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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의 큰 원동력은 믿음, 소망, 사랑인데, 올바른 성경 연구는 이런 것들에게 호소하게 된다. 성경의 외면적인 미, 그 비유와 표현의 미는 그 진정한 보화 즉 신성의 미를 나타내기 위한 배경에 불과하다.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들의 기록에서, 우리는 그분의 영광의 섬광을 볼 수 있다. “그 전체가 사랑스”(아 5:16)러우신 그리스도에게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난다. 천지에 있는 모든 아름다움은 다 그분에게서 비취는 빛의 몽롱한 반영에 불과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요 12:32)고 말씀하셨다. 성경을 연구하는 학생이 구주를 바라볼 때에, 그의 심령에는 믿음과 동경과 사랑의 신비로운 능력이 생긴다. 사람이 그리스도를 주목하는 삶을 살면, 그가 경모하는 형상에 점점 가까워진다.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빌 3:8-10)노라고 한 사도 바울의 말이 바로 우리 영혼의 말이 될 것이다.
영감으로 된 말씀으로 말미암아 심령에서 솟아나오는 하늘의 평화와 기쁨의 샘은 위대한 감화의 시내가 되어서, 그 미치는 범위 안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축복을 끼쳐 준다. 오늘날의 청소년들, 성경을 손에 들고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생명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가 되게 하고, 또한 그 말씀들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 주는 경로가 되게 한다면, 과연 얼마나 큰 축복의 시내가 세상을 향하여 흐르게 될 것인가? 이 축복의 시내가 사람을 고쳐 주고 안위함을 주는 감화는 실로 측량할 수 없을 것이요, 생명수의 강이요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될 것이다.

제 6 장
체 육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 2)
제 1 절
생리학의 연구

“나를 지으심이
신묘 막측하심이라”(시 139:14)

사람의 정신과 영성은 육체를 통하여 이루어지고 나타나는 것이므로, 정신적 활력과 영적인 힘은 바로 신체적인 힘과 활동에 크게 좌우되며, 신체적인 건강을 증진시키는 일은 곧 건강한 정신과 균형진 품성의 발달을 증진시키는 일이 된다.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누구나, 자신과 이웃,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그의 의무를 분명하게 이해할 수도, 또 이행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건강은 품성과 마찬가지로 충실히 돌봐야 하며, 생리학과 위생에 관한 지식은 모든 교육적인 노력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
오늘날 생리학의 지식이 널리 보편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건강의 원칙들에 대하여는 놀랄 만큼 무관심한 것이 사실이다. 또한, 이러한 원칙들을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도 이를 실행하는 사람들이 매우 적다. 마치, 생명이 정해진 바른 원칙에 의하여 지배되기보다는 오히려 단순히 우연에 의하여 지배되는 양, 사람들은 맹목적으로 그들의 기호와 충동을 좇아 살고있다.생기 있고 활력이 넘치는 젊은이들은 풍부한 힘의 가치를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다. 황금보다 더 값진 보화, 학식이나 지위, 또는 부(富)보다 발전에 있어서 보다 더 본질적인 보화인 생명이 얼마나 경시되고 무모하게 낭비되고 있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권력과 부를 얻으려는 힘겨운 노력 끝에 건강을 잃고 마침내는 그가 소원하는 목적에
거의 도달했을 때 속절없이 쓰러지고 마는가! 반면에 더 튼튼한 체력을 가진 다른 사람들은 오랫동안 바라던 목적을 붙잡았다. 건강 법칙들을 무시한 결과, 불건전한 생활로 악한 습관에 빠져서 현세와 내세의 모든 희망을 잃어버리고 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생리학의 연구에 있어서, 학생들은 체력의 가치를 깨닫도록 지도되어야 한다. 체력을 어떻게 보존하고 발달시켜야 인생의 고투에서 성공할 수 있는지 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생리학과 위생학에 관한 기초 지식을 간단 명료하고 쉬운 내용으로 배워야 한다. 이런 건강 교육은 가정에서 어머니로부터 시작되어 학교에서도 충실히 계속되어야 한다. 학생들이 상급반으로 진학함에 따라, 이런 건강 교육을 계속 실시하여 그들의 생명이 담긴 신체를 스스로 돌볼 만하게 되기까지 충분히 가르쳐야 한다. 학생들은 그들의 모든 신체기관들로 하여금 활력을 유지하게 함으로 질병을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해야 하며, 흔히 걸리는 질병과 상처를 처치하는 방법들을 배워야 한다. 모든 학교마다 생리학과 위생에 관한 교육을 실시해야 하며, 가능한 한 신체의 구조와 그 기능들을 설명하는 교재들과, 몸을 돌볼 수 있는 설비들을 구비해야 한다.일반적으로, 생리학의 연구에는 잘 포함되지 않으나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문제들이 있다. 그것은 생리학이라는 제목으로 학습되는 많은 전문적인 지식보다 훨씬 더 큰 가치가 있는 문제이다. 즉, 건강 교육의 근본 원칙으로서, 자연 법칙은 하나님의 법칙이며, 또 이 자연의 법칙은 십계명이 신성한 것과 똑같이 신성하다는 것을 청소년들에게 가르쳐 주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육체의 모든 기능들을 지배하는 법칙들을 신체의 신경과 근육과 섬유조직에 기록하셨다.
이런 법칙들을 부주의로 흑은 고의로 범하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거스리는 죄가 된다.
