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복음교역자, 7

  • List
 
   

제 7 편
복음 사업에 도움을 주는 것들

“누구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호 14:9)

제 54 장
성경 연구

영혼 구원 사업을 효과 있게 하고자 하는 목사는 반드시 성경을 연구하는 자이며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자기는 성경 연구를 등한히 하면서 남에게 성경 말씀을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죄악이다. 그는 위대한 진리를 전하고 있지 않는가? 그렇다면, 그 위대한 진리를 서투르게 전해서는 안 된다. 자기의 사상을 명백하고 확실하게 제시하여야 한다. 지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특히 이 시대의 기별을 전하는 자들은 성경 말씀을 익히 알고 자기가 믿는 바 믿음의 여러 증거들을 명백히 깨달아야 한다. 생명의 말씀에 대한 지식이 없는 자는 하늘로 가는 길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칠 자격이 없다.
우리의 믿음과 교리의 표준은 성경이다. 지식과 지능을 더함에는 성경을 늘 공부하는 것만큼 유력한 것이 없다. 성경 이외에 그 어느 서적도 광대하고 고상한 성경의 진리 만큼 우리의 사상을 향상시키며 정신력에 힘을 주지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충분히 공부하면 사람의 도량은 그만큼 넓어지고 성품은 고결하여지며, 목적이 확고해져서 오늘날에는 찾아보기 어려운 미덕을 가지게 될 것이다.강단 위에서 진리를 전하는 자들 가운데 자기 집에서 성경 공부를 잘 하지 않음으로 그 생각과 품성에 필요한 요소가 부족한 자가 심히 많다.
이런 사람들은 성경 진리를 피상적인 지식에만 만족하여, 감추인 보화를 열심히 찾기는 고사하고 도리어 있는 것까지도 여러 면으로 계속 잃어버리고 있다.
시편 기자는 말하기를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 119:11) 하였고,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6, 17).
모든 생물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생명은 그분의 말씀 가운데 포함되어 있으며,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병자를 고치시고 사귀를 내어 쫓으셨다. 또, 그 말씀으로써 바다 물결을 잔잔케 하시고 죽은 자를 다시 살리셨으므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능력이 있음을 증거하였다. 구약의 모든 저자들에게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의 말씀을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성경 전체가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성경은 우리의 유일한 힘의 원천이다.
이 말씀은 결코 활동을 방해치 아니하고 도리어 참 마음으로 찾아 구하는 자들에게 활동의 길을 열어 준다. 이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확실한 목적이 없이 방황하게 버려 두지 아니하고 도리어 인류의 가장 높은 목적 곧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고상한 목적을 가지게 한다. 성경 말씀은 하늘 가는 길을 비추는 등불이 되며, 우리에게 측량할 수 없는 부와 보배를 말하여 준다.하나님의 말씀은 품성의 표준이 된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주실때에 구원을 얻는 데 필요한 모든 진리를 가지게 하셨다. 많은 사람들이 이 생명샘에서 물을 길어 갔으나, 그 공급은 끊이지 아니한다.
그리스도 앞에 나가서 주를 쳐다보고 그분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된 자가 많다. 이들이 비록 열심으로 성경을 연구하였으나 이 중대하고 거룩한 문제를 다 깨닫지는 못하였다. 그러므로, 아직도 구원의 오묘한 문제들을 연구하는 일에 무수한 사람들이 참가할 수 있다.
교역자가 그리스도의 생애를 연구하며 또 그 사업의 성격을 깊이 생각할 때마다 전에 찾지 못한 새것을 발견하여 더욱 깊은 흥미를 얻게 될 것이다. 그 문제는 다함이 없다. 그리스도께서 인성을 쓰신 사실과 그분의 속죄의 희생 및 그분의 중보 사업은 일생 동안 부지런히 연구하여도 못 다할 것이며, 결국 오랜 세월을 보낸 것을 생각하고 하늘을 향하여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딤전 3:16)하고 외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첫째 천사의 기별과 둘째 천사의 기별에 대하여 설명하고 또 세째 천사의 기별에 대하여도 상당히 아는 줄로 생각한다. 그러나, 적은 지식에 만족하여서는 결코 진리를 분명히 깨닫지 못한다. 생명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자는 성경을 연구하며 자기의 마음을 살필 충분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를 게을리하면, 불쌍한 영혼들에게 전도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열심 있는 기도와 연구로써 예수님 안에 있는 진리를 찾는 겸손하고 부지런한 연구자는 이에 대한 보상을 받을 것이 확실하다. 그는 인간이 저술한 저서의 사상에서 도움을 얻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지성들의 인도함을 받아 진리를 분명히 깨닫게 된다.진리가 사람의 마음 가운데 들어가게 되는 것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 4:6) 하였다. 말씀을 전하는 자가 그 사업에 성공하는 것은 그 기질이나 웅변에 있지 아니하다. 바울은 심고 아볼로는 물을 줄 수 있으되 자라나게 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목사가 성경 말씀을 익히 알고 또 하나님의 뜻에 복종함으로써 그의 노력에 대한 성공을 볼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마음은 증발하여 물이 줄어드는 연못이나 깨어져 물이 새는 독과 같지 않고, 마치 곤하고 목마른 자와 무거운 짐 진 행인들을 시원케 해주며 바위 틈 사이로 맑고 차가운 샘물이 끊임없이 졸졸 흐르는 산골의 시냇물과도 같다.
성경의 진리를 잘 알면, 이로 인하여 진리를 가르치는 교사는 그리스도의 대표자가 될 자격을 얻게 될 것이다. 구주께서 가르치신 그 정신은 그로 하여금 솔직하고 능력 있게 가르치며 또 기도하는 사람이 되게 할 것이다. 그의 증거는 생기가 없는 협착한 증거가 되지 않을 것이며, 그의 마음 가운데는 항상 성령의 빛이 비추고 있으므로 같은 문제만 늘 반복하여 이야기하는 일이 없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래와 같이 말씀하셨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 6:54, 57, 63).하나님의 종이 이런 말씀의 뜻을 깨닫는 때에는 그의 봉사 중에서 영생의 요소를 찾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지루하고 단조로운 설교는 다시 하지 않게 되고, 대신 복음의 근본 진리가 새 빛으로써 소개될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가 새로이 이해되고 진리의 분명함과 능력을 누구든지 능히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기별을 전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자는 성령의 지도하심을 순종하기만 하면 반드시 새 생명의 활력을 깨달을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의 불이 그의 마음에서 타고, 그의 모든 기능은 민활하여져서 진리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벗으로 삼는 목사는 언제나 새로운 진리의 아름다움을 전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성령은 그 위에 강림하시고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하여 그를 통해 일하실 것이다. 성령께서는 희망과 용기, 그리고 성경에 대한 생각으로 그 마음을 채워 주실 것이며, 이 모든 것은 다시 그의 가르침을 받는 자에게 전달 될 것이다.
* *
우리는 성경 중에서 하나님의 그릇됨이 없는 권면의 말씀을 찾아 볼 수 있다. 그 가르침을 실행하기만 하면 어떤 직무를 맡은 사람이든지 그 일을 능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날마다 마음 가운데 들리는 음성은 하나님의 음성이다. 성령께서 하시는 사업은 무지를 깨우치며, 무정한 돌 같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며, 거역하는 죄인을 복종시키며, 세상의 부패한 감화로부터 사람을 구원하여 주시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을 위하여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라고 기도하셨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은 죄인의 마음을 찔러 쪼개기까지 한다. 그러나, 진리를 말하는 자로서 성령의 거룩한 감화가 없이 다만 그 이론만 전하면 청중을 감동시키지 못하고 도리어 거짓이라고 배척을 당하게 되며, 따라서 진리를 전하는 자는 그 영혼들을 잃어버린 데 대한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 4T, 441.
제 55 장
은밀한 기도

