맡은 과업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도움과 확고한 결심과 흔들리지 않는 목적과 끊임없는 경성과 계속적인 기도가 없으면 그 일을 성취할 수 없다. 각 사람은 개인적으로 싸워야 할 싸움이 있다. 우리가 하나님과 협력하는 자가 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까지도 우리의 성품을 고상하게 하거나 우리의 생애를 유용하게 만드실 수 없다. 싸움을 거절하는 사람들은 승리의 힘과 기쁨을 잃어버린다.우리는 시련과 곤란과 비애와 슬픔에 대한 우리 자신의 기록을 보관해 둘 필요가 없다. 이 모든 것들은 책에 기록되어 하늘에 보관되어 있다. 우리가 불쾌한 것들을 회상하고 있는 동안, 매순간 우리를 둘러 있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 천사들도 경탄해 마지 않는 사랑, 곧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우리를 위하여 내어주신 사랑과 같은 유쾌한 생각들이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져 버리게 된다. 만일 그리스도의 일꾼된 그대가 다른 사람들이 당하는 것보다 더욱 큰 근심과 시련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 그대는 이와 같은 짐을 지고 있지 않는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평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리스도를 섬기는데는 위안과 기쁨이 있다. 그분과 함께 하는 생활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 주라.
만일 그대가 쾌활하지 못하고 기쁨이 없거든 그대의 감정을 이야기 하지 말라. 다른 사람들의 생애에 그늘을 던져 주지 말라. 냉랭하고 음산한 신앙은 영혼들을 그리스도께로 결코 이끌지 못한다. 그런 신앙은 사람들을 그분에게서 떠나가게 하여 사단이 방황하는 자들의 발앞에 펴놓은 그물에 걸리게 한다. 그대의 실망을 생각하지 말고 그대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주장할 수 있는 능력을 생각하라. 그대의 상상력으로 보이지 않는 사물을 붙잡으라. 그대의 생각을 그대를 위한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에 집중시켜라. 믿음은 시련을 견디고, 유혹을 저항하고, 실망을 극복할 수 있다. 예수님은 우리의 중보자로 살아계신다. 그분의 중보로 얻은 것은 모두 우리의 것이다.
그대는 그리스도께서 전적으로 당신을 위하여 사는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신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대는 귀양살이 간 사랑하는 요한처럼 그분을 위하여 어렵고 괴로운 지경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주님께서 찾아 주신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신실한 일꾼들 중 한 사람도 홀로 있게 버려 둠으로써 많은 역경과 싸워 패배하도록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당신 안에 그리스도와 함께 숨겨진 각 사람을 귀중한 보석처럼 보존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은 각 사람에 대하여 “내가 …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고 말씀하신다(학 2:23).
그리고 약속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축복하기를 좋아하시는 예수님에 대하여 이야기하라. 그분께서는 우리를 단 한 순간도 잊어버리지 않으신다. 좋지 못한 환경에 처해 있을지라도 우리가 확신을 가지고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하고, 그분 안에 감추어지면, 그분께서 임재하신다는 생각이 깊고 조용한 기쁨을 일으켜 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에 관하여, “내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로 알리라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는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고 말씀하셨다(요 8:28, 29).아버지의 임재하심이 그리스도를 두르고 있었으므로 무한한 사랑이
세상을 축복하기 위하여 허락한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그분에게 일어나지 않았다. 여기에 그리스도의 위로의 근원이 있었으며, 그것은 또한 우리들을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영으로 젖어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 그에게 다가오는 것은 무엇이든지 언제나 그의 곁에 계시는 구주로부터 온다. 주님의 허락이 없으면 어떤 것도 그에게 접촉될 수 없다. 우리의 모든 고생과 슬픔, 우리의 모든 시험과 시련, 우리의 모든 핍박과 궁핍, 한 말로 모든 것이 합동하여 선을 이루게 된다. 온갖 경험과 환경은 우리에게 유익한 것을 전달해 주는 하나님의 사자들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알게 되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거나 비난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계실 때에, 그분의 제자들이 그분을 잘 알게 된 후에 그분께서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헐뜯거나 화를 내는 말을 한 번이라도 하시는 것을 들었다면 그들은 얼마나 놀랐겠는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품성을 통하여 그분을 나타내야 한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말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롬 12:10, 벧전 3:9).
주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권리를 인정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신다. 사람들의 사회적 권리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그들의 권리가 고려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서 예의와 겸손으로 다루어져야 한다.그리스도교는 사람을 신사로 만들어 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예의가 바르셨다. 그분께서는 심지어 당신을 핍박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예모를 지키셨다. 그러므로 그분을 진정으로 따르는 사람들은 그와 같은 정신을 나타내야 할 것이다. 법관들 앞에 나온 바울을 보라. 아그립바 앞에서 한 그의 말은 설득력 있는 웅변에 대한 예증이 됨은 물론이요 참된 예의에 대한 예증이다.
복음은 이 세상에 유행하는 형식적인 예증을 권장하지 않고, 마음 속에 있는 진정한 친절에서 나오는 예절을 권장한다.
생애의 외형적 예절을 가장 잘 계발한다는 것은 온갖 성내는 것과 가혹하게 판단하는 것과 좋지 못한 말을 금지하는 것 등으로 만족한다는 뜻이 아니다. 진정한 예절은 자아를 최고의 대상으로 생각하고있는 한 결코 나타나지 않는다. 사랑이 마음 속에 있어야 한다. 철저한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주님에 대한 깊고 진정한 사랑에서 그 행동의 동기가 나오게 된다.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애정의 뿌리에서 그의 형제들에 대한 이기심없는 관심이 솟아나게 된다. 사랑은 그것을 소유한 자에게 우아함과 예모와 행동의 아름다움을 준다. 그것은 얼굴을 빛나게 하고 음성을 부드럽게 해 준다. 그것은 전인적(全人的)인의 미에서의 사람을 세련되고 고상하게 해 준다.
