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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장
필수적인 지식*

하나님을 아는 참 지식

우리는 우리 구주와 같이 하나님께 봉사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존재한다. 우리는 품성으로 하나님을 닮고 봉사의 생애로써 그분을 세상에 나타내기 위하여 살아간다. 하나님과 동역자가 되고, 그분을 닮아가고, 그분의 품성을 나타내기 위하여 우리는 그분을 올바르게 알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 스스로를 계시해 주신 그대로 그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모든 참 교육과 모든 참 봉사의 기초이다. 그것은 유혹을 방지해 주는 유일의 참 안전책이다. 그것만이 우리를 품성에 있어서 하나님과 유사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그것은 동료 인간들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일하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지식이다. 품성의 변화, 생애의 순결, 봉사의 능률, 바른 원칙의 고수 등은 모두 하나님을 아는 올바른 지식에 달려있다. 그 지식은 이생과 내세의 생활을 위하여 다같이 필수적인 준비가 된다.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 9:10).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통하여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벧후 1:3)이 우리에게 주어진다.
예수님께서는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고 말씀하셨다(요 17:3).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내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예레미야 9장 23, 24절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에 관하여 주신 계시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청컨대 너는 그 입에서 교훈을 받고
그 말씀을 네 마음에 두라 …
그리하면 전능자가 네 보배가 되시며 …
이에 네가 전능자를 기뻐하여
하나님께로 얼굴을 들 것이라
너는 그에게 기도하겠고
그는 들으실 것이며
너의 서원한 것을 네가 갚으리라
네가 무엇을 경영하면
이루어질 것이요
네 길에 빛이 비취리라
네가 낮춤을 받거든
높아지리라고 말하라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구원하시느니라.”
욥기 22장 21-29절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롬 1:20).
오늘날 우리가 쳐다보는 천연계의 만물은 다만 에덴동산의 영광을 희미하게 보여 주는데 불과하다. 죄는 지상의 아름다움을 훼손시켜 버렸다. 만물 위에서 죄악이 나타낸 흔적들을 볼 수 있다. 그럴지라도 아름다운 것들이 많이 남아 있다. 천연계는 능력이 무한하시고 은혜와 자비와 사랑이 많으신 분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생명과 기쁨으로 충만케 하셨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 비록 훼손된 상태에 있을지라도, 만물은 위대한 예술가이신 하나님의 솜씨를 보여 준다. 우리가 어디를 향하든지,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자비의 증거를 볼 수 있다.웅장한 뇌성의 장엄한 진동과 태고(太古)적부터 끊임없이 들려오는 대양(大洋)의 파도 소리에서 숲 속을 아름다운 음률로 장식하는 즐거운 소리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천연계의 음성은 하나님을 찬양한다. 놀라운 색깔과 색조(色調)로써 아름다운 대조를 이루는가 하면, 또한 조화를 이루어 변화하는 땅과 바다와 하늘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 영원히 변함없는 산들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말해 준다. 햇빛을 받아 푸른 나래를 펄럭이는 나무들과, 우아한 미를 간직하고 있는 꽃들은 그들의 창조주를 가리켜 준다. 갈색 대지(大地) 위에 깔려 있는 싱그러운 풀들은 당신의 가장 미천한 피조물들을 돌봐주시는 하나님의 보호를 말해 준다.
바다의 동굴들과 땅의 심연(深淵)은 그분의 보화들을 드러내 준다. 진주를 바다 속에, 자수정(紫水晶)과 귀감람석(貴橄欖石)을 바위 속에 두신 하나님은 미(美)를 사랑하시는 분이시다. 하늘에 떠오르는 태양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만물의 생명과 빛이 되시는 하나님을 알려 준다. 땅을 아름답게 꾸며 주고 하늘을 밝혀 주는 밝은 광채와 미는 하나님을 나타낸다.
“그 영광이 하늘을 덮었고.”
“주의 부요가 땅에 가득하니이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하박국 3장 3절, 시편 104편 24절,
시편 19편 2-4절
만물은 하나님의 부드럽고 아버지다운 보호와 당신의 자녀들을 행복하게 해 주고자 하는 그분의 소원을 말해 준다.
모든 천연계를 통하여 역사하고 만물을 지탱해 주는 큰 힘은 어떤 과학자들이 말하는 바와 같이 단순히 하나의 보편적 원칙이나 활동의 원동력이 아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개성을 가지신 존재이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그렇게 계시해 주셨기 때문이다.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라 …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 위에서, 이 하늘 아래서 망하리라 하라.”
“야곱의 분깃은 이같지 아니하니
그는 만물의 조정자요 이스라엘은 그 산업의 지파라”
“여호와께서 그 권능으로 땅을 지으셨고
그 지혜로 세계를 세우셨고
그 명철로 하늘들을 펴셨으며”
예레미야 10장 10, 11, 16, 12절

천연계는 하나님이 아님
천연계 속에 있는 하나님의 업적은 본질상 하나님 자신이 아니다. 천연계의 사물들은 하나님의 품성과 능력의 표현이다. 그러나 우리는 천연계를 하나님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인간의 예술적 기량은 매우 아름다운 작품, 곧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해 주는 것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 작품을 만든 사람의 사상에 관하여 무엇인가를 나타낸다. 그러나 그 작품은 작품을 만든 사람이 아니다. 영광을 받아야 하는 것은 작품이 아니고 그 작품을 만든 예술가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천연계가 하나님의 뜻을 표현하고 있을지라도, 높임을 받아야 하는 것은 천연계의 하나님이다.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땅의 깊은 곳이 그 위에 있으며
산들의 높은 곳도 그의 것이로다
바다가 그의 것이라 그가 만드셨고
육지도 그의 손이 지으셨도다.”
시편 95편 6, 4, 5절
“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
사망의 그늘로 아침이 되게 하시며
백주로 어두운 밤이 되게 하시며”
“대저 산들을 지으며 바람을 창조하며
자기 뜻을 사람에게 보이며.”
“그 전을 하늘에 세우시며
그 궁창의 기초를 땅에 두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자니
그 이름은 여호와니라.”
아모스 5장 8절, 4장 13절,
9장 6절

땅의 창조
창조사업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다. 어떤 과학이 생명의 신비를 설명할 수 있을까?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 11:3).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
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친수로 하늘을 펴고
그 만상을 명하였노라.”
“내가 부르면 천지가 일제히 서느니라.”
이사야 45장 7-12절, 48장 13절하나님께서는 땅을 창조하실 때 이미 존재해 있는 물질에 의존하지 않으셨다.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견고히 섰도다”(시 33:9). 물질적이거나 영적이거나를 막론하고 모든 것이 그분의 말씀대로 주 여호와 앞에 서고 그분 자신의 목적대로 창조되었다.
하늘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천군 천사들,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만물들은 그분의 입기운에 의하여 존재하게 되었다.
사람의 창조에 있어서 개성을 가지신 하나님의 역사(役事)가 나타났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인간의 형체는 그 모든 구조에 있어 완전하였으나 거기에 생명은 없었다. 그 때에 개성을 가지시고 스스로 존재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형체 속에 생기(生氣)를 불어 넣으셨다. 그러자 사람은 생명을 가진 지성적 존재가 되었다. 동시에 인체의 모든 기관이 움직이게 되었다. 심장, 동맥, 정맥, 혀, 손, 발, 감각, 정신작용, 그 모든 것들이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법칙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사람은 생령(生靈)이 되었다.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개성을 가지신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에게 지성과 능력을 품부하셨다.
우리가 은밀한 중에 창조될 때 우리의 체질이 하나님께 숨겨져 있지 않았다. 그분의 눈은 우리의 체질이 아직 완성되기 전일지라도 그것을 보셨다. 그리고 우리의 지체들이 하나도 존재하기 전에 하나님의 책에는 그 모든 것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모두 하등생물(下等動物)들보다 뛰어나게 하여 당신의 창조사업의 걸작품으로서 당신의 사상을 표현하고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도록 계획하셨다. 그러나 사람은 자기 자신을 하나님처럼 높여서는 안된다.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 성산(聖山)에서 경배할지어다.
대저 여호와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시도다.”
시편 100편 1-4절, 99편 9절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창조하신 것들을 끊임없이 붙들어 주시고 그것들이 당신을 섬기도록 사용하고 계신다. 그분께서는 천연계의 법칙을 통하여 역사하시고, 그것들을 당신의 기구로 사용하신다. 천연계의 법칙들은 스스로 작용하지 않는다. 천연계는 그 자체의 작용을 통하여 자신의 뜻을 따라 만물을 움직이시는 한 분의 지성적 존재와 활동적인 역사를 증거한다.
“여호와여
주의 말씀이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
주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르나이다
주께서 땅을 세우셨으므로 땅이 항상 있사오니
천지가 주의 규례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된 연고니이다.”
“여호와께서 무릇 기뻐하시는 일을
천지와 바다와 모든 깊은데서 다 행하셨도다.”
“저가 명하시매 지음을 받았음이로다.
저가 또 그것들을 영영히 세우시고
폐치 못할 명(命)을 정하셨도다”
시편 119편 89-91절, 135편 6절, 148편 5, 6절
지구가 해마다 그 풍성한 산물을 내고 태양의 주위를 계속해서 운행하는 것은 고유(古有)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니다. 무한하신 분의 손이 이 유성을 영원히 지도하고 계신다. 지구가 제 위치에서 계속하여 자전(自轉)하게 해 주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태양이 하늘에 떠오르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분께서는 하늘의 창문을 열고 비를 내려 주신다.
“눈을 양털같이 내리시며
서리를 재같이 흩으시며.”
“그가 목소리를 발하신즉 하늘에 많은 물이 생기나니
그는 땅 끝에서 구름이 오르게 하시며
비를 위하여 번개하게 하시며
그 곳간에서 바람을 내시거늘.”
시편 147편 16절, 예레미야 10장 13절
초목이 무성하게 자라나고, 온갖 나뭇잎이 피어나고, 갖가지 꽃들이 향기를 토하고, 열매가 자라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인체의 조직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은 가장 지성적인 사람들을 곤란하게 하는 신비를 제시해 준다. 맥박이 뛰고 호흡을 계속하는 것은 일단 작동시켜 놓기만 하면 계속적으로 그 기능이 되풀이되는 기계 장치와 같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살고 움직이고 생존을 존속한다. 고동하는 심장, 뛰는 맥박, 살아 있는 유기체(有機體)로서 움직이는 모든 신경과 근육은 언제나 실존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질서를 유지하고 활동을 계속한다.
