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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편
의의 역군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 저가 또 우리의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고후 3:5, 6)

제 6 장
우리의 모범이신 그리스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의 모든 필요한 일에 봉사하셨지만 피곤함을 알지 못하셨다. 주님께서는 인간의 모든 필요를 돌보시기 위하여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마 8:17)다. 주님은 질병과 비참함과 죄의 무거운 짐을 없이 하기 위하여 오셨다. 인류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것이 주님의 사명이었다. 또, 그분이 오신 것은 인류에게 건강과 평화와 품성의 완전함을 주시기 위함이었다.
주의 도움을 구하러 온 자들의 경우와 그 요구하는 바가 각각 달랐지만, 도움을 받지 못하고 돌아간 자는 없었다. 주님께로부터 치유하는 능력이 강처럼 흘러나와 사람의 영혼과 심신을 온전케 하였다.구주의 사업은 때와 장소의 한정이 없었고, 주의 동정에는 제한이 없었다. 주님께서 행하신 병 고치고 가르치는 사업은 실로 대규모적이었으므로, 주님께로 모여 온 수많은 군중들을 다 받아들일만한 건물은 팔레스티나 지방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갈릴리의 푸른 언덕,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큰 길이나 바닷가, 회당, 그 외의 어디든지 병자를 데려온 곳은 주의 병원이었다. 도회지나 촌락, 어디든지, 주님께서는 통과하시는 곳에서,
고통당하는 병자 위에 손을 얹고 병을 고쳐 주셨다. 또한 어디서라도, 주의 기별을 받을 준비를 한 자에게는 하늘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이야기하여 그를 위로하여 주었다. 그리하여 온종일, 당신께 나오는 자들을 위하여 일하시고, 저녁에는 가족의 생계를 위하여 종일 일하여야 하는 가난한 자들과 상종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할 지극히 엄중한 책임을 지셨다. 그분은 인류들의 원칙과 목적에 단호한 변화가 있지 않으면 모든 인류가 잃어버린 바 될 것을 아셨으며, 이것은 당신의 마음에 무거운 짐이 되었다. 그러나 아무도, 주님께서 지신 짐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소년 시절이나 청년 시절이나 또는 성년이 된 때에라도, 주님은 언제나 고독하게 지내셨다. 그러나, 주님이 계신곳은 천국이었다. 주님은 날마다 여러 가지 시련과 시험을 당하시고 여러 가지 악을 만나셨다. 또한, 그분께서 찾아 복을 주고 구원 하려는 자들 위에 죄의 세력이 나타난 것을 보셨지만 활기를 잃거나 낙담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어떤 일에 있어서도 당신의 사명 앞에서는 욕망을 엄격히 통제하셨다. 또한, 모든 일을 하늘 아버지의 뜻에 복종케 함으로써 생애를 영화롭게 하셨다. 예수님이 어렸을 때에, 어머니 마리아는 그분이 랍비들과 함께 문답하고 있음을 보고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하였다. 그분은 대답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눅 2:48, 49) 하셨다. 이 대답은 그분의 평생 사업의 요지가 된다.그리스도의 생애는 계속적인 자아 희생의 생애였다. 친절한 친구들의 호의가 나그네 예수님을 위해 유숙할 곳을 마련해 준 곳 이외에는 이 세상에 거할 집이 없었다. 그분은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가장 가난한 생애를 사시고, 가련하고 고난당하는 자들 가운데서 생애하며 일하셨다.
그토록 많은 선행을 베풀어 준 자들에게서도 그분은 인정과 존경을 받지 못한 채 일하셨다.
주님은 항상 인내와 기쁨으로 지내셨으므로, 모든 고난을 당하는 자들이 그분을 생명과 평화의 사자로 환영하였다. 주님은 남녀 노유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그 모든 자들에게 내게로 오라고 초청하셨다.
예수님은 봉사 기간 동안에 설교보다도 병자를 고치는 일에 더욱 많은 시간을 보내셨다. 주님의 이적은, 사람을 벌하러 온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왔다는 그분의 말씀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였다. 주께서 어디를 가시든지 이미 주의 은혜의 소식이 전파되어 있었다. 주님이 다녀가신 곳에서는 주의 동정을 받은 자들이 활력을 되찾은 기쁨으로 새로 얻은 힘을 시험해 보고 있었다. 주님이 행하신 기사를 그들에게서 직접 들으려고 많은 무리들이 그들 주위로 몰려들었다. 많은 귀머거리가 고침을 받은 후 처음 들은 것은 주의 음성이요, 벙어리가 말을 시작하여 처음 불러 본 이름이 주의 이름이며, 소경이 눈뜨자 처음 본 것은 주의 얼굴이었다. 어떻게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며 그분을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주님께서 도시와 촌락을 지나실 때에는 마치 생명의 전류처럼 생명과 기쁨을 발산하였다.