따라서, 이런 자연 법칙에 관한 완전한 지식을 가르쳐 주는 일은 얼마나 요긴한 일인가! 이런 법칙들을 아이들의 식사, 운동, 그리고 몸을 돌보는 일에 적용하는 위생학의 원리에 대하여 우리는 보통 이상의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건강 교육에 있어서, 신체가 정신에 미치는 영향은 물론, 정신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도 아울러 강조해야 한다. 정신적인 활동에 의해 촉진되는 두뇌의 전력(電力)은 신체의 모든 기관의 기능들을 활기 있게 한다. 그리고, 그렇게 얻어진 신체 기능의 활력은 질병을 저항하는 데에 헤아릴 수 없는 큰 도움을 준다. 이 점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건강을 유지하고 회복하는 일에 있어서 인간의 의지력과 자제력의 중요성에 대하여 분노, 불만과 이기심, 또는 순결하지 않은 마음은 건강을 해치는 파괴적인 영향을 주는 반면에, 즐거움, 남을 위하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 등은 놀라운 생명력을 가지고 건강을 증진시킨다는 것을 분명하게 가르쳐야 한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잠 17:22)고 한 성경 말씀 가운데에는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많은 생리학적인 진리가 담겨져 있다.
하나님께서는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너로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잠 3:1, 2).“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잠 4:22)고 하셨다. 또 성경은 선포하기를 “선한 말은””마음에 달” 뿐만 아니라 “뼈에 양약이”(잠 16:24) 된다고 하였다.청소년들은 하나님을 “생명의 원천”(시 36:9)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성경 말씀의 기초를 이루는 깊은 진리를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의 창시자이실 뿐 아니라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생명이시다.
햇빛, 깨끗하고 맑은 공기, 음식물 등은 우리의 몸을 구성하고 힘을 유지해 주는 중요한 요소들로써, 모두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원천들이다. 우리가 시간마다 순간마다 생존하는 것은 그분의 생명력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죄로 인해 변질된 것을 제외한 하나님의 선물들은 모두 인간의 생명과 건강과 기쁨을 위해 유용한 것들이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전 3:11)다는 말씀처럼, 참 아름다움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일들을 훼손함으로써가 아니라 만물을 창조하시고 만물의 아름다움과 완전한 모습에서 즐거움을 찾으시는 그분의 법칙에 조화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
신체의 구조를 연구할 때에는 각 기관이 생리 작용을 위해 기이하게 서로 의존하고 조화하는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해주어야한다. 학생들이 관심을 가지고 신체 기능의 중요성을 깨닫게 될 때에, 교사들은 그들이 적당한 발육을 유지하고 좋은 습관들을 길러 가도록 가르치는데 더 큰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
무엇보다도 첫째로 가르쳐야만 하는 일은, 앉고 설 때 올바른 자세를 가지게 하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똑바로 서도록 지으셨다. 그분께서는 사람이 육체적인 유익뿐만 아니라 우아함, 기품, 침착, 용기, 그리고 자립과 같은 징신적이며 도덕적인 미덕까지 소유하기를 원하신다. 이러한 유익들을 가져 오는 데는 올바른 자세를 갖는 일이 크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가르쳐야한다. 교사들은 이 점을 모본과 교훈을 통해서 가르쳐야 한다. 바른 자세란 어떠한 것인가를 모본으로 보여 주고 항상 그런 자세가 생활에서 유지되도록 강조해야 한다.올바른 자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호흡과 음성의 훈련이다. 곧게 앉고 곧게 서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욱 올바르게 호흡할 수 있다.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깊은 호흡 즉 심호흡의 중요성을 인상 깊게 가르쳐야한다. 호흡 기관의 건강한 활동이 혈액 순환을 돕고, 몸 전체의 조직을 활기있게 하고, 식욕을 돋구고,
소화를 촉진시키고, 깊고 기분 좋은 단잠을 자게함으로 신체를 활력 있게 할 뿐만 아니라 정신을 진정시키고 마음을 평온하게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리고, 심호흡을 가르쳐 주는 동시에 생활에서의 그 실행도 강조해야 한다. 이렇게 심호흡을 촉진하는 연습을 시켜서 그 습관이 생활에서 확립되도록 해야 한다.
발성(發聲)의 훈련은 체육에 있어서 또 다른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 일은 허파를 넓히고 튼튼하게 하므로 질병을 예방하게 한다. 글을 읽든지 말을 할 때에 확실하고 올바른 발성을 하려면, 호흡을 할 때 복부 근육이 최대한 충분하게 운동하게 하고 호홉 기관이 압박을 받지 않게 하라. 힘을 목의 근육에 주지 말고 복부의 근육에 주도록 가르치라. 그렇게 하면, 목과 허파에 큰 피로를 주지 아니하고 이런 기관들을 보호하므로 심한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 분명한 발음, 순하고 잘 조화된 어조, 그리고 너무 빠르지 않은 말씨를 쓰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런 일들은 건강을 증진시킬 뿐 아니라 학생의 학업에도 기쁨과 능률을 크게 더하여 준다.건강에 대하여 가르칠 때에, 몸에 꼭 끼는 옷을 입거나 끈을 사용하여 몸을 묶는 것이 생명 유지에 필요한 활동들을 저지하는 얼마나 어리석고 해로운 습관인가를 보여 주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비위생적인 양식의 복장으로 인해 수많은 질병들이 생기므로, 이 점에 대하여도 주의 깊이 가르쳐야할 것이다. 엉덩이나 신체의 어떤 다른 기관들을 압박하는 의복을 입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학생들로 하여금 깨닫게 해야 한다. 의복은 충분한 호흡을 할 수 있고 양팔이 아무런 어려움 없이 머리 위로 올라갈 수 있도록 넉넉히 만들어야 한다. 허파를 압박하는 것은 그 팽창을 저지할 뿐만 아니라 소화와 혈액 순환의 과정들을 방해하므로, 전신을 나약하게 만든다. 이런 모든 나쁜 생활 양식들은 육체적인 힘과 정신적인 힘을 저하시키며, 학생들의 보다 나은 신체적인 발달을 방해하고,
자주 그의 성공을 저해하는 일의 원인이 된다.