가정에서 하는 기도나 공중 기도가 다 그 경우를 따라 필요하나, 개인의 영적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것은 은밀히 하나님과 친히 교제함에 있다.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이 거하실 하나님의 성막의 모형을 본 것은 산중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하고 있을 때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놀라운 이상을 명상할 수 있는 은밀한 기도의 장소는 산이다. 그리하여,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고후 6:16) 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수 있도록 우리의 품성을 꼴 짓게 될 것이다.
우리가 날마다 하는 일상의 일에 종사할 때에도 마음을 하늘로 향하고 기도하여야 한다. 이처럼 묵묵히 기도드리는 이러한 기도는 향내와 같이 은혜의 보좌 앞에 상달하며, 이로 인해 원수의 계획은 좌절된다. 이와 같이, 마음에 항상 하나님을 묵상하는 그리스도인은 결코 패배 당하지 않으며, 어떤 악한 계교도 그의 평화를 파괴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의 모든 약속과, 하나님의 은혜의 모든 능력과, 또 여호와의 모든 부요함은 그런 사람의 구원을 보증한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함도 바로 이와 같은 것이었다. 즉, 하나님께서는 그와 함께 계셔서 위급한 때를 당할 때마다 즉시 그를 도우셨다.
그리스도의 종들은 항상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은 노하거나 의심함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고 담대히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갈 수 있으며, 또 어떻게 일하며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이끌 수있는지 그 방법을 알기 위하여 믿음으로 하늘 아버지께 지혜와 은혜를 구할 수 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며 영적 힘을 얻는 비결이다. 이 외에 어떠한 은사라도 기도를 대신하지 못하며 영혼의 건강을 유지하게 하지 못한다. 기도는 사람의 마음을 생명의 샘이신 그리스도와 접촉하게 하며 영적 경험을 더욱 튼튼하게 한다. 기도를 게을리하거나 또 형편을 따라 기도를 가끔 중단하였다 계속하였다 하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잃게 한다. 그리고, 영적 기능이 마비되며, 영적 경험은 원기를 잃고 허약해진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제단에서만 우리의 작은 등불에 성화(聖火)를 붙일 수가 있다. 우리는 다만 이 거룩한 빛을 통해서 인간의 능력이 얼마나 빈약하고 무능력한지를 알 수 있으며, 이에 반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얼마나 완전 무결한 분이신가를 분명히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를 쳐다볼 때에만 그분과 같이 되기를 희망하게 되고, 예수님의 의를 바라볼 때에만 그것을 갈망하게 되고, 또 우리가 열심으로 기도할 때에 비로소 하나님께서 우리가 마음에 희망하는 바를 이루어 주신다.
하나님의 기별을 전하는 자들이 그 일에 성공하고자 하면 반드시 하나님과 함께 오래 머물러 있어야 한다. 한번은 어떤 곳에서 이웃에 사는 신자들이 저희 목사의 성공하는 이유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이야기하는 것을 한 늙은 부인이 듣고 있었다. 저들은 그 목사가 재능이 많은 까닭이라고도 하고, 설교를 잘하기 때문이라고도 하고,또는 그의 행실이 좋기 때문이라고도 하며 여러 가지로 이야기하였다. 그 때에, 그 늙은 부인이 나서서 말하기를,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제가 그 이유를 말씀 드리지요. 그분은 전능하신 하나님과 매우 친한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
누구든지 엘리야와 같이 하나님을 신실히 섬기고 그와 같은 믿음을 가지면 하나님께서는 그 때처럼 친히 자신을 나타내실 것이며,누구든지 야곱과 같이 하나님께 매달려 구하면 또한 그 때와 같은 결과를 보게 될 것이다. 믿음으로 구할 때에, 하나님께로 부터 능력이 이르게 된다.예수님의 생애는 끓임없이 하나님과 교통하며 항상 신뢰하는 생애였으므로,
하늘 나라에 대한 그분의 봉사에는 실패와 주저함이 없었다. 날마다 시험을 당하고 유대 관원들에게 반대를 받으신 그분은 기도로써 그 인성을 강하게 해야 할 것을 아셨다. 인류에게 유익을 끼치기 위해서 하나님과 교제하여, 능력과 인내와 굳은 신념을 얻지 않으시면 안되었다.
구주께서는 하늘 아버지와 조용히 교통하실 수 있는 고요한 산을 좋아하였다. 종일토록 사람들을 멸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열심히 일하셨다. 병자들을 고치시고 슬퍼하는 자를 위로하시며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고 실망하고 낙담한 자들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셨다. 이렇게 분주한 일과를 마치신 후에는 밤마다 복잡한 도시를 떠나 산으로 나가 하나님께 기도하셨다. 그분은 종종 밤새도록 기도하셨다. 그러나, 이렇게 하늘 아버지와 친히 교제하신 후에는 원기가 있고 활기가 있었으며, 앞으로 행하실 일과 당하실 시험에 대해서 더욱 마음을 굳게 가지셨다.
그리스도의 종들은 누구나 사단의 시험과 심한 공격을 받지 않는가? 죄가 없으신 그리스도께서도 이러한 어려움을 당하셨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고난을 당하실 때마다 하늘 아버지를 향하여 도움을 구하셨다. 친히 축복과 힘의 근원이 되시는 그리스도께서는 병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며 바람을 명하여 잔잔케 하셨지만, 그러나 자주 눈물을 흘리시고 울며 기도하셨다. 그분은 제자들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하심으로 자신이 인류와 동일함을 나타내셨다. 그분은 기도를 많이 하시는 분이셨다. 생명의 왕으로서, 그분은 하나님께 능력을 받아 승리를 얻으셨다.진정으로 그리스도를 대표하는 목자라면 기도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는 억제할 수 없는 열렬한 믿음을 가지고, 봉사에 필요한 능력과 의지력을 주시며
불타는 숯불을 대어 입술을 정결케 함으로써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올바른 방법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하나님께 간구할 것이다.
기도는 친구들에게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 마음을 터놓는 것이다. 믿음의 눈은 하나님께서 매우 가까이 계심을 깨달으며, 기도하는 자는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돌보심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얻게 된다. 나다나엘이 드린 기도는 그의 충심에서 나온 것이었으므로 주께서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다. 주께서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시며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잠 15:8)하신다.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어 자기가 연약하고 무가치한 것을 진심으로 깨닫고 자기의 마음을 터놓고 드리는 기도를 하나님께서 더디 듣지 않으신다.
다윗이 일찍이 기도한 것과 같은 열심 있고 간절한 통회하는 기도가 필요하다. 다윗은 다음과 같은 부르짖음으로 기도하였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시 42:1). “내가 주의 법도를 사모하였사오니 … “, “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사모하였사오며 …” (시 119:40, 174).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시 84:2) .가장 유력하게 가르치며 설교하는 자는 겸손히 하나님을 섬기며 그분의 지도하심과 은혜를 갈망하는 자이다. “경성”, “기도”, “활동”-이 세 마디 말은 그리스도인의 표어이다. 그러므로, 참 그리스도인의 생애는 항상 끊임없는 기도의 생애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날 하루에 받은 빛과 능력은 그 다음날에 받을 시험과 고난을 이기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을 아신다. 사단은 항상 그의 수단과 방법을 변하여 우리를 미혹하기 때문에 우리는 날마다 같지 아니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우리 앞에 있는 전에 보지 못한 장면들은 우리로 새로운 위험 중에 빠지게 할 것이며, 또 우리는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미혹을 항상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늘로부터 받은 능력과 은혜로써 모든 유혹을 막아 내며 행할 바 모든 의무를 다 실행할 수 있다.
우리가 힘있게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것 즉 아무 가치 없는 흠 많은 죽을 인생이 하나님께 구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게 된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사람이 무한하신 하나님과 연합하는 일보다 무슨 더 큰 능력을 바랄 수 있겠는가? 약하고 죄 많은 인간이 자기의 창조주 하나님께 말할 수 있는 특권을 가졌다. 우리는 우주를 통치하시는 왕의 보좌에 상달할 말을 할 수 있고, 길을 걸어갈 때에도 예수님과 이야기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네 우편에 있노라”(시 16:8 참고)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마음 속으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으며, 그리스도를 벗 삼아 길을 걸을 수도 있다. 우리가 날마다 직무를 행할 때에도 마음 속의 소원을 조용히 기도드릴 수 있으며, 이 기도가 다른 사람의 귀에는 들리지 않으나 결코 소리 없이 사라지거나 듣지 못하게 되지 않는다. 아무것도 심령의 기도 소리를 막지 못한다. 그것은 번잡한 거리의 소음과 요란한 기계 소리를 초월하여 위로 올라간다. 하나님께 향하여 우리가 기도하는 것이므로, 우리의 기도는 들으시는 바 된다.
구하라. 그리고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라. 겸손과 지혜와 용기와 믿음이 더하기를 구하라. 신실한 모든 기도에는 응답이 있다. 응답이 비록 바라는 때에 꼭 바라는 바대로 오지는 않을지라도, 그 필요는 경우를 따라 가장 좋은 방법으로 가장 적당한 시간에 이르게 될 것이다. 고독한 때와 피로한 때에, 또는 시험당하는 때에 드리는 기도가 항상 그대의 기대하는 바대로 응답되지는 않을지라도 항상 그대의 유익을 위해 응답된다.
제 56 장
믿 음