구주께서는 병 고치는 일을 하실 때마다 그 심령에 하나님의 원칙을 심는 기회로 삼으셨다. 그리고, 이것이 그분의 사업의 목적이었다. 그분은 사람들이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려고 이 땅의 축복을 주셨다.그리스도께서는 유대 나라의 교사들 중에 가장 높은 지위를 차지하실 수 있었으나 오히려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택하여, 곳곳으로 다니면서 큰 길과 작은 길에 있는 자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듣게 하셨다. 성경의 말씀들을 설명하시는 주의 음성이 바닷가나 혹은 산비탈에서 또는 도시의 복잡한 거리에나 혹은 유대인의 회당에서 들렸다.
또한, 주께서는 이방인들도 당신의 말씀을 듣게 하기 위해서 성전 뜰 밖에서도 종종 가르치셨다.
그리스도의 가르치심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성경 풀이 하는 것과는 같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랍비들은 유전과 사람의 이론과 추측을 중히 여겼으며, 성경에 관하여 사람들이 가르치고 기술한 것이 때때로 성경을 대신하는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교훈의 주제는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그분은 질문하는 자들에게 “기록되었으되”, “성경에 무엇이라 하였느냐”, “네가 어떻게 읽느냐”하고 단순한 말씀으로 대답하시고 호의를 가진 자나 혹 반대자들이 흥미를 나타낼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소개하셨으며 복음의 기별을 분명하고 힘있게 전파하셨다. 예수님의 말씀은 부조들과 선지자들의 교훈에 한층 더 빛이 되었고, 성경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계시로 나타났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은 전에 하나님의 말씀에 담긴 이와 같은 깊은 뜻을 깨달은 일이 없었다.
그리스도의 교훈의 단순성
그리스도와 같은 전도인은 일찍이 없었다. 주께서 하늘의 왕이셨으나 자기를 낮추어 우리들의 성정을 취하심은 인류가 거하는 곳에서 인류를 만나려 하심이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이 나를 막론하고 모든 백성들의 언약의 사자 곧 그리스도께서는 구원의 소식을 전하셨다. 그의 크신 의원으로서의 명성이 팔레스티나 온 땅에 퍼졌다. 병자들은 도움을 구하기 위하여 주께서 지나시는 곳으로 왔다. 또한, 이 곳에,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의 손길이 저들의 몸에 닿기를 원하는 자들이 많이 이르렀다. 그분은 이와 같이 이 성에서 저 성으로, 이 동리에서 저 동리로 두루 다니시며 복음을 전하며 병자들을 고치셨다. 그분은 곧 비천한 인류의 형상을 쓰신 영광의 왕이시었다.
주님께서는 유대인의 큰 절기에도 참여하여 외형적 의식만 숭상하는 무리에게 하늘에 속한 일을 말씀하시며 영원에 대한 문제를 저희들에게 보이셨다. 지혜의 창고에서 보물을 취하여 모든 사람에게 주며 단순하고 평이한 말을 쓰셨으므로, 아무도 깨닫지 못하는 자가 없었다. 그분은 당신의 독특한 방법으로 슬픔과 고난 중에 있는 자들을 모두 도우시며 친절과 예모로써, 죄로 병든 영혼들을 치료하며 그들에게 건강과 힘을 주셨다.
모든 교사의 교사이신 그리스도는 사람들과의 가장 친밀한 교제를 통하여 그들과 접근하셨다. 진리를 전하되 듣는 무리가 그 말씀을 듣고 감명을 받아 그들의 기억 속에 깊이 뿌리 박히도록 하셨다. 또, 주께서는 저들에게, 주님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이익과 행복을 증진시키려고 힘을 다하고 계신다는 것을 깨달아 알도록 가르치셨다. 그 교훈은 직접적이었고, 그 예증은 적절하였으며, 그 말씀은 감명과 기쁨을 주었으므로 듣는 무리가 황홀케 되었다. 가난한 자들에게 하신 주님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에는 단순함과 열성이 깃들여 있었다.