성경은 높고 거룩한 곳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무활동(無活動)상태에 계시거나 침묵과 고독에 잠겨 계시지 않고 당신의 뜻을 행하고자 언제나 기다리고 있는 천천 만만의 거룩한 천사들에게 둘러싸여 계시다고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그분께서는 이 사자들을 통하여 당신의 모든 통치 영역과 활발한 교통을 나누고 계신다. 당신의 성령을 통하여 그분께서는 당신의 성령과 천사들을 통하여 인간 자녀들에게 봉사하신다.
하나님께서는 혼란한 세상을 초월하여 좌정해 계신다. 모든 것이 그분의 신령한 안계(眼界)에 펼쳐져 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영원이라는 위대하고 장구한 관점에서 당신의 섭리로 최선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대로 이루어지도록 명령하신다.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여호와는 그 경외하는 자
곧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저희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저희를 기근 시에 살게 하시는도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인생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나이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땅에 충만하였사오니.”
“저는 정의와 공의를 사랑하심이여.”
“땅의 모든 끝과
먼 바다에 있는 자의 의지할 주께서 …
우리에게 응답하시리이다.
주는 주의 힘으로 산을 세우시며
권능으로 띠를 띠시며, 바다의 흉용과 …
만민의 훤화까지 진정하나이다.”
“주께서 아침되는 것과 저녁되는 것을 즐거워하게 하시며.”
“주의 은택으로 연사에 관 씌우시니
주의 길에는 기름이 떨어지며.”
“여호와께서는 모든 넘어지는 자를 붙드시며
비굴한 자를 일으키시는도다.
중생의 눈이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때를 따라 저희에게 식물을 주시며
손을 펴사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케 하시나이다.”
예레미야 10장 23절, 잠언 3장 5, 6절, 시편 33편 18, 19절,
36편 7절, 146편 5절, 119편 64절, 33편 5절.
65편 5-7절, 65편 8, 11절, 145편 14-16절

그리스도를 통하여 계시된 하나님의 개성하나님께서는 개성을 가진 존재로서 당신의 아들을 통하여 당신 자신을 계시하셨다. 아버지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히 1:3)이신 예수님은 개성을 가진 구주로서 이 세상에 오셨다.
개성을 가진 구주로서 그분께서는 하늘로 승천하셨다. 개성을 가진 구주로서 그분께서는 하늘의 법정에서 중보하고 계신다. “인자같은 이가”(계 1:13)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봉사하고 계신다.
세상의 빛이 되시는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신성(神性)의 빛나는 광채를 감추시고 이 땅에 오셔서 하나의 인간으로서 사람들 사이에 사셨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죽지 않고 그들의 창조주와 친숙해질 수 있게 하셨다. 죄가 사람과 창조주 사이를 분리시켜 놓은 이후부터 어떤 사람도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나신 것 이 외에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보지 못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고 선언하셨다.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 11:27).*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알려 주시기를 원하는 바를 그들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하여 오셨다. 하늘에서, 땅에서, 넓은 대양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솜씨를 본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한다. 그러나 별들이나 대양이나 폭포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계시된 것과 같은 하나님의 개성을 배울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개성과 품성을 다 같이 묘사하기 위하여 천연계보다 더욱 분명한 계시가 필요함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볼 수 없는 하나님의 본성과 속성을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게끔 나타내셨다.
제자들에게 계시됨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 날 밤에 다락방에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연구해 보자. 그분께서는 당신이 당하실 시련의 시간에 가까이 접근하고 계셨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심히 혹독한 시험과 시련을 당해야 할 당신의 제자들을 위로하시고자 하셨다.
그분께서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빌립이 말하였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요 14:1-10).
제자들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당신과의 관계에 대하여 하시는 말씀을 아직까지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분의 교훈 중의 많은 부분이 그들에게 여전히 어두움에 싸여 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좀더 분명하고 뚜렷하게 하나님께 대한 지식을 소유하기를 바라셨다.
그분께서는 “이것을 비사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 비사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고 말씀하셨다(요 16:25).
오순절 날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임하시게 되자,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비사(비유)로 말씀하신 진리들을 더욱 완전하게 이해하였다. 지금껏 그들에게 신비로 남아 있던 많은 교훈들이 분명해졌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제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바가 완전히 성취된 것을 보지 못하였다. 그들은 그들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까지 하나님께 대한 모든 지식을 받았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에 관하여 그들에게 분명히 보여 주시고자 원하셨던 약속의 완전한 성취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늘날도 역시 그러하다. 하나님을 아는 우리의 지식은 부분적이고 불완전하다. 믿음의 싸움이 끝나고, 인성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악 세상에서 당신의 진실한 증인이 되어온 충성된 일꾼들을 아버지 앞에서 아노라고 인정하실 때 그들은 오늘날 그들에게 오묘한 것으로 남아 있는 것을 분명하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영화롭게 된 당신의 인성을 하늘 조정으로 가지고 가셨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구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 그리하여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당신의 것으로 영접하여 당신과 함께 영원히 거할 수 있게 해 주실 것이다. 만일 그들이 이 세상의 생애 동안에 하나님께 충실할 것같으면, 그들은 마침내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게 될 것이다(계 22:4). 하나님을 뵙는 것 이외에 하늘의 행복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은 죄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얼굴을 뵙고 그분을 아버지로 아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 있는가?
성경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관계를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각자의 개성과 특성을 명백히 보여 준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모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저가 천사보다 얼마큼 뛰어남은 저희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니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네가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니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뇨.”
히브리서 1장 1-5절
아버지와 아들의 개성과 또한 그분들 사이에 존재하는 연합은 요한복음 17장에 기록되어 있는 기도, 곧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제자들을 위하여 드리신 기도에 나타나 있다.“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 17:20, 21).
그리스도와 그분의 제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연합은 쌍방의 개성을 파괴하지 않는다. 그들은 목적과 마음과 품성에 있어서는 하나이지만 개성에 있어서는 하나가 아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하나님과 그리스도는 일체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계시된 하나님의 품성그리스도께서는 인성을 취하시고 인간과 같이 되기 위하여, 그리고 동시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 위하여 오셨다. 태초부터 아버지의 면전에 계셨던 그분, 뵈올 수 없는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셨던 그분께서만 신성(神性)의 특성을 인류에게 나타내실 수 있으셨다. 그분께서는 모든 점에 있어서 당신의 형제들과 같이 되셨다. 그분께서는 우리와 꼭 마찬가지로 육신을 입으셨다. 그분께서는 주리고 목마르고 피곤하셨다. 그분께서는 음식으로 생명을 지탱하시고 수면(睡眠)으로 활력을 되찾으셨다. 그분께서는 인간과 운명을 같이 하셨지마는, 흠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그분께서는 이 땅에서 나그네요 외국인으로 계셨다. 그분은 세상에 계셨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오늘날의 남녀들이 시험을 받고 시련을
당하고 있는 것처럼 시험과 시련을 받으셨지만 죄와 상관이 없는 생애를 사셨다. 부드럽고, 자비롭고, 동정적이고, 언제나 다른 사람들을 생각해 주심으로 그분께서는 하나님의 품성을 나타내셨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언제나 하나님과 인류를 위한 봉사사업에 열중하셨다.
그분께서는 말씀하셨다.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여호와의 은혜의 해를 …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이사야 61장 1절,
누가복음 4장 18절, 이사야 61장 2절*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권고하신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와 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자에게도 인자로우시니라”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같이 너희도 자비하라”(마 5:44, 45, 눅 6:35, 마 5:45, 눅 6:36).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을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취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누가복음 1장 78, 79절

십자가의 영광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계시는 십자가에 중심을 두고 있다. 십자가의 완전한 의미는 말로써 표현할 수 없고, 붓으로 묘사할 수 없고, 사람의 마음으로 깨달을 수 없다. 갈바리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
우리는 다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할 수 있다(요 3:16).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 죽음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 하늘로 승천하신 그리스도는 우리가 배우고 가르쳐야 할 구원의 학문이다.
그리스도의 위치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6-8).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그러므로 자기를 힘 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롬 8:34; 히 7:2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우리는 그리스도의 은사(恩賜)를 통하여 온갖 축복을 받는다. 그 은사를 통하여 매일 여호와의 선하심이 끊임없이 우리에게 넘쳐 흐르게 된다. 우아한 색깔을 가지고 향기를 풍기는 각종 꽃들은 그 하늘의 선물인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위하여 주어져 있다. 해와 달은 그분에 의하여 창조되었다. 하늘을 아름답게 꾸미고 있는 별들 중에서 그분이 만들지 않으신 것은 하나도 없다. 떨어지는 빗방울마다, 배은망덕한 세상을 비치는 빛의 줄기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한다. 모든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하나의 선물, 곧 하나님의 독생자를 통하여 우리에게 공급된다. 그분께서는 이 모든 풍성한 은혜가 하나님의 피조물에게로 흘러가게 하시고자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요일 3:1).
“주 외에는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이런 일을 행한 신을
예로부터 들은 자도 없고 귀로 깨달은 자도 없고
눈으로 본 자도 없었나이다.”
이사야 64장 4절

변화를 일으켜 주는 지식
그리스도를 통하여 계시된 하나님의 지식은 구원받은 모든 사람이 반드시 소유해야 할 지식이다. 그것은 품성을 변화시키는 일을 하는 지식이다. 이 지식을 받아들이면, 심령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이 재창조될 것이다. 그것은 신령한 영적 능력을 전신에 공급해 줄 것이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8).
구주께서는 당신 자신의 생애에 관하여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고 말씀하셨다(요 15:10, 8:29).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도 예수님께서 인성을 취하시고 하셨던 것처럼 할 수 있기를 바라신다. 그분의 능력을 통하여 우리는 구주께서 사셨던 순결하고 거룩한 생애를 살아야 한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3:14-19).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골 1:9-11).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받아들이게 하시는 지식이다. 그리고 그 밖의 모든 것은 헛되고 허무한 것에 불과하다.