하나님의 사업을 위한 가장 큰 승리는 유력한 토론이나 방대한 시설이나 큰 세력이나 또는 풍부한 자금으로 인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요 골방에서 친히 하나님께 나아가 열성과 간절한 믿음으로 그 전능하신 팔을 의지함으로 얻어진다.
참 믿음과 참 기도는 그 힘이 얼마나 큰가! 이것은 인간 탄원자가 무한하신 사랑의 능력을 붙드는 두 팔과 같다. 믿음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하는 것 곧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에게 가장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심을 믿는 것이다. 그리하여,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자기 마음대로 하는 대신에 하나님의 방법을 택하게 된다. 곧, 우리의 부족한 지혜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온전한 지혜를 받아들이게 하며, 우리의 연약한 것 대신에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의 죄 대신에 하나님의 의를 받아들이게 한다. 우리의 생애와 우리 자신은 이미 하나님의 소유이다. 믿음은 우리가 주의 소유임을 시인하며 그분의 소유된 축복을 인정한다. 진리, 의, 순결은 인생의 성공의 비결이다.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이 세 가지를 소유하게 한다. 선한 생각과 선한 포부는 모두 하나님의 선물이다.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발달과 능률을 내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생명을 하나님께로부터 받게 한다.“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4).여러 가지 근심 걱정에 둘러싸여 있는 현재를 넘어서 복잡한 어려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장래를 내다보게 하는 것은 곧 믿음이다. 믿음은 하나님 우편에 우리의 중보자로 서 계신 예수님을 보게 하며, 또한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러 가신 집을 보게 한다.
믿음은 이기는 자를 위하여 예비하여 놓으신 예복과 면류관을 보게 하며, 구속함을 받은 자들의 노랫소리를 듣게 한다.
목사마다 완전한 믿음을 가지며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복종시키며 주의 허락의 말씀을 단순히 의지하는 경험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경험이 있은 후에야 비로소, 의심하고 믿지 않는 자들에 대한 문제를 명백히 설명할 수 있다.
믿음은 감정이 아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 11:1)다. 참 믿음과 추측은 결코 함께 연합하지 못한다. 추측은 사단이 지어낸 믿음에 대한 위조물이다. 참 믿음을 가진 자는 이 위조물을 취할 염려가 없다.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하며 순종의 열매를 맺는다. 추측도 역시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하나 사단이 행한 바와 같이 이것을 죄에 대한 핑계 거리로 삼는다. 믿음이 있었다면, 우리의 시조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그분의 계명을 순종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죄를 범할지라도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그 중에서 건져 주시리라고 추측함으로써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진정한 믿음은 성경의 허락과 대책에 기초한다.
신앙을 신중히 생각지 않고 산 믿음과 주린 심령으로 기도하지 않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그리스도를 다만 세상의 구주로 알기만 하는 명목상의 믿음은 결코 그 영혼을 고칠 수 없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단순히 진리를 두뇌로 인정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을 다 깨달은 후에야 믿음을 행하려고 하는 자는 결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가 없다.
그리스도에 대하여는 아는 것만으로는 넉넉지 않고, 반드시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삼고 주의 공로를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믿음만이 우리에게 유익을 준다. 믿음을 하나의 견해로 생각하는 자들이 많다. 그러나, 구원하는 믿음은 계약이며, 이 계약으로 인해 우리가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때에 언약으로써 하나님과 연합하게 되는 것이다. 순전한 믿음은 곧 생명이며, 산 믿음은 힘과 신뢰를 더욱 증가시키고, 이러한 산 믿음을 가진 영혼은 승리자가 된다.
불신과 회의
믿음은 자기에게 닥치는 어려운 시험의 이유를 묻지 않고 성경 말씀 그대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믿음이 적은 자가 많다. 그들은 항상 두려워하며 염려를 사서 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매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실지 증거를 보고 들으며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로써 목욕할지라도 이러한 축복들을 보지 못하고 넘겨 버린다. 그리고, 어떠한 때에 어려움을 당하게 되면 하나님께 나아가지 아니하고 도리어 불안과 원망 중에 하나님에게서 떠나간다.이와 같이 그들이 하나님을 불신하는 일은 옳은 일인가? 예수님은 그들의 친구이시다. 온 하늘은 그들의 행복을 바라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두려워하고 한탄하는 것은 성령을 슬프시게 하는 일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소원을 들으시는 것을 체험함으로 인해서 믿을 것이 아니요 오직 그분의 약속을 믿고 의지할 것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는 모든 소원이 그리스도의 마음 속에 이미 들으신 바 됨을 믿어야 한다. 우리가 주께 복을 구한 연후에는 받은 줄로 믿고 받은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한다. 그 후에 우리는 우리가 가장 필요할 때에 축복이 우리에게 임할 것을 확실히 믿고 나아가 직무를 수행할 것이다.
이렇게 하기를 배운 때에는 우리의 기도가 응답됨을 알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또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엡 3:20, 1:19)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생애는 때때로 위험을 만나 그 의무를 행하기가 심히 어려운 것같이 보이는 때가 있으며, 이러한 경우에는 앞에는 멸망이 박두해 있고 뒤에는 결박과 죽음이 뒤따르는 것같이 생각하기 쉬우나, 하나님께서는 분명한 목소리로 “앞으로 전진하라”고 명령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록 흑암 중에 싸여 도무지 앞길을 볼 수 없는 때에라도 하나님의 명령을 좇아 앞으로 전진하자. 주저하며 의심하는 자 앞에서는 앞길을 막는 장애물이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모든 불안과 실패나 패배의 위험이 다 없어지기까지 전진하기를 꺼려 하는 자는 결코 전진하지 못할 것이다. 믿음은 눈앞에 있는 어려움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그 앞을 넘어다 보는 것이며, 또 우리가 보이지 아니하는 전능하신 분을 의지할 때 결코 우리의 앞이 막히지 않을 것이다. 믿음은 모든 위급한 때에 그리스도의 손을 굳게 잡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업에 종사하는 자는 강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어떤 때에는 도무지 소망이 없는 듯한 경우를 당할 것이나, 가장 어두운 때에라도 그 너머에는 빛이 있다. 믿음으로써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섬기는 자는 날마다 능력이 새로와질 것이다. 그들은 자기의 봉사에서 무한하신 하나님을 이해함으로 하나님의 목적을 수행함에 잘못을 범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일꾼들은 처음의 신념을 끝까지 굳게 붙잡고 하나님의 진리의 빛을 온 세상을 에워싼 어둠속에 밝히 비추어야 할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하나님의 봉사 사업을 함에는 조금도 낙담함이 있어서는 안 된다. 헌신한 일꾼의 믿음은 이에 대한 모든 시험을 이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에게 필요한 모든 능력과 그 경우를 따라
필요한 모든 지혜를 주실 수 있는 분이시며 또 주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의지하는 자들이 최상으로 바라는 이상으로 이루어 주실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향하여 당신을 따르라고 하신 후에 우리를 내버리지 않으신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온 생애를 바쳐 주의 사업에 헌신하면, 하나님께서 대책을 마련해 놓지 않으신 어떤 경우에 처하게 되는 법은 결코 없다. 우리가 어떠한 경우를 당하든지 우리에게는 우리의 앞길을 인도해 주실 인도자가 계시며, 어떤 어려운 사정이 있을지라도 우리가 의지할 만한 조언자가 계시며, 또 우리가 어떠한 슬픔과 사별 혹은 고독한 지경에 처할지라도 우리에게는 동정이 많으신 친구 한 분이 계신다. 우리가 알지 못하고 과오를 범할 때에라도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저버리지 않으시고 맑고 분명한 음성으로 “내가 곧 길이요 생명이”(요 14:6)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궁핍한 자의 부르짖을 때에 건지며 도움이 없는 가난한 자도 건지”(시 72:12)신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사 26:3). 전능하신 자는 우리를 인도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하여 팔을 펴셨다. 주님께서는 아래와 같이 말씀하신다. 앞으로 전진하라, 내가 도움을 보내리라. 너의 구하는 것은 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기 위한 것이므로 응답을 받으리라. 너의 실패를 기다리고 주목하는 자는 오래지 아니하여 여호와의 말씀이 영광스러운 승리를 얻는 것을 볼 것이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마 21:22).
* *
하나님께서는 결코 선과 악 또는 의와 불의를 분별하는 자가 없도록 이 세상을 버려 두지 않으신다. 그분은 위급한 경우에 능히 일선에서 싸울 용사로 지정하신 사람들을 가지고 계신다.
제 57 장
용 기