위생학의 연구에 있어서, 교사는 열심을 가지고 모든 기회를 활용하여, 개인적인 습관과 주위의 모든 환경을 완전히 청결하게 하도록 가르쳐 주어야 한다. 건강을 촉진하고 정신적인 활동을 북돋우는 일로 매일 목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가르쳐야 한다. 또한, 햇빛과 환기, 위생적인 침실, 그리고 부엌을 청결하게 하도록 하는 일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건강에 좋은 위생적인 침실, 극히 청결한 부엌, 맛있고 정성스럽게 차려진 식탁이 가족의 행복을 증진시키고, 찾아오는 지각 있는 손님의 호의를 사는 일에 있어서 값진 가구로 방을 장식하는 일보다 더 유익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일천 팔백여 년 전에 하늘에서 오셔서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눅 12:23)고 하신 교사의 교훈은 오늘날에도 가장 긴요한 가르침이 된다.
생리학을 연구하는 학생들은 자신들의 연구의 목적이 생리 기능의 어떤 사실이나 원리에 대한 지식을 얻는 데만 있지 않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지식 그것만으로는 그리 유용하지 않다. 학생들은 환기의 중요성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또 환기로 방이 신선한 공기로 채워지더라도 그들의 허파에 충분한 공기가 채워지지 않고서는 불완전한 호흡으로 인하여 몸이 고통을 받게 된다는 사실도 이해해야 하며, 이에 대한 실천이 따라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청결의 필요가 이해되고 필요한 설비들이 공급된다 할지라도 이를 이용하지 아니하는 한 이것들은 다 쓸데없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이런 원칙들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 가장 크게 요구되는 것은, 학생들로 하여금 이 모든 것의 중요성을 깨닫고 그것들을 성실히 실행하게 하는 일이다.하나님의 말씀은 가장 아름답고 인상 깊은 표현을 통해 그분께서 우리의 신체조직에 얼마나 큰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지,
그리고 그 신체 조직을 최선의 상태로 보존해야 하는 우리의 책임이 얼마나 큰지 잘 말해 주고 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고전 6:19).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7).
우리의 육체는 하나님께서 거하기를 원하시는 성전이므로 몸을 청결하게 하고 높고 고상한 생각이 깃드는 곳으로 간직해야 한다는 사상을 학생들이 깨닫도록 가르쳐야 한다. 생리학을 공부하면서 인간이 참으로 “신묘 막측”(시 139:14)하게 지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그들은 경외심을 갖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을 훼손하기보다는 창조주의 영광스러운 계획을 성취하기 위하여 그들은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하려는 선한 욕망을 가질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건강 법칙을 준행하는 것이 어떤 희생이나 자아를 부정하는 일이 아니라, 사실 그대로 측량할 수 없는 특권과 축복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제 2 절
절제와 영양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고전 9:25)

모든 학생은 검소한 생활과 고상한 사상과의 관계를 이해하여야 한다. 우리의 생활이 의지에 지배될 것인가, 아니면 신체에 의해 지배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들 개인이 할 일이다. 청소년들은 스스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결정해야 하며,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장차 만나게 될 세력과, 자기의 운명과 품성을 꼴지을 감화가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부절제는 모든 사람이 경계해야 할 원수이다. 이 가공할 죄악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이 때에 인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일어나서 이를 대적하여 싸워야 할 것이다. 학교에서 절제 문제들에 대하여 교육을 하는 것은 학교가 올바른 방향으로 전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방면의 교육은 모든 학교, 모든 가정에서 실행되어야 한다. 청소년들은, 담배와 술, 그리고 그 밖의 유독한 음식물들이 신체를 파괴하고 두뇌를 흐리게 하며 심령을 타락하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런 것들을 사용하는 사람은 육체적·지적·도덕적 능력을 언제까지나 그 충실한 상태로 보존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명백히 인식해야 한다.그러나, 부절제의 근본 원인을 찾기 위해서는 술이나 담배의 사용 문제보다 더 깊이 파고 들어갈 필요성이 있다. 하는 일이 없다든지,
일정한 목적이 없이 지내든지, 또는 나쁜 친구를 사귀는 일 등은 그 간접적 원인이 될 것이다. 흔히, 이런 원인은 소위 음식에 엄격한 절제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가정의 식탁에서도 볼 수 있다. 소화 불량, 신경의 부당한 흥분, 또는 어떻게 신체를 약하게 해서 정신과 육체의 균형을 잃어버리게 하는 일 등은 다 신체에 대한 정신의 지배를 약하게 하므로 필경에는 부절제한 생활로 전락하게 만드는 것이다. 전도가 유망한 청소년들이 타락하는 것은 건강에 해로운 음식으로 인한 부당한 식욕에 그 원인이 있는 경우가 많다.
