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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병자의 간호*

병실에서

병자에게 봉사하는 사람들은 건강 법칙에 깊은 주의를 기울일 필요를 깨달아야 한다. 어떤 곳에서보다 병실에서 이 법칙에 순종하는 것이 가장 요긴하다. 그 어떤 곳도 수종드는 사람들이 적은 일에 나타내는 성실이 그처럼 크게 영향을 주는 곳은 없다. 중한 병에 걸려 있을 경우에는 환자의 특별한 필요성과 위험에 대한 조그마한 태만, 사소한 부주의, 공포와 흥분과 조급한 마음의 표현, 심지어 동정의 부족까지도, 생사가 달려있는 저울에 변화를 주고, 회복받을 뻔했던 환자를 무덤으로 보낼 수도 있다.
간호원의 능률은 신체적 활력에 크게 좌우된다. 건강이 양호하면 할수록 그는 환자를 돌보는 고된 일을 더욱 잘 감내하고 의무를 더욱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다. 환자를 간호하는 사람들은 식생활과 청결과 신선한 공기와 운동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식구들을 돌봐 주는 것처럼 할 때 그들은 그들에게 지워진 특별한 부담을 견디고, 병에 걸리지 않도록 보호받게 될 것이다.
병이 심해져 간호원이 밤낮으로 돌봐야 할 경우에는 그 일을 최소한 두 사람의 유능한 간호원에게 맡겨 줌으로 옥외의 공기 속에서 각각 휴식과 운동을 할 기회를 주어야 할 것이다. 병실에서 신선한 공기를 풍부하게 얻기 어려운 경우에는 이 일이 특별히 중요하다. 신선한 공기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때때로 환기를 하지 않으므로 환자와 간호원의 생명이 다 같이 위험해 지는 경우가 있다.
만일 적절한 예방조치만 한다면 비전염성 질병은 다른 사람들에 의하여 옮겨질 필요가 없다. 습관을 바르게 하고, 청결과 적당한 환기로써 해로운 요소들을 병실에서 제거해 버리라. 그와 같은 상태에서 병자들은 훨씬 더 쉽게 회복되고, 대부분의 경우에 간호하는 사람들과 가족들도 질병에 감염되지 않게 될 것이다.*
햇빛, 환기, 온도
환자에게 가장 좋은 회복의 조건을 제공하는 길은 그가 들어있는 방이 크고, 밝고, 기분이 상쾌하고, 철저하게 환기를 하는 방이어야 한다. 집에서 이와 같은 조건들을 가장 잘 갖추고 있는 방이 병실로 사용되어야 한다. 많은 집들은 적당한 환기를 위한 특별한 설비가 없으므로 그와 같은 방을 얻기 어렵다. 그러나 가능한 온갖 노력을 기울여 병실을 주선함으로 신선한 공기가 밤낮으로 자유롭게 유통될 수 있게 해야 한다.
할 수 있는 대로 병실에는 온도까지 유지해야 한다. 온도계를 참고해야 한다. 환자를 돌보는 사람들은 이따금 잠을 빼앗기거나 환자를 돌보기 위하여 밤에 깨어 있어야 함으로 냉기(冷氣)에 빠져 있기 쉬우므로 건강에 적당한 온도를 잘 분별하지 못한다.
식사
간호원의 의무 중 중요한 한 부분은 환자의 식사를 돌봐 주는 일이다. 환자는 영양 부족으로 고통을 당하거나 지나치게 약해 지도록 허용되어서는 안되며, 과도하게 먹어서 소화기능이 약화되어도 안된다. 음식이 맛이 있게 준비되어 제공되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양이나 질이 환자의 필요에 꼭 적합하게끔 현명한 판단력이 활용되어야 한다. 특별히 회복기에 있어서, 식욕이 예민하고 소화 기관이 힘을 회복하기 전에는 식생활의 잘못 때문에 손해를 볼 위험이 많다.
간호하는 사람들의 의무간호원들과 병실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은 쾌활하고, 조용하고. 침착해야 한다. 온갖 종류의 서두르는 일과 흥분과 혼란은 제거되어야 한다. 문들은 주의 깊게 여닫아야 하고, 온 집은 조용해야 한다.
열이 있을 경우 열이 올랐다 내렸다 할 때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그럴 때에는 끊임없이 관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명하고 사려 깊은 간호원들로부터 적당한 간호를 받았으면 살았을 뻔한 많은 사람들이 무지와 태만과 무모한 행동 때문에 죽게 되었다.
환자의 방문
환자를 너무 자주 방문하는 일은 잘못된 친절이며, 예의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다. 병이 심한 사람들은 방문자들이 없어야 한다. 방문자들을 영접하는 일에 따르는 흥분은 환자에게 조용하고 절대적인 휴식이 가장 필요한 때 그를 괴롭게 한다.
회복기에 있는 환자나 만성적 질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환자는 자기를 친절하게 기억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 때 이따금 기쁨과 유익을 얻는다. 그러나 그와 같은 보증은 직접 방문하는 것보다 동정의 기별이나 어떤 작은 선물을 보냄으로써 흔히 그 목적을 더 잘 성취하게 되고, 동시에 손해를 입힐 위험도 없게 될 것이다.
기관에 소속된 간호원많은 환자들을 끊임없이 대하는 요양소와 병원에서는 간호원들이 언제나 명랑하고 쾌활하며, 모든 말과 행동에 주의 깊은 생각을 나타내도록 결정적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그런 기관에서는 간호원들이 그들의 일을 현명하고 훌륭하게 수행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들은 매일의 의무를 수행하는 중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고 있다는 것을 언제나 기억할 필요가 있다.
환자들에게 현명한 말들을 들려 줄 필요가 있다. 간호원들은 고통중에 있는 사람들을 계몽시키고 도와 줄 수 있는 자격을 갖추기 위하여 날마다 성경을 공부해야 한다. 앓고 있는 사람들이 간호받고 있는 방에는 하나님의 천사들이 있다. 그러므로 치료해 주는 사람의 영혼을 두르고 있는 분위기는 순결하고 우아해야 한다. 의사들과 간호원들은 그리스도의 원칙을 간직해야 한다. 그들의 생애에서 그분의 덕성이 나타나야 한다. 그렇게 될 때 그들은 그들의 행동과 말로써 환자들을 구주께로 인도하게 될 것이다.*그리스도인 간호원은 건강의 회복을 위하여 치료해 주는 동안 육체와 심령을 다 같이 치료해 주시는 그리스도께 환자들의 마음을 즐거운 마음으로, 또한 성공적으로 이끌게 될 것이다.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나타낸 생각들이 영향을 발휘할 것이다. 나이 많은 간호원들은
환자들의 주의를 그리스도께 이끌 수 있는 유리한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그들은 언제나 육적 치료와 영적 치료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간호원들은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에게 가장 친절하고 부드러운 태도로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는 일을 그쳐야 한다고 가르쳐야 한다. 그는 죄악의 생애를 선택하는 일을 그쳐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법칙을 고의적으로 어김으로 질병과 고통을 스스로 초래하는 일을 계속하는 사람을 축복하실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악행을 그치고 바르게 생활하는 법을 배우는 사람들에게 성령을 통하여 치료하는 힘을 주신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심령과 육체에 가장 큰 유익이 되는 일을 거스려 끊임없이 활동할 것이다. 그러나 이 악한 세상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생활의 중요성을 깨달은 사람들은 온갖 악을 기꺼이 끊어 버릴 것이다. 감사와 사랑이 그들의 마음에 충만해질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친구이심을 안다. 많은 경우에 그와 같은 친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이 건강을 회복하는 일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치료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그러나 그 두 분야의 봉사는 다 같이 긴요하다. 그것들은 똑 같이 병행해야 한다.
병자를 위한 기도