하나님의 종은 어려움과 반대를 당할 때에 쉽게 낙담해서는 안 된다. 세 천사의 기별을 전하는 자는 비난과 거짓을 직면할 때 자기의 위치에 용감히 서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며 그리스도께서 사용하신 “기록하였으되”라는 성경 말씀을 무기로 삼아 적을 대적하여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종은 오래지 아니하여 매우 위태한 시기가 이르게 될 때에 일찍이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당한 바와 같은 완악함과 무정함과 증오를 당하게 될 것이다.
그 악한 날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께 충성하고자 하는 자는 용기와 확고한 마음과 하나님과 그 말씀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 신실한 자는 반드시 핍박을 당하고 그 동기는 배척을 당하며 또 그 선한 노력은 오해되고 매우 좋지 못한 평판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단은 기만으로써 사람의 마음을 미혹하여 악을 선으로 보게 하고 또 선을 악으로 보도록 이성을 어둡게 만든다. 하나님의 백성의 믿음이 굳세고 순결할수록, 또는 하나님께 복종하려는 결심이 굳으면 굳을수록 사단은 더욱 더 노력하여, 스스로 의롭다고 하면서 오히려 하나님의 율법을 더럽히는 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을 향하여 더욱 격노케 한다. 그러므로, 성도들에게 주신 그 진리를 굳게 붙잡기 위해서는 가장 굳센 믿음과 가장 용맹스러운 정신이 있어야 한다.십자가의 기별을 전하는 자는 항상 깨어 경성함과 기도로써 주장하고, 믿음과 용기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 항상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하여야 한다. 그리고 환난의 시대가 눈앞에 임박하였으므로 그들의 인도자이신 예수님을 굳게 신뢰하여야 한다. 이제 하나님의 심판이 각처에 퍼졌다. 여러 가지 재난이 연이어 일어난다. 오래지 아니하여 하나님께서 그 보좌에서 일어나시어 땅을 크게 진동시키시며 악인들의 죄악을 벌하실 것이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옹호하시며 안보하여 주실 것이요, 그들에게 해가 미치지 못하도록 영원한 팔로 그들을 감싸 주실 것이다.
“주 안에서 담대하라”
1844년의 큰 실망이 있은 후, 몇 형제 자매들이 한곳에 모였는데 그들이 당한 큰 실망으로 인하여 모두 낙심돼 있었다. 이 때에 한 남자가 “주 안에서 담대하라, 형제들이여, 주 안에서 담대하라”하고 외치며 그 회집에 들어와 그 같은 말을 반복하여 말하자, 마침내 그 모든 무리의 얼굴은 빛나기 시작하여 다 소리를 높여 하나님을 찬미하였다.
이제 나도 모든 주의 일꾼들에게 말하려는 것은 “주 안에서 담대하라” 하는 것이다. 1844년 이후 나는 현대 진리를 전하여 왔으나, 이제 이 진리는 나에게 전보다 더 귀중한 것이 되었다.어떤 사람들은 항상 불유쾌하고 실망적인 면만을 바라보고 낙심한다. 이들은 하늘이 그들로 하여금 세상에 복의 기관이 되게 하기 위하여 기다리고 있으며 또 주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무한한 창고이심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두려워하고 낙담할 필요가 없다. 우리의 진로를 방해하기 위해서 사단이 그의 어두운 그림자로 우리 앞을 가리지 않는 때는 없다.
이처럼 우리의 대적은 의의 태양 예수님에게서 오는 빛을 막으려 애쓰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은 그 그림자를 뚫고 나가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반대의 세력을 만날지라도 낙담하거나 낙심치 않고 기쁨으로 당신과 협력할 일꾼을 요구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므로, 우리는 과거에 미약한 중에라도 성령의 능력으로 일하던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 것과 같이 앞으로도 우리와 항상 같이 하실 것을 확신하고 담대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과거에 천사들이 그리스도께 순종하였다. 그러나, 천사들이 함께 있음으로 해서 그리스도의 생애가 안일하고 시험이 없지는 않았다. 그분은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히 4:15)셨다. 목사가 주께서 명하신 사업에 종사할 때에 시련과 고난 또는 시험을 받으면 실망하고 낙담할 것인가? 또, 자기의 사업이 그 바라는 대로 되지 않는다고 그의 신념을 버릴 것인가? 참된 일꾼은 자기의 할 바 일이 아무리 어려운 것같이 보일지라도 결코 낙심하지 않는다. 힘든 일을 하기 싫어하고 고난 당할 때에 원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종을 연약하고 무능력하게 만든다.
일선에 서서 싸우는 자들이, 사단이 그들을 향하여 특별한 전술로써 공격하고 있음을 보게 될 때에,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능력을 받아 그분의 능력을 가지고 일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깨닫게 된다. 그들은 승리는 얻을지라도 그 승리로 인하여 교만해 하지 않고 전능하신 분을 더욱 굳게 의지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가슴속에서는 하나님께 대한 깊고 뜨거운 감사하는 마음이 떠올라 비록 원수의 공격을 받을지라도 그 고난 중에서 즐거워할 것이다.
신임과 특권의 시기
현대는 엄숙한 특권과 거룩한 신임을 받은 시기이다. 만일, 하나님의 종이 그 받은 바 신임에 대하여 신실히 직무를 행하면, 주께서 “네 보던 일을 셈하라”(눅 16:2) 하실 때에 그 상은 실로 클 것이다. 열성으로 한 수고와, 이기심 없이 한 사업과, 인내하는 꾸준한 노력은 큰 상급을 받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고 친구라 하리라”(요 15:15 참조)고 말씀하실 것이다. 주님께서는 이룬 공적을 인하여 칭찬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행한 모든 일에 충실한 것으로 인하여 칭찬하신다. 하나님께서 중요시하시는 것은 우리가 행한 일의 결과가 아니요 그 행위의 동기이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는 선함과 신실함을 귀하게 여기신다.
나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진 사자들에게 권하노니, 결코 실망치 말며 아무리 완악한 죄인이라도 전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는 자로 간주하지 말라. 외모로 보기에는 아무 가망이 없이 보이는 자라도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믿는 자들이 있다. 하천의 방향이 변함과 같이 사람의 마음을 돌이킬 수 있는 하나님께서는 가장 이기적이요 마음이 죄로 굳어진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나아오게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하실 수 없는 어려운 일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사 55:11)고 하셨다.새 선교 지방에서 전도 사업을 위해 노력하는 자들은 때때로 시설난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시설의 결핍으로 인하여 사업에 많은 지장을 초래할 것으로 생각될 것이나, 결코 믿음과 용기를 잃지 말 것이다. 때로는 재력이 부족하여 도저히 더 전진할 수 없는 것같이 생각되는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믿음으로 구하고 힘쓰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원하는 바를 들으시고 재력을 보내어 그 사업을 전진케 하실 것이다. 그들은 곤란을 만나 어떻게 그 직무를 완수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때도 있을 것이며, 때로는 앞길이 아주 암담한 것같이 보이는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의 일꾼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허락을 굳게 잡고 나가 그분의 베푸신 은혜를 감사하여야 한다. 그리하면, 그 앞길이 열리고 목전에 놓인 의무를 성취할 능력을 받게 될 것이다.
* *
바울이 형제들을 만났을 때에 “하나님께 사례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행 28:15)고 기록한 누가의 말의 뜻을 이해하는 자가 많지 못하다. 바울이 결박됨을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형제들이 울며 슬퍼하는 가운데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크게 찬양하였다. 그 때에, 그의 마음 가운데 쌓였던 슬픔의 구름은 다 사라졌다. 그는 그리스도인의 생애에 있어서 연속적인 시련과 고난과 실망을 당하였으나, 이 때에 그것에 대한 보상을 풍성히 받았음을 느꼈다. 그는 보다 더 굳센 발걸음과 기쁜 마음으로 그의 갈 길을 계속하였다. 그는 지난 일을 불평하거나 앞일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그의 앞에 결박과 환난이 있을 것을 알았으나 사람들을 더 무서운 결박으로부터 구출하여야 할 의무가 있음을 알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오히려 고난받는 것을 기뻐하였다. ― AA, 449.
제 58 장
일꾼을 훈련하시는 방법

하나님께서는 주의 일꾼들이 자기들에게 맡겨진 직책을 감당할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훈련하신다. 주께서는 저들이 더욱 당신의 뜻에 합당한 봉사를 할 만한 자격을 얻기를 바라신다. 어떤 사람들은 남을 지배하고자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남에게 복종하도록 변화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생애에 변화가 있게 하신다. 혹 어떤 때에는 그들이 택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임무를 그들에게 맡기실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즐겨 하나님의 지도하심을 따르면, 복종과 남을 돕는 정신으로써 그 의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은혜와 힘을 주실 것이다. 이리하여, 그들은 의무를 감당할 자격을 구비하게 되며, 이렇게 훈련받은 재능을 가지고 큰 사업을 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자들에게는 실망과 또는 실패에 빠진 듯한 형편을 당하게 하심으로 훈련하신다. 그것은 그들이 어려움을 극복하는 법을 알게 하시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 속에 모든 실패하 듯한 경험을 성공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결심을 넣어 주신다. 사람들은 흔히 앞길에 놓인 고난과 장애물을 인하여 울며 기도한다. 그러나, 처음에 가졌던 확신을 끝까지 변치 않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그의 앞길의 방해물을 제하여 주실 것이다. 성공은 분명히 이겨내기 어려운 곤란과 싸움으로 얻어지는 것이며, 이러한 성공에는 말할 수 없는 큰 기쁨이 따르게 된다.변화없는 단조한 생애가 영적 성장에 가장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은 반드시 그 정상적인 일상 생애에 변화가 있음으로써 최고의 영적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섭리 가운데서 품성 건설의 성취를 위해 변화가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을 보실 때는 평탄한 생애를 방해하신다.
그리고, 또 하나님께서 어떤 교역자에게서 당신과 더욱 친밀히 교제하여야 할 필요가 있음을 보실 때에는 이것을 이루시기 위해서 그를 친구와 친지들과 헤어지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하늘로 데려가기 위하여 준비시키실 때에, 엘리야가 한 곳에 오래도록 편안하게 살게 함으로 인하여 그가 영적 능력을 얻지 못하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해서 그를 이곳 저곳으로 옮기시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감화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더욱 넓고 더욱 유익한 경험을 얻게 되도록 경영하셨다.
하나님께서 지정하여 주신 곳에서 즐겨 봉사하고 그분의 맡기신 일을 불평하지 않고 수행하는 것을 즐겨 하지 않는 자들이 많다. 우리가 의무를 수행하는 방법에 대하여 불만을 가지는 것은 가하나, 우리가 다른 일을 원하여 그 의무 자체에 불만을 가져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병든 마음에 양약처럼 치료제가 될 수 있는 일을 맡기신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자기의 뜻대로 하려는 이기적인 욕망을 없이 하도록 인도하시는데, 만일 이러한 욕망을 만족시키면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그 시키시는 직무를 받아 행하면, 그 병든 마음이 고쳐질 것이다. 그렇지 아니하고 이를 거절하면,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항상 분쟁하는 일이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잠시도 고요히 안정된 생활을 하지 못하고 오늘 저녁에는 이곳에, 내일 저녁은 또 다른 곳에 장막을 치며 항상 이동하여 다니지 않으면 안 되는 자들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시며 이런 방법으로 그들로 완전한 성품을 형성하도록 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당하여야 하는 모든 변화에 있어서, 하나님은 우리의 친구이시며 안내자이시며 의지할 분으로 인정해야 한다.
제 59 장
하나님과 이야기할 시간을 가지라