생애는 주로 위대한 희생과 놀라운 업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작은 것들로 이루어진다. 우리의 생애에 주목할 만한 가치조차 없는 것처럼 보이는 작은 것들로 말미암아 큰 선이나 악이 초래되는 수가 너무도 허다하다. 습관이 꼴지어지고 품성이 잘못 형성되는 것은 작은 것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오는 시험들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더욱 큰 시험이 올 때에, 그들은 준비되지 못한 것을 깨닫게 된다. 오직 우리는 일상생활의 시험 중에서 원칙대로 행동함으로써만 가장 위험하고 가장 어려운 환경에서도 확고하고 성실하게 설 수 있는 능력을 얻을 수 있다.우리는 결코 홀로 있지 않다.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하든지 아니하든지 우리에게는 친구가 있다. 그대가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거기 계심을 기억하라.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님께서 주목하지 않으시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대의 모든 말과 행동에 대한 증인이 계신데, 그분은 거룩하시고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대가 말하거나 행동하기 전에 언제나 그것을 생각하라.
그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왕족의 한 사람이요 하늘 왕의 자녀이다.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약 2:7)을 더럽힐 한 마디의 말이나 행동도 하지 말라.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을 겸하여 갖춘 그 품성을 주의 깊이 연구하라. 그리고 “만일 예수님께서 나의 입장에 계시면 어떻게 하실 것인가”라고 끊임없이 물어 보라. 이것이 우리의 의무로 측정하는 척도가 되어야 한다. 술책을 써서 옳은 일을 하고자 하는 그대의 목적을 약화시키고 그대의 양심에 오점을 남기고자 하는 자들의 무리 가운데 쓸데없이 들어가지 말라.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거리에서, 차 안에서, 가정에서, 조금이라도 악의 모양이 되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피로 사신 생명을 계발시키고, 아름답게 하고, 고상하게 하기 위하여 날마다 무엇인가를 하라.
언제나 원칙에 의하여 행동하고, 충동에 의하여 결코 하지 말라. 그대의 성급한 본성을 온유와 친절로써 조화시키라. 가볍고 경솔한 일에 빠지지 말라. 야비한 농담이 그대의 입술에서 새어 나오지 못하게 하라. 심지어 생각에서까지도 비루한 일이 머물지 않도록 하라. 그것들은 제재되어야 하고 그리스도께 순종하게끔 사로잡혀야 한다. 생각을 거룩한 사물에 집중시켜라. 그리하면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순결하고 진실해질 것이다.
우리는 순결한 사상 속에 있는 고상하게 하는 능력을 언제나 의식할 필요가 있다. 어떠한 사람에 대해서도 유일의 안전은 올바르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하기 때문이다(잠 23:7). 자제의 힘은 사용할수록 강하여진다. 처음에는 어려운 것처럼 보이는 것도 끊임없이 반복함으로 쉬워지고, 마침내 올바른 사상과 행동이 습관화된다. 만일 우리가 원하기만 하면 우리는 값싸고 열등한 모든 것을 버리고 높은 표준에 오를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고, 하나님께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다른 사람들을 좋게 말하는 습관을 배양하라. 그대들과 교제하는 사람들의 좋은 특성들을 바라보라. 그리고 할 수 있는 대로 그들의 과오와 실패는 적게 보라. 어떤 사람이 말하고 행동한 것에 대하여 불평하고 싶은 유혹을 받게 되거든 그 사람의 생애나 품성에서 무엇인가 칭찬해 주라. 감사의 정신을 배양하라. 그리스도를 주셔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게 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에 대하여 그분을 찬양하라. 우리의 슬픔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은 아무런 보상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자비와 당신의 무한한 사랑을 생각함으로 찬양할 마음이 생기게 하라고 요구하신다.
열심 있는 일꾼들은 다른 사람들의 결점을 생각할 시간이 없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결점과 실패의 껍질에 생계를 위탁할 수 없다. 악담(惡談)은 이중의 저주가 되는데, 듣는 자보다 말하는 자가 더욱 큰 저주를 받게 된다. 분열과 분쟁의 씨를 뿌리는 자는 그 자신의 심령에 치명적인 결과를 거두게 된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악을 찾아내는 바로 그 행동은 찾아내는 그 사람들에게 악을 길러 준다. 다른 사람들의 결점을 생각함으로써 우리는 같은 모습으로 바뀌어진다. 그러나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분의 사랑과 완전한 품성에 대하여 말함으로써 우리는 그분의 형상으로 변화된다. 그분께서 우리 앞에 놓아주신 고상한 이상을 명상함으로써 우리는 순결하고 거룩한 분위기로 끌려 올라가 마침내 하나님께 계신 곳까지 이르게 된다. 우리가 지상에 살고 있는 동안, 우리와 관련되어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추어 주는 빛이 우리에게서 나가게 된다.다른 사람들을 비판하거나 정죄하는 대신에 다음과 같이 말하라. “나는 내 자신의 구원을 완성해야 한다. 내가 나의 영혼을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분과 협력하려면, 나는 내 자신을 부지런히 살펴야 한다. 나는 모든 죄악을 나의 생애에서 버리지 않으면 안된다. 나는 모든 결점을 이겨야 한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악을 대항하여 싸우고 있는 자들을 약하게 하는 대신에, 나는 용기를 주는 말을 함으로써 그들을 강하게 할 수 있다.” 우리는 피차 간에 지나치게 냉정하다. 우리는 너무도 흔히 우리의 동료들에게 힘과 격려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그대가 그들에게 관심과 동정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라. 그대의 기도로써 그들을 도와 주고, 그대가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알려 주라.
그리스도를 위한 일꾼이 되어 있노라고 공언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 진실한 제자들은 아니다.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과, 심지어 그분의 일꾼으로 간주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도 품성을 통하여 그분을 대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들은 그분께서 세우신 원칙들로 지배를 받지 않는다. 그와 같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인 경험이 옅은 동료 일꾼들에게 이따금 혼란과 낙망의 원인이 된다. 그러나 아무도 잘못 인도될 필요는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완전한 본을 보여 주셨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따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신다.