성경은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 이라고 말한다(눅 18:1). 사람들이 기도의 필요를 느끼는 때가 있다면 그것은 기운이 쇠약해지고 생명 자체가 그들에게서 떠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때이다. 때때로 건강한 사람들은 날마다, 해마다, 그들에게 계속적으로 주어지는 놀라운 자비를 잊어버리고, 그들에게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는다. 그러나 질병이 닥쳐오면 하나님이 기억에 떠오른다. 사람들은 그들의 기운이 쇠약해 지면 하나님의 도우심의 필요를 느낀다. 그러나 우리의 자비하신 하나님은 당신께 진정으로 도움을 구하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돌아서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병들 때나 건강할 때를 막론하고 우리의 피난처가 되신다.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도다.”
(시편 103편 13, 14절)
“저희 범과와 죄악의 연고로
고난을 당하매
저희 혼이 각종 식물을 싫어하여
사망의 문에 가깝도다.”
(시편 107편 17, 18절)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
(시편 107편 19, 20절)
성령께서 시편 기자를 통하여 이 말씀을 하시던 때와 꼭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병자들을 기꺼이 회복시켜 주시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지상 봉사를 하시던 그 당시와 꼭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자비로운 의사시다. 그분에게는 모든 질병을 치료하는 향유와 모든 약한 것들을 고쳐 주는 능력이 있다. 오늘날의 그분의 제자들은 옛날의 제자들이 기도한 것과 마찬가지로 병자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 회복이 따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할 수 있는 성령의 능력, 조용한 믿음의 보증이 있다.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 16:18)는 주님의 약속은 사도시대와 꼭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신뢰할 만한 약속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특권을 나타내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거기에 포함되어 있는 모든 것을 붙들어야 한다. 하나님의 종들은 그분께서 역사(役事)하시는 통로이므로 그분께서는 그들을 통하여 당신의 치료하는 능력을 나타내시고자 원하신다. 병자들과 고통당하는 자들을 우리의 믿음의 팔로 안아서 하나님께 가져다 주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우리는 위대한 치료자를 믿도록 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구주께서는 우리에게 병든 자, 희망이 없는 자, 고통당하는 자들에게 당신의 능력을 붙들도록 격려하게 하신다. 믿음과 기도를 통하여 병실이 벧엘로 바뀔 수 있다. 의사와 간호원들은 말과 행동으로, 하나님께서 멸망시키기 위해서가 아니고 구원하기 위하여 그 장소에 계신다는 사실을 오해할 수 없는 분명한 말로 알려 줄 수 있다. 그리스도는 직접 병실에 오셔서 의사와 간호원들의 마음에 당신의 부드러운 사랑을 채워 주시기를 원하신다. 만일 병자를 간호하는 사람들의 생애가 그리스도께서 그들과 함께 병자의 침상 곁으로 갈 수 있을 정도의 생애일 것같으면, 그 환자에게는 자비하신 구주께서 계시다는 확신이 생기게 되고, 그 확신 자체가 심령과 육체를 치료하는 일에 있어서 큰 일을 할 것이다.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들어주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말씀하셨다. 다시 그분께서는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고 말씀하신다(요 14:14, 12:26). 만일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따라서 생활하면, 그분께서 하신 모든 귀한 약속이 우리에게 성취될 것이다. 우리는 그분의 긍휼을 입을 자격이 없지마는 우리 자신을 그분께 바치면 그분께서는 우리를 받아 주신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위하여, 그리고 그들을 통하여 일하실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순종하면서 생활할 때만 우리는 그분의 약속의 성취를 주장할 수 있다. 시편 기자는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고 말한다(시 66:18). 만일 우리가 그분께 부분적이요 반신반의(半信半疑)의 순종을 할 것같으면 그분의 약속들은 우리에게 성취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병자의 회복을 위한 특별 기도에 관한 교훈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기도를 드리는 것은 가장 엄숙한 행동이므로 주의 깊게 생각하지 않고 드려서는 안된다. 병자의 치료를 위하여 기도 드리는 많은 경우에 있어서, 소위 믿음이라고 불리워지는 것은 참람된 주장에 불과하다.
많은 사람들은 방종에 의하여 스스로 질병을 초래한다. 그들은 일치되도록 생활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옷 입고, 일하는 습관에 있어서 건강의 법칙을 무시하였다. 때로는 어떤 형태의 부도덕이 마음과 몸을 약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만일 그런 사람들이 건강의 축복을 받게 되면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연법칙과 영적 법칙을 부주의하게 범하는 동일한 길을 계속해서 걸어갈 것이며, 만일 하나님께서 기도의 응답으로 그들을 고쳐 주시면 그들은 그들의 불건전한 생활을 계속하고 무제한으로 왜곡된 식욕에 방종할 자유가 있다는 구실을 만들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들의 건강을 회복시키는 일에 이적을 행하신다면, 그분께서는 죄를 조장하게 될 것이다.사람들에게 건전치 못한 생활을 버리도록 가르쳐 주지 않을 것같으면, 하나님을 그들의 연약함을 고쳐 주시는 분으로 바라보도록 가르쳐 주는 것은 헛된 일이 되고 만다. 그들은 기도의 응답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하여 악을 그치고 훌륭하게 생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들의 환경은 위생적이어야 하고, 그들의 생활 습관은 고쳐져야
한다. 그들은 자연법칙과 영적 법칙은 물론이요 하나님의 법칙과 조화되게 살아야 한다.
죄의 고백
건강을 회복받기 위하여 기도해 주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연법칙과 영적 법칙은 물론이요 하나님의 법칙을 범하는 것이 죄라는 사실과, 그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면 죄를 자복하고 버려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밝혀 주어야 한다.성경은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고 우리에게 명령한다(약 5:16). 기도해 주기를 요청하는 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생각을 갖게 해 주라. “우리는 마음을 알 수 없으며, 당신의 생애의 비밀을 모릅니다. 그것들은 오직 당신과 하나님만이 압니다. 만일 당신의 죄를 후회스럽게 생각한다면, 그 죄를 고백하는 것이 당신이 할 의무입니다.” 개인적 성격에 속한 죄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의 중보자 되시는 그리스도께 고백해야 한다. 왜냐하면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요일 2:1).
모든 죄는 하나님께 범하는 것이므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분께 고백해야 한다. 공공연하게 범해진 죄는 모두 공개적으로 고백되어야 한다. 동료에게 잘못한 것은 손해를 입은 사람에게 바르게 시정되어야 한다. 만일 건강을 얻고자 간구하고 있는 어떤 사람이 나쁜 말을 함으로 죄를 범하였거나, 가정과 이웃과 교회에 불화의 씨를 뿌리거나 분리와 분화를 일으켰다면, 또는 어떤 나쁜 행동으로 다른 사람들을 죄악 가운데 빠뜨렸다면, 그 모든 일을 하나님과 피해를 입힌 사람들 앞에서 고백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
잘못이 바르게 시정된 후에, 우리는 주님의 영이 지시하시는 대로 조용한 믿음으로 병자의 필요를 주님께 제시할 수 있다. 그분께서는 각 개인의 이름을 아시며,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다른 어떤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고 마치 그 한 사람을 위해서 주신 것처럼 각 사람을 돌보신다.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 위대하고 무진장하기 때문에, 병자들은 그분을 신뢰하고 기쁨을 얻도록 권장을 받아야 한다. 자기 자신에 관하여 걱정하게 되면 연약해지고 병을 일으키게 된다. 그들이 침체된 마음과 우울한 생각을 버리고 일어서면 그들의 회복의 가망은 더욱 양호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여호와는 …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시기 때문이다(시 33:18).병자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롬 8:26).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축복이 최선의 것이 될 것인지 그렇지 못할 것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에는 다음과 같은 사상이 들어있어야 한다. “주님, 주님께서는 사람의 모든 비밀을 아십니다. 주님은 이 사람들을 잘 아십니다. 그들의 중보자 되시는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생명을 그들을 위하여 주셨습니다. 그들을 위한 당신의 사랑은 우리의 사랑으로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위대합니다. 그러므로 건강이 회복되는 것이 주님의 영광과 앓는 사람들의 유익을 위한 일이면,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건강을 회복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만일 그들이 회복받는 것이