이론적 지식의 위험성

지식의 탐구, 곧 학문의 연구에 따르는 가장 큰 위험 중의 하나는 인간의 이성(理性)을 그 참된 가치와 적절한 범위 이상으로 높이고자 하는 경향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불완전한 과학의 지식으로 창조주와 그분의 업적을 비판하고자 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본성과 속성과 권한을 측정하고 무한하신 분에 관한 추리적 이론에 빠지고자 노력한다. 이와 같은 연구 분야에 몰두하는 사람들은 금지된 땅을 밟고 있다. 그들의 연구는 가치 있는 결과를 가져 오지 못하고 다만 영혼을 위태롭게 하는데 불과할 것이다.우리의 첫조상은 하나님께서 갖지 못하게 한 지식을 욕망함으로써 죄에 빠지게 되었다. 그 지식을 얻고자 노력하므로 그들은 소유할 가치가 있는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만일 아담과 하와가 금단의 나무에 결코 접촉하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식, 곧 죄의 저주가 전혀 없는 지식, 그들에게 영원한 기쁨을 가져다 주는 지식을 주셨을 것이다. 그들이 유혹자의 음성을 들음으로써 얻은 모든 것은 죄와
그 결과를 아는 지식이었다. 그들의 불순종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과 멀어지고 땅은 하늘과 분리되었다.
그 교훈은 우리를 위한 것이다. 사단이 우리의 첫 조상을 유혹한 그 분야는 그가 오늘날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는 것과 동일하다. 그는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꾸며낸 이야기들을 세상에 쏟아놓고 있다. 그는 자신의 명령으로 온갖 계략을 다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대하여 추리하게끔 유혹한다. 그리하여 그는 그들로 하여금 구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얻지 못하게 하고자 노력한다.
범신론
오늘날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을 손상시키는 강신술적 교훈이 도처에서 교육기관들과 교회들을 침투해 오고 있다. 하나님은 모든 천연계에 퍼져 있는 하나의 본질이라는 이론이 성경을 믿노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아름답게 가장되었을지라도, 이 이론은 하나의 가장 위험한 기만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잘못 나타내고, 그분의 위대함과 위엄을 손상시키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히 사람들을 그릇되게 이끌 뿐만 아니라 타락시키기 위하여 고안된 것이다. 암흑이 그 요소이고 관능이 그 영역이다. 그것을 받아들임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된다. 그리고 타락한 인간성에 있어서 그것은 파멸을 의미한다.
죄 때문에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은 비정상적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회복시켜 주는 능력은 초자연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회복시켜 주는 과업이 전혀 불가능하다. 사람의 마음을 악의 사슬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능력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오직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분의 피를 통하여서만 죄에서 깨끗하게 된다. 그분의 은혜만이 우리에게 타락한 본성을 저항하고 극복할 수 있게 해 준다. 하나님에 대한 광신술적 이론은 그분의 은혜를 무효로 만든다. 만일 하나님이 모든 천연계에 퍼져 있는 하나의 본질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 안에 거하신다면, 사람이 거룩함에 이르기 위하여서는 다만 자기 속에 있는 능력을 개발시키기만 하면 된다.만일 그들의 논리적 결론을 따르게 되면 이와 같은 이론들은 전반적인 그리스도교의 체계를 일소해 버리게 된다. 그 이론들은 속죄의 필요성을 일소해 버리고 사람을 자기 자신의 구주로 만들게 된다.
하나님께 대한 이와 같은 이론들은 그분의 말씀을 무효로 만들고, 그 이론들을 받아들이는 자들은 마침내 성경 전체를 하나의 꾸며낸 이야기로 간주하는 위험에 빠지게 된다. 그들은 덕성을 부도덕보다 더욱 좋은 것으로 간주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정당한 통치자의 위치에 계시도록 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 없이는 전혀 무가치한 인간의 능력을 의지하게 된다. 아무런 도움을 받지 않는 사람은 악을 저항하고 이길 진정한 힘을 전혀 갖지 못할 것이다. 영혼의 방호벽은 무너지게 된다. 사람은 죄를 대항할 방어책을 갖지 못하게 된다. 일단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제지가 거부될 때, 우리는 사람이 얼마나 깊이 죄에 빠지게 될 것인지 알지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
너는 그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가 너를 책망하시겠고 너는 거짓말하는 자가 될까 두려우니라.”
“악인은 자기의 악에 걸리며
그 죄의 줄에 매이나니.”
잠언 30장 5, 6절, 5장 22절

하나님의 신비를 탐구함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신 29:29).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통하여 주신 당신 자신의 계시는 우리의 연구를 위한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이해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그 이상의 것은 우리가 간파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최고의 지성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의 본성을 추측하고자 자신의 힘을 지칠 정도로 발휘할지라도 마침내 그 노력은 아무런 결실을 가져 오지 못할 것이다. 이 문제는 우리에게 해결하도록 위탁되어 있지 않다. 어떤 사람의 정신으로도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다.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본성을 추리해내고자 몰두해서는 안된다. 여기에는 침묵이 웅변이다. 전지(全知)하신 하나님은 인간의 논쟁의 대상이 아니시다.심지어 천사들까지도 구속의 경륜을 세울 때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의논에 참여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인간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비밀에 개입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하나님께 대하여서는 어린 아이들처럼 무지하다. 그러나 우리는 어린 아이들처럼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께 순종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본성이나 그분의 권한에 대하여 추측하기보다 그분께서 하신 말씀에 유의해야 한다.
“네가 하나님의 오묘를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온전히 알겠느냐.
하늘보다 높으시니 네가 어찌 하겠으며
음부보다 깊으시니 네가 어찌 알겠느냐.
그 도량은 땅보다 크고
바다보다 넓으니라.”
“그러나 지혜는 어디서 얻으며
명철의 곳은 어디인고
그 값을 사람이 알지 못하나니
사람 사는 땅에서 찾을 수 없구나
깊은 물이 이르기를 내 속에 있지 아니하다 하며
바다가 이르기를 나와 함께 있지 아니하다 하느니라
정금으로도 바꿀 수 없고
은을 달아도 그 값을 당하지 못하리니
오빌의 금이나 귀한 수마노나
남보석으로도 그 값을 당치 못하겠고
황금이나 유리라도 비교할 수 없고
정금 장식으로도 바꿀 수 없으며
산호나 수정으로도 말할 수 없나니
지혜의 값은 홍보석보다 귀하구나
구스의 황옥으로도 비교할 수 없고
순금으로도 그 값을 측량하지 못하리니
그런즉 지혜는 어디서 오며
명철의 길은 어디인고 …
멸망과 사망도 이르기를
우리가 귀로 그 소문을 들었다 하느리라
하나님이 그 길을 깨달으시며
있는 곳을 아시나니
이는 그가 땅 끝까지 감찰하시며
온 천하를 두루 보시며 …
비를 위하여 명령하시고
우뢰의 번개를 위하여 길을 정하셨음이라
그 때에 지혜를 보시고 선포하시며
굳게 세우시며 궁구하셨고
또 사람에게 이르시기를
주를 경외함이 곧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라 하셨느니라.”
욥기 11장 7-9절, 28장 12-28절
땅의 깊은 곳을 수색하거나 하나님의 실존의 오묘를 이해하고자 헛된 노력을 함으로써 지혜를 얻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꺼이 주신 계시를 겸손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그분의 뜻과 일치된 생애를 함으로 발견하게 된다.
가장 위대한 지능을 가진 사람들도 천연계에 나타난 여호와의 신비를 이해할 수 없다. 하나님의 영감은 가장 심오한 학자가 대답할 수 없는 많은 문제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 문제들은 우리로 하여금 거기에 대답하도록 하고자 제시된 것이 아니고, 우리의 주목을 가장 심오한 하나님의 신비로 이끌므로 우리의 지혜가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일상생할의 주변에는 유한한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있다.
회의론자들은 그들이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계시해 주시는 무한한 능력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그분을 믿고자 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제한된 이해력을 통해 인정받으시는 만큼 당신께서 자신에 대해 우리에게 드러내시지 않은 것을 통해서도 인정받으셔야 한다. 거룩한 계시와 천연계에 있어서 다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요구하는 신비를 주셨다. 그것은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 우리는 언제나 찾고, 탐구하고, 배울지라도 우리의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무한한 것이 남아 있다.
“누가 손바닥으로 바닷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재었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명칭으로 산들을,
간칭으로 작은 산들을 달아 보았으랴
누가 여호와의 신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
보라 그에게는 열방은 통의 한 방울 물같고
저울의 적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같으니
레바논 짐승들은 번제 소용에도 부족하겠고
그 삼림은 그 화목 소용에도 부족할 것이라
그 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것도 아니라
그는 그들을 없는 것같이, 빈 것같이 여기시느니라
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에 비기겠느냐 …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듣지 못하였느냐
태초부터 너희에게 전하지 아니하였느냐
땅의 기초가 창조될 때부터 너희가 깨닫지 못하였느냐
그는 땅 위 궁창에 앉으시나니
땅의 거민들은 메뚜기같으니라
그가 하늘을 차일같이 펴셨으며
거할 천막같이 베푸셨고 …
거룩하신 자가 가라사대
그런즉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기며
나로 그와 동등이 되게 하겠느냐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이사야 40장 12-28절
우리는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선지자들에게 주신 말씀으로 우리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배워야 한다. 이사야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이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 바 된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사 6:1-7).
“여호와여 주와 같은 자 없나이다.
주는 크시니
주의 이름이 그 권능으로 인하여 크시니이다.
열방의 왕이여 주를 경외치 아니할 자 누구리이까.”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주께서 나의 전후를 두르시며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예레미야 10장 6, 7절, 시편 139편 1-6절
“우리 주는 광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 지혜가 무궁하시도다”(시 147:5).
“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 앞에 있나니 그가 그 모든 길을 평탄케 하시느니라”(잠 5:21)
“그는 깊고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고 어두운 데 있는 것을 아시며 또 빛이 그와 함께 있도다”(단 2:22).“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행 15:18, 롬 11:34-36).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딤전 1:17, 6:16).