세상 끝까지 곡식 가운데는 가라지가 있을 것이다. 집 주인이 종들이 주인의 명예를 위한 열성으로 그 가라지들을 뽑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구하자, 그 집 주인은 말하였다.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마 13:29, 30).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비와 인내로써 곁길로 나간 자들과 심지어 거짓된 마음을 가진 자들까지도 오래 참으신다. 그리스도께서 택하신 사도들 가운데도 배반자 유다가 있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그분의 일꾼들 가운데 거짓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 있다고 해서 놀라고 낙심할 이유가 되겠는가?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예수심께서 당신을 배반한 자라는 것을 아시고서도 그 사람에 대하여 참으셨다면, 우리는 어느정도의 인내심으로 결함이 있는 자들에 대하여 참아야 할 것인가.
그런데 모든 사람, 심지어 가장 큰 결점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일지라도 모두가 유다와 같지는 않다. 화를 잘 내고, 성질이 급하고, 교만한 베드로는 때때로 유다보다 더 큰 단점을 드러내었다. 그는 더욱 빈번히 구주의 책망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생애에는 얼마나 큰 희생과 봉사가 있었던가!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에 대하여 얼마나 큰 증언이 되고 있는가! 할 수 있는 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실 동안 당신의 제자들과 함께 다니시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에게 하셨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해야 한다.그대는 무엇보다 먼저 그대의 동료들 사이에서 그대 자신을 선교사로
간주하라. 때때로 그리스도께 한 영혼을 인도하는 일은 막대한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그러므로 한 영혼이 죄에서 떠나 의로 돌아올 때, 하나님의 천사들에게 기쁨이 있다. 그대는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그 영혼들이 그처럼 냉정하게 취급되는 것을 보고 그 영혼들을 돌보는 바 되는 영들이 기뻐한다고 생각하는가? 만일 예수님께서 우리가 흔히 피차 간에 취급하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를 취급하신다면, 우리들 중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는가?
그대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대는 그대에게 잘못된 것처럼 보이는 행동이 나타나도록 한 동기를 알지 못한다. 올바른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의 품성은 비뚤어져 있고, 그들은 완고하고 왜곡되어 있으므로 모든 면에서 구부러져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은혜는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대들은 나를 실망시켰어, 나는 그대들을 도와 주기 위하여 애쓰지 않을 것이야”라고 말함으로 그들을 결코 쫓아 버리거나, 그들을 실망시키거나 낙심시키지 말라. 화를 내어 급하게 내어뱉는 몇 마디, 곧 우리가 생각할 때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바로 그 말은 그들의 마음과 우리의 마음을 하나로 연결지어 줄 감화의 줄을 끊어 버릴 수도 있다.
언행이 일치한 생애, 꾸준한 인내, 분노를 억제하는 침착한 정신은 언제나 가장 결정적인 논증이요 가장 엄숙한 호소이다. 만일 다른 사람들에게 이르러 오지 않은 그와 같은 기회와 특권이 그대에게 주어지거든 이것을 기억하고 언제나 지혜롭고 세심하고 친절한 선생이 되라.밀초 위에 분명하고 확실한 도장을 찍으려면 급하고 거칠은 방법으로 도장을 눌러 버리지 않는다. 부드러운 밀초 위에 조심성 있게 도장을 대고 침착하고 조용히 눌러서 그 모양이 굳어질 때까지 기다린다. 사람들의 심령도 그와 같이 취급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일관된 감화는 그리스도인의 능력의 비결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대가 그리스도의 품성을 확실하게 나타내는데 따라 좌우된다. 실수하는 사람들에게 그대의 경험을 말해 줌으로써 그들을 도와 주라.
그대가 큰 잘못을 했을 때 그대의 동료들의 인내와 친절과 도움이 그대에게 참으로 큰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는 사실을 말해 주라.
심판의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대는 언행이 일치되지 않고, 판단력이 없고, 무가치한 사람들에 대하여 보여 준 친절하고 사려 깊은 행동의 결과를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거룩한 진리에 대하여 배은망덕하고 배반하는 태도를 보게 되면 멸시와 분노를 나타내게 된다. 그렇게 하면 좋지 못한 반응이 생기게 된다. 그들은 그렇게 반응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부드러운 인내는 그들을 감동시켜 주고 흔히 그들에게 더욱 고상한 동기를 일깨워 주고 고상한 생애에 대한 욕망을 일으켜 준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 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 6:1, 2).하나님의 자녀라고 공언하는 모든 사람들은 선교사로서 모든 계층의 사람들과 접촉해야 한다는 것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거기에는 고상한 사람과 무례한 사람, 겸손한 사람과 교만한 사람, 믿음 있는 사람과 회의적인 사람, 교육받은 사람과 무식한 사람,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 등이 있다.
그처럼 다양한 사람들을 동일하게 취급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친절과 동정을 요구하고 있다. 상호간의 접촉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은 연마되고 고상해져야 한다. 우리는 형제로서의 유대 관계를 가지고 서로 의존하고, 다 함께 밀접히 결속되어 있다.
“하늘은 서로 서로 의지하여 살게 하신다.
주인이나 종이나 친구들이 다 같이.
모두가 서로 서로 도와 주라고 명하신다
한 사람의 약점이 무엇보다 강한 것으로 자라날 때까지.”
사교관계를 통하여 그리스도교는 세상과 접촉하게 된다. 하늘의 빛을 받은 모든 남녀들은 선한 길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어두운 앞길에 빛을 비춰 주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영으로 성화된 사교의 힘은 사람들을 구주께로 인도하는 일을 통하여 계발되어야 한다. 그리스도는 신성하고 아름다운 보배처럼 그것을 소유한 자만이 즐기기 위하여 마음 속에 숨겨져서는 안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영원토록 솟아나는 우리와 접촉하는 모든 사람에게 활기를 주는 샘물로 우리 속에 간직해야 한다.