주님의 뜻이 아니면,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그들을 위로해 주시고 고통 중에 있는 그들에게 오셔서 그들을 지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아신다.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아신다. 그분께서는 사람의 모든 비밀을 아신다. 그분께서는 기도의 대상이 되어 있는 그 사람들이 살아나면 그들에게 닥쳐올 시험들을 견딜 수 있을 것인지, 견디지 못할 것인지 아신다. 그분께서는 그들의 생애가 그들 자신과 세상에게 축복이 될 것인지 저주가 될 것인지 아신다.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열렬하게 탄원함과 동시에,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고 말해야 한다(눅 22:42).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마 26:39)라고 간구하신 후, 하나님의 지혜와 뜻에 순종하는 그 말씀을 첨가하셨다. 그런데 그 말씀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께 합당한 것이었다면, 유한하고 실수가 많은 인간들의 입술에서는 얼마나 더 많이 흘러나와야겠는가!
우리의 욕망을 시종여일 완전히 지혜로우신 우리 하늘 아버지께 바쳐야 한다. 그리고 온전한 확신으로 모든 것을 그분께 신뢰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신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러나 순종하는 정신이 없이 우리의 요구를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의 기도는 명령의 형식이 아닌 중재의 형식을 취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회복시키는 일에 있어서 당신의 거룩한 능력에 의하여 결정적으로 역사하시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모든 병자들이 다 고침을 받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안에서 잠든다. 요한은 밧모섬에서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계 14:13)고 기록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 말에 의하면, 우리는 만일 사람들이 건강을 회복받지 못할지라도 그 이유 때문에 그들이 믿음이 부족한 것으로 간주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우리는 모두 우리의 기도가 즉시, 그리고 우리의 소원대로 응답되기를
바라며, 혹시 응답이 늦어지거나 우리가 바라지 않은 형태로 응답되면 용기가 꺾이는 시험을 받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참으로 현명하시고 선량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를 언제나 우리가 바라는 바로 그 시간에, 바라는 그대로의 형태로 응답해 주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모든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것보다 더 풍성하고 더 좋은 일을 우리를 위하여 주실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분의 지혜와 사랑을 신뢰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뜻에 양보해 달라고 그분께 요구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그분의 목적에 흡수되어 그 목적을 이루고자 노력해야 한다. 우리의 욕망과 흥미는 그분의 뜻 가운데 잃어버린바 되어야 한다. 믿음을 시험하는 이같은 경험들은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들이다. 그런 경험들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의 기초 위에 놓여 진실하고 성실한지, 혹은 환경에 좌우되어 불안하고 변하기 쉬운지 분명히 나타나게 된다. 믿음은 실천을 통하여 강화된다. 우리는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하여 성경 속에 귀중한 약속들이 있음을 기억하고 인내력을 충분히 발휘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이 원칙을 다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주님의 치료의 자비를 구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을 즉시, 그리고 그들의 소원 그대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만일 그렇지 못하면 그들의 믿음에 결함이 있다고 느낀다. 그러므로 병으로 약해져 있는 사람들은 지혜로운 권면을 받고 신중하게 행동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그들을 살리기 위하여 애쓰는 친구들에 대한 의문을 무시하거나 그들의 건강의 회복을 위하여 자연의 힘을 이용하는 일을 등한히 해서는 안된다.
때때로 여기에 잘못을 범할 위험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기도의 응답으로 고침을 받아야 할 것으로 믿고 기도의 부족을 나타내는 듯한 일은 무엇이나 하기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죽음으로 헤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예상되면 그들은 그들의 일을 자기들이 소원하는 대로 질서 있게 처리하는 일을 등한히 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헤어지는 시간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말해 주고 싶은 권면이나 격려의 말을 하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기도로 병고침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치료의 수단을 이용하는 일을 등한히 해서는 안된다. 하나님께서
고통을 덜어 주시고자 마련하신 치료의 방법을 이용하는 것과 회복시키는 자연의 역사를 도와 주는 것은 믿음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협력하고, 그들 스스로를 회복되기에 가장 유리한 상태에 두는 것은 믿음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법칙을 아는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을 우리 속에 넣어 주셨다. 그 지식은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범위 안에 놓여 있다. 우리는 건강을 회복하기 위하여 모든 편의를 이용하고, 할 수 있는 대로 유리한 모든 점을 취하고, 천연계의 법칙과 조화되도록 활동해야 한다. 우리가 병자들의 회복을 위하여 기도할 때, 우리는 모든 힘을 더욱 많이 기울여 일하고, 우리가 하나님과 협력하는 특권을 가진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분께서 마련해 주신 방법에 축복해 주시도록 간구할 수 있다.
우리는 치료의 수단을 이용하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이 인정한다는 것을 안다. 이스라엘의 왕 히스기야가 병들었을 때 하나님의 선지자는 그가 반드시 죽으리라는 기별을 전했다. 그러자 그는 여호와께 부르짖게 되었고,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종의 탄원을 들으시고 그의 생명이 15년 간 연장될 것이라는 기별을 보내셨다. 이제 하나님께서 한마디의 말씀만 하시면 히스기야는 고침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한 뭉치 무화과를 취하여 종처에 붙이면 왕이 나으리라”는 지시가 주어졌다(사 38:21).
한 번은 그리스도께서 어떤 소경의 눈에 진흙을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명령하셨다.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요 9:7). 치료는 오직 위대한 치료자의 능력을 통하여서만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간단한 자연의 기구를 이용하셨다. 비록 그분께서 약물치료에 대한 장려는 하지 않으셨지마는 단순하고 자연적인 요법을 사용하는 것은 인정하셨다.
우리가 병자의 치료를 위하여 기도할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잃어버려서는 안된다. 만일 우리가 사별(死別)을 당할 수밖에 없을지라도 우리는 그 쓴 잔을 받고, 하나님 아버지의 손이 그 잔을 우리 입술에 대어 주시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건강이 회복되면 치료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창조주께 새로운 의무가 지어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열 사람의 문둥병자가 고침을 받았을 때, 오직 한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그분께 영광을 돌렸다. 우리들 중 아무도 하나님의 자비에 대하여 마음의 감동을 받지 못한 무분별한 아홉 사람처럼 되어서는 안된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 1:17).*
치료법의 활용