차, 커피, 식욕을 자극하는 조미료, 단 과자류, 이런 것들은 모두 소화를 방해한다. 육식도 유해하다. 육류가 원래 자극하는 성질을 가졌다는 사실만으로도 그것을 사용하는데 대한 충분한 반대 이론이 될 수 있다. 전반적으로 동물이 거의 병든 상태라는 사실은 이중적으로 반대의 이유가 된다. 육류는 신경을 자극하고 정욕을 충동질하여 기호가 저급한 방향으로 향하게 한다.
진하고 자극성 있는 음식에 익숙해진 사람은 얼마 가지 않아 그 위가 담백한 음식에 만족하지 않게 된다. 그런 사람의 위는 더욱 많은 양념과 강한 자극성과 흥분을 요구한다. 신경에 혼란이 오고 신체가 약해지면, 의지는 부당한 욕망에 대하여 저항할 힘이 없어진다. 감각이 예민한 위의 내벽은 드디어 가장 자극적인 음식에도 만족할 수 없을 만큼 손상되어 부어 오르게 된다. 그리하여, 강한 술밖에는 진정시킬 수 없는 갈증이 생긴다.경계해야 할 것은 이 악의 시초이다. 청소년들을 가르칠 때에는, 올바른 데서 조금만 벗어나도 그 결과가 엄청나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쳐야 한다. 간단하고 건강에 좋은 음식이 부당한 자극물을 찾는 마음을 없애는 데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가르쳐 주어야 한다. 자제하는 습관을 어렸을 때부터 갖게하라.
청소년들로 하여금, 독립심을 가져야지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게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들로 그들 안에 있는 왕국의 통치자를 삼으셨기 때문에 그들은 거기서 하늘로부터 받은 왕권을 행사해야 한다. 이런 교육을 충실히 할 때에, 그 결과는 학생들에게만 미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널리 미친다. 그 감화는 실로 파멸에 직면한 무수한 남녀를 구출하게 될 것이다.
음식과 지능 발달
음식과 지능 발달의 관계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말한 것보다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정신이 혼란해지고 둔해지는 것은 그릇된 음식물에서부터 비롯된다.
음식을 선택할 때는, 식욕이 안전한 규준(規準)이 된다고 종종 주장되어 왔다. 만일, 당사자가 항상 건강의 법칙을 지켜 왔었다면, 이 말은 사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 세기 동안 지속되어 온 그릇된 습관에 의하여 식욕은 크게 변질되어, 늘 해로운 것만 찾게 되었다. 그리하여, 오늘날에는 식욕을 규준으로 믿을 수 없게 되었다.위생학의 연구에 있어서, 학생들은 각종 음식물의 영양가에 대하여 배워야 한다. 진하고 강한 자극성이 있는 음식물과 영양소가 부족한 음식물에 대해서도 그 영향을 분명히 가르쳐 주어야 한다. 차, 커피, 흰빵, 장아찌, 거친 채소, 캔디, 조미료, 호떡 같은 것은 적당한 영양을 공급할 수 없다. 이런 음식물을 먹음으로 건강을 해친 학생들이 많이 있다. 정신적·육체적으로 활발한 노력을 할 수 없는 심약한 아이들은 대개가 영양이 불량한 음식의 희생자들이다. 곡물, 과실, 견과류, 채소를 적당히 배합한 것에는 모든 종류의 영양소가 포함되어 있어서,
이를 적당히 조리하면 체력과 지력을 증진시키는데 가장 좋은 음식물이 된다.
음식물의 성질만이 아니라 그 식물이 그것을 먹는 사람에게 맞는지의 적응성도 생각해야 한다. 육체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섭취해도 좋은 식물이, 정신적인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맞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한, 식물의 적당한 배합에도 주의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신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나 늘 앉아서 일하는 사람은 한 번의 식사에 너무 여러 가지 종류의 음식을 먹을 것이 아니다.
아무리 영양 있는 식물이라도, 과식하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 자연의 현상은 몸의 여러 기관을 만드는 데 필요한 분량 이상의 음식은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남는 것은 도리어 신체에 방해가 된다. 많은 학생들이 공부를 지나치게 해서 몸이 약하게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과식이 그 원인인 것이다. 건강 법칙에 적당히 주의하면 정신적 부담에서 오는 위험이란 거의 없을 것이며, 많은 경우에 있어서 소위 정신이상이라고 하는 것은 위에다 너무 많은 것을 넣어서 몸을 피로하게 하고 정신을 약하게 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대체로 하루 세 번의 식사보다는 두 번의 식사를 하는 것이 좋다. 저녁식사가 너무 이르면 전에 먹은 음식의 소화에 장애가 되고, 또 너무 늦으면 잘 때까지 소화가 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위는 적당한 휴식을 얻을 수가 없다. 수면에 방해가 오며, 두뇌와 신경이 피로해지고, 아침밥에 대한 식욕이 떨어지며, 전신의 원기가 회복되지 아니하므로, 그 날의 일이 민활하지 못하게 된다.