향상과 봉사

그리스도인 생애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많은 의미가 있다. 그것은 완전히 온순함과 인내와 온유와 친절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런 덕성들이 필수적이기는 하다. 그러나 거기에는 또한 용기와 힘과 정력과 불굴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스도께서 정해주시는 길은 좁은 길, 극기의 길이다. 그 길에 들어가서 어려움과 낙망을 뚫고 전진하는데는 연약한 것 이상의 것이 요망된다.
품성의 힘
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곧 그들의 길이 순탄해지고 모든 장애가 제거되기를 기다리지 않는 사람, 기가 꺾인 일꾼들의 맥빠진 활동을 참신한 열성으로 고무시켜 줄 사람, 마음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뜨거워지고 손이 주님의 일을 하기에 강해진 사람들이 필요하다.선교사업에 종사하고 있는 어떤 사람들은 나약하고, 무기력하고, 풀이 죽고, 쉽게 낙심한다. 그들에게는 추진력이 결핍되어 있다. 그들은 어떤 일을 하는데 힘이 되는 적극적인 특성, 곧 열성이 타오르게 하는 정신과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 성공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은 용기 있고 희망적이어야 한다. 그들은 적극적인 덕성뿐만 아니라
활동적인 덕을 계발해야 한다. 그들은 분노를 가라앉히는 부드러운 대답을 해야 하는 한편, 악을 저항하는 영웅적인 용기도 가져야 한다. 그들은 모든 것을 참는 사랑과 함께 그들의 감화력을 적극적인 세력이 되게 해 줄 품성의 힘이 필요하다.
어떤 사람들은 확고한 품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의 목적과 계획에는 분명한 형태와 일관성이 없다. 그것들은 이 세상에서 실제적으로 거의 이용할 수 없는 것들에 불과하다. 이와 같이 연약하고, 우유부단하고, 비능률적인 것들은 극복되어야 한다. 진정한 그리스도인 품성에는 어려운 환경 때문에 바뀌어지거나 굴복될 수 없는 확고부동함이 있다. 우리는 도덕적 줏대, 곧 우쭐해지거나 매수되거나 위협받을 수 없는 진실을 소유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의 사업을 위하여 준비하는데 필요한 모든 기회를 이용하기를 바라신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그 사업을 완수하는데 우리의 모든 힘을 다 쏟고 그 사업의 신성성과 무거운 책임감을 우리의 마음에 언제나 간직하기를 바라신다.
훌륭한 사업을 수행할 자격을 갖춘 많은 사람들이 적은 것을 시도하기 때문에 적게 성취한다. 수 많은 사람들은 마치 그들이 살아가야 할 큰 목적이 없고, 달성해야 할 높은 표준이 없는 것처럼 인생을 통과한다. 그렇게 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들이 그들 스스로가 처해있는 위치를 과소평가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무한한 값을 지불하셨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지불된 그 값에 따라 우리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기를 우리에게 바라신다.
낮은 표준에 도달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라. 우리는 도달할 수 있는 상태, 다시 말해 하나님이 바라시는 우리의 마땅한 표준에 도달해있지 못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고력을 주시되, 그것이 활동하지 않는 상태로 멈추어 있거나 세속적이고 비열한 것을 추구함으로 왜곡되는 반면 가장 높고, 세련되고, 거룩하고, 고상하게 계발되어 하나님 나라의 사업을 전진시키는데 이용될 수 있게 하신다.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의 마음에 의하여 움직이는 단순한 기계가 되는 일에 동의해서는 안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생각하고 행동할 능력을 주셨다. 그러므로 그대는 지혜를 얻기 위하여 그분을 바라보고
주의 깊이 행동함으로써 책임을 감당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주신 개성을 견지하라. 다른 사람의 그림자가 되지 말라. 주님께서 그대 안에서, 그대 곁에서, 그리고 그대를 통하여 일해 주시기를 기대하라.
그대가 충분히 배웠으므로 이제는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라고 결코 생각지 말라. 세련된 마음은 성숙한 사람의 척도이다. 그대의 교육은 일생 동안 계속되어야 한다. 매일 그대는 배우고 배운 지식을 실제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그대가 어떤 위치에서 봉사하든지 그대의 동기를 계발시키고 품성을 자라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대가 어떤 일을 하든지, 그 일을 정확하고 부지런히 하라. 안이한 일을 찾고자 하는 경향을 극복하라.
매일의 활동에 적용되는 같은 정신과 원칙이 온 생애에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정해진 분량의 일을 하고 고정된 월급을 받으며, 적응이나 훈련에 어려움없이 정확하게 맞는다는 인정을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업을 하도록 부르시는 자들이 아니다. 그들의 육체적, 정신적, 도덕적 능력을 할 수 있는 대로 적게 쓰는 방법을 연구하는 자들은 하나님께로부터 풍성한 축복을 받으실 수 있는 일꾼들이 아니다. 그들의 모본은 전염성이 있다. 사욕(私欲)이 지배적인 동기가 된다. 감시를 받을 필요가 있는 사람들과 그들에게 배당된 매일의 의무만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착하고 충성된 종들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자들이 아니다. 정력과 성실과 근면을 나타내고 해야 할 필요가 있는 일은 무엇이나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일꾼들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은 실패가 무서워서 책임을 회피하므로써 무능해 진다. 그리하여 그들은 경험에서 얻는 교육을 받지 못하게 되고 독서와 연구와 그 밖의 어떤 유리한 점에서 받는 교육도 그들에게 주어질 수 없게 된다.
사람이 환경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환경이 사람을 만들도록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환경을 일하는 도구로 이용해야 한다. 우리가 환경을 지배해야지 환경이 우리를 지배하도록 허용해서는 안된다.