병은 원인없이 결코 생기지 않는다. 건강의 법칙을 무시함으로 길이 마련되고 질병이 들어오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부모들이 범한 죄의 결과로 고통을 받는다. 그들에게는 부모들이 한 일에 대하여 책임은 없을지라도 건강의 법칙을 범하는 여부가 어떠한 것인지 확인해보는 것이 그들의 의무이다. 그들은 부모들의 그릇된 습관을 피하고, 올바른 생할을 통하여 그들 자신을 보다 좋은 조건 아래 놓아야 한다.
그러나 더욱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그릇된 행동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 그들은 먹고, 마시고, 옷 입고, 일하는 습관에 의하여 건강의 원칙을 무시한다. 그들이 자연법칙을 어기면, 거기에 대하여 분명한 결과가 나온다. 그리하여 질병이 그들을 엄습하면,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고통의 참 원인을 믿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당하는 고통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한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자연법칙을 무시함으로 초래되는 고통에 대하여 책임이 없다.하나님께서는 어떤 특정 양(量)의 생명력을 우리에게 주셨다. 하나님은 또한 여러 가지 생명의 기능을 지탱하기에 적합한 기관들을 우리에게 마련해 주셨다. 그리하여 그분께서는 그 기관들이 모두
함께 조화롭게 활동하게 하신다. 우리가 생명력을 주의 깊게 보존하고 육체의 미묘한 작용을 질서 있게 보호하면, 결과적으로 건강하게 된다. 그러나 만일 생명력이 너무 빨리 소모되고, 신경 계통이 현재 사용할 힘을 힘의 근원에서 빌려오게 되며, 그리고 한 가지의 기관이 손상을 입게 되면, 모든 것이 영향을 받는다. 자연은 분명한 저항없이 많은 혹사를 견딘다. 그런 다음에 자연은 일어나서 그가 받아온 부당한 취급 때문에 생긴 결과를 제거해 버리고자 결정적 노력을 한다. 그런 상태를 시정하기 위한 자연의 노력이 때로는 열(熱)이나 그 밖의 여러 가지 형태의 질병으로 나타난다.
합리적 치료법
건강의 남용으로 병이 생기면, 고통당하는 자는 때때로 다른 어떤 사람이 그를 위하여 할 수 없는 일을 자기 자신을 위하여 할 수 있다.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병의 참 성격을 확인하는 일이고 그 다음에는 그 원인을 지혜롭게 제거하는 일이다. 만일 과로, 과식, 그 밖의 불규칙한 일을 통하여 신체 조직의 조화로운 활동이 균형을 잃었다면, 해로운 약을 사용함으로써 어려움을 없애고자 애쓰지 말라.
부절제하게 먹는 일은 때때로 질병의 원인이 된다. 그리고 자연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그에게 과해진 부당한 부담을 제거해 주는 일이다. 많은 질병의 경우에 있어서, 가장 좋은 치료법은 환자를 한두 끼 굶김으로 과로해 온 위장에 쉴 기회를 갖게 하는 일이다. 2, 3일 간 과일로 된 음식을 섭취하게 되면, 정신 노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때때로 큰 도움을 가져다 준다. 여러 차례 짧은 기간에 걸쳐 완전한 금식을 한 후에 간단하고 알맞은 식사를 하면 자연 자체가 가진 회복력을 통하여 얻게 된다. 한두 달 동안 절제 있는 식생활을 해 보면 자제의 길이 건강의 길임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
치료법으로서의 휴식어떤 사람들은 과로 때문에 병에 걸린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휴식, 걱정에서의 해방, 식생할의 절제 등이 건강 회복에 필수적이다.
끊임없는 수고와 유폐된 상태에서 정신적으로 피로하고 신경과민이 된 사람들은 단순하게, 또한 걱정없이 생활할 수 있는 시골을 찾아가서 천연계의 사물과 밀접히 교제하므로 큰 도움을 얻을 것이다. 들판과 숲속을 배회하면서 꽃들을 꺾고, 새들의 노래 소리를 듣는 것이 다른 어떤 것보다 그들의 회복에 더 큰 역할을 해 줄 것이다.
건강할 때나 병이 났을 때나를 물론하고 물은 하늘이 준 가장 좋은 축복 중 하나이다. 물을 적당히 사용하면 건강이 증진된다. 물은 하나님께서 동물과 사람의 갈증을 해소시켜 주기 위하여 마련해 주신 음료이다. 물을 충분히 마시면, 신체조직의 필요를 공급하는데 도움이 되고 병을 저항하는 체질을 이루는데도 도움이 된다. 물을 신체의 외부에 적용하는 일은 혈액 순환을 규칙적으로 조절하는 가장 손쉽고도 만족스런 방법 중 하나이다. 찬물 혹은 서늘한 물로 하는 목욕은 훌륭한 강장제(强壯劑)이다. 온수욕은 털구멍을 열어 주므로 불순물을 제거하는데 도움이 크다. 온수욕과 미온수욕은 다 같이 신경을 안정시켜 주고 순환 작용을 고르게 해 준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물을 적당하게 사용함으로 얻는 유익한 효과를 경험으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그것을 두려워한다. 수치료법(水治療法)은 사람들이 마땅히 그 진가를 인정해야 할 만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 치료법을 기술적으로 적용하는데는 많은 사람들이 이행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일이 요구된다. 그러나 어떤 사람도 이 문제에 대하여 무지하거나 무관심한 것을 변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고통을 제거하고 병을 근절하기 위하여 물을 사용할 수 있는 길이 많이 있다. 모든 사람은 간단한 가정 치료법에 물을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특별히 어머니들은 건강할 때나 병든 때를 물론하고 가족들을 간호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활동은 우리의 생존 법칙이다. 신체의 모든 기관은 제각기 맡은 기능이 있으며, 그 기능의 수행에 따라 각 기관의 발달과 힘이 좌우된다. 모든 기관들이 정상적으로 활동하면 힘과 활력이 생기지마는 그것들을 사용하지 않으면 쇠퇴와 죽음으로 기울어진다. 한 쪽 팔을 몇주일 동안만이라도 묶어 두었다가 붕대를 풀어 보라. 그러면 그대는
그 팔이 같은 기간에 정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던 팔보다 약해져 있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무활동은 모든 근육조직에 꼭 같은 결과를 초래한다.
무활동은 가장 큰 질병의 원인이 된다. 운동은 피의 순환을 촉진시키고 고르게 해 주지만 게으름은 피를 자유롭게 순환하지 않게 하고, 생명과 건강에 매우 요긴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게 한다. 피부 역시 무활동 상태가 된다. 만일 활발한 운동으로 순환 작용이 촉진되어 피부가 건강한 상태로 유지되고, 폐도 깨끗하고 신선한 공기를 많이 흡수하게 되었을 것같으면 제거되었을 불순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게 된다. 이와 같은 조직의 상태는 배설기관에 이중(二重)의 부담을 주게 되고, 결과적으로 병이 생기게 된다.
환자들이 활동하지 아니하도록 장려되어서는 안된다. 어떤 면에서 심히 과중한 부담을 지게 될 때 얼마 동안 완전히 휴식을 취하면 때때로 심한 병에서 놓이게 된다. 그러나 만성환자의 경우에는 모든 활동을 중지하는 것이 별로 필요치 않다.
정신적 과로 때문에 쇠약해진 사람들은 걱정스런 생각을 떠나 쉬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정신력을 전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하게끔 지도되어서는 안된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상태가 사실보다 더욱 나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와 같은 마음의 상태는 회복에 불리함으로 권장되어서는 안된다.
목사, 교사, 학생, 그 밖의 정신 노동자들은 육체적 운동으로 제거되지 않는 심한 정신적 부담으로 초래된 질병 때문에 때때로 고생을 하게 된다. 그런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욱 많은 활동적인 생애이다. 적당한 운동과 함께 병행되는 엄격한 절제의 습관은 정신적, 육체적 활력을 확보해 주고, 모든 정신 노동자들에게 인내력을 줄 것이다.육체적 힘에 지쳐 있는 사람들은 육체 노동을 완전히 그쳐야 한다는 권고를 받아서는 안된다.
그러나 노동이 가장 큰 유익이 되려면 조직적이요 유쾌한 것이어야 한다. 옥외의 활동이 가장 좋다. 그것은 약화된 기관들을 사용함으로 강하게 되고, 마음이 그 속에 집중되게끔 계획이 세워져야 한다. 손으로 하는 노동이 단순히 힘든 일로 결코 전락되어서는 안된다.
환자들이 그들의 시간과 주의력을 집중시킬 것을 전혀 갖지 못할 때, 그들의 생각이 자신들에게로 쏠리게 되어 그들은 병적으로 되고 초조해진다. 많은 경우에 그들은 좋지 못한 생각에 사로잡혀 마침내 그들 자신이 실제보다 더욱 건강이 나쁘다고 생각한 나머지 어떤 일도 할 수 없게 된다.
이와 같은 모든 경우에는 잘 지도된 육체적 운동이 효과적인 치료 수단임이 입증될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그것이 건강의 회복에 필수적이다. 의지가 손으로 하는 활동과 함께 작용할 것인데, 그런 환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의지력을 일깨워 주는 일이다. 의지력이 잠자는 상태가 되면 상상력이 비정상적으로 된다. 그리하면 질병을 저항하기가 불가능하다.
무활동은 대부분의 환자들이 받게 될 가장 큰 저주이다. 정신과 육체에 부담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유용한 노동을 가볍게 하는 것은 정신과 육체에 꼭 같이 좋은 영향을 미친다. 그것은 근육을 튼튼하게 해 주고, 순환작용을 촉진시켜 주고, 환자에게 자신이 이 바쁜 세상에서 전혀 쓸모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 줌으로 만족감을 준다. 그가 처음에는 조금 밖에 할 수 없겠지마는 미구에 그의 힘이 증가되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거기에 따라 상당한 양의 일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운동은 위장을 튼튼하게 해 줌으로 소화불량에 도움이 된다. 식사후에 즉시로 힘든 연구나 심한 운동을 하게 되면 소화작용에 장애가 된다. 그러나 식사 후에 잠간 동안 머리를 똑 바로 들고 어깨를 펴고 산보를 하게 되면 크게 유익하다.
운동의 중요성에 관하여 말과 글을 통하여 강조한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육체적 운동을 등한히 하는 사람이 아직 많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신체조직이 제대로의 기능을 발휘하지 않기 때문에 비대해지고, 어떤 사람들은 과식으로 생명력을 소모시켜 버리기 때문에 마르고 약해진다. 간(肝)이 불순한 피를 깨끗게 하는 활동에 부담을 지게 됨으로 질병이 생긴다.
앉아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날씨가 허락하는 한 여름이든 겨울이든 매일 옥외에서 운동을 해야 한다. 걷는 것은 근육을 더욱 많이 운동하게 해 줌으로 말이나 차를 타는 것보다 더욱 좋다. 폐 속에 공기가 가득히 들어가지 않고서는 활발하게 걸을 수 없기 때문에, 걷게 되면 폐가 건전하게 활동할 수 밖에 없다.
그와 같은 운동은 많은 경우에 약보다 더욱 건강에 좋다. 때때로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배를 타고 항해를 하거나 어떤 광물질이 나오는 샘을 찾아 가거나 기후를 바꾸기 위하여 다른 지방을 찾아 가라는 조언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만일 그들이 음식에 절제하고 즐겁고 건전한 운동을 할 것같으면, 그들은 건강을 회복하고 시간과 돈을 절약하게 될 것이다.
정신치료