“그 존귀가 너희를 두렵게 하지 않겠으며
그 위엄이 너희에게 임하지 않겠느냐.”
“하나님이 높은 하늘에 계시지 아니하냐
보라 별의 높음이 얼마나 높은가”
“그 군대를 어찌 계수할 수 있으랴
그 광명의 비췸을 입지 않은 자가 누구냐.”
“하나님이 … 우리의 헤아릴 수 없는 큰 일을 행하시느니라
눈을 명하여
땅에 내리라 하시며
적은 비와 큰 비로
그같이 내리게 하시느니라
그가 각 사람의 손을 봉하시나니
이는 그 지으신 모든 사람으로 그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
그가 … 번개빛의 구름을 널리 펴신즉
구름이 인도하시는 대로 두루 행하나니
이는 무릇 그의 명하시는 것을
세계상에 이루려 함이라
혹 징벌을 위하여 혹 토지를 위하여
혹 긍휼 베푸심을 위하여 구름으로 오게 하시느니라 …
이것을 듣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기묘하신 일을 궁구하라
하나님이 어떻게 이런 것들에게 명령하셔서
그 구름의 번개빛으로 번쩍번쩍하게 하시는지 네가 아느냐
구름의 평평하게 뜬 것과
지혜가 온전하신 자의 기묘한 일을 네가 아느냐 …
네가 능히 그와 함께 하여
부은 거울같은 견고한 궁창을 펼 수 있느냐
우리가 그에게 할 말을 너는 우리에게 가르치라
우리는 어두워서 진술하지 못하겠노라 …
사람이 어떤 때는 궁창의 광명을 볼 수 없어도
바람이 지나가면 맑아지느니라
북방에서는 금빛이 나오나니
하나님께는 두려운 위엄이 있느니라
전능자를 우리가 측량할 수 없나니
그는 권능이 지극히 크사 심판이나
무한한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심이라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를 경외하고 …”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자 누구리요
높은 위에 앉으셨으나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고.”
“여호와의 깊은 회리바람과 광풍에 있고
구름은 그 발의 티끌이로다.”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크게 찬양할 것이라
그의 광대하심을 측량치 못하리로다
대대로 주의 행사를 크게 칭송하며
주의 능한 일을 선포하리로다.
주의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위엄과 주의 기사를
나는 묵상하리이다.
사람들은 주의 두려운 일의 세력을 말할 것이요
나도 주의 광대하심을 선포하리이다.
저희가 주의 크신 은혜를 기념하여 말하며
주의 의를 노래하리이다. …
여호와여 주의 지으신 모든 것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성도가 주를 송축하리이다
저희가 주의 나라의 영광을 말하며
주의 능을 일러서
주의 능하신 일과 주의 나라의 위엄의 영광을
인생에게 알게 하리이다.
주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니
주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이다. …
내 입이 여호와의 영예를 말하며
모든 육체가 그의 성호를 영영히 송축할지로다.”
욥기 13장 11절, 22장 12절, 25장 3절, 37장 5-24절,
시편 113편 5, 6절, 나훔 1장 3절, 시편 145편 3-21절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우리 자신이 하나님 보시기에 어떠하다는 것을 알면 알수록, 우리는 그분 앞에서 두려워하고 떨게 될
것이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고대에 하나님께서 거룩하다고 선언한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던 사람들이 당한 운명에서 경고를 받아야 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땅에서 돌아오는 법궤를 열어 보고자 했을 때 그들의 불경한 행동은 두드러지게 형벌을 받았다.
웃사에게 내린 형벌을 다시 생각해 보라. 다윗의 지도 아래 법궤가 예루살렘으로 운반되고 있을 때, 웃사는 법궤를 흔들리지 않게 하고자 손을 뻗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상징하는 법궤에 감히 손을 대고자 하였기 때문에 그는 즉사하였다.
불붙는 떨기나무에서 모세가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지 못하고 그 놀라운 광경을 보고자 몸을 돌이켰을 때, 다음과 같은 명령이 주어졌다.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우매”(출 3:5, 6).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희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창 28:10-17).광야의 성막과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장소로 이 세상에서 상징된 성전의 성소에는 한 칸이 그분께서 임재하시는 곳으로 구별되었다. 그룹을 수놓아 짠 입구의 휘장은 한 사람 이외에는 아무도 걷어올려서는 안되었다. 허락없이 그 휘장을 걷고 지성소의 거룩한 신비 속으로 들어가면 죽임을 당하였다. 왜냐하면 속죄소 위에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영광, 곧 어떤 사람도 쳐다보고 살 수 없는 영광이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성소의 봉사를 위하여 지정된 일 년 중 한 날에 대제사장은 향연(香煙)으로 그 영광이 자신의 시계(視界)에서 가리워져 있는 동안 떨면서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으로 들어갔다. 그 때에는 성전 뜰에서 모든 음성이 조용해졌다.
어떤 제사장들도 번제단에서 봉사하지 않았다. 예배하는 군중들은 정숙한 경외심으로 머리를 숙이고 하나님의 자비를 탄원하였다.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고전 10:11).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만민이 떨 것이요
여호와께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시니 땅이 요동할 것이로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광대하시고
모든 민족 위에 높으시도다
주의 크고 두려운 이름을 찬송할지어다
그는 거룩하시도다.”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 안목이 저희를 감찰하시도다.”
“여호와께서 그 높은 성소에서 하감하시며.”
“곧 그 거하신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을 하감하시도다
그는 일반의 마음을 지으시며
저희 모든 행사를 감찰하시는 자로다
온 땅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세계의 모든 거민은 그를 경외할지어다.”
하박국 2장 20절, 시편 99편 1-3절,
11편 4절, 102편 19절, 33편 14, 15, 8절
사람은 탐구함으로써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다. 어떤 사람도 참람된 손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있는 휘장을 걷어 버리고자 해서는 안된다.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것이로다”(롬 11:33). 하나님의 능력이 숨겨져 있는 것이 그분의 자비의 증거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가리우고 있는 휘장을 걷어 버리면 죽음이 오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도 전능하신 분께서 거하시고 일하시는 은밀한 곳으로 들어갈 수 없다. 다만 그분께서 계시하시기에 합당하다고 여기시는 점에서만 우리는 그분을 이해할 수 있다. 이성은 그 자신보다 초월한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 사람의 마음과 지성은 위대하신 영원자존자(永遠自尊者) 앞에 머리를 숙여야 한다.
거짓 교육과 참 교육

악의 군대를 지휘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지 못하게 하고 사람들의 의견을 보게 하고자 언제나 활동하고 있다 그는 “이것이 정로니 너희는 이리로 행하라”(사 30:21)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들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왜곡된 교육과정을 통하여 하늘의 빛을 흐리게 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철학적 사색과 과학적 연구는 수 많은 회의론자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오늘날의 학교에서는 학자들이 과학적 탐구로 얻은 결론들을 주의 깊이 가르치고 충분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그와 같은 가르침은 만일 그 학자들이 옳을 것같으면 성경은 옳지 않다는 인상을 분명하게 주고 있다. 회의론은 사람들의 마음을 끌고 있다. 젊은이들은 거기에서 마음 속으로 하나님을 의존할 필요성을 잃어버리게 되고 기만당한다. 그리하여 사단은 승리한다. 그는 젊은이들의 마음에 뿌려지는 온갖 의심의 씨앗을 자라게 한다. 그는 그것이 자라 열매를 맺게 하고, 미구에 풍성한 불신의 수확을 거두게 한다.
사람의 마음은 악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젊은이들의 마음에 회의론의 씨를 뿌리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약하게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사람에게서 유혹을 저항하는 힘을 빼앗아 버린다. 그것은 죄를 방어하는 유일한 안전책을 제거해 버린다. 우리는 젊은이들에게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의 품성을 드러냄으로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위대한 일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줄 학교들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업적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배우고, 우리의 생활로써 그분의 목적을 성취시킬 필요가 있다.
불신자 저자들
많은 사람들은 교육을 받기 위하여 불신자 저자들이 쓴 저서들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저서들에는 빛나는 많은 사상의 보석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사상의 보석들을 누가 만들어 내었는가? 그는 하나님이셨고, 오직 하나님만이 그렇게 하셨다. 그분은 모든 빛의 근원이시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우리가 모든 진리를 마음대로 얻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지성적 진리를 얻기 위하여 불신자들의 저서에 기록되어 있는 막대한 오류를 통과하여 건너갈 필요가 있는가?
하나님의 정부와 더불어 싸우고 있는 사람들은 때때로 그들이 과시하는 지혜를 어떻게 소유하게 되는가? 사단 자신이 하늘의 조정에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그는 악에 대한 지식은 물론이요 선에 대한 지식도 가지고 있다. 그는 귀중한 것과 천한 것을 혼합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기만하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 그러면 사단이 스스로 밝은 하늘의 옷을 입었다고 해서 우리는 그를 광명한 천사로 받아들일 것인가? 유혹하는 그의 방법대로 교육받고, 그의 정신으로 고무되고, 그의 사업에 적합한 부하들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들과 협력할 것인가? 우리는 그의 부하들의 저서들을 교육상 필수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만일 무신론자의 분명한 사상을 이해하기 위하여 바쳐진 시간과 노력이 귀중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데 바쳐졌을 것같으면, 오늘날 흑암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수 많은 사람들이 생명의 빛이 되시는 예수님의 영광 가운데서 기뻐하고 있을 것이다.
역사와 신학적 지식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인 사업의 준비로서 역사와 신학의 저서에 해박한 지식을 얻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 지식이 복음을 가르치는데 있어서 그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견해를 힘들여 연구하는 일은 그들의 활동을 강화시켜 주기는 커녕 오히려 약하게 만들어 주는 경향이 있다. 역사와 신학 지식에 대한 묵직한 책들로 채워져 있는 도서실들을 볼 때, 나는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왜 돈을 쓰는가라고 생각하게 된다. 요한복음 6장은 그와 같은 저서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보다 더욱 많은 것을 우리에게 말해 준다.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신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 6:35, 51, 47, 63).정죄되어서는 안될 역사에 대한 연구과제가 있다. 거룩한 역사는 선지자 학교에서 연구한 과목 중의 하나였다. 하나님께서 열국들을 취급하신 기록에는 여호와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께서 지상의 나라들을 취급하시는 바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예언의 성취를 깨닫고, 위대한 개혁운동들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를 연구하고, 대쟁투의 마지막 장면을 향하여 열국들이 전진해 가고 있는 사건들의 진전을 이해해야 한다.