식사와 수면 시간을 규칙적으로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신체의 성장은 휴식 시간에 이루어지므로 수면은 필수적이다. 특히 청소년들에게는 규칙적이고 충분한 수면을 취하게 해 주어야 한다.할 수 있는 한, 식사를 급히 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식사 시간이 짧다면. 그만큼 식사의 분량을 적게 해야 한다. 잘 씹지 않고 먹는 것보다는 차라리 한 끼를 거르는 것이 좋다.
식사 시간은 친하게 교제하고 원기를 회복하는 시간이 되게 해야 한다. 마음에 짐이 되고 격분되는 모든 일을 잊어버려야 한다. 신뢰와 친절, 그리고 온갖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가질 때에, 담화는 즐겁게 되고, 피로가 풀리며, 고상한 사상이 넘쳐 날 것이다.
* *
모든 일에 있어서, 절제를 지키고 규칙적이 되는 것은 큰 힘이 된다. 인생행로를 평탄케 하는 데 매우 유효한, 온화하고 침착한 성질을 배양하게 하는 절제와 규율을 지키는 것은 실로 환경이나 천부적 재능보다 더 유력한 것이 된다. 동시에, 이렇게 얻어진 자제의 능력은 누구나 장차 직면하게 될 엄격한 의무와 현실에서 성공을 가져다 주는 가장 가치 있는 장비의 하나가 될 것이다.
지혜의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잠 3:17). 왕관을 쓴 제왕보다 더 나은 운명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앞에 둔 우리의 청소년들은 지혜자의 말에 포함된 교훈을 숙고해야 할 것이다. “대신들은 취하려 함이 아니라 기력을 보하려고 마땅한 때에 먹는 이 나라여 복이 있도다”(전 10:17).
제 3 절
휴 양

“범사가 기한이 있고”
(전 3:1)

휴양과 오락은 같은 것이 아니다. 휴양이란 쉬면서 기운을 돋우는 것으로, 힘을 얻고 기르는 데 유용한 것이다. 그것은 일상의 염려와 일로부터 떠나 심신에 원기를 회복케 하고, 새로운 정력을 가지고 삶의 중요한 일에 대할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반면, 오락이란 환락을 구하는 것으로, 흔히 그 도를 넘기기 쉬우며 유용한 활동에 요구되는 정력을 빼앗아 가므로, 인생의 참된 성공에 방해가 되는 것이다.신체는 활동하도록 되어 있다. 활동적인 운동에 의하여 육체가 건강을 유지하지 못하는 한, 지적 능력은 지속적으로 그리고 최고도로 발휘될 수 없다. 교실은 육체적 활동을 거의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비위생적인 요건들이 있어서, 아이들 특히 연약한 아이들에게는 몹시 고된 장소가 된다. 통풍이 충분히 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나쁜 의자가 자세를 굽게 하여 폐장이나 심장의 활동을 압박한다. 이런 곳에서, 어린아이들은 혼탁하고 병균이 섞여 있을지도 모르는 공기를 호흡하면서 하루에 세 시간 내지 다섯 시간을 지내야 한다. 평생 동안 병약하게 되는 원인이 이런 교실 때문에 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두뇌는 인체 중에서 가장 미묘한 기관이며 전신의 신경을 지배하는 곳이므로 가장 큰 손상을 받는다. 조숙하도록 조장하거나 과도한 활동을 하도록 강요할 때, 그리고 이런 일이 비위생적인 조건 아래서 행해질 때, 두뇌는 약해지고, 그 나쁜 영향이 평생에 미치는 수가 많다.
아이들을 오랫동안 실내에 가두어 두어서는 안 된다. 신체 발육의 기초가 충분히 이루어질 때까지는 공부에 너무 몰두하게 해서는 안 된다. 8세부터 10세까지의 어린이들에게는 밭과 정원이 제일 좋은 교실이요, 어머니가 가장 좋은 교사이며, 만물이 제일 좋은 교과서이다. 아이가 학교에 다닐 나이가 되더라도, 책에서 얻는 지식보다 건강을 더 중요한 문제로 여겨야 한다. 아이들을 육체와 지능의 발육에 가장 적합한 환경에 두도록 해야 한다.
아이들만 공기와 운동 부족의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이 아니다. 하급 학교는 물론 상급 학교에 있어서도, 이런 건강상 중요한 점을 소홀하게 다루는 경우가 매우 많다. 많은 학생들이 매일 좁은 교실에서 책을 읽기 위해 몸을 구부리고 있다. 충분히 깊은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좁아지고 혈액 순환이 둔하되기 때문에, 발은 차고 머리는 더워진 채 계속 앉아 있게 된다. 신체가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지 못하면, 근육이 약해지고 전체 조직이 쇠잔해져서 병에 걸리게 된다. 흔히, 이런 학생은 평생을 병약자로 지낸다. 만일, 그들이 적당한 조건 아래서 학업을 계속하고 실외의 일광과 공기 속에서 규칙적인 운동을 하였다면, 체력과 지력이 같이 증진되어 학업을 마칠 수 있었을 것이다.교육을 받기 위하여 한정된 시간과 학비를 가지고 노력하는 학생은 신체
운동에 시간을 쓰는 것이 헛된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계속적으로 책만 들여다보는 사람은, 나중에 두뇌가 민활하지 못하게 되고 말 것이다. 신체의 발달에 적당히 주의하는 사람은 전 시간을 연구에만 바치는 사람보다 더욱 학문적으로 진보할 것이다.