마음과 육체 간에 존재하는 관계는 매우 밀접하다. 그 중 하나가 병에 걸리면 다른 하나가 동정하게 된다. 마음의 상태는 많은 사람들이 깨닫고 있는 것보다 건강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이 고통당하고 있는 질병의 대부분은 정신적 우울에서 온다. 슬픔, 걱정, 불만, 후회, 죄책감, 불신 이 모든 것은 생명력을 저하시키고 쇠약과 죽음을 초래한다.
때때로 질병은 상상력에 의하여 생기고, 때로는 악화된다. 만일 병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기만 했다면 건강하게 지났을 뻔한 많은 사람들이 일생 동안 환자로 지낸다. 많은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위험에 노출될 때마다 병에 걸릴 것으로 상상하기 때문에 그들이 기대하는 그대로의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 많은 사람들은 오로지 상상적인 원인에서 생긴 질병 때문에 죽는다.
용기, 희망, 믿음, 동정, 사랑은 건강을 증진하고 수명을 연장시킨다. 만족한 정신과 즐거운 마음은 몸에 건강을 주고 심령에 힘을 준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 된다(잠 17:22).
질병의 치료에 있어서 정신적 영향의 효과를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 올바르게 활용만 하면, 이 영향은 투병(鬪病)을 위한 가장 효과적 기능 중 하나가 된다.
정신을 지배함
그러나 악에 대한 가장 효과적 기능 중 하나에 해당되는 정신치료의 한 형태가 있다. 이른바 과학이라고 부르는 그 방법을 통하여 한 사람의 마음이 다른 마음의 지배를 받게 됨으로써 약한 자의 개성이 강한 자의 정신에 흡수당한다. 그리하여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의지를 따라 행동하게 된다. 그러므로 생각의 질이 바뀌어져서 건강을 주는 힘이 전달되고 환자들이 질병을 저항하고 정복할 수 있게 되는 것으로 주장한다.
그런 치료법은 그것이 가진 참 성격과 경향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것이 환자들에게 유익을 주는 수단이 되는 것으로 믿는 사람들에 의하여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소위 과학이라고 불리우는 그것은 거짓 원칙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본성과 정신에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것은 생명과 구원되시는 분에게로 인도해주지 않는다. 사람들의 마음을 자기 자신에게로 이끄는 자는 능력의 참 근원되신 분에게서 사람들이 분리되도록 지도한다.
어떤 사람이 그의 마음과 의지를 다른 사람의 지배에 맡겨 그 사람의 손에서 수동적인 기구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다. 어떤 사람도 자기의 개성을 다른 사람의 개성에 흡수시켜서는 안된다. 그는 어떤 다른 사람을 치료의 근원으로 바라보아서는 안된다. 그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받은 인간의 존엄성을 소유한 그대로 하나님 자신의 지배를 받아야지 어떤 인간의 지배를 받아서는 안된다.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당신 자신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기를 바라신다. 그분께서는 사람들을 취급하실 때 개인적 책임의 원칙을 인정하신다. 그분께서는 개인의 자주성을 권장하고 개인적 지도의 필요를 깨우쳐 주고자 하신다. 그분께서는 사람들을 하나님과 교제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되기를 바라신다. 그러나 사단은 이 목적을 좌절시키기 위하여 활동한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의지하게 하고자 노력한다.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님께서 떠나갈 때, 시험하는 자는 그들을 자신의 지배 아래 둘 수 있다. 그는 인간을 지배할 수 있다.
마음이 마음을 지배한다는 이론은 사단이 자기 자신을 주역(主役)으로 소개하고, 마땅히 신본주의의 철학이 있어야 할 곳에 인본주의의 철학을 강요하기 위하여 창안해 냈다. 그리스도인으로 공언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모든 오류 중에서 이것보다 더 위험한 기만이나, 사람을 하나님께로부터 분리시키는 더 확실한 방법은 없다. 비록 그것이 아무 해가 없을 것처럼 보일지라도, 만일 환자들에게 적용되면 그것은 그들을 회복시켜 주지 않고, 파멸시켜 줄 것이다. 그것은 다른 마음의 지배를 받기 위하여 굴복당한 마음과 지배하는 마음을 소유하기 위하여 사단이 들어갈 수 있도록 열어 준다.
이처럼 악한 마음을 가진 남녀들에게 주어진 힘은 참으로 무섭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약점과 어리석음을 이용하여 사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좋은 기회를 주겠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약하고 병든 마음의 지배를 통하여 더러운 정욕과 이득에 대한 탐욕을 충족시키는 수단을 발견할 것인가!우리에게는 인간성이 인간성에 의하여 지배받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있다. 의사는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사람들을 교육시켜야 한다. 그는 환자들에게 심령과 육체의 치료를 위하여 인간을 바라보도록 가르치는 대신에, 그분께로 나오는 모든 사람을 온전히 구원할 수 있는 분을 그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사람의 마음을 창조하신 분께서는 마음의 필요를 아신다. 하나님은 치료해 주실 수 있는 유일의 분이시다.
마음과 육체가 병든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자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분께서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고 말씀하신다(요 14:19). 이것이 우리가 환자들에게 제시해주어야 할 생명이다. 만일 그들이 그리스도를 회복해 주시는 분으로 믿고, 그분과 협력하고, 건강법칙을 완전히 순종하고, 그분을 두려워하는 중에 완전한 성결을 얻고자 노력할 것같으면 그분께서 당신의 생명을 그들에게 나누어 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 주어야 한다. 우리가 그런 방법으로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제시해 줄 때, 우리는 하늘에서 오는 귀중한 능력과 힘을 나누어 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육체와 심령을 치료하는 진정한 과학이다.
동 정
마음에서 생긴 병을 다룰 때는 큰 지혜가 필요하다. 비탄에 잠긴 병든 마음, 낙망 중에 있는 마음은 부드러운 치료가 필요하다. 많은 경우에 혹종의 가정 문제는 구강 궤양처럼 바로 심령을 잠식하고 생명력을 약화시킨다. 그리고 때때로 죄에 대한 자책감이 체질을 서서히 약화시키고 마음의 균형을 깨뜨리는 경우가 있다. 그런 부류의 환자들은 부드러운 동정으로 유익을 얻을 수 있다. 의사는 제일 먼저 환자의 신임을 얻고 그 다음에는 그들에게 위대한 치료자를 가르쳐주어야 한다. 만일 그들이 믿음으로 참된 의사이신 예수님께로 인도되어 그분께서 그들의 사정을 맡아 주신다는 확신을 갖게 되면, 그것이 그들에게 심령의 해방과 때로는 육체의 건강을 준다.*
동정과 기지(機智)는 냉랭하고 무관심한 방법으로 하는 가장 기술적인 치료가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유익을 환자들에게 줄 수 있다는 것이 때때로 입증될 것이다. 의사가 무관심하고 부주의한 태도로 병실을 방문하여 별반 관심없이 앓는 사람을 쳐다보고, 크게 주의할 필요가 없는 상태인 듯한 인상을 말이나 행동을 통하여 남겨 놓은 후 환자 자신이 마음대로 생각하게끔 버려 둔다면, 그는 의심할 여지없이 그 환자에게 해를 준 것이다. 그의 무관심으로 생긴 의심과 낙망은 때때로 그가 처방해 주는 좋은 치료의 효과를 무효로 만들 것이다.
만일 의사들이 고통으로 마음이 겸허해지고 의지력이 약화된 사람, 그리고 동정과 보증의 말을 듣고자 갈망하는 사람과 입장을 바꾸어볼 수 있다면, 그들은 그의 감정을 더욱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환자들을 위하여 보여 주신 사랑과 동정이 의사의 지식과 합해 지면, 그 의사가 나타나기만 해도 축복이 될 것이다.
환자를 다룰 때 취하는 솔직한 태도는 환자의 신뢰심을 일으켜 주므로 회복에 크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다. 고통을 주고 있는 병의 성격과 원인을 환자에게 숨기는 것이 현명한 처사라고 생각하는 의사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사실을 말함으로 환자를 흥분시키고 낙담시킬 것을 두려워하여 회복에 대한 거짓 희망을 가지게 하고, 위험에 대하여 경고를 받지 않은 채 환자가 무덤으로 내려가도록 허용하기까지 될 것이다. 그런 모든 처사는 현명하지 못하다. 환자에게 그가 직면하고 있는 위험을 남김없이 다 설명해 주는 것이 반드시 안전하거나 최선의 길이 아닐 수도 있다. 그것이 그를 놀라게 하여 회복을 지연시키거나 방해가 되게 할 수도 있다. 병이 주로 상상적인데 기인된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사실을 다 이야기해 줄 수는 없다. 그런 사람들 중 대부분은 이성(理性)적으로 판단하는 힘이 약하고 자제력을 발휘하는 습관이 이루어져 있지 않다. 그들은 특별한 환상에 사로잡혀 있으며, 그들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관하여 사실이 아닌 많은 것들을 상상한다. 그들에게는 그런 일들이 실제적인 것으로 인정됨으로 그들을 간호하는 사람들은 끊임없는 친절과 불굴의 인내와 기지를 발휘할 필요가 있다. 만일 그런 환자들에게 그들 자신에 관한 사실을 그대로 말해 준다면, 어떤 사람들은 감정을 상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낙심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다(요 16:12). 그러나 모든 경우에 사실을 다 말하지 못할지라도 속이는 것이 결코 필요하거나 정당하지는 않다. 의사나 간호원은 얼렁뚱땅해서 넘어가면 안된다. 그렇게 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하나님과 협력할 수 없는 곳에 두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환자들의 신임을 잃어버리고 그들의 회복에 가장 효과적인 인간의 도움 중 하나를 포기해 버리고 있다.
의지력은 마땅히 귀중히 여겨져야 하리만큼 여겨지지 않고 있다. 의지가 각성되고 올바른 지도를 받을 수 있게 하라. 그리하면 그것이 전신에 힘을 나누어 주고 건강을 유지하는데 놀라운 도움이 될 것이다. 그것은 질병을 취급하는데 있어서도 또한 힘이 된다. 의지력이 올바르게 발휘되면, 그것은 상상력을 지배하고 정신과 육체의 질병을 다같이 저항하고 극복하는데 강력한 수단이 될 것이다. 의지력을 활용함으로써 환자들이 스스로 생명에 대하여 올바른 관계를 확립할 때, 그들은 그들의 회복을 위한 의사의 노력에 보다 잘 협력할 수 있게 된다. 원하기만 하면 회복될 수 있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병들기를 원치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그들이 완쾌되어 행복해지기를 바라신다. 그러므로 그들은 완쾌하고자 결심해야 한다. 때때로 환자들은 단순히 병에 굴복당하지 않는 상태로 편안하게 있음으로써 병을 저항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아픔과 고통을 초월하여 그들의 힘에 알맞은 유용한 일을 해야 한다. 그렇게 활동하고 공기와 햇빛을 마음껏 이용함으로 많은 쇠약한 병자들이 건강과 힘을 회복할 수 있다.
치료에 대한 성경의 원칙건강을 회복하거나 보존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성경 말씀에 교훈이 기록되어 있다. “술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 5:18). 부자연스럽고 불건전한 자극제로 말미암아 생기는 흥분과 망각, 저급한 식욕과 정욕의 방종 등을 통하여는 참된 치료와 육체나 심령의 회복이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환자들 가운데는 하나님도 소망도 없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충족되지 못한 욕망, 병든 정욕, 그들 스스로의 양심의 가책 등으로 고통을 받는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생명을 잃어버리고 있으며, 장차 얻을 생명에 대한 희망도 없다. 환자들을 돌보는 사람들은 그 환자들에게
천박하고 흥분적인 방종을 허용함으로 유익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결코 생각하지 말라. 그러한 것들이 그들의 생애에 저주가 되어 왔다. 굶주리고 목마른 영혼들이 그런 것에서 만족을 얻고자 노력하는 동안 주림과 갈증은 계속 될 것이다. 이기적 쾌락의 샘에서 물을 마시는 사람들은 속임을 당하고 있다. 그들은 유쾌한 기분을 힘으로 오해한다. 그리하여 흥분이 끝나면 고무되었던 그들의 마음도 사라지고 그들은 불만과 낙담에 사로잡히게 된다.
한결같은 평안, 진정한 마음의 안식은 오직 하나의 근원에서 나온다. 그리스도께서는 다음과 같이 바로 그 근원에 속한 것을 말씀하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요 14:27). 이 평안은 그분께서 당신 자신과 상관없이 주시는 어떤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평안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을 받아들임으로써만 그 평안를 받을 수 있다.