나는 우리 목사들에 관하여 아래와 같은 특별한 지시를 받았다. 목사가 돈을 모으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목사는 세상적인 사업을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그가 영적인 사물에 최대의 힘을 바쳐 일할 수 없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사는 자신과 자기 가족의 생계를 위해 부족하지 않는 급료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목사는 교회를 완전히 돌볼 수 없기까지 자기 가족 때문에 너무 많은 부담을 지지 않도록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위하여 자기의 자녀를 교육하는 것은 그가 행하여야 할 특별한 의무인 까닭이다.
목사로 하여금 항상 쉴 사이 없이 이곳저곳으로 왕래하여 밤늦게까지 무슨 직원회나 회의에 참석케 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이렇게 하면 목사는 피로하게 되며 또 용기를 잃게 된다. 목사에게는 쉬는 시간과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생명의 떡을 풍부히 먹을 시간이 있어야 하며, 또한 생명수 강에서 위로의 물을 시원하게 마실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목사와 교사들은 하나님 앞에 최대의 재능을 바쳐 자기의 직무를 완수하며 최대의 능력을 다 그 사업에 기울여 활동할 책임이 있음을 기억하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그 업무에 방해가 될만한 일에는 손을 대지 말 것이다.목사와 교사가 경제적 부담에 시달려 두뇌가 피곤해지고 신경이 과로한 상태로 강단이나 교단에 올라서면, 하나님께서 피우신 거룩한 불 대신에 거룩하지 못한 보통 불을 사용치 않으리라고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들이 억지로 노력한다 해도,
그것은 듣는 자로 실망케 하고 또 말하는 자신에게도 해가 된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찾을 시간도 없고 믿음으로 성령의 기름 부음 받기를 구할 시간도 없다. …
나는 나의 동역자들에게 아래와 같이 말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만일, 그대가 하늘의 풍성한 보배를 가지고자 하면 반드시 하나님과 은밀히 교제하여야 한다. 만일 이렇게 하지 않으면, 옛날에 길보아산에 우로가 내리지 않았던 것처럼 그대의 마음에 성령이 내리지 않을 것이다. 그대가 만일 이것저것으로 분주하고 너무 할 일이 많아 하나님과 이야기할 시간을 갖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 하는 일에 능력을 바랄 수 있겠는가?
우리 목사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박력이 없고 맥빠진 설교를 하는 원인은 그들이 여러 가지 세상 일에 마음을 쓰고 시간을 소비하는 까닭이다. 은혜 가운데 항상 자라가지 않으면 때에 따라 적합한 말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자기의 마음을 살피고, 그리고 하나님과 이야기하라. 이렇게 하지 않으면, 그대의 노력에 대한 결실이 없을 것이다. 그것은 합당치 않은 일에 분주하고 골몰함으로 이르는 결과이다.
목사와 교사들이여! 그대의 사업이 풍성한 영적 은혜로 향기 나게 하라. 그리고 거룩한 사업을 세상 사물과 혼동하여 예사로운 일로 여기지 말라. 항상 전진하며 향상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고후 7:1)라.
우리는 날마다 회개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더욱 열심히 기도하여야 한다. 그리하면, 기도에 능력이 더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셔서 우리로 거룩하고 순결하게 하시며 레바논의 백향목과 같이 곧고 향기롭게 하시리라는 우리의 확신을 좀더 굳게 하여야 한다. ― 7T, 250-252.
제 60 장
가장 필요한 것

“너희가 …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지금도 그 효력이 조금도 감소되지 않았다. 우리 구주께서는 오늘날 형식적인 신앙이 성행하는 이 세대에 신실한 증인을 요구하신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대사라 공언하는 자들 중에서도 주님을 위하여 진실한 개인적인 증언을 할 수 있는 자가 얼마나 적은가! 과거에 살았던 위인들이 행한 업적과 그들이 모험하고 고난과 기쁨을 당하였던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많다. 또, 그들은 복음의 능력을 설명하는 구사력이 있어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어려운 역경 가운데서도 기뻐하며 아무리 격렬한 시험을 당할지라도 요동하지 않고 능히 굳게 서게 한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신자들을 예수의 증인이 되게 하는 데는 매우 열심이나 그 자신은 남에게 들려줄 적절한 아무 새로운 경험이 없는 듯하다.
그리스도의 목사들이여! 그대는 자신에 관해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또, 자신과 다른 사람의 행복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어떠한 심적 투쟁을 경험하였는가? 세상에 마지막 엄숙한 은혜의 기별을 전한다고 공언하는 그대여! 그대는 진리를 얼마나 알고 있으며 또 진리가 그대의 마음 가운데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 그대의 품성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증거하는가? 그대는 예수님 안에 있는 순전하고 고상하고 성결케 하는 진리의 감화력에 대하여 이야기할 수 있는가? 그대는 그리스도의 능력에 대하여 무엇을 보고 무엇을 알고 있는가? 주께서 요구하시는 증거는 곧 이런 것들이며 오늘날 교회에게 요구되는 것도 이것이다.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산 믿음이 없이는 회의의 세상에서 우리의 믿음을 나타내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급히 흐르는 물결 가운데서 죄인을 건져 내려면 미끄러운 곳에 발을 딛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항상 그리스도의 새로운 계시 곧 그분의 교훈과 일치하는 매일의 경험이 필요하다. 우리는 능히 높고 거룩한 지식을 얻을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하여 목적하신 바도 역시 우리가 지식과 선행 가운데서 끊임없이 향상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은 모든 사람들을 향하여 “더 높이 오르라. 거룩하고 더욱 거룩하라”고 외치시는 하나님의 음성의 메아리다.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인의 품성을 완전히 형성하는 가운데 향상할 수 있다.
주의 사업에 종사하는 자들은 아직까지 다른 많은 사람들이 가졌다고 생각하는 경험보다도 더 높고 깊고 넓은 경험을 가져야 한다.그러나, 이미 하나님의 대가족 가운데 한 식구가 된 자라도 주의 영광을 보니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른다는 의미를 알지 못하는 자가 많다.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공로에 대하여 매우 미미하게나마 알고 마음 가운데 기뻐 뛰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더욱 충분히 더욱 깊이 알고자 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찾아 구하는 그의 마음의 모든 소원을 굳게 붙잡게 하라.
성령께서는 성령의 역사를 받아들여 그가 형태를 만들며 꼴 짓는대로 순종하는 자와 함께 역사하신다. 그대는 힘써 신령한 생각과 거룩한 교제를 갖도록 하라. 그대는 오직 주의 영광의 희미한 새벽 빛을 본 것이다. 그러므로, 그대가 주를 계속해서 더 알기 위해 노력하면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잠 4:18)름을 알게 될 것이다.
제 61 장
자성(自省)

목사들의 행동에는 그들이 개선할 수 있는 점들이 많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의 부족을 인식하고 있으나 그들이 어떠한 감화를 끼치고 있는지는 알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들은 자기가 행하는 행동을 알고 있으나 그것을 생각하려고 하지 않으며, 따라서 고치려고도 하지 않는다.
목사들은 매일매일 그날의 행동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곰곰이 반성하여 자기 자신의 생활 태도를 잘 알도록 하라. 일상 생활의 모든 사정을 엄밀히 살핌으로 자기가 어떠한 동기와 원칙의 지배를 받고 있는지 더욱 잘 알게 된다. 이와 같이, 자기의 매일의 행동이 양심이 허락하는 일인지 혹은 금하는 일인지 살펴보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완전한 품성에 도달하려는 자에게 필요한 일이다. 선한 사업으로 인정되는 일, 아니 비록 자선적인 일이라도 이를 엄밀히 살펴보면 좋지 못한 동기로 발달된 경우가 많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지도 않은 미덕으로 인해 사람들의 칭찬을 받는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 행위의 동기를 귀중히 보시므로, 때때로 사람들의 많은 칭찬을 받는 행위일지라도 이기심과 비열한 위선에서 나온 행동으로 간주하신다. 우리의 일상 생애의 모든 행위가 훌륭하고 칭찬 받을 만한 일이든지 혹은 책망 받을 만한 일이든지 간에,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이를 행하게 된 그 동기를 보아 판단하신다.많은 사람들은 품성의 결점을 밝히 드러내는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보는 일을 등한히 한다. 그러므로, 그 결함과 죄가 그대로 있어서 자기는 이를 깨닫지 못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눈에는 빤히 보인다.
하나님의 사업에 헌신하였다고 하는 자들 중에도 스스로 혐오할 만한 이기적인 죄악이 상당히 존재하고 있다. 만일, 그들이 자기의 성품을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에 비추어 본다면, 또 그들이 부지런하고 정직하게 자신을 살피는 자라면, 자신이 놀랄 만큼 부족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자기의 마음 속에 있는 죄악을 찾기 위하여 넓게 또는 깊이 살펴보기를 싫어한다. 그들은 여러 면으로 부족한 점이 많지마는 오히려 일부러 자기 죄를 모르는 체하고 있다.
* *
자신의 성격을 잘 알아 어떠한 죄를 제일 범하기 쉬운지 또는 어떠한 유혹에 가장 빠지기 쉬운지 잘 아는 자는 자신을 공연히 위태로운 일을 당하게 하며 또 일부러 적지에 들어가 시험을 자처할 것이 아니다. 그러나, 만일 환경이 좋지 못한 곳에 부득이 가서 일하여야 할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도와 주실 것이며, 이로 인하여 원수를 대적할 수 있는 것이다.
자기를 아는 것은 많은 사람을 두려운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며 또 많은 치욕적인 패배를 당치 않게 한다. 또, 자기를 알고자 하면 신실히 자기 행위의 동기와 원칙을 살펴보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 가운데 보이신 의무의 표준에 비추어 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제 62 장
자기 개선