빈부의 구별 없이 전함
그리스도께서는 참으로 바쁜 생활을 하셨다. 그분은 가난과 슬픔에 처해 있는 보잘것 없는 작은 집에 들어가 낙담한 자에게 희망을, 고민하는 자에게 평화의 말씀을 전하지 않으시는 날이 없었다. 자비하고 인정과 동정심이 많으신 그리스도께서는 여러 지방을 다니시며 용기를 잃어버린 자들을 일으켜 주시고 슬픔 당하는 자를 위로하셨다. 그분이 가시는 곳에는 언제나 축복이 뒤따랐다.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힘쓰시는 한편 부한 자들을 인도할 방법도 연구하셨다.
그분은 부하고 학식 있는 바리새인과 유대의 귀족, 로마의 관리들과도 교제하셨다. 그들의 호감을 사며 없어지지 않는 부를 소개하시려고 그들의 초대를 거절하지 않으시고 잔치에 참예하셨으며, 또한 그들의 직업과 흥미도 익숙히 아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이 하늘의 능력을 받아 흠 없는 생애를 살 수 있음을 보이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 주님은 다함이 없는 인내와 동정심에 가득한 도움으로 인간의 필요를 채워 주셨다. 또한, 인자하신 은혜의 손길로 사람의 가슴속에 불안과 의심을 소멸하시며 미움을 사랑으로, 불신을 믿음으로 변하게 하셨다.
그리스도는 민족이나 계급, 또는 신조에 있어서의 차별을 인정치 아니하셨다. 당시의 서기관들과 바리새 교인들은 하늘에서 주신 선물을 한 국가와 한 민족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고 세계의 다른 하나님의 가족들은 그 특전에서 제외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막힌 장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오셨다. 또한, 주님은 당신의 자비와 사랑의 선물이 공기나 빛 또는 땅을 촉촉히 적시어 주는 소나기처럼 어느 한 곳에 제한되어 있지 않음을 보이기 위해 오셨던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생애로, 계급 제도가 있지 아니하며,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자주자나 종이나 다 동등한 형제라는 것을 보이시고,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계급이나 차별이 없다는 종교를 설립하셨다. 그분의 활동은 어떠한 정치의 영향도 받지 아니하였다. 그분께서는 아는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 또는 자기 편이거나 자기 편이 아니거나 간에 차별 없이 대하셨으며, 생명수를 갈망하는 영혼에 대한 연민의 정이 마음에 가득하셨다.그리스도께서는 어떤 사람이든지 무가치한 인간으로 취급하지 아니하시고 각 영혼에 적절한 치료를 하기 위해 힘쓰셨다. 그분께서는 어떠한 사람들을 만나든지 때와 환경에 적절한 교훈을 주셨으며,사람들이 남을 소홀히 취급하고 모욕하는 것을 보실
때마다 그들에게 신성과 인성을 겸한 당신의 동정이 필요됨을 더욱 깊이 깨달으셨다. 성질이 아무리 난폭하고 장래성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흠이나 해함이 없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부끄럼이 없는 성품에 도달할 수 있는 확증을 보이시어 희망을 그들에게 넣어 주기 위해 노력하셨다.
종종, 주님께서는 사단에게 사로잡혀 그의 올무에서 벗어날 힘이 없는 자를 만나셨다. 낙망하고 병들고 시험당하고 또는 타락한 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가장 부드러운 동정의 말씀과, 저들에게 필요하며 또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씀을 주셨다. 주께서는 영혼의 원수 마귀와 백병전(白兵戰)을 하고 있는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나,이들에게 반드시 이길 것이니 끝까지 참고 견디라고 격려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천사가 그들 편에서 승리를 가져다 줄 것이기 때문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세리의 청함을 받아 귀한 손님으로 저희의 식탁에 나아가셨을 때에 동정과 사교적인 친절을 보이심으로 당신께서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하고 계심을 나타내셨으며, 사람들은 주의 신임받는 자가 되기를 갈망하였다. 주님의 말씀은 그들의 갈한 심령에 축복과 생명력을 주었고 새로운 마음의 충동을 일으켜 주었다. 그리고, 사회에서 배척 당하는 이들에게 새 생애의 길을 열어 주었다.
예수님은 비록 유대 사람이었으나 바리새인들이 엄중히 가르치는 그 나라 풍속을 돌아보지 아니하시고 사마리아인들과 자유로이 교제하시었다. 바리새인들의 편견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천대 받는 사마리아인들의 호의를 받아들이셨다. 그리하여, 그들의 집에서 함께 주무시고, 그들과 한 식탁에 앉아 그들이 손수 장만하여 차려 놓은 음식을 같이 잡수시며, 그들이 사는 거리에서 가르치시기도 하여 최대의 친절과 예의로 그들을 대하셨다. 또한, 인간의 동정의 끈으로 그들의 마음을 이끄시는 한편, 당신의 거룩한 은혜로 유대인들이 거절한 구원을 그들에게 가져다 주셨다.