오직 한 가지 방향의 사색에만 몰두하는 사람은 자칫 그 두뇌의 균형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지력과 체력을 동등하게 쓰고, 변화 있는 사색을 모색할 때에는, 모든 신체의 능력이 안전하게 발휘될 것이다.
신체의 비활동은 지력뿐만 아니라 도덕적 능력까지도 저하시킨다. 신체의 조직 전체가 연결되어 있고 사람이 그것을 통하여 하늘과 더불어 교제하는 뇌신경은 속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신경 조직의 감응 전류가 순환을 방해받아 활력이 약해지고 지적 감수성이 둔해질 때에는, 사람의 도덕성을 일깨우는 일이 더욱 어렵게 된다.
또한, 과도한 연구 활동은 두뇌에 혈액의 양을 증가시킴으로 자제력을 저하시키는 병적 홍분 상태를 가져 오며, 너무나 자주 감정과 기분에 따라 동요하게 만든다. 이렇게 하여, 불순한 것에 대하여 문이 열린다. 육체의 능력을 전혀 사용하지 않든지 또는 잘못 쓰는 일로 인하여 오늘날 전세계에 타락의 풍조가 크게 퍼지고 있다. “교만함과 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겔 16:49)이 옛날 소돔에 멸망을 이르게 하였던 것처럼, 오늘날 이 시대에 있어서도 그것은 인류의 진보를 막는 치명적인 원수인 것이다.
교사들은 이런 일을 분별하여, 학생들을 이 방면으로 교육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올바른 생활은 올바른 것을 생각하는 데 달렸고, 육체의 활동은 순결한 생각을 갖게 하는 데 근본 요건이라는 것을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학생들을 위한 적당한 휴양에 대한 문제는 때때로 교사를 당혹케 한다. 많은 학교에서 체조는 유용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나, 면밀한 감독을 하지 않으면 과도해지기가 쉽다. 체육관에서 역기(力技)를 하려다가 평생 불구자가 된 청소년들이 많이 있다.
체육관의 운동은 아무리 잘 지도된다고 하더라도 이를 실외의 휴양 대신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이므로, 우리 학교에서는 외기에서 얻는 휴양 기회를 더 많이 주어야 한다. 학생들은 활발한 운동을 해야 한다. 목적 없이 게으른 것처럼 경계해야 할 악은 별로 없다. 또한, 운동 경기의 경향은 진정으로 청소년의 행복을 원하는 자로서는 우려할 만한 문제이다. 교사들은 이 운동이 학생의 재학 중 성적의 진보와 사회 생활에서의 성공에 줄 영향을 생각하므로 염려하게 되는 것이다. 경기는 학생의 시간을 대부분 차지하고 있는 공부로부터 그 마음을 떠나게 한다. 이런 운동 경기는 청소년들이 인생의 실제적인 신실한 일을 준비하는 데 별 도움이 안 된다. 세련되고 관대하며 참으로 사내다운 품격을 만드는 데 그 영향은 효과가 없다.
축구나 권투 같은 인기 있는 종류의 경기는 야만 행위의 학습장이 되었다. 그런 오락은 고대 로마의 경기 특성을 발전시키고 있다. 권력에 대한 애착, 단순한 폭력의 자랑, 생명에 대한 무모한 경시 등은 청소년들을 놀랄 만큼 타락시키는 영향을 주고 있다.그 밖에 다른 운동 경기도 비록 그처럼 야만스럽지 않다 하더라도 과도하게 행하기 쉬운 점에서 찬성할 수 없다. 그런 운동 경기는 마음에 환락과 흥분을 자극하여 유용한 일을 싫어하게 하고, 실제적 의무와 책임을 회피하려는 경향을 조장한다.
그런 경기는 또한 인생의 진실한 현실과 안전한 즐거움의 취미를 없애는 경향을 가졌다. 이렇게 하여, 도락과 방종을 향한 문이 열리고, 무서운 결과가 따르게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환락을 위한 회합도 역시 마음과 품성의 참된 발달에 방해가 된다. 경박한 교제와 낭비와 향락의 습관, 또한 너무 잦게 도락을 구하는 일이 생활에 굳어져서, 그것이 일생을 그르치게 하는 것이다. 부모와 교사들은 이런 오락 대신에 건강에 좋고 활기찬 유희를 많이 제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다른 모든 일에서 그렇게 하신 것처럼 이 휴양의 문제에도 길을 보여 주셨다. 하나님이 친히 돌보시고 지도하셨던 고대 백성들의 생활은 단순하였다. 그들은 자연의 품속에서 살았다. 자녀들은 부모들과 함께 일하며 천연계의 보고에서 아름다움과 신비를 배웠다. 그리고, 조용한 들과 삼림 가운데서, 여러 세대를 통하여 거룩한 위탁물로 전해 내려오는 위대한 진리에 대하여 숙고하였다. 그런 훈련은 강한 사람을 만들어냈다.