유능한 사람들은 반대를 당하고, 난처한 일을 만나고, 방해를 받아 온 사람들이다. 힘을 발휘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됨으로써 그들이 당하는 장애들이 그들에게는 오히려 훌륭한 축복임이 입증된다. 그들은 자기를 의존한다. 그러나 투쟁과 난관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과 능력을 계발시켜 주는 확고한 신뢰심을 발휘하게 해 준다.*
그리스도께서는 하기 싫은 봉사를 마지못해 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일을 시간으로 계산하지 않으셨다. 그분의 시간과 마음과 심령과 능력은 인류의 유익을 위한 활동에 바쳐졌다. 그분께서는 피곤한 나날을 일하는데 쓰셨고, 긴 밤 시간은 더욱 큰 일을 하기 위한 은혜와 인내력을 얻기 위한 기도에 바쳤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인성이 힘을 얻고, 온갖 기만적인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간악한 원수를 대적하고, 인류를 구원하는 당신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무장을 갖추고자 강한 부르짖음과 눈물로써 하나님께 탄원하셨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일꾼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고 말씀하신다(요 13:15).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고 말하였다(고후 5:14). 이것이 바울의 행동을 지배하는 원칙이었고 그의 동기가 되는 힘이었다. 그의 열성이 한 순간이라도 의무의 길에서 약해지면, 일단 십자가를 쳐다봄으로써 그는 마음의 허리를 새롭게 동이고, 자아부정(自我否定)의 길을 전진해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는 형제들을 위하여 활동할 때 부드럽게 해 주고 고취시켜 주는 능력을 가진 그리스도의 희생에 나타난 무한한 사랑의 표현에 크게 의지했다.
그의 호소가 얼마나 열렬하고 감동적인지 생각해 보라. “우리 주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8:9). 그대는 그분께서 얼마나 높은 곳에서 굽어보셨으며, 얼마나 심한 굴욕 속으로 내려오셨는지 안다. 그분의 발은 희생의 길을 밟게 되었고, 마침내 당신의 생명을 주시기까지 돌이키지 않았다. 하늘에 있는 보좌와 십자가 사이에는 그분을 위한 휴식이 없었다. 그분께서는 인간을 극진히 사랑하시기 때문에 온갖 모욕을 달게 받으시고 모든 능욕을 견디셨다.
바울은 우리에게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라고 권면한다. 그는 또한 다음과 같은 정신을 가지라고 우리에게 명령한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였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4-8).바울은 그리스도의 굴욕이 알려지고 이해되게 하고자 심히 열망하였다. 그는 만일 사람들이 하늘의 왕께서 겪으신 놀라운 희생을 생각하게 된다면 이기심이 그들의 마음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그 사도는 죄인들을 위한 구주의 놀라운 희생에 대하여 우리가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는 점들을 하나씩 헤아려 본다. 그는 먼저 사람들의 마음을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아버지 품에, 계실 때 가지셨던 지위를 생각해 보도록 이끄신다. 그는 그 후에 그분께서 당신의 영광을 버리시고, 자원해서 인간 생활의 비천한 상태를 취하시되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죽기까지, 곧 가장 굴욕적이고, 가장 역겨웁고, 가장 고통스런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시기까지 복종하셨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우리는 감사와 사랑이 없이, 그리고 우리가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깊이 느끼지 않고 이처럼 놀랍게 표현된 하나님의 사랑을 명상할 수 있겠는가?
그런 주님을 인색하고 이기적인 동기에서 섬겨서는 안된다.
베드로는 “너희가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라고 말한다(벧전 1:18). 아, 만일 은이나 금으로 인간의 구원을 살 수 있었다면,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라”(학 2:8)고 말씀하신 분께서 그 일을 얼마나 쉽게 성취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죄인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의 보배로운 피로써만 구속(球贖)될 수 있었다. 이 놀라운 희생을 감사하지 못하고,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에서 물러가는 사람들은 그들의 이기심 때문에 멸망받게 될 것이다.
일편단심
그리스도의 생애에 있어서는 모든 것이 그분의 사업, 곧 그분께서 성취하기 위하여 오신 위대한 구속사업에 종속적인 것으로 되었다. 그리고 그와 꼭 같은 헌신, 꼭 같은 자아부정과 희생, 꼭 같이 하나님의 말씀의 요구에 복종하는 것 등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야 한다.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는 특권을 받고자 갈망하게 될 것이다. 그를 위하여 하늘이 이루어 준 일을 명상할 때 그의 마음은 무한한 사랑과 경이로운 감사의 마음으로 감동을 받는다. 그는 자기의 능력을 하나님의 사업에 다 바쳐 헌신함으로 감사의 마음을 나타내고자 열망하게 된다. 그는 그리스도와 그분께서 사신 소유물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고자 갈망한다. 그는 수고하고, 어려움을 겪고, 희생한다.
진정한 하나님의 일꾼은 최선을 다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그렇게 함으로 그의 주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모든 역량을 계발시키기 위하여 노력할 것이다. 그는 모든 의무를 하나님께 하는 것처럼 이행할 것이다. 그의 한 가지 소망은 그리스도께서 존경과 완전한 봉사를 받게 하는 것이 될 것이다.
쟁기와 제단 사이에 서 있는 수소를 묘사한 그림이 있는데, 거기에는 밭 이랑에서 일을 하든지 희생제물의 단 위에 바쳐지든지 “어느 것이나 할 수 있는 준비가 갖추어져 있다”는 글귀가 씌여져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참 자녀의 자세, 곧 즐거운 마음으로 의무가 요구하는 곳으로 가서 구주의 사업을 위하여 자아를 부정하고, 희생할 수 있는 자세이다.