제 7 장
교사로서의 그리스도

세상의 구주께서는 선한 일을 행하시면서 여러 곳으로 두루 다니시었다. 주께서는 백성들 앞에 서서 영원한 진리의 말씀을 하실 때에 청중들의 표정이 변하는 것을 열심히 주목하셨다. 당신의 말씀을 듣고 깊은 흥미와 기쁨을 갖는 얼굴들을 보실 때에는 대단히 마음에 흡족해 하셨다. 그리고, 분명한 진리의 말씀으로 사람들의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죄악이나 우상을 지적하셨을 때에, 주님께서는 냉담하고 언짢아 하는 표정 곧 진리를 환영하지 않는 표시를 보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듣는 무리들에게 죄를 기탄없이 책망하셔야 할 것과 그들의 어두운 마음 속을 비치는 빛을 그들이 받아들이기만 하면 그들에게 가장 큰 축복이 될 것을 아셨다.
그리스도의 사업은 진리를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도록 쉽고 단순하게 설명하는 것이었으며 누구나 이 진리를 순종하기만 하면 마음에 평안과 기쁨을 얻을 수 있었다. 주님은 사람의 마음 속까지 보시고, 품성과 생애를 그릇되게 하며 영혼을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막아 놓는 마음 속의 죄악을 보시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그 죄를 참 빛에 비추어 보고 내어 버리게 하도록 이러한 죄악들을 지적해 주셨다. 겉으로 볼 때에 대단히 완고한 자들 가운데에서도 희망을 보셨으며, 그들이 빛을 받아 주의 참 제자가 될 것을 아셨다.진리의 화살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자들의 마음을 찔러 이기심의 장벽을 헐고 겸손하며 통회하며 마침내 감사하게 될 때에, 구주께서는 심히 기쁘셨다. 또, 주님께서
주위의 청중들을 둘러보시고 그 가운데 이전에 본 얼굴들이 있음을 보셨을 때에는, 거기서 유망한 천국의 백성을 발견하신 그 기쁨이 얼굴에 나타났다.
주의 대표자로 보내심을 입은 그리스도의 교역자들도 주님과 같은 심정과 뜨거운 관심을 가질 것이다. 또, 애쓴 보람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여 쉽게 실망하는 자들은, 예수님께서도 각양 완미(頑迷)한 사람들을 대하셨으며 그들이 경험하였거나 경험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어려운 일을 당하신 것을 기억하여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인내와 사랑으로 백성들을 가르치셨다. 그분은 깊고 예리한 지혜로써, 그 청중들 가운데 각 개인의 필요한 것을 아셨다. 그러므로, 저희들에게 주시려고 한 평화와 사랑의 기별을 저들이 거절할 때에는 마음에 깊은 고통을 느끼셨다.
* *
세상의 구주께서는 이 세상에 오셨으나 외모를 자랑하거나 세상의 지혜를 나타내 보이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사람의 형상 속에 있는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을 볼 수 없었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였으며, 사람들에게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같이 흠모할 만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는 자로 보였다(사 53:3, 2).그러나, 주께서는 친히 말씀하시기를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사 61:1)하려 하심이라고 하셨다.그리스도께서는 백성들의 형편을 따라서 진리를 전하셨다. 가장 유력하고 단순한 말씀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진리를 소개하셨으므로,
아무리 가난하고 무식한 자라도 주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가장 고상한 진리를 깨달을 수가 있었다. 누구든지 한 사람이라도 주의 말씀의 뜻을 알지 못하여 학자들에게 가서 물어 볼 필요가 없었다.주님께서는 결코 깨닫기 어려운 추론(推論)이나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어려운 말씀을 하여 무식한 백성들을 괴롭게 한 일이 없으셨다. 세상이 일찍이 알지 못하였던 가장 크신 교사의 교훈은 가장 명확하고 단순하며 또한 실제적이었다.
* *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요일 1:9). 이 세상에는 지혜가 많고 연구가 깊은 사람 곧 그들의 말로써 사람들의 사상을 자극하며 넓은 지식의 분야를 개척한 위대한 교사들이 있다. 또, 이들은 대중의 지도자와 공로자로 존경을 받아왔다. 그러나, 이들보다 훨씬 뛰어난 분이 한 분 계신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2, 18).