경험과 나이가 많은 목사들은 하나님의 부림을 받는 종으로서, 날마다 발전하고 끊임없이 그 사업에 대한 재능을 더하며 항상 백성들에게 전할 새 자료를 모으기에 힘쓰는 것을 자기의 의무로 생각하여야 한다. 복음을 해석하려고 힘쓸 때마다 전보다 더욱 향상함이 있고, 해가 갈수록 경건한 생각은 더욱 깊어지고, 사랑의 정신은 더욱 많아지고, 영성은 더욱 커지며, 성경 진리에 대하여 더욱 철저한 지식을 가지도록 되어야 한다. 또, 나이가 많아지고 경험이 더할수록 사람들의 마음에 더욱 가까이 접근하여 그들에 대하여 더욱 완전히 알 수 있게 되어야 한다. ― 4T, 270.
* *
하나님께서는 게으른 사람을 당신의 사업에 사용하지 않으신다. 생각이 깊고 친절과 사랑이 많고 또 열심 있는 일꾼을 원하신다. 활동적으로 노력하면 우리 목사들은 곧 유익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게으름은 타락함을 말해 준다. 정신의 모든 기능과 신체의 모든 골격과 사지의 모든 근육은 하나님께서 우리 신체의 모든 기능을 쉬지 말고 사용하도록 계획하셨음을 보여 준다 … 쓸데없이 낮잠 자는 것으로 낮 시간을 보내는 자는 금같은 귀중한 시간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는 자이다. …면밀하게 일하며 시간을 절약하는 습관이 안 된 자는 신속하고 질서 있게 행동할 수 있는 규칙을 세워야 한다. 조지 워싱턴 대통령이 산더미같이 쌓인 사무를 능히 처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규율과 질서를 철저히 준수하였던 까닭이다.
각 서류마다 일자와 구분이 기록되어 있었으므로 잘못 놓인 서류를 찾는 데 시간이 낭비되는 일이 없었다.
하나님의 사람은 공부에 부지런하고 지식을 획득하는 일에 열심하여 한 시간이라도 헛되이 보내서는 안 된다. 참고 노력하기만 하면 그리스도인으로 또는 유력한 인물로 어떠한 중요한 위치에든지 능히 도달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확고한 목적이 없어 느릿느릿한 습관을 길러 왔으므로 강단에서나 혹은 실업계에서 높은 지위에 오르지 못한다. 저들은 어떠한 일에나 방심하고 소홀히 행한다.
안일하고 태만한 자를 고치기 위해서는 이따금씩 갑작스런 일시적 충격에 의하여 행동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일은 오래 참고 꾸준히 계속하여야 하는 것이다. 실업가들은 규칙적으로 제시간에 잠자고 일어나며 또 제시간에 식사하고 기도하는 때에 참으로 성공하게 된다. 이와 같이 세상 일에도 질서와 규칙이 필요한 것이라면, 주의 사업에는 얼마나 더 질서와 규칙이 필요하겠는가!
많은 사람들은 상쾌하고 명랑한 아침 시간을 자리에 누워서 허송한다. 이러한 귀중한 시간은 일단 놓쳐 버린 후에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이것은 일시적인 손실뿐만이 아니라 영원한 손실이다. 하루에 다만 한 시간씩만 잃어버린다면 일년이면 몇 시간이 낭비되겠는가! 그러므로,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은 이것을 마음 가운데 기억하고 장차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잃어버린 시간에 대하여 무엇이라 변명할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라.
적은 시간을 이용함목사들은 독서와 연구와 명상과 기도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바쳐야 한다. 그들은 필요한 지식을 마음에 간직하고 많은 성경절을 외우며, 예언의 성취를 연구하며,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교훈들을 배워야 한다.
자동차를 타고 갈 때든지 혹은 기차를 기다리는 시간에 읽을 수 있도록 항상 책을 가지고 다녀라. 무슨 일을 할 동안에라도 조그마한 여가의 시간을 활용하라. 이렇게 하면 많은 유혹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
많은 사람들은 능히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일에,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였다. 이와 같이 된 것은 그들이 그 사업의 중대함을 깨닫지 못하고 영혼을 구원함에 마치 현재 천년기를 당하기나 한 것처럼 모든 일을 쉽게 생각하고 유유히 행하였던 까닭이다. 하나님의 사업에는 평범한 설교가보다 주를 위하여 열심으로 분투 노력하는 일꾼들이 필요하다. 인간의 정신력은 오직 하나님께서만 평가하실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무식한 처지에서 만족해 하고 있음을 원치 않으시고, 이지를 발달시키고 계발시키기를 바라신다.
누구나 최고의 지적 수준에 도달하여야 할 의무가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또, 그 얻은 지식으로 인하여 위세를 부릴 것은 아니지만,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향상할 때마다 하나님께 더욱 존귀와 영광을 돌릴 수 있음을 생각하고 흐뭇한 마음을 가지는 것은 누구나가 가진 특권이다. 사람은 누구나 지혜와 지식의 근원이신 그리스도의 다함이 없는 샘에서 지혜와 지식을 얻을 수 있다.그리스도의 학교에 들어가 배우는 자는 그가 올라가려고 하는 높이에 대하여 아득하게 생각하지 않고 계속 더 깊은 지식을 추구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 그가 진리를 계속 탐구하고 과학과 자연의 놀라운 법칙을 더욱 명백히 깨닫게 될 때에 인간에게 보이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에 도취된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의 지식적 안목을 통하여 하나님의 완전하심과 그 지식과
지혜가 무한히 뻗어 있음을 본다. 그리고, 그의 마음이 커지고 넓어짐에 따라 맑은 빛의 흐름이 그의 마음 속에 흘러 들어간다. 그가 지식의 샘에서 물을 마실수록 하나님의 무한하심을 명상하는 마음은 더욱 순결하고 더욱 즐거워지며, 하나님의 오묘하심을 아는 지혜를 얻고자 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하여진다.
정신 수양의 필요
주의 백성인 우리에게는 정신 수양이 필요하며, 이것은 시대의 요구에 응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반드시 있어야 할 일이다. 가난하고 가문이 비천하고 환경이 불우하다고 해서 정신 수양의 장애를 받을 필요가 없다. …
무엇을 연구할 때에든지 곤란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곤란으로 인하여 낙담하거나 연구를 중단하지 말 것이다. 더욱 깊이 상고하고 연구하며 기도하고 어떤 어려움이든지 과감하게 대항하라.모든 의지력과 인내력을 동원하여, 명백하고 아름다운 진리의 보석이 그대 앞에 나타날 때까지 더욱 열심히 연구하라. 그것은 그것을 찾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는 까닭에 그만큼 더 귀중하다. 그리고 한 진리를 찾은 후에는 그 한 가지 문제에만 모든 정신을 다 쏟아 계속해서 그것만 생각하며 또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것에만 주의하도록 하지 말고, 또 다른 문제를 택하여 그것을 다시 주의 깊이 연구하도록 하라. 그리하면, 점점 더 많이 오묘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함으로써 두 가지 귀중한 이득을 얻게 된다. 즉, 유용한 지식을 얻게 되며, 또한 정신을 활용함으로 인하여 정신력이 계발된다. 한 가지 오묘한 문제를 푼 열쇠는 이제까지 발견하지 못한 또 다른 지식의 보화를 찾아내게 할 것이다.
대부분의 우리 목사들이 사람들에게 소개할 수 있는 것은 다만 몇 가지 교리 문제에 불과하다. 그들이 이러한 몇 가지 교리 문제를 알고자 했던 당시의 그러한 노력과 열성을 가지면, 다른 문제들도 능히 깨닫게 될 것이다. 예언과 그 밖의 교리 문제들은 모든 목사들이 철저히 깨달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오랜 세월 동안 전도 사업을 해 온 자들도 너무 게을러서, 기도와 열심으로써 성경을 깊이 연구하여 성경의 교리와 그리스도의 실제적 교리를 확실히 알고자 하지 않고 다만 몇 가지 문제만 아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모든 교역자들은 마음 속에 성경 진리에 대한 지식을 쌓아 언제든지 필요한 경우에는 그 마음의 창고에서 새것과 옛것을 자유로이 꺼낼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열심과 노력이 부족함으로 정신이 발달되지 못하고 불구가 되었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께서 너희는 앞으로 나아가 내가 너희에게 준 재능을 계발하라고 말씀하실 때가 이르렀다.
이 세상은 오류와 거짓 이야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새로운 선정적인 희곡들이 계속 나타나서 사람들의 마음을 점령하며, 도덕과 정신의 발달을 파괴시키는 허황한 학설들이 각처에 전파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업에는 이 반대의 물결이 흘러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이지와 사상이 풍부하고 성경을 잘 아는 인물이 요구된다. 우리는 겉만 경건함을 입을 것이 아니라 그 속마음에도 교만과 편협과 모순되는 생각이 없도록 하여야 한다. 마음 속에 깨끗게 하는 진리의 능력이 있는 자는 자연 그것이 겉에 나타나 저항할 수 없는 감화력을 나타내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그릇된 주장이 진리를 창조하거나 파괴할 수 없음을 알고 있으므로 태연하고 침착한 태도를 가질 수 있다. …
우리 교역자 사이에도 노력은 하지 않고 출세만 하기를 바라는 자들이 많다. 그들은 무슨 위대한 일을 하여 유용한 인물이 되려는 야심을 품고 있으면서 그리스도께서 명하신 바와 같은 교역자가 되는 데 유익한 매일의 작은 직무에는 등한히 한다. 또, 그들은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을 자기도 하고자 하면서도 그 일에 적당한 훈련을 받기는 좋아하지 않는다. 남자나 여자나 그들의 현재의 능력으로써 도저히 할 수 없는 어떤 일을 해보려는 욕심 때문에 그들은 당초에 실패를 맛보게 된다. 그들은 사다리를 한 계단 한 계단씩 차례로 올라가려 하지 않고 단번에 꼭대기까지 오르고자 하는 자들이다. ― 4T, 411-417.
* *
나는 사람들이 어떠한 사람이 될 수 있으며 또 어떠한 일을 능히 할 수 있는지 그 실례들을 보고서도 아직도 의의 선한 사업을 위해서 좀더 노력하고자 하는 생각을 갖지 않고 있음을 보고 놀랐다. 물론, 누구든지 다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수는 없어도 유용하고 신용 있는 자리는 차지할 수 있으며, 그가 꾸준히 성실하게 일함으로써 자기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선한 일을 하게 된다. ― 상동, 399.
* *
사람의 가치가 그의 하는 일의 등급에 의해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각 사람을 위하여 값을 치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정해져야 한다. 마음 속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영광의 소망을 가진 자들은 사랑과 단순함과 성실로써 일하는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어야 한다. 그들은 곧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전인 것이다.생명의 샘은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래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랑이 깃든 마음은 날로 더욱 우아해 질 것이다. 그리스도는 곧 그리스도교회이며,
이것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 중에 평화이며, 하나님의 경륜의 성취이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성장은 남녀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형상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 사상과 행위를 바르게 개선하는 참 수양은 마음이 하나님의 성령의 지도를 받지 않고 형식과 규칙을 지키려고 애써 노력함으로 얻는 결과보다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실제적 교훈을 배움으로 더 좋은 결과를 얻게 된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태도와 습관과 정신과 노력을 항상 개선해 나가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외부에 나타난 피상적인 업적을 주목함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예수님을 주목하여 바라봄으로 마음과 정신과 성품에서 변화가 이루어진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하여 온유와 겸손함으로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교육을 받아 하늘 천사들이 거하는 하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얻게 된다.