그와 같은 연구는 인생에 대한 넓고 포괄적인 견해를 제공해 줄 것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인생과 상호 의존의 관계에 대한 것을 이해하게 해 주고, 우리가 사회와 국가에 속한 위대한 형제의 우의로 얼마나 놀랍게 함께 연결되어 있으며, 한 사람의 압제와 타락이 어느정도까지 큰 손실을 전체 사람들에게 미치는지 알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연구되어 온 역사는 인간의 업적과, 전쟁에서의 승리와, 권세와 영광을 얻는 일에서 거둔 성공 등에 관한 것이다. 사람들의 일에 관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役事)는 지나쳐 버린다. 열국들의 흥망성쇠에서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되고 있는 것을 연구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리고 대부분 연구되고 가르쳐 온 신학은 지식이 없는 말로써 더욱 혼란케 하는데만 소용되는 인간적 추리의 기록에 불과하다. 너무도 흔히 그런 책들을 많이 쌓아 두는 동기는 정신과 심령을 위한 양식을 얻고자 하는 욕망에서라기 보다는 오히려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을 알고자 하는 야망과 교양 있는 말과 주장으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교를 소개하고 싶은 욕망에서이다.*모든 기록된 책들이 반드시 거룩한 생애의 목적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위대한 교사이신 예수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셨다. 그대의 지적 교만은 생명의 양식이 없어 죽어가는 영혼들과 교통하는 일에 있어서 그대에게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와 같은 책들을 연구함으로써 그대는 그리스도께로부터 배워야 할 실제적인 교훈의 자리를 그것들에게 내어 주고 있다. 그와 같은 연구의 결과로 사람들은 굶주리게 된다.
마음을 너무도 피곤하게 만드는 그 연구는 영혼들을 위하여 성공적인 일꾼이 되는데 도움이 될 수는 거의 없다.
구주께서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오셨다(눅 4:18). 그분께서는 가르치실 때 가장 단순한 말씀과 가장 평범한 예증들을 사용하셨다. 그러므로 “백성이 즐겁게 듣더라”(막 12:37)고 기록되어 있다. 이 시대를 위한 그분의 사업을 하고자 애쓰고 있는 사람들은 그분께서 하신 교훈에 대하여 더욱 깊은 통찰력을 가질 필요가 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교육 중 최고의 교육이다.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사람들은 생명의 떡을 먹을 필요가 있다. 이것은 그들에게 영적 힘을 줄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봉사할 준비를 이루게 될 것이다.
고전문학
대학에서 수 많은 젊은이들이 인생의 황금기의 대부분을 희랍어와 라틴어 연구에 바친다. 그들이 그 언어로 된 서적을 읽는 것은 일반적으로 그와 같은 언어 연구에서 필수적인 부분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그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동안, 정신과 품성은 이교 문학의 나쁜 정서에 의하여 꼴지어진다.
고전문학에 정통한 사람들은 “희랍의 비극은 근친상간과, 살인과, 음탕하고 복수심이 많은 신들에게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일 등으로 가득하다”고 주장한다. 그와 같은 근원에서 받은 교육이 제거되어 버린다면 세상을 위하여서는 훨씬 더 좋은 일이 될 것이다. “사람이 숯불을 밟고야 어찌 그 발이 데지 아니하겠느냐”(잠 6:28).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욥 14:4). 그러면 우리는 젊은이들이 하나님의 율법의 원칙을 무시하고 있는 자들의 가르침을 통하여 교육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서 그리스도인 품성을 형성시키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제재를 벗어나서 무모한 쾌락과 방탕과 부도덕에 빠져 학생들은 그와 같은 연구를 통하여 그들의 마음에 언제나 남아 있는 것을 본받을 뿐이다. 희랍어와 라틴어의 지식이 필요하다는 말이 대두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언어들을 반드시 연구해야 한다. 그러나 거기에 대한 지식은 타락해 있고 타락시키는 문학을 연구하지 말고 실제적인 활용을 위하여 반드시 습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희랍어와 라틴어 지식은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사어(死語)의 연구는 심신이 모든 능력을 올바르게 사용하도록 가르쳐 주는 과목들에 비하여 부수적이 되어야 한다. 학생들이 생애의 실제적인 의무에 대한 훈련을 등한히 하면서 사어나 어떤 분야의 이론적 지식을 얻는데 그들의 시간을 바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학생들이 학교를 떠나갈 때 그들은 무엇을 가지고 가는가? 그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는 지식을 소유하고 있는가? 그들은 진실한 아버지와 어머니가 될 수 있는 교육을 받고 있는가? 그들은 현명한 지도자로서 가족의 선두에 설 수 있는가? 명실공히 가치 있는 유일의 교육은 젊은 남녀들을 그리스도와 같이 되도록 지도해 주고, 그들로 하여금 생애의 의무를 감당하기에 합당하게 해 주고, 그들의 가정에서 머리의 위치에 서기에 적합하게 해 주는 교육이다. 그와 같은 교육은 이교의 고전을 연구함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선정적 문학
오늘날 인기 있는 많은 출판물들은 젊은이들에게 악을 교육시켜 주고 그들을 멸망의 길로 이끌어가는 선정적인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순진한 어린이들이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 악의 지식에 익숙해진다. 그들은 그들이 읽는 이야기에 자극을 받는다. 그들은 책에 묘사된 행동을 상상 중에 실천해 보고, 마침내 그들은 죄를 짓고 벌을 피할 수 있는지 실천해 보고 싶은 욕망을 일으키게까지 된다.민감한 마음을 가진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은 미래에 대하여 가상적으로
묘사된 장면들을 실제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법과 자제의 방호벽을 깨뜨리는 것으로 묘사된 온갖 종류의 사건들과 혁명들이 묘사될 때, 많은 사람들은 거기에 나타나는 정신을 받아들인다. 그들은 할 수만 있으면 이 선정적인 저자들이 묘사하는 것보다 더욱 나쁜 죄를 범하도록 이끌림을 받는다. 이와 같은 영향을 통하여 사회는 타락해 가고 있다. 불법의 씨가 널리 뿌려져 있다. 범죄의 수확을 거두게 되는 것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로맨스와 천박하고 흥분적인 이야기들을 쓴 작품들은 독자에게 적지 않게 손해를 준다. 저자는 도덕적인 교훈을 주기 위하여 그의 작품에 종교적 감정을 혼합시키고 있는 것으로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때때로 그와 같은 일은 그 작품의 저변에 숨겨져 있는 어리석은 것과 무가치한 것을 가리워 주는 역할을 하는데 불과하다.
세상에는 그릇된 일을 자극하는 것으로 채워져 있는 책들이 범람하고 있다. 젊은이들은 성경이 거짓된 것으로 선고한 것을 진리로 받아들이고, 사람들에게 파멸을 가져다 주는 기만을 좋아하고 거기에 매달린다.
진리를 가르쳐 주거나 어떤 큰 악을 폭로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록된 소설들이 있다. 그와 같은 작품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좋은 일을 하였다. 그러나 그것들은 역시 말할 수 없는 손해를 끼쳤다. 그것들은 특별히 젊은이들에게 상상력을 자극하고 위험으로 가득찬 일련의 생각을 일으키게 하는 말들과 정교한 필치로 묘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 거기에 묘사된 장면들은 그들의 생각 속에 거듭 거듭 살아난다. 그와 같은 독서는 정신을 유용한 일에 적응하지 못하게 하고 영적 활동을 위하여 자격을 갖추지 못하게 한다. 그것은 성경에 대한 흥미를 말살시켜 버린다. 하늘의 사물들이 생각 속에서 있을 자리를 얻지 못하게 된다. 묘사된 불순한 장면에 마음이 머물러 있게 되면 정욕이 일어나고, 마침내 죄를 짓게 된다.심지어 불순을 시사하지 않고, 훌륭한 원칙을 가르치기 위한 의도에서
쓰여진 소설일지라도 해롭다. 그것은 단순히 이야기만을 위하여 급하고 피상적으로 독서하는 습관을 조장한다. 그리하여 그것은 일관성 있고 활기찬 사고력(思考力)을 파멸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심령이 의무와 운명에 속한 위대한 문제들을 명상하는 일에 적응하지 못하게 한다.
단순한 쾌락을 사랑하도록 함으로써, 소설을 읽는 일은 인생의 실제적인 의무에 대하여 취미를 갖지 못하게 한다. 소설의 자극적이고 도취시키는 힘 때문에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병을 얻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불행하고 버려진 많은 가정, 많은 불치의 병, 정신병원의 많은 환자들은 소설을 읽는 습관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선정적이고 무가치한 문학으로부터 젊은이들을 건져내기 위하여 우리가 그들에게 보다 높은 수준에 속한 소설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는 주장이 이따금 거론된다. 그것은 마치 주정뱅이에게 위스키나 브랜디 대신에 포도주, 맥주, 사이다와 같이 부드러운 알콜성 음료를 제공해줌으로써 그의 주벽을 치료해 주고자 노력하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은 것들을 사용함으로 보다 강한 술을 마시고 싶은 욕망을 계속해서 일으켜 주게 될 것이다. 술꾼을 위한 유일의 안전과, 금주가를 위한 유일의 방어책은 완전히 금주하는 일이다.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같은 법칙이 적용되는 것이 사실이다. 완전히 금지하는 것이 유일의 안전책이다.
신화와 동화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의 교육에 있어서 동화와 신화와 지어낸 이야기들이 오늘날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와 같은 성질의 책들을 학교에서 사용하고 있으며, 그런 책들은 많은 가정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그리스도인 부모들이 그처럼 거짓으로 채워져 있는 책들을 자녀들에게 사용하도록 어떻게 허락할 수 있겠는가? 아이들이 그들의 부모의 가르침과 너무도 대조적인 이야기들의 의미를 물을 때, 그 이야기들은 사실이 아니라는 대답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 대답이 그 이야기들을 사용함으로 초래되는 악을 제거해 버리지는 않는다. 그와 같은 책들에 나타난 사상은 어린이들을 그릇되게 인도한다.