우리가 위대한 교사들의 역사를 연구한다면 최초의 인류 역사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겠으나, 이들보다 먼저 있었던 것은 빛(그리스도)이었다. 태양계의 달과 별들이 태양의 빛을 받아 빛을 발함과 같이, 세상의 위대한 사상가들은 그들이 가르치는 바가 진실된 한 그들이 의의 태양이신 그리스도의 빛을 반사하는 것이다. 모든 사상, 모든 지혜가 다 세상의 빛 그리스도께로부터 이른다.
제 8 장
현 시대를 위한 교훈

에녹과 침례 요한의 경험은 우리가 마땅히 가져야 할 경험을 대표한다.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간 에녹과, 그리스도의 초림전에 주의 길을 예비하며 그 길을 곧게 하라고 부르심을 입었던 침례 요한의 생애에 대해서는 우리가 좀더 자세히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에녹의 경험
성경에 에녹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그가 65세가 되어 첫 아들을 낳고 그 후 300년간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하였다. 에녹은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며 그 계명을 순종하였다. 첫 아들을 본 후 에녹은 생애가 더욱 향상되었고, 하나님과 좀더 친밀히 교제하였다. 그는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사랑과, 아버지의 보호를 신뢰하는 아이의 단순한 믿음을 보고, 또 자기가 첫 아들에 대해 깊은 애정에 느끼게 되었을 때에, 그 독생자를 인간에게 선물로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늘 아버지를 믿고 의지하여야 할 귀중한 교훈을 배웠다. 그 때부터 그가 더욱 주야로 묵상한 바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타내신 헤아릴 수 없는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의 모든 열심을 다해 하나님의 사랑을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타내기 위하여 힘썼다.에녹은 환상이나 혹은 계시 가운데서 하나님과 동행한 것이 아니고 일상 생애의 그의 모든 일을 행하는 가운데 동행하였던 것이다. 하나님을 위해서 이 세상에서도 그에게 할 일이 있었으므로 그는 결코 속세를 피하여 은둔 생활을 보내지 아니하였다.
가정에서나 혹은 다른 사람과의 교제에서, 그는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또는 친구나 시민으로서 언제나 변함없는 하나님의 충성된 종이었다.
에녹은 육체적인 노동을 하는 생애 중에서도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을 그치지 아니하였다. 일이 많고 어려울수록 더욱 부지런하고 열심으로 기도하였다. 그는 어떤 정한 시간에 잠깐 동안 사람을 피하여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을 계속했다. 그는 얼마 동안 사람들 속에서 교훈과 모본을 보임으로 저희들을 유익케 하기 위하여 힘쓰면서도 때로는 한적한 곳에 머물러, 주리고 목마른 것같이 오직 하나님께서만 주실 수 있는 거룩한 지식을 구하였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교제하고 나온 에녹은 한층 더 하나님의 형상을 반사하였다. 그의 얼굴은 예수님의 얼굴에 빛났던 그러한 거룩한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리하여, 에녹이 하나님과 교제하고 나온 때에는 경건치 아니한 자들도 두려움으로 그의 얼굴에 나타난 하늘의 형상을 바라보았다.
세월이 갈수록 그의 믿음은 더욱 굳어지고 그의 사랑은 점점 뜨거워졌다. 기도는 그에게 있어서 영혼의 호흡이었다. 그는 언제나 하늘 분위기 속에서 생애하였다.
미래에 있을 장면들이 그의 눈앞에 보였을 때에 에녹은 의를 전파하는 자가 되어 경고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기별을 전하였다. 전에 가인이 하나님의 앞을 피하려던 그 지방에서 하나님의 선지자는 계시 가운데 나타난 놀라운 장면들을 이야기하였다. 에녹은 말하기를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유 14, 15)고 하였다.
그의 말을 듣는 자들은 하나님의 능력이 당신의 종 위에 임하여 있음을 알 수가 있었다. 어떤 이들은 그 경고를 듣고 그들의 죄를 버렸으나, 많은 사람들은 그 엄숙한 기별을 듣고 오히려 조롱하였다. 하나님의 종들은 마지막 시대에도 그와 같은 기별을 세상에 전하여야 할 것이며, 또 많은 사람들이 불신과 조소로써 그것을 받아들일 것이다.