* *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우침을 받은 자는 이 세상 누구보다도 성경 통독을 더욱 많이 하고 다른 학문도 더 열심히 공부하여야 할 것을 깨달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다른 사람보다도 더 큰 소망과 사업을 가진 까닭이다. 모든 지식과 지혜의 근원이신 그리스도와 밀접히 연결할수록, 영적으로는 물론 지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받게 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배우지 않으면 안 될 가장 중요한 지식이다. 그러므로, 모든 참 교역자는 이 지식을 얻기 위하여 항상 공부하여야 할 것이다. ― CT, 510.
제 63 장
성 령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 16:13, 8).
성령은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치는 가장 유력한 교사이므로, 성령의 임하심과 그분의 도우심이 없이는 말씀으로 전할지라도 아무 효력이 없다. 진리가 성령과 함께 마음 가운데 들어올 때에 비로소 양심을 깨우치고 생애를 변화시킨다. 목사가 성경의 계명과 약속들을 익히 알고 하나님의 말씀의 편지를 전한다 할지라도 복음의 씨가 하늘의 이슬을 받아 싹이 트지 않는다면, 그의 씨 뿌린 수고는 헛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 일하시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교육을 받고 아무리 우세한 입장에 있고 아무리 위대하다고 할지라도 빛의 통로가 될 수 없다. 신약 성경 중에서 한 편이라도 기록되기 전에, 또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 아직 한 번이라도 복음의 설교를 하기 전에, 성령은 기도하고 있는 제자들 위에 내리셨다. 그리하여, 그 후에 그 원수들은 “너희가 너희 교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행 5:28) 한다고 증언하였다.
하나님의 약속에는 조건이 있음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교회에 성령의 선물을 약속하셨으며, 이 약속은 당시의 제자들에게 주신 바와 같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주신 것이다. 그러나, 모든 다른 약속들과 마찬가지로 여기에도 조건이 따른다. 많은 사람들은 주의 약속을 믿고 또 이를 받았노라고 하며 그리스도와 성령에 대하여 이야기하나,
그들의 마음이 거룩한 능력의 지도와 다스림을 받지 않는 까닭에 아무 유익을 받지 못한다.
우리가 성령을 부릴 수 없고, 성령이 우리를 사용하시는 것이다.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당신의 백성들 속에서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빌 2:13) 역사하신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지도하심을 따르지 아니하고 자기 스스로 일을 처리하고자 하므로 하늘의 선물을 받지 못한다. 성령은 오직 겸손히 하나님께 나가 그분의 지도하심과 은혜를 받고자 기다리는 자에게만 주어진다. 믿음으로 얻게 되는 이 약속된 축복은 이와 함께 다른 모든 축복들도 따라서 임하게 한다. 이 축복은 그리스도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주시는 것이며, 그리스도께서는 각자의 받은 용량에 따라 주려고 예비하고 계신다.
성령을 부어 주시는 것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부어 주시는 것이다. 오직 이와 같이 하나님께 가르침을 받은 자, 또는 성령이 그 안에서 일하고 그 생애에 그리스도의 생애를 나타내는 자만이 구세주의 참 대표자로 설 수 있다.
교육자로서의 성령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있는 상태 그대로 받아들이시고 그들이 당신께 복종할 뜻만 있으면 당신의 사업에 합당한 인물이 되도록 교육하신다. 영혼 속에 받아들인 하나님의 성령은 그의 모든 기능을 활발하게 해주신다. 그러므로, 마음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친 자가 성령의 지도하심을 받을 때에, 마음이 균형 있게 발달하여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를 이해하고 이를 실행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또, 마음과 의지가 연약한 자는 의지가 굳고 강한 자로 변화된다. 날마다 계속하여 몸을 바치는 자는 예수님과 그 제자 됨의 관계가 더욱 밀접하게 되어, 마침내 그는 자기의 성품을 다스릴 수 있는 주인과 같이 된다.
이런 사람은 좀더 명확하고 좀더 넓은 식견을 가지며, 그 통찰력은 더욱 예민해지며 그 판단력은 더욱 확실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의의 태양 그리스도에게서 생명의 능력을 받고 활기를 얻어 많은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게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에게 초자연적인 힘을 부여하시며 무식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의 오묘함을 가르치신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 보이시기 위하여, 죄와 싸워 이기려고 힘쓰는 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실 것을 약속하셨다. 만일, 각 사람들을 위해 구세주께서, 행하신 일을 유효하게 하기 위해서 성령을 주시고 항상 역사하여 새 사람이 되게 하시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께서 자신을 낮추시고 간교한 원수 마귀의 시험을 받으시며 의로우신 분이 불의한 자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성령께서는 제자들에게 오직 주를 높일 수 있게 하시고, 또 복음서 기자들의 붓을 인도하여 그리스도의 모든 말씀과 그분의 행사를 기록하여 세상에 전하게 하셨다. 오늘날에도 같은 성령이 항상 일하고 계시며, 세상 사람들에게 갈바리 십자가의 크신 희생을 주목케 하시며,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보이시며,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의 약속들을 믿게 하려고 애쓰고 계신다.의의 태양으로부터 오는 밝은 빛을 어두운 마음 속에 비치게 하시며, 사람들로 영원한 진리를 깨닫고 마음을 기쁘게 하며, 또 그의 마음에 위대한 의의 표준을 보여 죄를 깨닫게 하여, 사람을 죄에서 구원하여 내실 수 있는 유일한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이 생기게 하시며,
또 잠깐 있다가 없어지고 말 이 세상의 사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돌이켜 영원한 유업을 사모하도록 성품을 변화시키는 것은 다 성령께서 하시는 사업이다. 성령은 사람을 재창조하며 순화하며 성결케 하여, 하늘의 왕자가 되고 그 가족 중의 하나가 되게 하신다.
성령을 받는 결과
스스로 온전히 자기를 비워 모든 거짓 우상을 마음 가운데서 제하여 버리면, 그리스도의 성령께서 들어와 그 자리를 채우게 된다. 이런 사람은 부패한 데서 마음을 깨끗게 하는 믿음을 가진 자이며, 그는 성령에 순응하며 성령에 관한 것을 항상 생각함으로 자기 자신을 조금도 믿지 않는다. 대신, 그리스도께서 만유이시며 만유 안에 계심을 믿는다. 그는 계속하여 나타나는 진리를 겸손히 받아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2:10, 12)고 말한다.
이와 같이, 은밀한 진리를 나타내 보이시는 성령은 또한 그에게서 의의 열매를 맺도록 역사하신다. 그리스도께서 그 사람 안에 계시어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요 4:14)이 되신다. 또 이러한 사람은 참 포도나무의 가지로서 많은 포도송이를 맺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 그 맺은 열매는 어떤 것인가? 성령의 열매는 증오가 아니라 “사랑”이며, 불만과 슬픔이 아니라 “희락”이며, 분냄과 근심과 스스로 지어내는 시험이 아니라 “화평”이다 그것은 또,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갈 5:22, 23)이다.
이 성령을 가진 자는 열심으로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이다. 하늘의 천사는 이런 사람과 협력하며, 또 그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그 기별의 정신을 가지고 나간다. 그는 매우 긴요한 말씀을 말하며,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라 마음의 창고에서 깨끗하고 거룩한 것들을 내어 놓는다.
우리가 가진 기별은 우리가 이것을 전하기를 조금도 두려워할 것이 아니다. 이 기별을 전하는 자는 그 본질을 흐리게 하거나 그 원인과 목적을 숨기지 말아야 한다. 한번 하나님 앞에 엄숙한 맹세를 하여 그리스도의 기별을 전하는 자로, 또는 오묘한 은혜의 청지기로 임명함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교훈을 신실히 전하여야 한다.
우리를 세상에서 구별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한 특별한 귀한 진리는 그 안에 영원한 이익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이것을 조금이라도 숨겨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현재 일어나는 모든 사건에 대하여 우리에게 빛을 주셨으므로, 우리는 붓으로나 입으로 이 진리를 온 세상에 전하여야 한다. 그러나, 오직 우리가 전하는 말에 결실이 있게 하는 것은 마음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과 성령으로 말미암아 부어 주시는 사랑의 활동하는 힘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하나님을 위하여 사람의 입술로 전하는 모든 기별의 원동력이 된다.
끝이 가까움하루하루가 영원 속으로 사라져 감에 따라, 시련의 끝이 점점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전보다 더욱 성령을 풍성히 받기 위하여 기도하며, 일꾼들 위에 성결케 하는 성령의 능력이 임하여,
누가 보든지 그는 예수님과 함께 있어 주께 배운 자라고 믿을 수 있을 만큼 되어야 한다.
우리는 대적의 모략을 잘 보아 신실한 파수군으로서 위험이 다가오는 것을 알릴 수 있는 영적 안목이 있어야 한다. 또, 사람의 지혜가 미치는 범위 안에서 그리스도교의 큰 문제와 그 원대한 원칙을 깨닫기 위하여 위로부터 내리는 능력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성령의 감화 아래 있는 자는 결코 광분하지 아니하며, 오히려 침착하면서도 꿋꿋하며 생각과 말과 행동이 지나치지 아니한다. 여러 가지 괴이한 교리의 혼잡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성령은 진리의 증거를 거역하지 않는 자들에 대하여 지도자와 옹호자가 되어, 진리이신 주의 음성 외의 다른 모든 소리를 잠잠케 한다.
우리는 사람들이 진리를 버리고 가장 거짓된 오류를 받아들여 그것을 믿고 있는 마지막 시대에 살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들에게 빛을 전할 책임을 목자와 신자들에게 지우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열심으로 진리의 보화를 모아 복음 사업에 사용하기를 요구하신다. 그러면, 그 보화가 도덕적으로 어두운 이 세상에 아름답게 빛날 것이다. 이 일은 성령의 도우심을 받지 않고서는 할수 없다. 성령이 도우시면, 우리는 무슨 일이든지 다 할 수 있다. 우리가 성령을 받게 될 때에는 믿음으로 무한한 능력을 붙들게 되며,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모든 것을 받게 된다. 구세주께서는 오류의 어두움을 몰아내시기 위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기별을 보내신다. 성령이 하시는 사업은 무한히 크다. 이 성령으로부터 힘과 능력이 하나님의 일꾼들에게 임하는 것이다.
제 64 장
발전과 봉사