그들은 인생에 대한 그릇된 견해를 얻게 되고 비현실적인 것에 대한 욕망을 품고 그것을 배양하게 된다.
오늘날 그와 같은 책들을 널리 사용하게 하는 것이 사단의 간계 중의 하나이다. 그는 늙은이들과 젊은이들의 마음을 품성 형성의 위대한 과업에서 떠나게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세상에 가득 채워 둔 영혼을 파멸시키는 기만에 의하여 우리의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을 휩쓸고자 꾀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그들의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게 하여 그들의 안전책이 될 그 진리의 지식을 얻지 못하도록 방지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진리를 왜곡시키는 내용이 들어있는 책들이 어린이들이나 젊은이들의 손에 결코 들어가지 않도록 하자. 우리의 자녀들이 바로 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죄악의 씨가 되는 것으로 판명되는 사상을 결코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자. 만일 성숙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그와 같은 책들과 아무런 관계를 갖지 않을 것같으면, 그들 스스로가 휠씬 더 안전하게 될 것이며, 정당한 면에서 보여 주는 그들의 모본과 감화력은 젊은이들을 유혹에서 지켜 주기에 훨씬 더 쉬워지게 해 줄 것이다.
우리는 진실한 것과, 신령한 것을 많이 가지고 있다. 지식을 갈급하는 사람들은 더러운 샘으로 갈 필요가 없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너는 귀를 기울여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을 들으며
내 지식에 마음을 둘지어다 …
내가 너로 여호와를 의뢰하게 하려 하여
이것을 오늘 특별히 네게 알게 하였노니
내가 모략과 지식의
아름다운 것을 기록하여
너로 진리의 확실한 말씀을 깨닫게 하며
또 너를 보내는 진리의 말씀으로 회답하게 하려 함이 아니냐.”
“여호와께서 증거를 야곱에게 세우시며
법도를 이스라엘에게 정하시고
우리 열조에게 명하사
저희 자손에게 알게 하라 하셨으니.”
“여호와의 영예와
그 능력과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
“이는 저희로 후대 곧 후생 자손에게
이를 알게 하고
그들은 일어나 그 자손에게 일러서
저희로 그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
잠언 22장 17-21절, 시편 78편 5, 4, 6, 7절,
잠언 10장 22절

그리스도의 교훈
그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도 복음 가운데 진리의 원칙을 제시하셨다. 그분의 교훈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깨끗한 시냇물을 마실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알려진 어떤 것보다 더욱 뛰어나며 또 다른 모든 발견물들의 기초가 되는 지식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으셨다. 그분께서는 비밀을 하나씩 차례로 드러내 주시되, 계속되는 세대의 적극적이고 열렬한 생각을 시대의 끝까지 그 놀라운 계시에 집중시킬 수 있으셨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구원의 이치를 가르치는 일을 한 순간도 아끼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시간과 능력과 생애의 가치를 바르게 인정하시고, 그것들을 오직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해 내는 수단으로만 사용하셨다. 그분께서는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 구원하러 오셨기 때문에 당신의 목적에서 이탈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어떤 것도 그분을 그 목적에서 벗어나게 하도록 허용하지 않으셨다.그리스도께서는 오직 이용할 수 있는 지식만을 나누어 주셨다. 사람들에게 하신 그분의 교훈은 그들 자신의 실생할에 필요하다는 조건에서만 주어졌다. 그분께서는 꼬치 꼬치 캐어묻는 질문을 가지고 당신께 나오는 자들의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지 않으셨다. 그와 같은 모든
질문을 그분께서는 엄숙하고, 열렬하고 주요한 호소를 하는 기회로 삼으셨다. 그분께서는 지식의 나무에서 열매를 따고자 매우 열망하는 사람들에게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셨다. 그들은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길 외에는 모든 길이 막혀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영생의 샘 외에는 모든 샘이 막혔다.
우리 구주께서는 어떤 사람도 당시의 랍비 학교에 가도록 권장하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은 “그들이 말하기를”, 혹은 “그렇게 전해 오기를” 등의 말을 반복함으로 타락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 때문에 보다 위대하고 분명한 지혜가 우리의 손이 닿는 곳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확실한 인간의 말을 고상한 지혜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영원한 사물에 대하여 내가 보아 온 것과, 인간의 연약함에 대하여 내가 목격해 온 것이 나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주고 나의 평생 사업에 영향을 미쳤다. 나는 인간이 찬양을 받거나 영광을 받아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안다. 나는 세속적으로 현명한 사람들과 소위 위대한 사람들의 의견이 신임을 받고 높임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하나님의 깨우쳐 주심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계획과 길에 대하여 올바른 견해를 가질 수 있겠는가? 그들은 모두 그분을 부인하거나 그분의 존재를 무시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그들의 자신의 유한한 관념을 가지고 그분의 능력을 제한해 버린다.
하늘과 땅을 창조해 주신 분, 창공에서 별들을 질서 있게 운행시키고 해와 달에게 그들의 일을 지정해 주신 분에게서 배우도록 하자.
젊은이들이 그들의 정신적 능력을 최고의 수준까지 발달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제한하지 않으신 교육을 제한하지 말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학식이 하나님의 영광과 인류의 복리를 위하여 사용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심한 골몰을 요구하지마는 실생활에 이용되지 않는 연구로 마음을
괴롭게 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와 같은 교육은 학생에게 손해를 줄 것이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연구는 그에게 유용성을 길러 주고 그의 의무를 감당할 수 있게 해 주는 연구를 하고 싶은 욕망과 성향을 감소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한 가지의 실제적인 교육이 많은 양의 단순한 이론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다. 지식을 가지는 것까지도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지식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비교적 쓸모없는 교육을 위하여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허비하는 시간과 재물과 연구가 남녀들을 실용적인 사람들로 만들어 인생의 책임을 감당하기에 적합하게 해 주는 교육을 얻는데 바쳐져야 한다. 그와 같은 교육이 최고의 가치가 있는 교육이 될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신과 심령을 강하게 해 주고, 우리를 더욱 훌륭한 남녀로 만들어 주는 지식이다. 본질적인 교육은 단순히 책을 통하여 배우는 교육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지식을 갖는 것은 좋은 일이며, 필수적인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영원한 것을 염두에 두지 않고 지나쳐 버리면, 우리는 결코 회복할 수 없는 실패를 하게 될 것이다.
학생은 지식을 얻기 위하여 그의 모든 힘을 다 기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만일 그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갖지 못하고, 자기 자신을 지배하는 법칙에 순종하지 않을 것같으면, 그는 자기 자신을 파멸시키게 될 것이다. 그릇된 습관으로 말미암아 그는 자중심(自重心)에 대한 힘을 잃어버리고 자제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는 자신에게 가장 크게 관련된 문제를 바르게 판단할 수 없게 된다. 그는 자신의 심신을 취급하는 일에 있어서 무모하고 불합리해진다. 올바른 원칙을 계발하는 일을 등한히 함으로써 그는 이 세상과 장차 올 세상에서 다같이 파멸을 당하게 된다.
만일 젊은이들이 그들 자신의 약점을 이해했을 것같으면, 그들은 하나님 안에서 그들의 힘을 발견했을 것이다. 만일 그들이 그분에게서 가르침을 받고자 노력할 것같으면 그들은 그분의 지혜로써 현명하게 되고, 그들의 생애는 세상에 축복이 되는 결실을 맺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그들의 마음을 단순히 세속적이며 공리적(公理的)인 연구에 바침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되면, 그들은 생애를 풍성하게 해 주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참 지식을 탐구하는 중요성

우리는 우리가 참전하고 있는 대쟁투에 관련된 문제들을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욱 분명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가진 진리의 가치와 대기만자로 말미암아 우리의 마음을 거기에서 떠나가도록 허용하는 위험을 더욱 충분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구속을 위하여 요구된 무한한 희생의 가치는 죄가 무서운 악이라는 사실을 나타내 준다. 죄로 말미암아 사람의 모든 육체적 조직에는 이상이 생기고, 정신은 왜곡되고, 상상력은 부패되었다. 죄는 사람의 능력을 퇴화시켰다. 밖에서 오는 유혹은 마음 속에서 공명을 얻고, 발길은 부지 중에 죄악으로 향하게 된다.우리를 위한 희생이 완전하였던 것처럼 죄의 더러움에서 회복되는 것도 완전하여야 한다. 하나의 악행도 하나님의 율법은 면제해 주지 않을 것이며, 어떠한 불의도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복음의 윤리는 하나님의 품성의 완전성만을 표준으로 인정한다. 그리스도의 생애는 율법의 모든 교훈을 완전히 성취하였다. 그분께서는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켰다고 말씀하셨다(요 15:10).
그분의 생애는 순종과 봉사에 있어서 우리의 모본이다. 하나님께서만이 심령을 새롭게 하실 수 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명령을 받고 있다(빌 2:12, 13).
우리의 생각을 요구하는 사업
연약하고 간헐적인 노력으로 잘못이 바로 잡히거나 행동의 개혁이 이루어질 수 없다. 품성을 형성하는 일은 하루나 일 년의 과업이 아니고 평생의 과업이다. 자아를 정복하고, 성결과 하늘을 얻기 위한 싸움은 필생의 싸움이다. 끊임없는 노력과 계속적인 활동이 없으면, 거룩한 생애에서의 진보가 있을 수 없고 승리자의 면류관도 얻을 수 없다.
사람이 높은 상태에서 타락했다는 가장 강한 증거는 그 상태를 다시 회복하는데 그처럼 많은 희생이 요구된다는 사실이 입증해 준다. 돌아가는 길은 한 치, 한 치씩 옮길 때마다, 한 시간 한 시간씩 경과할 때마다 무서운 싸움을 거듭함으로써만 갈 수 있다. 조급하고 주의성 없는 행동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한 순간에 우리 자신을 악의 세력 아래 둘 수 있다. 그러나 그 악의 사슬을 끊어 버리고 성결한 생애에 들어가는데는 순간 이상이 요구된다. 목적을 설정하고 일을 시작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일을 성취시키는데는 노력과 시간과 인내와 오래 참음과 희생이 요구될 것이다.