최고의 경험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한 새로운 계시, 곧 그분의 교훈과 일치되는 매일의 경험이 끊임없이 요구된다. 우리는 고상하고 거룩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지식과 덕행에 있어서 끊임없이 향상하는 것이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이다. 하나님의 율법은 모든 사람에게 “높이 올라오라, 거룩하게 되라, 더욱 거룩하게 되라”고 초청하시는 그분의 음성을 그대로 보여 준다. 우리는 매일 그리스도인 품성의 완성을 향하여 전진할 것이다.주님을 위한 사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높고, 깊고, 넓은 경험이 필요하다. 이미 하나님의 위대한 가족에 속한 많은 사람들은 그분의 영광을 바라보며 영광에서 영광으로 변화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별로 알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탁월하심에 대하여 희미하게 깨닫고서도 그들의 마음은 기쁨으로 감격한다. 그들은 구주의 사랑을 좀 더 완전하고 깊게 깨닫고자 갈망한다. 그러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찾는 온갖 욕망을 간직하게 하라. 성령께서는 역사하도록 용납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역사하고, 꼴지어질 수 있는 사람들을 꼴짓고 새로운 형상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을 새 형상으로 조성하신다. 그대 자신을 신령한 생각과 거룩한 교제로써 계발시켜라. 그대는 하나님의 영광의 여명의 첫 광선을 본데 불과하다. 그대가 주님을 알기 위하여
노력함에 따라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게 된다는 말을 깨닫게 될 것이다(잠 4:18).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다(요 15:11).
그리스도께서는 언제나 당신의 사명의 결과를 보셨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지상생애가 어려움과 자아희생으로 충만해 있었지마는, 그 모든 수고가 헛되지 않으리라는 생각으로 기뻐하셨다. 사람들을 살리기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바침으로 그분께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사람에게 회복해 주실 것이었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진토에서 건져내어 당신 자신의 품성을 따라 우리의 품성을 새로 형성시키고 당신의 영광으로 그것을 아름답게 꾸미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수고의 결과를 보시고 만족하셨다. 그분께서는 먼 장래를 보시고 당신의 굴욕을 통하여 용서와 영생을 받을 사람들의 행복을 보셨다. 그분께서는 그들의 허물 때문에 상처를 받으시고 그들의 죄악으로 채찍에 맞으셨다. 그분께서 징계를 받으심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분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는 나음을 입었다. 그분께서는 구속받은 자들이 부르짖는 환성(歡聲)을 들으셨다. 그분께서는 속량(贖良)함을 받은 사람들이 모세의 노래와 어린 양의 노래를 부르는 소리를 들으셨다. 비록 피의 침례를 먼저 받아야 하고, 세상의 죄가 흠없는 그분의 심령을 무겁게 누르고, 말할 수 없는 저주의 그림자가 그분 위에 덮였을지라도, 그분께서는 당신 앞에 놓여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시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시고자 그 길을 택하셨다.
이 기쁨은 그분을 따르는 모든 사람이 나누어 가져야 할 기쁨이다. 그러나 내세의 상급이 아무리 크고 영광스러울지라도 우리의 상급을 모두 최후의 구원을 받는 그 순간을 위하여 간직해 두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도 믿음으로 구주의 기쁨에 참여해야 한다. 우리는 모세처럼 보이지 않는 분을 보는 것처럼 바라보고 견디어야 하다.
오늘날 교회는 싸우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거의 완전히 우상숭배에 빠져 있는 흑암의 세상과 대결하고 있다.
주의 기쁨
아흔 아홉 양은
우리에 편히 있어도
그 중에 하나 떨어져
길 잃고 애쓰네
아주 멀리 멀리 떠나서
제 선한 목자 잃었네
제 선한 목자 잃었네
지금 남아 있는 양떼가
넉넉치 않은가
그러나 목자 하는 말
한 양도 소중해
비록 길이 멀고 험해도
나 속히 찾아 가겠네
나 속히 찾아 가겠네
잃은 양을 찾아 갈 때에
저 험한 곳에서
그 양의 우는 소리를
저 목자 들었네
급히 구원하러 올라가
그 양을 찾아 안았네
그 양을 찾아 안았네
그 때 목자 크게 기뻐서
큰 소리 외치며
이 양을 도로 찾으니
내 맘이 기쁘다
모든 천사 응답하는 말
그 잃은 양을 찾았네
그 잃은 양을 찾았네
엘리자벳 C. 클레파네
그러나 머지 않아 싸움은 끝나고 승리를 얻을 날이 오고 있다. 하나님의 뜻은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구원받은 백성들은 하늘의 율법 이외에 어떤 율법도 알지 못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가족을 이루어 찬양과 감사의 옷, 곧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고 기뻐할 것이다. 극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뀌어진 모든 천연계는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릴 것이다. 세상은 하늘의 빛에 잠기게 될 것이다. 달빛은 햇빛과 같이 되고, 햇빛은 지금보다 일곱 배나 더 밝아질 것이다. 세월은 기쁨 중에 흘러갈 것이다.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연합하여 “다시는 죄가 없고 죽음도 다시 없으리라”고 선포하실 때, 그 광경을 보고 새벽 별들은 함께 노래하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기쁨으로 소리치게 될 것이다.
장래의 영광에 대한 이 계시들, 곧 하나님의 손으로 묘사된 장면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귀중한 것이 되어야 한다.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와 협력하고 그것을 하나의 특권으로 여기며 그분을 위하여 고난받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은혜로운 환영의 말을 영원한 나라의 문턱에 서서 들어보라. 천사들과 함께 그들은 면류관을 벗어 구주의 발 앞에 던지면서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고 부르짖는다(계 5:12, 13).거기서 구속받은 사람들은 그들을 십자가에 달리신 구주께로 인도해 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연합하여 인간에게 하나님의 생명과 같이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돌아가신 분을 찬양하게 된다. 대쟁투가 끝났다. 모든 고난과 투쟁은 끝났다. 구속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보좌를 중심으로 둘러설 때 온 하늘은 승리의 노래로
충만해진다. 모든 사람들은 “죽임을 당하”시고 우리를 하나님께 구원해 주신 “어린 양의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고 기쁜 노래를 부른다.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계 7:9, 10).“이는 큰 환란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7:14-17, 21:4).
우리는 언제나 이 보이지 않는 사물에 대한 계시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영원한 사물과 순간적인 사물과의 가치를 올바르게 분별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을 강화시켜 고상한 생애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주게 할 것이다.