해가 갈수록 사람들의 죄의 풍조는 더욱 깊어 가고, 하나님의 심판의 구름으로 세상은 점점 더 어두워 갔다. 그렇지만, 믿음의 증인 에녹은 조금도 변함없이 사람들을 경고하며 권고하고 가르치는 일을 계속하였으며, 죄악의 조류를 그치게 하며 하나님의 진노를 멈추게 하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금과 은을 모으거나 이 세상 재물을 저축하려고 하지 않는 에녹을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비웃었다. 그러나, 에녹의 마음은 영원한 보배를 사모하며 천성을 바라보았다. 그는 시온에 서 계신 영광의 왕을 보았다. 이 세상의 죄악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하나님께서 계신 본향을 사모하는 마음은 더욱 간절하여졌다. 몸은 아직 이 땅에 있으나 믿음으로는 이미 빛의 왕국에 살고 있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 300년 동안, 에녹은 하늘과 조화되기 위하여 청결한 마음을 갖고자 노력하였다. 300년간,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그는 날마다 하나님과 더욱 친밀해지기를 원하였으며, 점점 그 교제가 두터워져서 마침내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신 것이다. 그는 영원한 세계의 문턱에 서 있었으며, 그와 축복의 땅과의 사이는 불과 한 걸음뿐이었다. 드디어 하늘 문이 열리고 지상에서 오랫동안 행해오던 하나님과의 동행은 계속되어, 마침내 그는 인간들 중에서 최초로 하늘 성문을 통과하게 되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히 11:5).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교제를 하게 하시기 위해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 에녹의 품성이 거룩하였던 것처럼, 주께서 재림하실 때에 구원받을 사람들의 품성도 거룩하여야 한다.
침례 요한의 경험
침례 요한은 광야 생활에서 하나님을 배웠다. 그는 천연계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를 공부하였다. 또, 성령의 지도 아래 선지자들의 글을 연구하였다. 낮이면 낮, 밤이면 밤마다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명상하던 그의 심령은 영광의 계시로 가득 채워지게 되었다.
요한은 아름다운 왕을 바라보았을 때에 자신을 잊어버렸다. 그는 거룩한 위엄을 보았을 때에 자신의 무능함과 무가치함을 깨달았다. 요한이 전하여야 할 것은 하나님의 기별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의를 힘입어 일어서야 했다. 하나님을 친히 보게 된 그는 인간을 무서워하지 않고 담대히 하늘의 사자로서 나갈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가 두려움으로 왕 중 왕께 경배하였기 때문에 세상 임금들 앞에 두려움 없이 설 수가 있었다.
요한은 그의 기별을 전파할 때에 결코 깊은 논리나 섬세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였다. 그의 놀랍고 엄숙하며 또한 희망이 가득찬 음성이 온 광야에 들렸다. 곧,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 3:2)는 것이 그가 전한 기별이었다. 그 기별은 이상한 한 새로운 능력으로 백성들의 마음을 감동시켜, 온 나라가 동요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떼를 지어 광야로 광야로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무식한 농촌의 농민과 어부, 헤롯의 영문(營門)에 속한 로마 군인들, 반역의 기미를 살피다가 그러한 기미가 보이기만 하면 진압하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던 긴 칼을 찬 관리들, 탐욕이 가득한 세관의 세리들로 부터 유대의 최고 평의회인 산헤드린에 속한 거룩한 옷을 두른 제사장들까지 누구든지 다 마술에 홀린 듯 넋을 잃고 침례 요한의 말을 들었다. 모든 사람들 곧 냉정하고 완고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까지도 조소를 그치고 자신들의 죄에 대한 가책을 받고 돌아갔다. 그 포학 무도한 헤롯도 그 궁정에서 요한의 기별을 듣고 회개하라는 권고에 떨었다.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구름을 타고 두번째 오실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이 시대에도 역시 요한이 하던 바와 같은 일이 행해져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큰날에 설 수 있는 백성을 준비시킬 사람들을 부르신다. 그리스도께서 공생애에 들어가시기 전에 전하신 기별은 “회개하라 세리와 죄인들아, 회개하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무리들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하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움을 믿는 백성으로서 우리가 전한 기별은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암 4:12)는 것이다.
우리의 기별은 요한이 행한 것과 같이 단도 직입적이어야 한다.요한은 왕의 죄악을 책망하였다. 그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이와 같이, 오늘날 우리의 사업도 신실하게 행해져야 한다.