우리는 충동에 의하여 행동하도록 우리 자신을 허락할 수 없다. 우리는 한 순간이라도 방심할 수 없다. 무수한 유혹에 둘러싸여 있으므로 우리는 굳게 저항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자신이 정복당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사업을 마치지 못한 채로 생애의 끝을 맞게 될 것인가. 그렇게 되면 영원히 잃어버린 바 될 것이다.사도 바울의 생애는 자아와 더불어 끊임없이 싸우는 생애였다. 그는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말하였다(고전 15:31). 날마다 그의 뜻과 욕망은 하나님의 뜻과 의무에 반대되었다.
그러나 자신의 본성을 십자가에 못박는 일이 될지라도, 그는 자신의 성향대로 하는 대신에 하나님의 뜻을 행하였다.
그는 자신의 투쟁의 생애가 마칠 무렵, 그 투쟁과 승리를 회고하면서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라고 말할 수 있었다(딤후 4:7, 8).
그리스도인 생애는 싸움과 전진의 생애이다. 이 싸움에는 면제가 없다. 계속적이고 끈기 있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끊임없는 노력을 통하여 우리는 사단의 유혹을 승리하게 된다. 그리스도인 성실성은 저항할 수 없는 힘으로 구해야 하고 확고부동한 목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기 자신을 위하여 엄격하고 불굴의 노력을 하지 않으면 향상하지 못할 것이다. 모든 사람은 그들 자신을 위하여 이 싸움에 참전해야 한다. 다른 어떤 사람도 우리의 싸움을 대신 싸워 줄 수 없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이 싸움을 감당할 책임이 있다. 비록 노아, 욥, 다니엘이 이 땅에 살아 있을지라도 그들은 그들의 의로써 그 아들도 딸도 구원할 수 없다.
숙달해야 할 과학숙달해야 할 그리스도인 과학, 하늘이 땅보다 높은 것같이 어떤 인간적 과학보다 훨씬 더 깊고, 넓고, 높은 과학이 있다. 마음은 연단받고, 교육받고, 훈련받을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천성적인 인간의 경향과 일치되지 않는 방면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봉사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악으로 기울어지는 선천적 혹은 후천적 성향은 극복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배우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때로는 필생의 교육과 훈련을 버리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안에서 확고해 지도록 교육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유혹을 저항할 수 있도록 생각하는 습관을 형성해야 한다. 우리는 위를 쳐다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의 원칙, 곧 하늘처럼 높고 영원을 포함한 원칙을 우리는 일상생활과 관련시켜서 이해해야 한다. 모든 행동, 모든 말, 모든 생각은 이 원칙과 일치되어야 한다. 모든 것은 그리스도와 조화를 이루고, 그분께 굴복되어야 한다.
성령의 귀중한 은사들은 한 순간에 계발되지 않는다. 용기, 견인불발, 온유, 믿음,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확고하게 신뢰하는 일 등은 여러 해 동안의 경험을 통하여 얻어진다. 옳은 일을 위하여 거룩한 노력을 기울이고 확고하게 붙드는 생애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들의 운명을 결정하게 된다.
낭비할 시간이 없음
우리는 낭비할 시간이 없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의 시기가 얼마나 빨리 끝나게 될 것인지 모른다. 가장 오래 살지라도, 우리는 이 세상에서 다만 짤막한 일생을 지낼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사망의 화살이 얼마나 빨리 우리의 심장을 꿰뚫을 것인지 알지 못한다. 우리는 얼마나 빨리 세상과 세상에 속한 모든 흥미를 버리라는 부름을 받을지 모른다. 영원이 우리 앞에 펼쳐져 있다. 휘장은 바야흐로 걷히어지려 하고 있다. 불과 몇 해만 지나가면, 살아 있는 모든 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명령이 주어질 것이다.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계 22:11).
우리는 준비를 갖추고 있는가? 우리는 하늘의 통치자시요 입법자이신 하나님과, 또한 그분께서 당신의 대표자로 세상에 보내신 예수그리스도를 잘 알고 있는가? 우리의 일생을 마칠 때, 우리는 우리의 모본되시는 그리스도께서 하셨던 것처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하여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요 17:4-6).
하나님의 천사들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과 세속적인 사물에 애착을 갖지 않게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하자.
해이한 생각으로 지내 온 정신은 바뀌어질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 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 1:13-16).
생각은 하나님께 집중되어야 한다. 우리는 육신적인 마음의 악한 성향들을 극복하기 위하여 열렬하게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의 노력과, 우리의 극기와 인내는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대상의 무한한 가치와 정비례해야 한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 것처럼 승리함으로써만 우리는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될 것이다.
자아를 버려야 할 필요성
사람에게 있는 큰 위험은 자기에게 기만당하고 자기 만족에 도취되어 그의 능력의 근원되시는 하나님께로부터 떠나는 것이다. 우리의 육신적 성향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교정되지 않으면, 그 속에 도덕적 죽음의 씨앗을 간직하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과 생명적인 관계를 맺지 않으면, 우리는 방종과 자기 본위의 마음과 죄의 유혹 등의 부정한 세력들을 저항할 수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도움을 받기 위하여 우리의 필요를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올바르게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자만을 구원하실 수 있다. 우리가 전혀 속절없이 우리의 상태를 깨닫고 자신을 의지하는 모든 마음을 버릴 때에만,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붙잡게 될 것이다.오직 그리스도인 생애의 초기에서만 자아를 버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하늘을 향하여 옮겨놓은 매 발자욱마다 그 일은 새롭게 반복되어야 한다. 우리의 모든 선행은 우리 자신의 외부에서 오는 힘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끊임없이 하나님을 찾아가고, 꾸준하고 열렬하게 죄를 고백하고, 그분 앞에 심령을 겸비하게 할 필요가 있다. 위험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자신의 연약함을 느끼고 믿음의 손으로 전능하신 우리의 구원자를 굳게 붙잡을 때에만 우리에게 안전이 있다.
참 지식의 근원이 되시는 그리스도
우리는 주의를 끄는 수 많은 화제에서 돌아서야 한다. 시간을 허비하게 하고 의문을 일으키는 문제들이 있다. 그러나 끝에 가서는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 최고의 관심사가 면밀한 주의력과 정력을 요구하고 있지마는 너무나 흔히 비교적 무의미한 것에 그것들이 바쳐지고 있다.
새로운 이론을 받아들일 때 그 이론 자체가 영혼에게 새 생명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 중요한 사실과 이론에 정통할지라도 그 자체가 실제적으로 이용되지 않으면 별반 가치가 없다. 우리는 영적 생활을 길러 주고 활기 있게 해 주는 양식을 우리의 심령에 공급해 줄 책임을 느낄 필요가 있다.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
네 마음을 명철에 두며 …
은을 구하는 것같이 그것을 구하며 …
감추인 보배를 찾는 것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
그런즉 네가 공의와 공평과 정직
곧 모든 선한 길을 깨달을 것이라
곧 지혜가 네 마음에 들어가며
지식이 네 영혼에 즐겁게 될 것이요
근신이 너를 지키며
명철이 너를 보호하여”
“지혜는 그 얻는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잠언 2장 2-11절, 3장 18절
우리가 연구해야 할 문제는 “무엇이 진리, 곧 마음에 간직하고, 사랑하고, 높이고, 순종해야 할 진리인가”라는 문제이다. 과학에 몰두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발견하고자 한 그들의 노력에서 실패하고 실망해 왔다. 이 시점에서 그들이 질문해야 할 것은 “우리의 영혼을 구원해 줄 수 있는 진리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너희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것은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그대는 그분을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는가? 그분께서는 당신을 영접해 들이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의 마음 속에 특별한 일을 이루어 주시는 방법으로써 그들에게 하나님을 나타내셨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마음 속에서도 그와 같이 일하기를 바라신다. 너무 지나치게 이론에 사로잡힌 나머지 구주의 모본에 대한 산 능력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겸손하고, 자아를 부정하는 일꾼이신 그분을 보지 못한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그분의 임재의 새로운 계시가 필요하다. 우리는 그분의 자아부정(自我否定)과 자아희생의 모본을 더욱 가까이 따라갈 필요가 있다.
우리는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고 기록할 당시에 가졌던 그 경험이 필요하다.
품성 속에 나타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땅과 하늘에서 평가되는 어떤 것보다 더욱 고상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최고의 교육이다. 그것이 하늘 도성의 문을 여는 열쇠이다. 그리스도를 옷 입은 모든 사람이 이 지식을 소유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얻는 지식

성경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의 계시이다. 성경 말씀을 받아들이고, 믿고, 순종하면 그것이 품성의 변화에 큰 역할을 해준다. 그것은 육체적, 정신적, 영적 힘을 일깨워 주고 생애를 올바른 방향으로 지도해 주는 큰 자극제요 힘이 된다.
젊은이들이, 심지어 장년들까지라도 너무도 쉽게 유혹과 죄에 빠지는 이유는 그들이 마땅히 해야 할 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지 않고 그것을 명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애와 품성에 나타나는 확고하고 결정적인 의지력의 결핍은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을 등한히 한 결과이다. 그들은 거룩하고 순결한 사상을 고취시켜 주는 데로 마음을 기울어지게 하지 않을 뿐더러 불순하고 진실하지 못한 것에서 마음을 분리시키고자 열렬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 마리아처럼 예수님의 발 아래 앉아서 거룩한 교사를 알고자 좋은 편을 택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그분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그 말씀을 생애에 실천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성경의 진리를 받아들일 때, 정신과 심령이 고상해질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분별해야 할 만큼 올바르게 분별하기만 하면, 노소를 막론하고 유혹을 저항할 수 있는 강직한 마음, 곧 힘 있는 원칙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사람들에게 성경의 귀중한 교훈들을 가르치고 기록하게 하라. 생각과 재능과 예민한 두뇌의 힘을 하나님의 사상을 연구하는데 바치도록 하라. 사람의 생각에서 나온 철학을 연구하지 말고, 진리이신
하나님의 철학을 연구하라. 어떤 다른 학문도 이것과 가치를 비교할 수 없다.