그리스도는 생명의 샘이시다.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분에 대하여 더욱 분명한 지식을 소유하는 것이다. 그들은 하늘의 치유력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어떻게 온 몸을 맡길 것인지 끈기 있고 부드럽게, 그러면서도 진지하게 배울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사랑의 햇빛이 어두운 영혼의 밀실을 비출 때, 불안한 염려와 불만은 사라지고, 흡족한 기쁨이 정신에 활력을 주고, 육체에 건강과 힘을 줄 것이다.우리는 고통이 많은 세상에 살고 있다. 어려움과 시련과 슬픔이 하늘 본향으로 가는 길에 내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계속해서 어려움을 미리 생각하기 때문에 인생의 짐을 배나 더 무겁게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만일 그들이 역경이나 실망을 당하게 되면 그들은
모든 것이 파멸될 것처럼 생각하고 그들이 당하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로, 그들이 분명히 궁핍해 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처럼 그들은 불행을 자신들에게 자초하고 그들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늘을 던진다. 생애 그 자체가 그들에게는 짐이 된다. 그러나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그들의 생각의 경향을 바꾸는데는 단호한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바꾸는 일은 가능하다. 이생과 내생을 위한 그들의 행복은 그들의 마음을 즐거운 것에 고정시키는데 달려있다. 그들로 하여금 상상에 불과한 어두운 장면에서 눈을 돌려 하나님께서 그들의 앞길에 뿌려 놓은 은혜를 보게 하고, 또한 그것들을 초월하여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을 바라보게 하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시련에 대비하여 도움의 길을 마련해 주셨다. 광야를 여행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마라의 쓴 물가에 왔을 때, 모세는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여호와께서는 어떤 새로운 대책을 마련해 주지않으셨다. 그분께서는 바로 곁에 있는 것에 주의를 끌게 하셨다. 여호와께서는 당신이 창조하신 하나의 관목을 샘에 던져 넣게 하심으로 그 물을 깨끗하고 달게 만드셨다. 그렇게 되자 백성들은 그 물을 마시고 원기를 회복하였다. 온갖 시련 속에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찾으면, 그분께서는 우리를 도와 주실 것이다. 우리는 눈이 열려 그분의 말씀에 기록되어 있는 치료의 약속을 분별하게 될 것이다. 성령께서는 슬픔을 제거해 줄 모든 축복을 이용하는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실 것이다. 우리의 입술에 닿아 있는 모든 쓴 잔을 위하여 우리는 치료의 나무가지를 발견할 수 있다.*우리는 어려운 문제들과 불안하게 예상되는 미래를 보고 마음이 괴롭고, 무릎이 떨리고, 머리가 숙여져서는 안된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나의 힘을 의지하고 나와 화친하며 나로 더불어 화친할 것이니라”고 말씀하신다(사 27:5). 자신의 생애를 하나님의 지도와 그분을 섬기는 일에 완전히 바치는 사람들은 그분께서 돌봐 주시지 않는 어떤 처지에 결코 놓이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어떤 경우에 처하든지 그분의 말씀을 행하는 자들이 될 것같으면, 우리는 우리의 길은 지도해 주시는 인도자를 갖게 된다. 우리가 아무리 난처한 문제를 가지고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는
확실한 상담자(相談者)가 있다. 우리의 슬픔과 사별(死別)의 고통과 외로움이 아무리 극심할지라도 우리에게는 동정깊은 친구가 있다.
우리가 무지함으로 실족할 때, 구주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 우리는 홀로 있다고 결코 생각할 필요가 없다. 천사들은 우리의 친구들이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이름으로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보혜사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 하나님의 도성으로 가는 길에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이 정복할 수 없는 어려움이 없다. 그들이 피할 수 없는 위험들은 없다. 하나님께서 치료의 길을 마련해 주시지 않는 슬픔이 없고, 비애가 없고, 인간적 약점이 없다.
아무도 스스로 자포자기하여 낙심하고 실망할 필요가 없다. 사단은 그에게 가까이 와서 “너는 절망적인 상태에 놓여 있어, 너는 회복될 가망이 전혀 없어”라고 말함으로써 가혹하게 암시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그대에게는 희망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힘으로 승리하라고 명령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당하고 있는 어려움이 심령과 육체를 아무리 억압하고 있을지라도,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고자 기다리고 계신다.*
스스로 인성을 취하신 그분께서는 인간의 고통을 어떻게 동정하실지 아신다. 그리스도는 각 영혼들과, 그 영혼들의 특수한 필요와 시험을 아실 뿐만 아니라 심령을 괴롭히고 어렵게 만드는 모든 환경을 아신다. 그분께서는 동정어린 친절로써 고통하는 모든 영혼들에게 당신의 손을 뻗고 계신다. 가장 크게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그분의 동정과 긍휼을 가장 많이 받는다.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마음 속에 동정을 느끼시며, 우리의 어려움과 난처한 문제들을 가져 와서 당신의 발 앞에 놓기를 바라신다.
우리 자신들을 바라보고 우리의 감정을 살펴 보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만일 우리가 그렇게 하면, 원수는 믿음을 약화시키고 용기를 꺾어 버릴 어려움과 시험을 줄 것이다. 우리의 감정을 면밀하게 살펴보고 우리의 감정이 발휘될 길을 제공하게 되면 회의심이 용납되고 우리 자신이 어려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보지 말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유혹이 그대를 엄습하고 근심과 걱정과 어두움이 그대의 심령을 둘러싸는 것처럼 보일 때, 그대는 그대가 마지막으로 빛을 본 그 곳을 바라보라.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그리고 그분께서 돌봐 주시는 보호 아래 안식을 얻어라. 죄가 마음을 지배하고자 싸울 때, 죄책감이 심령을 억압하고 양심을 억누를 때, 불신이 마음을 가리울 때, 그리스도의 은혜는 죄를 정복하고 어두움을 몰아내기에 충분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구주와 교통함으로 우리는 화평의 영역에 들어가게 된다.
치료의 약속
“여호와께서 그 종들의 영혼을 구속하나니
저에게 피하는 자는 다 죄를 받지 아니하리로다”
(시편 34편 22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
(잠 14장 26절)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이사야 49장 14-16절)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불들리라.”
(이사야 41장 10절)
“배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품기운 너희여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안을 것이요
품을 것이요 구하여 내리라.”
(이사야 46장 3, 4절)
감사와 찬양의 정신보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더욱 잘 증진시켜 주는 것은 없다. 우울하고 불만스런 사상과 감정을 물리치는 것은 기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의무이다. 만일 우리가 하늘과 연결되어 있다면, 슬퍼하는 사람들의 대열에 끼어 아버지의 집으로 가는 동안 내내 탄식하고 불평하면서 걸어갈 수 있을까?
끊임없이 불평하는 한편, 즐거움과 행복을 죄처럼 생각하는 자칭 그리스도인들은 참된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 천연계에 있는 모든 우울한 장면에서 일종의 애상적(哀傷的) 쾌락을 즐기는 사람, 아름답고 싱싱한 꽃들을 따는 대신 죽은 잎들을 찾는 사람, 웅장한 산 봉우리와 녹음(綠陰)이 덮여 있는 계곡에서 아름다움을 찾지 못하는 사람, 천연계를 통하여 들려주는 즐거운 음성에 대하여 감각의 문을 닫아버리는 사람, 그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광명, 곧 치료하는 광선을 가지고 떠오르는 의(義)의 태양을 소유할 수 있지마는 우울한 것과 어두운 것만을 스스로 모으고 있다.
때때로 그대의 마음은 고통으로 구름이 낄 수도 있다. 그럴 때는 그 고통스런 것을 생각하려 하지 말라. 그대는 예수님께서 그대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안다. 그분께서는 그대의 약점을 이해하신다. 그대는 단순히 그분의 품 안에서 쉼으로 그분의 뜻을 행할 수 있다.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말로써 표현할 때 그것들이 용기를 얻고 강화되는 것이 하나의 자연법칙이다.
말이 사상을 표현할 때, 사상이 말을 따라 형성되는 것이 또한 사실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믿음을 더욱 많이 표현하고, 우리가 분명히 받고 있는 축복, 곧 하나님의 큰 자비와 사랑의 축복 안에서 더욱 더 기뻐하면, 우리는 더 많은 믿음과 더 큰 기쁨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감사함으로 얻는 축복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고, 유한한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할 수도 없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보좌에서 흘러나는 물을 마시기 때문에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물로 기뻐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입술을 길들여서 비할 데 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자. 우리는 우리의 심령을 길들여서 소망을 갖게 하고 갈보리의 십자가에서 흘러나오는 빛에 거해야 한다. 우리는 하늘 왕의 자녀들이며, 만군의 여호와의 아들과 딸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자. 하나님께 말없이 순종하는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우리의 특권이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 3:15). 우리는 난관과 어려움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성호를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생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데 대하여 하나님을 찬양하자. 날마다 새로운 축복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자비로운 보호임을 믿고 우리의 마음 속에서 찬양이 흘러나오게 하자. 그대는 아침에 눈을 뜰 때, 하나님께서 밤 동안 그대를 보호해주신 것을 감사하라. 아침과 낮과 밤에 감사의 마음이 향긋한 향기처럼 하늘에 상달되게 하라.누군가가 그대에게 기분이 어떠냐고 묻거든, 동정을 얻기 위하여 무엇인가 슬픈 것을 말해야겠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대의 믿음의 부족과 슬픔과 고통에 대하여 말하지 말라. 유혹자는 그런 말을 듣기 좋아한다. 그대가 우울한 문제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그대는 그 유혹자에게 영광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를 극복하려면 사단의 큰 힘에 사로잡혀 있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때때로 그의 능력에 관하여 이야기함으로 우리 자신을 그의 손에 맡긴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관심을 하나님의 관심과 결부시키기 위하여 오히려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에 관하여 이야기하자. 비할 데 없는 그리스도의 능력에 관하여 말하고, 그분의 영광에 대하여 이야기하자. 천천 만만의 하나님의 천사들은 구원의 후사가 될 사람들을 섬기라는 명령을 받고 있다. 그들은 죄악에서 우리를 지켜 주고, 우리를 멸망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는 흑암의 세력을 물리쳐 준다.
우리에게는 매 순간 감사하되 우리의 앞길에 어려움이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감사해야 할 이유가 있지 않는가?
찬양하라
찬양과 감사를 노래로써 표현하자. 시험을 받을 때는 우리의 감정을 말로써 나타내는 대신에 믿음으로 감사의 노래를 하나님께 드리자.