하나님과 함께 산에 있음
하나님께서는 “산에 올라 내게로 와서”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이스라엘을 구원할 하나님의 사자가 되기 전에 그에게 한적한 산에서 40년 간 당신과 교제하도록 명령하셨다. 그는 바로왕에게 하나님의 기별을 전하기 전에 불붙는 떨기나무 사이에서 천사와 이야기하였다. 그가 하나님의 백성의 대표자로서 하나님의 율법을 받기 전에 그는 산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도록 부름을 받았다. 우상숭배자들을 재판하기 전에 그는 바위 틈에 숨어 있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는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다 … 형벌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셨다(출 33:19, 34:6, 7). 모세가 그의 생명과 함께 이스라엘을 위한 그의 짐을 벗어 버리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비스가산 꼭대기로 부르셔서 허락의 땅의 영광을 그의 앞에 펼쳐 보이셨다.제자들이 그들의 사명을 가지고 나가기 전에,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산으로 가자는 명령을 받았다. 오순절의 능력과 영광이 있기 전에, 구주와 교제를 나누는 밤,
갈릴리의 산에서 가진 집회, 감람산에서의 이별의 장면과 천사들의 약속, 다락방에서의 기도와 교제 등이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큰 시련이나 어떤 중요한 사업을 위하여 준비하실 때에 한적한 산에 들어가셔서 당신의 아버지께 기도하심으로 밤을 지새곤 하셨다. 열 두 사도의 안수, 산상설교, 변화산의 경험, 심판정과 십자가의 고통, 부활의 영광, 이 모든 일들이 있기 전에 하룻밤의 기도가 먼저 있었다.*
기도의 특권
우리도 또한 영적으로 새 힘을 얻기 위하여 명상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별도로 가져야 한다. 우리는 기도의 능력과 효력의 가치를 마땅히 분별해야 할 만큼 분별하지 못하고 있다. 기도와 믿음은 세상의 어떤 능력이 성취할 수 없는 것을 이룰 수 있다. 우리는 모든 점에 있어서 똑 같은 위치에 두 번 처하는 일이 드물다.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장면과 새로운 시험을 통과하게 되는데, 여기에 있어서 과거의 경험은 충분한 지도역할을 하지 못한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계속해서 빛을 받아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음성을 듣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기별을 보내 주신다. 겟세마네의 고통의 밤에 자고 있던 제자들은 예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였다. 그들은 천사의 임재를 희미하게 느꼈으나 그곳에 있는 능력과 영광은 잃어버렸다. 그들은 졸음과 혼수상태에 빠져있었기 때문에 그들 앞에 있는 무서운 사건들을 위하여 그들의 심령을 강하게 해 줄 증거를 얻지 못하였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하나님의 교훈이 가장 필요한 바로 그 사람들이 흔히 그것을 받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 자신을 하늘과 교통할 수 있는 곳에 두지 않기 때문이다.우리에게 매일 다가오는 시험은 기도를 요구한다. 도처에 위험이 둘려 있다.
다른 사람들을 죄악과 멸망으로부터 건져내고자 애쓰고 있는 사람들은 특별히 시험을 당하게 된다. 그들은 죄악과 끊임없이 접촉할 때 그들 자신이 부패해지지 않기 위하여 그들은 하나님을 굳게 붙들 필요가 있다. 사람들을 높고 거룩한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오게 하는 길은 신속하고 결정적이다. 한 순간에 사람의 상태를 영원히 고정시켜 버리는 결정이 이루어질 수 있다. 한 번 승리하지 못하게 되면 심령을 무방비 상태로 만들어 버린다. 하나의 악습이라도 그것을 굳게 저항하지 않으면 그것이 쇠줄처럼 강하게 되어 온 전신을 결박해 버릴 것이다.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들을 시험받는 장소에 버려 두는 것은 주님을 언제나 그들 앞에 모시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지도록 허용하면 우리의 방패는 우리에게서 사라진다. 그대의 모든 선한 목적과 선한 의도가 그대에게 악을 저항할 수 있게 해 줄 수는 없다. 그대들은 기도하는 남녀가 되어야 한다. 그대의 간구는 무력하고, 간헐적이고, 변덕스러워서는 안되며, 열렬하고, 끈기있고, 지속적이어야 한다. 기도하기 위하여 언제나 그대의 무릎을 꿇고 있을 필요는 없다.
그대가 홀로 있을 때, 걸어갈 때, 일상생활로 분주할 때, 구주와 이야기하는 습관을 기르라. 마음을 끊임없이 하늘로 향하여 도움과 빛과 힘과 지식을 얻기 위하여 조용한 탄원을 올려라. 호흡마다 기도가 되게 하라.
우리는 하나님을 위한 일꾼으로서 사람들을 찾아가되, 그들이 흑암에 싸여 있고, 죄악에 빠져 있고, 타락함으로 더러워져 있는 그곳으로 찾아가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해와 방패가 되는 분에게 머물러 있는 동안, 우리를 두르고 있는 악은 우리의 의복에 하나의 오점도 남기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영혼들을 구원하고자 활동할 때 하나님을 신뢰할 것같으면 우리는 수치를 당하지 않게 될 것이다. 마음 속에 계시는 그리스도, 생활 속에 계시는 그리스도, 그것이 우리의 안전의 비결이다. 주님께서 함께 계시는 환경은 악한 것을 모두 싫어하도록 마음을 고무시켜 줄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그분의 마음과 꼭 같은 것으로 인정받고 있으므로 우리는 사상과 목적에 있어서 그분과 일치되어야 한다.
야곱이 연약하고 죄 많은 상태에서 하나님의 왕자가 된 것은 믿음과 기도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그대 역시 그렇게 함으로 높고 거룩한 목적을 가진 남녀, 고상한 생애를 하는 남녀, 어떤 이유에서라도 진리와 정의와 공의에서 떠나지 않는 남녀가 될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심한 걱정과 무거운 짐과 의무에 눌려 있다. 그러나 그대의 업무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그리고 그대의 짐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그대에게는 예수님이 더욱 필요하다.