우리가 요한이 전한 바와 같은 기별을 전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요한과 같은 영적 경험을 가져야 한다. 또, 요한이 가졌던 그와 같은 성령의 역사가 우리 속에도 이루어지지 아니하면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며, 하나님을 바라봄으로써 우리 자신은 잊어버리게 된다.요한도 천성적으로 보통 사람과 같은 결점과 약점이 있었으나 한번 하나님의 사랑에 접촉된 때부터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공생애에 들어가신 후 요한의 제자들은 그에게 와서 모든 사람이 새 교사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불평을 말하였으나, 요한은 자기와 메시아 사이의 관계를 얼마나 밝히 이해하였는지 또는 자기가 먼저 그 길을 예비한 그리스도를 얼마나 즐거이 환영하였는지를 보여 주었다.
그 때에 요한은 이렇게 말하였다.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나의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거할 자는 너희니라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27-30).
믿음으로 구주를 쳐다본 요한은 무아의 경지에 도달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사람들을 자기에게로 이끌려고 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생각을 더욱 더 높게 하여 마침내 하나님의 어린 양을 생각케 하려고 힘썼다. 그리하여, 자기 자신은 다만 “광야의 외치는 소리”가 되었다. 이제 그는 모든 사람의 눈을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께로 향하게 하기 위하여, 오히려 기쁨으로 자기는 잠잠하며 세상에 자기를 나타내지 않기로 하였다.
하나님의 사자로서의 부르심에 신실한 자는 자기의 명예를 구하지 않을 것이다.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 안에 삼킨 바 된다. 그들은 침례 요한과 같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라고 외쳐야 할 임무를 깨달을 것이다.요한의 마음에는 한 점도 “나”라는 것이 없고 대신 하나님의 빛으로 충만하였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바와 거의 꼭 같은 말로 구주의 영광을 증거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서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요 3:31, 34)라고 하였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자들은 모두 이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예할 수 있다. 구주께서는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요 5:30) 한다고 말씀하실 수가 있었다. 또, 요한은 말하기를, “이는 하나님의 성령을 한량없이” 그에게 주셨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성령을 한량없이 부어 주신다. 우리가 우리 속에서 “나”를 내어 쫓을 때에 비로소 우리는 하늘의 빛을 받아들일 수 있다. 우리가 즐거이 모든 생각을 그리스도의 뜻에 복종시키고자 할 때에, 하나님의 성품을 분별하고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이 하는 모든 자에게 성령을 한량없이 부어 주신다. 그리스도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 (골 2:9, 10)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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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은 무익하게 한가한 시간을 탐하며 침울한 금욕 생활이나 이기적인 은둔 생활을 보내지 않았다. 항상 그는 사람들과 섞여서 교제하고 또한 세상에서 되어지는 일들을 흥미 있게 관찰하였다. 그는 적막한 광야에서 모든 사건들을 주시하였다. 그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밝아진 통찰력을 가지고 인간의 성품을 살펴, 어떻게 하늘로서 온 기별을 사람들의 마음에 전할 수 있을는지를 연구하였다. 이러한 무거운 사명이 요한의 양 어깨 위에 놓여 있었다. 요한은 홀로 명상과 기도로 그 앞에 놓여 있는 일생의 임무를 위해 애써 그의 마음 준비를 하였다.
제 9 장
이방인의 사도 바울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은 자 중에 사도 바울은, 모든 교역자들에게 충성과 헌신, 그리고 끊임없는 노력의 본을 보였다. 교역자의 사업의 신성함에 대한 그의 교훈과 경험은 복음 사업에 참여한 자들에게 많은 도움과 장려가 되었다.
바울은 회개하기 전에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가혹한 박해자였다. 그러나, 그가 다메섹 성문 앞에 이르러 한 음성이 그에게 들리며 하늘의 빛이 그의 마음에 비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계시를 보았을 때에, 그의 생애의 방향은 완전히 전환되었다. 그후로, 그는 무엇보다도 그렇게 잔인하게 박해하던 주님의 성도들 가운데 나타나신 영광의 주를 사랑하였다. 그는 “영세 전부터 감취었던” “비밀”(롬 16:25)을 알게 할 사명을 맡았다. 그의 일로 아나니아에게 나타났던 천사는 말하기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행 9:15)고 하였다.
또, 바울은 그 후 오랫동안 봉사할 때에 한 번도 구주께 충성하지 않은 일이 없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편지할 때에,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빌 3:13, 14)간다고 하였다.바울의 생애는 격렬하고도 다양한 활동의 생애였다. 그는 이 성에서 저 성으로,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두루 다니면서 십자가의 도를 전하며, 복음을 믿는 자를 일으키며 교회들을 설립하였다. 이 교회들을 위하여 항상 염려하는 가운데 바울은 많은 교훈의 편지를 기록하여 그들에게 보냈다. 어떤 때는 자신의 생계를 위하여 직업에 종사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모든 분주한 활동 가운데서라도,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푯대를 향하여 좇아가는 한 위대한 목적은 한 번도 잊지 아니하였다.