찬미 찬미 복 주신 구세주 예수 산과 들아 사랑을 전하라
경배 경배 정성을 다하여 경배 천군 천사 주 이름 높이세
목자같이 우리를 지키시고 종일 품에 안아 주시리니


후렴:
찬미 찬미 높으신 예수를 찬미
찬미 찬미 영원히 부르세


찬미 찬미 복 주신 구세주 예수 우리 대신 죽음당하셨네
구주 예수 우리게 영생 주시니 경배 경배 겸손히 절하세
사랑 사랑 우리의 죄지시고 한량없는 깊으신 참 사랑


찬미 찬미 복 주신 구세주 예수 노래 소리 하늘을 울리네
예수 구주 영원히 다스리시니 면류관을 받들어 드리세
우리 구주 세상을 이기시고 영광 중에 다시 오시리니

노래는 우리가 실망을 물리치기 위하여 언제나 사용할 수 있는 무기이다. 우리가 그와 같이 구주의 임재의 햇빛을 받고자 마음을 열 때, 우리는 건강과 그분의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여호와께 구속함을 받을 자는 이같이 말할지어다.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저희를 구속하사 동서남북 각 지방에서 모으셨도다.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며
그의 모든 기사를 말할지어다.
그 성호를 자랑하라
무릇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심이로다.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 얽은 줄을 끊으셨도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시 107:1, 2, 105:2, 3, 107:9-15, 42:11)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이 명령은 우리에게 반대되는 것처럼 보이는 일까지도 우리에게 유익이 될 것이라는 보증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손해가 될 수 있는 일에 대하여 감사하라고 명령하지 않으실 것이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께서 환란 날에 나를 그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바위 위에 높이 두시리로다.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두른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귀가 막힌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
새 노래 곧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시니
내 마음이 저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저를 찬송하리로다.”
(시 27:1, 5, 6, 40:1-3, 28:7)

환자들의 회복에 가장 뚜렷하게 방해가 되는 한 가지 것은 자기 자신들에게 주의를 집중시키는 일이다. 많은 환자들은 그들이 자기 자신들로부터 주의를 돌려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고 돌봐 주어야 할 필요가 있는 그 때에 모든 사람이 자기들에게 동정을 기울이고 자기들을 도와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때때로 고통당하고, 슬퍼하고, 낙심 중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를 드린다. 그렇게 하는 것은 참으로 올바른 일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흑암에 싸여 있는 마음에 빛을 비추어 주고 슬픔에 잠겨 있는 마음을 위로해 주시도록 기도 드려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들을 당신의 축복의 통로로 내어 주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를 응답해 주신다. 우리는 슬픔 중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드리는 한편, 그들에게 자기들보다 큰 어려움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도와 주기 위하여 노력하도록 권장해야 한다.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도와 주기 위하여 노력할 때 그들의 마음에서 어두움이 사라질 것이다. 우리가 위로를 받은 그 위로로써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고자 할 때 축복이 우리에게 돌아온다.
이사야 58장은 육체와 심령의 질병을 고쳐 주는 처방이다. 만일 우리가 건강과 생애의 진정한 기쁨을 원하면 우리는 이 성경 말씀에 기록된 법칙을 실천해야 한다. 주님께 가납될 봉사와 그 축복에 대하여 그분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버리고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와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같을 것이라.”
(사 58:7-11)
선행(善行)은 친절을 베푸는 사람과 받는 사람에게 다 같이 유익을 줌으로 이중(二重)의 축복이 된다.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병든 몸과 마음을 치료해 주는 가장 좋은 약 중 하나이다. 의무를 잘 감당했다는 생각과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을 제공해 준데 대한 만족감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가볍고 기뻐질 때, 즐겁고 고무적인 힘이 온 몸에 새 생명을 가져다 준다.환자들은 끊임없이 동정을 요구하는 대신에 동정을 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그대 자신의 연약함과 슬픔과 고통의 짐을 자비로운 구주께 갖다 맡겨라. 구주의 사랑을 향하여 그대의 마음을 열고,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로 흘러가게 하라. 모든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과 저항하기 힘든 시험을 당하고 있다는 것과, 그대가 그 짐들을 덜어 주기 위하여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대가 누리고 있는 축복을 감사하고, 그대가 받고 있는 보호에 대하여 감사의 마음을 귀중한 하나님의 약속으로 가득히 채우고, 그 보고(寶庫)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와 힘이 될 말들을 꺼낼 수 있게 하라. 그렇게 되면 그대의 주위에서는 유익하고 고무적인 분위기가 감돌 것이다. 그대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축복이 되는 것을 그대의 목표로 삼으라.
그리하면 그대는 그대의 가정에 속한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똑 같이 도움이 될 길을 발견할 것이다.
건강이 좋지 못하기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관심을 쏟은 나머지 자아(自我)를 잊어버릴 것같으면, 그리고 그들이 자신들보다 더 큰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봉사함으로 주님의 명령을 따를 것같으면, 그들은 “네 빛이 아침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라는 선지자의 약속이 옳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마라와 엘림
오늘은 엘림, 종려수(棕櫚樹)와 우물이 있는 곳,
사막 길에 지친 몸에 휴식을 주는 서늘한 그늘이 깔려 있다.
어제는 마라, 바위와 모래만으로 이루어진 곳,
그늘 한 점없이 메마르고 황량(荒凉)한 골짜기
그러나 그 둘은 같은 사막 안에 있으며,
열풍(熱風)은 쓸쓸한 이곳으로 불어닥치며,
골짜기의 얕은 언덕들은 그것들을 똑 같이 안고 있다.
변함없는 산들은 그것들을 똑 같이 둘러싸고 있다.

이 세상도 그와 같은 곳.
지나간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그와 같은 과정을 거쳐온 것을 나는 기억한다.
쓴 것과 단 것, 슬픔과 기쁨, 그것들은 서로 이웃해 있을 뿐,
그나마도 그것들은 다만 하룻 길을 사이에 두고 있을 뿐이다.

때때로 하나님은 쓴 맛을 단 맛으로 바꾸어 주시고,
때때로 그분은 서늘한 샘물이 솟아나게 하신다.
때때로 주님은 구름기둥으로 가리워 주시고,
때때로 축복의 종려나무 아래로 이끌어 주신다.
그러나 그것이 다 무슨 상관이 있으랴? 오래지 않아
마라도 엘림도 다 지나가고,
이곳 사막의 샘물과 종려수도 없어지고,
우리는 마침내 하나님의 도성에 안착할 것이다.
아, 행복의 땅, 쓸쓸한 언덕 저편,
그곳에는 영원토록 솟아나는 샘물이 있다.
오, 거룩한 낙원, 하늘 저편.
그곳에서 우리는 방황하는 사막의 여행을 끝낼 것이다.
― 호라티어스 보나 ―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뜬 세상에서 내 영혼이
하늘의 영광 누리도다.

후렴:
이것은 나의 간증이요
이것은 나의 찬송일세
나 사는 동안 거침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온전히 주께 몸바치니
기쁨과 즐거움 한량없네
하늘의 천사 내려와서
인애의 말씀 전하도다.