오늘날 생활은 부자연해지고 사람들은 퇴화되었다. 우리는 그런 고대의 단순한 습관으로 완전히 돌아갈 수는 없으나, 거기서 교훈을 배워서 휴양을 말 그대로 육체와 정신과 심령의 참된 건설의 시간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가정이나 학교의 환경은 휴양 문제와 큰 관계가 있다. 가정이나 학교의 위치를 택할 때에는 이런 점들을 생각해야 한다. 사회의 요구나 습관이나 또는 금전보다도 정신과 육체의 건강을 더욱 중히 여기는 사람은 자녀들을 위하여,
그 환경에서 천연계의 가르침과 휴양을 얻을 수 있는지의 조건을 찾아 구해야 한다. 모든 학교가 학생들이 경작할 토지를 가지고 또한 들과 삼림을 가까이 할 수 있는 장소에 위치를 잡는다면 교육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학생들이 휴양하는 데서 최선의 결과를 얻으려면 교사의 개인적인 협력이 있어야 한다. 참된 교사가 학생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선물은 교사가 몸소 그 학생의 친구가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특히 청소년들은 상대와 더불어 공감하는 일을 통하여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므로,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감화를 주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을 이해하여야 한다. 교사와 학생이 공감대의 줄을 튼튼히 하는 데는 교실 밖에서 함께 즐거이 교제하는 방법이 가장 좋다. 어떤 학교에서는 휴식 시간에 교사가 언제나 학생들과 함께 있게 한다. 교사는 학생과 함께 연구하고 학생의 소풍에도 따라가며 스스로 학생의 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 학교에서도 이런 습관이 더욱 일반화되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비록 교사에게 요구되는 희생은 클지라도, 나중에 충분히 보답될 것이다.청소년들이 자기 자신만을 위한 휴양을 하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의 휴양을 위할 때에 더 큰 축복을 받게 된다. 아이들은 나면서부터 열성이 있고 감동받기 쉬우므로 남의 말에 곧 감응한다. 초목을 심는 계획을 할 때에, 교사는 학교의 뜰과 교실을 아름답게 한다는 점에다가 학생들의 관심을 기울이게 한다. 그렇게 하면, 이중의 이익이 생길 것이다. 즉, 학생들은 그들이 아름답게 하려는 것을 상하게 하거나 보기 싫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세련된 취미,
정돈된 것을 좋아하는 마음, 힘든 일을 하는 습관 등이 조성되고 우정과 협동심이 발달되어, 그의 평생에 미치는 축복이 될 것이다.
학생들이 정원에서 일을 하거나 들이나 숲으로 소풍을 가면서 그런 유쾌한 장소로부터 떨어져 있는 다른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들과 함께 이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고 싶다는 마음을 갖도록 장려함으로써, 학생들은 새로운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주의 깊은 교사는 여러 가지 기회에 학생들이 올바른 행동을 하도록 지도해야 한다. 교사는 특히 학생들에게 거의 무한한 신뢰와 존경의 대상이다. 집안일을 돕는 것, 날마다의 의무에 충실하는 것, 병자나 가난한 자를 위하여 봉사하는 일 등, 교사가 학생에게 일러준 일은 거의 실패 없이 그 효과가 나타난다. 이렇게 함으로 또한 일석 이조의 효과를 보는 것이다. 그 친절한 조언은 조언을 한 교사에게 반응될 것이다. 부모들이 나타내는 감사와 협력은 교사의 무거운 짐을 덜어 주고 그 길을 밝혀 준다.
때때로, 휴양과 체육을 위하여 유의하는 것이 학교의 정규적인 과정에 지장이 되는 것이 사실이나, 그 지장은 정말로 장애가 되는 것이 아니다. 심신의 원기를 얻고 무아의 정신이 배양되며, 교사와 학생의 공통된 관심과 친밀한 교제의 끈으로 인해, 휴양과 체육에 바쳐진 시간과 노력은 그 백배의 효과로 보응되는 것이다. 청년들에게 있어서 매우 자주 위험의 근원이 되는 그 끊임없는 정력을 사용할 안전한 길이 부여될 것이다. 마음에 선한 심성을 심어 주는 것은 악에 대한 방벽으로서, 무수한 율법이나 훈계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것이다.
제 4 절
노작 교육(勞作敎育)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살전 4:11)

창세 때에는 노동이 축복으로 주어졌다. 그것은 진보와 능력과 행복을 의미하였다. 죄에 대한 저주로 지상의 상태가 변화되면서, 노동의 조건에도 변화가 생겼다. 오늘날, 노동에는 염려와 피로와 고통이 따르지만, 오히려 그것은 행복과 발전의 원천이 되며, 유혹에 대한 방벽이 되는 것이다. 이 노동의 단련은 자아 방종을 막고, 근면과 순결과 굳은 마음을 북돋운다. 그리하여, 노동은 인류를 타락에서 구원하는 하나님의 큰 계획의 일부분이 되는 것이다.
청소년들은 노동의 참된 품위(品位)를 깨닫도록 지도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계속적으로 일하고 계시는 분임을 그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하는 것이다. 천연계의 만물은 각각 할당된 일을 하고 있다. 모든 피조물은 활동하고 있으니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기 위하여 우리도 활동해야 한다.