세속적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명상하는데서 기쁨을 발견하지 못한다. 그러나 성령으로 새로와진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성경에서 거룩한 미와 하늘의 빛이 비쳐 온다. 세속적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거칠은 광야와 같은 것도 영적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생명의 샘이 흐르는 땅이 된다.
하나님의 말씀에 계시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우리의 자녀들에게 주어져야 한다. 그들의 이성(異性)의 눈이 떠지는 가장 초기에서부터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과 생애를 잘 알아야 한다. 그들은 최초의 교훈으로서 하나님이 그들의 아버지시라는 진리를 배워야 한다. 그들의 최초의 훈련은 사랑으로 순종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건하고 친절하게 읽어 주되, 그들의 이해력에 적합하고 그들의 흥미를 일으켜 주기에 알맞은 부분들을 되풀이해서 읽어 주라. 그리고 무엇보다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그분의 사랑과 그 위대한 교훈을 그들에게 가르쳐 주라.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 4:11).
젊은이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신과 심령의 양식을 삼게하라.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모든 교육의 이치가 되게 하고, 모든 교훈과 연구의 중심이 되게 하라. 그리고 그것을 실생활의 매일의 경험에서 실천하게 하라. 그리하면 구주께서는 날마다 젊은이들의 동료와 친구가 될 것이다. 모든 생각은 사로잡힌 바 되어 그리스도께 순종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사도 바울처럼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그리하여 그들은 체험적 지식으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하나님을 알게 된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진실성과 그분의 약속의 확실성을 스스로 입증하였다. 그들은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았다.
사랑의 사도 요한은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지식을 얻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증언할 수 있게 되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요일 1:1-3).
그러므로 각 사람은 자기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칠” 수 있게 된다(요 3:33). 그는 그리스도의 능력에 대하여 자기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바를 증거할 수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증거할 수 있다.*
“나는 도움이 필요하였다. 나는 그것을 예수님 안에서 발견하였다. 모든 요구는 채워지고, 내 심령의 주림은 충족되었다. 성경은 나에게 그리스도의 계시이다. 나는 예수님이 나에게 거룩한 구주가 되시기 때문에 그분을 믿는다. 나는 성경을 믿는다. 왜냐하면 나는 그것이 나의 심령에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됨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개인적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지식을 얻은 사람은 자연과학을 연구할 준비가 된 것이다. 그리스도에 관하여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기록되어 있다(요 1:4). 죄가 들어오기 전에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밝고 아름다운 빛, 곧 하나님의 빛에 둘러싸여 있었다. 이 빛은 그들이 접근하는 모든 것을 비쳐 주었다. 하나님의 품성과 솜씨에 대한 그들의 지각을 어둡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유혹자에게 굴복하게 되자, 그 빛은 그들에게서 떠나갔다. 거룩한 의복을 잃어버림과 동시에 그들은 천연계를 비쳐 주던 빛도 잃어버렸다. 그들은 더 이상 천연계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솜씨를 통하여 그분의 품성을 분별할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인류는 스스로의 힘으로 천연계의 교훈을 올바르게 깨달을 수 없다. 하늘의 지혜로 인도되지 않으면, 그는 천연계와 천연계의 법칙들을 천연계의 하나님보다 더 높이게 된다. 이것이 과학에 관한 단순한 인간적 이론이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과 너무도 자주 상치되는 이유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천연계가 다시 빛을 비추어 준다. 십자가에서 흘러나오는 빛을 통하여, 우리는 천연계의 교훈을 올바르게 해석할 수 있다.
개인적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지식을 가진 사람은 성경의 신령성을 믿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게 된다. 그는 말씀이 진리라는 사실을 입증하고 진리 그 자체는 결코 모순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는 사람들의 과학적 사상에 의하여 성경을 시험하지 않고, 과학적 사상을 그릇됨이 없는 성경의 표준으로 시험한다. 그는 진정한 과학에는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과 반대되는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성경과 과학은 같은 저자에게서 나온 것이므로 그 둘은 다같이 올바르게 이해하면 그것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증명해 줄 것이다. 소위 과학적 가르침에 하나님의 말씀의 증거와 모순이 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은 무엇이든지 단순히 인간의 추측으로 된 이론에 불과하다.
과학적 연구는 그러나 학도에게 사상과 지식의 넓은 분야를 열어줄 것이다. 그가 천연계의 사물을 명상할 때, 그에게는 진리에 대한 새로운 지각이 생기게 된다. 천연계의 책과 기록된 말씀은 서로 서로 빛을 비쳐 준다. 그 둘은 다같이 하나님의 품성과 그분께서 활동하시는 법칙에 대하여 더욱 잘 깨닫게 해 준다.
시편 기자의 체험은 천연계와 계시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임으로써 모든 사람이 얻을 수 있는 경험이다. 그는 말한다.
“여호와여 주의 행사로 나를 기쁘게 하셨으니
주의 손의 행사를 인하여 내가 높이 부르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
주의 성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으며
주의 의는 하나님의 산들과 같고
주의 판단은 큰 바다와 일반이라 …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인생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나이다 …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수로
마시우시리이다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
“행위 온전하여 여호와의 법에 행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여호와의 증거를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내가 성실한 길을 택하고
주의 규례를 내 앞에 두었나이다.”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내가 주의 법도를 구하였사오니
자유롭게 행보할 것이오며”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
“주의 증거는 나의 즐거움이요
나의 모사니이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승하니이다.”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주의 증거가 기이하므로
내 영혼이 이를 지키나이다.”
“나의 나그네 된 집에서
주의 율례가 나의 노래가 되었나이다.”
“주의 말씀이 심히 정미하므로
주의 종이 이를 사랑하나이다.”
“주의 말씀의 강령은 진리오니
주의 의로운 모든 규례가 영원하리이다.”
“내 혼을 살게 하소서 그리하면 주를 찬송하리이다
주의 규례가 나를 돕게 하소서.”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바라며
주의 계명을 행하였나이다
내 심령이 주의 증거를 지켰사오며
내가 이를 지극히 사랑하나이다.”
“주의 말씀을 열므로 우둔한 자에게
비취어 깨닫게 하나이다.”
“주의 계명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이 나로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내가 주의 증거를 묵상하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승하며
주의 법도를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승하니이다.”
“주의 법도로 인하여 내가 명철케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
“주의 증거로 내가 영원히 기업을 삼았사오니
이는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이다.”
시편 92편 4절, 36편 5-7, 7-9절, 119편 1, 2,
9, 30, 11, 45, 18, 24, 72, 97,
129, 54, 140, 160, 175, 165-167, 130, 98-100,
104, 111절

보다 분명히 하나님이 계시됨
하나님의 품성에 대하여 보다 분명한 계시를 얻기 위하여 높이, 더욱 높이 향상하는 것이 우리의 특권이다. 모세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라고 기도하였을 때 여호와께서는 그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종에게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고 말씀하셨다(출 33:18, 19).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하고 우리의 지각을 흐리게 하는 것은 죄이다. 죄가 우리의 마음에서 제거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의 빛이 그분의 말씀을 비추고 천연계에서 반사될 때, 그분에 대하여 점점 더 완전하게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고 선포하게 될 것이다(출 34:6).
그분의 빛 가운데서 우리는 빛을 보게 될 것이며, 그리하여 마침내 정신과 마음과 심령은 그분의 거룩한 형상으로 변화하게 될 것이다.
그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의 거룩한 약속을 굳게 붙드는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가능성이 있다. 그들 앞에는 진리의 넓은 평원과 능력의 큰 자원(資源)이 놓여 있다. 영광스러운 사물들이 계시되어야 한다. 그들이 성경 가운데 있으리라고 생각조차 못한 특권과 의무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겸손한 순종의 길을 걸으면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더욱 더욱 깨닫게 될 것이다.학생으로 하여금 성경을 지도자로 삼고 원칙에 굳게 서게 하라. 그리하면 그는 아무리 높은 수준의 학문에라도 도달하고자 열망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모든 것 가운데 최고로 인정하지 않았을 때 모든 인간적 성격의 철학은 혼란과 수치를 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귀중한 믿음은 품성의 힘과 고결함을 준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와 사랑에 탐익될 때, 진리에 대한 지각은 훨씬 더 예민해지고,
순결한 마음과 명석한 사상을 얻고자 하는 열망은 더욱 높고 고상해질 것이다. 거룩한 사상의 순결한 분위기 가운데 거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과 교통함으로 변화를 얻게 된다. 진리는 너무도 크고, 너무도 원대하고, 너무도 깊고, 너무도 넓기 때문에 자아를 잃어버리게 된다. 마음은 부드러워져서 겸손과 친절과 사랑으로 바뀌어진다.
그리하여 거룩한 순종으로 말미암아 선천적 능력이 확대된다. 생명의 말씀을 연구함으로써 학도들은 넓고, 고상하고, 숭고한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만일 그들이 다니엘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되면 그들 역시 다니엘처럼 모든 분야의 학문에서 향상하게 될 것이다. 마음이 순결해지므로 그들은 강한 마음의 소유자가 될 것이다. 모든 지적 능력이 일깨워질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감화의 분위기 안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에게 지혜와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과 연합할 때 사람이 어떻게 되며,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볼 수 있게끔 그들 스스로를 교육하고 훈육하게 될 것이다.
영생의 교육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평생사업은 영생을 위한 준비이다. 이 세상에서 시작한 교육은 이생에서 완성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영혼토록 계속될 것이며, 언제나 계속되어도 결코 완성되지 않을 것이다. 구원의 계획에 있는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은 더욱 더 완전하게 드러날 것이다. 구주께서 당신의 자녀들을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실 때, 그분께서는 지식의 풍성한 창고를 열어 주실 것이다. 그리하여 날마다 하나님의 놀라운 업적, 우주를 창조하시고 지탱하시는 그분의 능력의 증거 새로운 미(美)를 가지고 마음에 전개될 것이다.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빛 가운데서 신비한 것들은 사라지고, 사람들은 전에 결코 깨닫지 못했던 것들이 단순하다는 것을 알고 놀라움으로 충만해질 것이다.
우리가 이제는 거울 속으로 보는 것처럼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다. 우리는 이제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우리를 아시는 것처럼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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