온전히 주께 몸바치니
행복과 평화가 넘치도다.
깨어서 주를 고대하며
그 사랑 속에 잠기도다.
― 패니 제이. 크로스비 ―
천연계와의 교제

창조주께서는 우리의 첫 조상들을 위하여 그들의 건강과 행복에 가장 적합한 환경을 택해 주셨다. 그분께서는 그들을 왕궁에 두거나 오늘날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얻고자 투쟁하고 있는 인공적 장식과 사치품으로 그들을 둘러 주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그들을 천연계와 밀접하게 하시고 하늘의 거룩한 천사들과 가까이 교제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을 위하여 마련해 주신 동산에는 품위 있는 관목들과 고운 꽃들이 어디에나 눈에 띄었다. 거기에는 온갖 종류의 나무들이 있었으며, 그 중 많은 나무들은 향긋하고 맛좋은 과일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다. 그 나뭇가지들에서는 새들이 즐거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나무 그늘 아래에는 땅의 생물들이 아무런 두려움없이 함께 모여서 놀고 있었다.
아담과 하와는 흠없는 순결을 간직한 채 에덴동산에서 보고 듣는 것을 즐겼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에덴동산을 “다스리며 지키게”(창 2:15) 하는 일을 하도록 지정해 주셨다. 매일의 일은 그들에게 건강과 기쁨을 주었다. 그리고 그 행복한 부부는 그들의 창조주의 방문을 기쁨으로 환영하였으며, 날이 서늘할 때 그분께서는 그들과 함께 거니시며 이야기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매일 그들에게 당신의 교훈을 가르치셨다.하나님께서 우리의 첫조상에게 정해 주신 생활계획에는 우리를 위한 교훈이 있다. 비록 죄가 세상에 그 그늘을 던지고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손으로 만드신 업적 가운데서 당신의 자녀들이 기쁨을 찾기를 바라신다. 그분의 생활계획을 더욱 가까이 따르면 따를수록 그분께서는 고통하는 사람들을 회복하기 위하여 더 한층 놀랍게 역사하실 것이다. 병자들은 천연계와 밀접히 접촉하게 해 줄 필요가 있다. 천연계 속에서 전개하는 옥외활동은 무기력하고 거의 소망이 없는 많은 환자들에게 놀라운 일을 해 줄 것이다.도시의 소음과 흥분과 혼란, 곧 도시의 긴장되고 인공적인 생활은 병자들을 가장 고달프고 지치게 해 준다. 연기와 먼지, 유독한 가스, 병균 등으로 더러워진 공기는 생명을 위협한다. 거의 사면이 벽으로 된 곳에 들어있는 병자들은 대부분 그들의 방에서 마치 감옥에 갇혀있는 것처럼 느낀다. 그들은 집들과 포장된 길과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볼 뿐 아마도 푸른 하늘과 햇빛, 풀과 나무와 꽃들을 조금이라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갇혀 있으므로 그들은 고통과 슬픔에 잠겨 자기 자신의 슬픈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도덕적 능력이 약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도시들은 위험이 많다. 그들 중에서, 극복해야 할 비정상적 식욕을 가진 환자들은 끊임없이 유혹을 받는다. 그들은 생각의 경향이 바뀌어질 수 있는 새로운 환경에 처할 필요가 있다. 그들의 생애를 비참하게 만든 것들과는 전혀 다른 감화를 받을 환경에 놓여질 필요가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떠나가게 하는 영향에서 벗어나 얼마 동안 더욱 순결한 분위기로 옮겨가야 한다.환자를 돌보는 기관들이 도시에서 떨어져 세워지면 훨씬 더 성공적으로 될 것이다. 그리고 할 수 있는 대로, 건강을 회복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은 옥외 활동의 유익을 얻을 수 있는 시골 환경에 있어야 할 것이다. 천연계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의사이다.
깨끗한 공기, 산뜻한 햇빛, 꽃과 나무들, 과수원과 포도원, 그와 같은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옥외활동 등은 건강을 주고 생명을 준다.
의사와 간호원들은 그들의 환자들에게 옥외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도록 권유해야 한다. 옥외 생활은 많은 환자들에게 필요한 유일의 치료법이다. 그것은 흥분과 과도하게 유행을 따르는 생활, 곧 육체와 정신과 심령을 약화시키고 파멸시키는 생활에서 생긴 질병을 치료해주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다.
도시생활, 눈부신 많은 불빛, 거리의 소음 등에 지친 환자들에게 있어서 조용하고 자유로운 시골은 얼마나 즐거운 곳이 되겠는가! 그들이 천연계의 경치를 찾아 가고자 얼마나 열망하겠는가! 그들이 옥외에 앉아 있기를 얼마나 좋아하며, 햇빛을 얼마나 즐기며, 나무와 꽃들의 향기를 맡아 보기를 얼마나 기뻐하겠는가! 소나무의 향기(香氣), 삼목(杉木)과 전나무의 향기에는 생명을 주는 요소가 있다. 그리고 그 밖의 나무들에도 건강을 회복시켜 주는 요소들이 있다.
만성병 환자들에게는 아름다운 시골 환경에서 사는 것보다 행복과 건강을 회복시켜 주는 더 좋은 길이 없다. 거기에서 대부분의 무기력한 사람은 햇빛 속이나 나무 그늘에 앉거나 누울 수 있다. 그들은 눈을 들기만 하면 그들 위에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나무 잎들을 쳐다보게 된다. 그들은 부드러운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를 들으면서 안정되고 상쾌한 기분이 밀려오는 것을 느낀다. 의기소침하였던 정신이 생기를 얻는다. 약해지던 힘이 새로 솟아난다.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평화로와지고, 불규칙하던 맥박이 조용하고 규칙적으로 뛴다. 병자들은 건강이 차츰 회복됨에 따라, 몇 발걸음을 옮겨 아름다운 꽃 곧 지상에서 고통당하는 가족들에게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귀중한 사랑의 사자인 꽃 몇 송이를 꺾어 보고자 할 것이다.환자들이 옥외에서 내내 지낼 수 있도록 계획들을 세워야 한다.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유쾌하고 쉬운 몇 가지 일을 제공해 주라. 그들에게 이와 같은 옥외활동이 얼마나 바람직하고 유익한지 보여 주라. 그들에게 신선한 공기를 호흡하도록 권유하라. 그들에게 심호흡(深呼吸)을 하도록 가르쳐 주고, 호흡하고 말할 때 복부의 근육을
사용하도록 알려 주라. 이것은 그들에게 매우 귀중한 교육이다.
옥외에서 하는 활동은 생명을 얻는데 필요한 것으로 권유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와 같은 활동으로서는 땅을 경작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환자들이 화단을 가꾸거나 과수원이나 채소밭에서 일하게 하라. 그들이 방에서 나와 옥외에서 시간을 보내도록 권유를 받고 꽃을 심거나 그 밖의 어떤 가볍고 즐거운 일을 하게 되면, 그들의 주위가 그들 자신과 자신들의 고통에서 떠나게 될 것이다.
환자가 옥외에서 지내면 지낼수록 간호하는 일이 더욱 필요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의 환경이 즐거우면 즐거울수록 그는 더욱 더 희망에 넘치게 될 것이다. 아무리 시설을 훌륭하게 마련해 놓았을지라도 집에 갇혀 있으면, 그는 짜증스럽고 우울해질 것이다. 그를 천연계의 아름다운 사물로 둘러싸 주라. 그 사람이 자라나는 꽃들을 볼 수 있고 새들이 노래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에 있게 하라. 그리하면 그는 새들의 노래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게 될 것이다. 동시에 몸과 마음에 해방감이 주어질 것이다. 지성은 일깨워지고, 상상력은 민감해지고,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의 아름다움을 식별하게 될 것이다.천연계 속에서 환자들은 그들의 주의를 자기 자신에게서 분리시켜 그들의 생각을 하나님께로 이끌어 주는 무엇인가를 언제나 발견할 수 있다. 그분의 놀라운 솜씨에 둘러싸여 그들의 마음은 보이는 사물에서 보이지 않는 사물로 이끌려가게 된다. 천연계의 미는 환자들에게
아름다움을 결코 훼손하는 일이 없고, 더럽히거나 파괴하는 것이 전혀 없고, 질병이나 죽음의 원인이 되는 것이 결코 없는 하늘 본향을 생각하게 해 준다.*
의사와 간호원들은 천연계의 사물에서 하나님을 알려 주는 교훈을 끌어내야 한다. 그들은 환자들에게 키가 큰 나무와 풀과 꽃들을 만드신 분을 가르쳐 주고, 모든 꽃봉오리와 꽃에서 당신의 자녀들에 대한 그분의 사랑의 표현을 보도록 격려해 주어야 한다. 새들과 꽃들을 돌봐 주시는 분께서는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들을 돌봐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물이 펼쳐져 있는 옥외에서 신선하고 건강에 좋은 공기를 호흡하면서 환자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생명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의의 빛이 죄로 어두워진 마음 속을 비추어 줄 것이다.
하나님의 눈 앞에는
숨길 수 없어요
아무리 작은 죄라도
숨길 수 없어요

하나님의 보좌 앞엔
큰 책이 있어요
우리의 지은 죄들이
다 적혀 있어요

우리 죄가 많고 커도
용서해 주셔요
예수님께 기도하면
용서해 주셔요.
― 벤자민 클리브랜드 ―
육체적 영적 치료가 필요한 남녀들은 말과 행동으로 그들을 그리스도께 이끌어 줄 사람들과 접촉해야 한다. 그들은 심령과 육체를 함께 치료해 줄 위대한 의료 선교사, 예수님의 영향 아래 있어야 한다. 그들은 구주의 사랑, 그분께 나아가 죄를 고백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값없이 주시는 용서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와 같은 영향을 받을 때, 고통 중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생명의 길로 인도될 것이다. 하늘의 천사들은 병들고 고난받는 사람들의 마음에 용기와 희망과 기쁨과 평안을 주는 일에 인간 기구들과 협력한다. 그런 상태에서 병자들은 이중으로 축복을 받고, 많은 사람들은 건강을 얻는다. 연약한 발걸음이 활력을 되찾는다. 눈은 다시금 빛나게 된다. 절망적인 사람들이 희망을 찾는다. 한 때 낙심상태였던 얼굴이 기쁨의 표정을 띤다. 불평어린 어조가 기쁨과 만족의 음성으로 바뀌어진다.육체적 건강을 다시 찾을 때, 남녀들은 심령의 건강을 얻게 하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더욱 잘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죄가 사해 졌다는 생각은 말할 수 없는 평안과 기쁨과 안식을 준다. 흐려졌던
그리스도인 소망은 밝아진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은 말로 믿음을 표현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란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시 46:1, 23:4, 사 40:29).

못박혀 죽으신
하나님 어린 양 믿사오니
내 죄를 속하고
이 몸과
맘 드려
간절히 비는 말
들으소서

풍성한 은혜로
약한 맘 도우사
열심 주고
날 대속했으니
주 사랑하는 맘
불같이
뜨겁게 하옵소서

이 세상 어두워
길찾기 곤하니
인도하사
그 밝은 빛으로
환하게 하시고
내 슬픈 눈물을
씻기소서
― 레이 파아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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