바울은 가는 곳마다 하늘의 고상한 분위기를 몸에 지니고 갔다. 그와 접촉하는 사람들마다 그가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위력을 느낄 수가 있었다. 자기가 전하는 진리와 일치한 생애를 했기 때문에 바울이 전하는 말씀에는 위대한 능력이 있어 사람들을 설득시킬 수 있었다. 진리의 힘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부지 중에 자연히 나타나는 거룩한 생애의 감화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교에 대한 호감을 갖게 하는 가장 위대한 설교이다. 반박할 수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논증은 오히려 반항심을 격앙케 할 뿐이나, 경건한 모본은 아무라도 도무지 저항할 수 없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바울의 마음은 죄인에 대한 사랑으로 뜨거워져서, 그는 온 힘을 영혼 구원하는 사업에 바쳤다. 극기와 인내에 있어서 바울보다 더 월등한 일꾼은 아직 없었다. 바울은 그가 받은 축복을 다른 사람에게 복되게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생각하였다.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구세주에 대해서 이야기하였으며 또 고난 중에 있는 자들을 도와 주었다. 그는 말할 기회를 가질 때마다 반드시 구부러진 것을 바로잡고 많은 사람들의 발을 의의 길로 향하게 하였다.바울은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 자기에게 맡겨진 책임과, 만일 신실치 못하여 사람들이 멸망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 죄를 자기에게 국문하실 것을 잊지 아니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그러므로 오늘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행 20:26)노라 하였다. 또한 그는 복음에 대하여, “내가 교회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골 1:25-29) 하였다.
이상의 말씀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일하는 교역자들 앞에 도달하여야 할 높은 표준이 있음을 말하여 준다. 그것은, 크신 교사 그리스도의 지도하심을 받고 날마다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가르침을 받는 자들은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표준이다. 하나님의 능력은 한량없기 때문에, 그 능력이 크게 필요함을 깨닫고 주의 앞에 나아가 주와 교제하는 교역자는 그의 말을 듣는 자들을 생명으로 이끄는 생명의 향기가 된 자료를 받을 줄로 확신할 수 있다.
바울의 편지는 복음 교역자들이 “이 직책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후 6:3)며 그들이 가르치는 진리의 모본이 되어야 할 것을 보여 준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편지하기를 “너는 이와 같이 젊은 남자들을 권면하여 근신하게 하되 범사에 네 자신으로 선한 일의 본을 보여 교훈의 부패하지 아니함과 경건함과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딛 2:6-8) 하였다.고린도 신자에게 보낸 바울의 편지 중에는 그 자신의 활동하는 태도가 분명히 드러나 있다. 곧 이르기를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곤난과 매맞음과 갇힘과 요란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과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고후 6:4-10)라 하였다.
바울은 그 마음에 항상 깊은 책임감을 가지고 정의와 자비와 진리의 원천이신 하나님과 밀접히 교제하며 활동하였다. 그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그의 성공의 유일한 담보로 여기고 그것을 의지하였다. 바울이 “자아”로 더불어 싸우고 악과 투쟁하게 된 끊임없는 동기는 구세주에 대한 그의 사랑이었다. 그리스도의 봉사 생애에서 그러했던 것과 같이, 바울은 세상의 부정함과 원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전진하였다.
이제 이 위험의 시기에 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자신을 유용하게 수양하며 하나님의 일에 깊은 경험을 가지고 또 열성과 열심이 많은 일꾼들이다. 거룩하고 희생 정신이 많은 사람, 용감하고 진실한 사람, 그리스도를 “영광의 소망”(골 1:27)으로 삼고 거룩한 불로 정결함을 받은 입술을 가지고 “말씀을 전파”(딤후 4:2)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런 일꾼이 없으므로 하나님의 사업이 쇠퇴하고, 치명적인 오류가 무서운 독소와 같이 도덕을 부패시키고 또 많은 사람들의 희망을 잃게 한다.노고에 지친 신실한 기수들이 진리를 위해 희생 당하고 있는데 누가 그 대신으로 나서겠는가?
우리 젊은이들은 선조로부터 그 거룩한 임무를 물려받겠는가? 그들은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이 죽음으로 결원이 생길 때에 그것을 보충할 준비가 다 되었는가? 또 청년 시대에 흔히 있는 이기심과 포부를 버리고 사도들의 명한 것을 지키며 부르심을 따라 그 책임을 다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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