그리스도인 생애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그것은 다만 온유하고 인내하고 겸손하고 친절한 것만이 아니다. 물론, 이런 덕행도 있어야 하지만, 거기에 또 용기와 힘과 정력과 굳센 정신이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지시하신 길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극기의 길이다. 이 길에서 많은 곤란과 실망을 극복하며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강한 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정력적인 사람이 요구된다. 즉, 앞에 놓인 장애물이 다 치워져서 앞길이 평탄하게 되기를 기다리지 않는 자, 새 열심으로서 의기가 상한 일꾼들의 기운을 다시 북돋우어 활동하게 하는 자, 마음이 그리스도인의 사랑으로 뜨겁고 그 손이 강하여 주의 일을 능히 할 수있는 자가 현재 필요하다.
선교 사업에 종사하는 자 중에는 의지가 약하고 용기와 활기가 없고 쉽게 낙담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기력이 부족하다. 그들은 또 무엇을 힘있게 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특성 곧 열성을 불타게 할 활기와 정력이 없다. 일에 성공하고자 하는 자는 용기 있고 희망이 충만하여야 하며, 소극적 미덕 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미덕도 계발시켜야 한다. 또한, 노를 쉬게 하는 유순한 대답을 하여야 할 것이나, 이와 반면에 악을 물리칠 영웅적인 용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견디는 사랑과 함께 그의 감화력을 힘있게 나타낼수 있는 강한 성품을 가져야 한다.어떤 사람은 성품이 굳세지 못하다. 또, 그들이 세우는 계획과 목적도 확고하고 일정하지가 못하다. 이런 사람은 이 세상에서도 별로 쓸모가 없다. 그러므로, 이런 약하고 결단성이 없고 무능함을 없이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참 그리스도인의 성품 가운데는 어떤 역경에서라도 조금도 변하거나 굽히지 않는 굳은 의지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도덕적 정신력과 사람의 아첨이나 뇌물과 위협에서도 변치 않는 성실한 성품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의 사업을 위한 준비를 하기 위하여 모든 기회를 이용하고, 또 이를 행하기 위해서 전력하며 항상 그 신성하고 지극히 중대한 책임을 자각하기를 바라신다.
많은 사람들은 능히 훌륭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가지고 있으나 그들이 많은 일을 하려고 하지 않으므로 별로 큰일을 하지 못한다. 세상에는 인생에 대한 아무 큰 목적이 없고 또 달하고자 하는 높은 표준도 없이 헛되이 일생을 보내는 자가 무수하다. 그 한 가지 이유는 자기 자신에 대한 과소 평가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무한한 값을 치르셨으므로 당신이 지불하신 값대로 우리가 자신을 평가하기를 원하신다.
결코 낮은 표준에 만족하지 말라. 아직 우리는 달하여야 할 표준에 이르지 못하였고 하나님의 뜻대로 되지 못하였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추리력을 주신 것은 일 없이 한가히 있게 하거나 혹은 세상의 더러운 이익을 추구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요 그 능력을 최대 한도로 발달시켜 아름답고 깨끗하고 고상하게 하여 주의 나라를 널리 전파하는 사업에 사용하도록 주신 것이다.
그대가 어떤 지위에서 일하든지 동기를 나타내며 성품을 발달시키고 있음을 기억하라. 또, 무슨 일을 하든지 정확히 하고 부지런히 할 것이며, 쉬운 일을 찾으려는 못된 버릇을 고치라.일상 사무에 나타나는 그 같은 정신과 원칙은 그 온 생애에까지 미치게 된다. 정한 일만 하여 정한 급료만 받고자 하며
수양과 훈련을 받지 않고 일할 준비를 갖추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업에 필요로 하는 자가 아니다. 육체와 정신과 도덕적 능력을 할수 있는 데까지 적게 쓰려고 꾀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풍성한 축복을 부어 주실 수 있는 일꾼이 아니다. 그들의 좋지 않은 모본은 다른 사람에게까지 옮게 된다. 또, 그들의 동기는 이기적인 것이다. 사람의 감독을 받아야 하고, 또 맡겨 준 일 이외에는 다른 일을 할 줄 모르는 자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받을 자가 못 된다. 활기가 있고 성실하고 부지런한 일꾼, 즉 하여야 할 일은 무엇이든지 기꺼이 행하는 일꾼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은 실패를 꺼려 하여 책임을 회피함으로써 무능한 자가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책임으로나 연구로나 그 밖의 다른 모든 기회로도 얻을 수 없고 단지 경험으로만 얻을 수 있는 교육을 받지 못하게 된다.
인간이 환경을 만드는 것이요, 환경이 인간을 만들게 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환경을 일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삼아야 한다. 또,우리는 환경을 지배할 것이고, 환경이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여야 한다.
흔히 유력한 사람이라고 칭함을 받는 사람은 여러 가지 방해와 반대와 좌절을 당해 본 사람이다. 그들은 있는 모든 힘을 활용함으로써 화가 변하여 복이 되게 한다. 또, 그들은 자립 정신을 갖는다. 그리고, 투쟁과 곤란을 맞게 될 때에는 하나님께 대한 신뢰심과 힘을 길러 주는 굳은 의지가 있어야 한다.그리스도께서는 마지못해 일하시거나 또 일을 시간으로 따지지 않으셨다. 그분은 인류의 행복을 위해 모든 시간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일하셨다. 낮에는 종일 피곤하게 일하셨고,
밤에는 밤새도록, 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기도로써 하늘 아버지께 은혜와 인내심을 간구하셨다. 당신의 인성을 강하게 하시며, 기만적인 악한 원수를 대항할 마음의 무장을 하시며, 또 인류를 향상시키는 큰 사명을 성취할 수 있는 강한 의지를 갖기 위해서 통곡하며 많은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 드리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교역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5)고 말씀하신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고후 5:14)라고 말하였다. 이것은 그의 행위의 실제 원칙이며 또 그의 행동의 원동력이었다. 그는 일을 하다가 잠시라도 그의 열심이 줄어드는 듯하면 십자가를 한 번 쳐다봄으로 다시 마음의 허리띠를 동이고 극기의 길로 향하여 매진하였다. 그는 또한 믿는 형제들을 위해 일할 때에 그리스도의 희생에 나타난 무한한 사랑과 그 저항할 수 없는 강권하는 힘에 많이 의존하였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8:9)한 그의 호소는 얼마나 간절하고 또 감명 깊은 호소인가! 그리스도께서는 지극히 높은 곳에서 자기를 낮추어 지극히 낮은 곳으로 내려오시사 희생의 길 위에 발을 올려 놓으신 후에 그의 목숨을 버리기까지 조금도 물러서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하늘 보좌로부터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자신을 위하여 조금도 편안한 쉼이 없었다. 인류에 대한 그분의 사랑은 모든 모욕과 능욕을 달게 받을 수 있게 하였다.바울은 우리에게 권고하기를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라고 하였다. 다시, 그는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말하였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4-8)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자는 누구나 하나님을 위해 일할 특권을 가지고 싶어할 것이다. 또, 그 마음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베푸신 큰 은혜를 생각하고 한없는 사랑과 감사함으로 감동된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사업에 자기의 모든 힘을 바쳐 일함으로써 그 감사함을 조금이라도 표시하고자 한다. 그는 또한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구속받은 기쁨을 나타내고자 하여, 오히려 고역과 고난과 희생을 환영한다.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는 참 일꾼은 자기의 최선을 다해 일한다. 왜냐하면, 주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서는 그와 같이 해야 하는 까닭이다. 또, 하나님의 요구하심에 부족함이 없이 행하며 자기의 모든 재능을 발전시키고자 노력한다. 그는 하나님께 대한 모든 의무를 유감없이 수행한다. 그의 오직 한 가지 희망은 그리스도께서 높임을 받으시고 완전한 봉사를 받으시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보습과 번제단 사이에 한 황소를 그린 그림이 있는데, 그 그림엔 밭을 갈게 하든지 혹은 희생 제단에 제물로 바치든지 “어디에 쓰든지 이를 위해 준비되었다”라고 글이 적혀 있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참 자녀들이 가져야 할 태도인데, 곧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곳이면 어느 곳으로나 나아가 기꺼이 자기를 부인하고 구주 예수님의 사업을 위해 희생적으로 봉사하는 것이다. ― MH, 497-502.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