하나님께 드리는 공중예배를 등한히 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특권을 가볍게 여기지 말 것이다. 병자들을 간호하는 사람들은 이따금 그 특권을 누릴 수 없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쓸데없이 예배당에 결석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병자들을 간호할 때는 단순히 어떤 세속적인 사업에서보다 그 일에 바치는 헌신과 희생정신에 성공이 더욱 크게 좌우된다. 책임을 지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크게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곳에 자기 자신을 놓아 둘 필요가 있다. 그대에게 맡겨진 지위는 다른 사람들의
지위보다 책임이 더욱 중하기 때문에 그대는 성령의 도움과 하나님의 지식을 얻고자 하는 열망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많이 가져야 한다.
우리의 사업에 있어서 하나님과 교통함으로 얻는 실제적인 결과보다 더욱 필요한 것은 없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평안과 안식을 얻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의 일상생활을 통하여 나타내야 한다. 마음 속에 있는 그분의 평화가 얼굴에 반사될 것이다. 그것은 음성에 설득력이 있게 해 줄 것이다. 하나님과의 교통은 품성과 생애를 고상하게 해줄 것이다. 사람들은 우리가 최초의 제자들처럼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사실은 일하는 사람에게 다른 어떤 것이 줄 수 없는 능력을 줄 것이다. 이 능력이 그 자신에게서 박탈당하도록 허용되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이중(二重)의 생활, 곧 생각하고 행하는 생활, 조용히 기도하고 열심히 일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하나님과 교통함으로 얻은 능력은 사려 깊고 주의성 깊은 마음을 훈련시키는 열렬한 노력과 합하여 사람을 일상생할의 의무를 감당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고 아무리 어려울지라도 모든 환경에서 마음을 평안하게 지켜 준다.
거룩한 보혜사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어떤 세속적 친구들에게 호소하고, 그들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구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려운 환경에 처하게 되면 그들의 마음은 불신으로 가득해지고, 전도는 암담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언제나 그들 곁에는 각 시대를 통하여 강한 보혜사가 계시며, 그들에게 당신을 확신하라고 호소하신다. 죄의 무거운 짐을 져 주시는 예수님께서는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초청하고 계신다. 우리는 그분을 버리고 우리 자신들처럼 하나님께 의존할 수 밖에 없는 불안한 사람들을 찾아갈 것인가?
위대한 사업에 비교해 볼 때 그대는 그대의 품성의 결함과 능력의 부족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대가 일찍이 사람에게 부여된 가장 위대한 지력을 가졌을지라도 그것은 그대의 사업을 위하여 충분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는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말씀하신다(요 15:5).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그 결과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라도, 확고하고 꾸준한 믿음으로 그분을 굳게 붙잡으라.
그대의 사업에 있어서, 여가 시간을 이용한 교제에 있어서, 생애의 모든 약속에 있어서, 한 말로 그대가 이루는 모든 교제는 열렬하고 겸손한 기도로 시작하라. 그렇게 함으로써 그대는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사실을 나타내게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그대를 영화롭게 해 주실 것이다. 그대가 상심될 때 기도하라. 실망 중에 있을 때에는 입을 굳게 다물고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라. 다른 사람들의 앞 길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지 말고 모든 것을 예수님께 아뢰라. 그대의 손을 뻗어 도움을 구하라. 그대의 연약한 상태에서 무한한 능력을 붙잡으라. 그대가 하나님의 빛 가운데서 빛을 보고 그분의 사랑 안에서 기뻐할 수 있도록 겸손과 지혜와 용기와 믿음의 증진을 위하여 기도하라.
헌신과 신뢰
우리가 겸손하고 뉘우치는 마음을 가지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실 수 있고 또한 나타내시고자 하는 곳에 있게 된다. 우리가 지난 날에 받은 자비와 축복을 근거로 더욱 큰 축복을 달라고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심히 기뻐하신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완전히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기대 이상의 것을 성취해 주실 것이다. 주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필요한 것을 정확하게 아시며, 우리가 사람들에게 축복을 나누어 주기 위하여 어느 정도의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한지 아신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고 우리 자신들의 심령을 고상하게 향상시키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신다.우리는 우리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적게 신뢰하고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또한 우리를 통하여 하실 수 있는 것을 더욱 많이 신뢰해야 한다.
그대는 그대 자신의 사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업을 하고 있다. 그대의 의지와 길을 그분께 맡겨라. 단 한가지도 자신을 위하여 남겨 두지 말고, 단 한 가지도 자신과 타협하지 말라.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누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라.
우리가 성경의 진리를 우리 개인의 경험으로 만들지 않으면 단순히 안식일마다 설교를 듣고, 성경을 되풀이해서 통독하고, 성경절을 하나 하나 설명하는 것 등이 우리와 우리의 말을 듣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할 것이다. 이해력과 의지와 애정은 하나님의 말씀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그 말씀의 교훈이 생애의 원칙으로 바뀌어질 것이다.
그대가 주님께 도움을 구할 때, 그대가 그분의 축복을 받는다는 것을 믿음으로써 그대의 구주를 영화롭게 하라. 모든 지혜, 모든 능력은 우리의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우리는 오직 구하기만 하면 된다.
끊임없이 하나님의 빛 가운데서 걸어가라. 하나님의 품성을 밤낮 명상하라. 그리하면 그대는 주님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분의 선하심을 기뻐할 것이다. 그대의 마음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불타오를 것이다. 그대는 마치 영원한 팔에 안겨 있는 것처럼 높이 들려질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과 빛으로 그대는 그대가 전에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깨닫고 훨씬 더 많은 것을 성취하게 될 것이다
“내 안에 거하라”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명령하신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요 15:4-16).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계 2:17).
“이기는 자 … 내가 또 그에게 새벽별을 주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계 2:26-28, 3:12)
“오직 한 일”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는 바울과 같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빌 4:13). 과거의 과오와 실패가 어떠하든지 간에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것들을 딛고 일어설 수 있다. 우리는 사도처럼 말할 수 있다.“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 3:1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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