노동하는 중에,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땅과 그 보화를 우리에게 주셨으므로, 우리는 거기에서 우리의 소용과 생활의 만족을 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나무를 자라게 하시지만, 이를 재목으로 만들고 집을 짓는 일은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금과 은, 쇠와 석탄을 땅속에 감추어 두셨지만, 이런 것들은 우리가 노력을 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시고 계속적으로 이를 지배하고 계신 동시에,
그분이 가지신 능력과 조금 비슷한 능력을 우리에게도 주셨다. 우리는 자연의 세력을 지배할 어느 정도의 권능을 받은 것이다. 마치 하나님께서 혼돈한 중에서 아름다운 땅이 나오게 하신 것처럼, 우리는 혼란한 중에서 질서와 아름다움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만물은 죄악으로 인하여 훼손되어 있으나, 우리가 자신이 한 일이 완성되어 가는 것을 보고, 태초에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땅을 보시면서 “심히 좋다”라고 하신 그 기분과 같은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청소년들을 위한 가장 유익한 운동은 그들이 유용한 일을 하는데서 얻어지게 된다. 어린아이들은 노는 중에 기분 전환과 발전을 얻는 것이므로, 그 유희는 신체뿐만 아니라 지능과 영성의 발달을 촉진시키는 것이라야 한다. 아이가 체력과 지능을 얻게 됨에 따라, 차차 어떤 유용한 활동을 하는 중에 가장 좋은 휴양을 얻게 될 것이다. 청소년들에게 손으로 유용한 일을 하도록 훈련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인생의 짐을 지도록 가르치는 것은 그 마음과 품성의 성장을 촉진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인생이란 진지한 일과, 책임을 지고 고생스런 일을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청소년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그들은 실제적인 비상 사태에서 대처할 수 있는 남녀가 되도록 훈련되어야 한다. 조직적 훈련과 규율적 노동은 인생의 부침(浮沈)에 대한 방벽이 될 뿐만 아니라 원만한 발달을 위해서도 유용한 것임을 청소년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노동의 귀중함에 대해서는 말도 하고 저술도 하지만, 오히려 이것을 천하게 여기는 경향이 보편화되었다. 젊은 남자들은 교사, 서기, 상인, 의사, 변호사같은 직업을 원하거나 또는 어떤 육체적 노동을 요구하지 않는 지위를 차지하고자 애를 쓴다. 젊은 여인은 가사를 피하고 다른 방면의 교육을 구한다. 남녀를 물론하고 신실히 일하는 이유로 그 품격이 저하되는 법은 없다는 것을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 게으름과 이기적인 의뢰심이야말로 사람의 품격을 저하시키는 것이다. 게으름은 자아 방종을 낳고, 그 결과는 헛되고 빈약한 생활을 가져 오며, 모든 죄악이 자라나는 온상이 되게 한다.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와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히 6:7, 8).
학생들이 시간을 소비하는 여러 종류의 과학 중에는 유용한 일이나 행복을 위하여 별로 필요치 않는 것이 많다. 그러나, 청소년들에게 절대로 필요한것은 자신들이 날마다 행해야 할 의무를 충분히 깨닫는 일이다. 필요한 경우에는, 젊은 여인이 프랑스 어나 대수, 심지어는 피아노를 배우지 못하고 지낼지라도 좋은 떡을 만들고, 몸에 알맞는 옷을 짓고, 그 밖에 가사에 속하는 여러 가지 일들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가족 전체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서는 요리하는 사람의 기술과 지혜만큼 중요한 것은 다시 없다. 잘못된 조리와 비위생적인 음식을 준비하게 되면, 주부는 어른의 유용한 영양 섭취와 아이들의 발육을 저해하며, 심지어는 파멸케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 반면에, 몸의 필요에 맞고 구미를 끌고 입에 맞는 음식을 준비함으로, 주부는 그런 실패를 하지 않고 올바른 방향으로 성공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인생의 행복은 많은 점에서 날마다 하는일을 충실히 하는 것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가정을 만드는 데 있어서 남녀는 다 각자의 할 책임이 있으므로, 사내나 여자 아이를 물론하고 가족으로서의 의무에 대한 지식을 가져야 한다. 잠자리를 펴고 방안을 정돈하며, 그릇을 닦고 음식을 준비하며, 세탁하고 옷을깁는 일이 사내로서 사내답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남자로 더욱 행복하고 유용한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다. 또한, 여자 아이가
마구를 지우고 말을 몰며 쇠스랑이나 큰 호미는 물론이요 망치나 톱을 쓸 줄 알면, 인생의 비상 사태에서 더욱 잘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청소년들로 하여금 날마다 하는 근로를 얼마나 귀히 여기시는지를 성경에서 배우게 한다. 그들로 하여금 “선지자의 생도”(왕하 6:1-7) 즉 생도들이 자기들을 위하여 친히 집을 짓다가 빌어 온 도끼를 잃자 그것을 건지기 위하여 이적을 행하신 기사를 읽게 하라. 목수 예수님이나 천막 제조업자 바울이 직인(職人)으로서의 일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에 연결케 된 기사를 읽게 하라. 그들로 하여금, 소년이 가진 다섯 개의 떡 덩어리가 많은 사람을 먹이기 위하여 행하신 기이한 이적에 사용되고, 재봉하는 여인 도르가가 죽음에서 다시 생명을 얻어 불쌍한 사람들을 위하여 옷 만드는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일, 잠언에 기록된 지혜 있는 부인은 “양털과 삼을 구하여 부지런히 손으로 일하며”, “그 집 사람에게 식물을 나눠 주며 여종에게 일을 정하여 맡기며”, “포도원을 심으며”, “그 팔을 강하게 하며”, “간곤한 자에게 손을 펴며”, “그 집안 일을 보살피고 게을리 얻은 양식을 먹지 아니” 한다는 말씀을 읽게 하라(잠 31:13, 15-17, 20, 27).
이런 사람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그가 “칭찬을 받을 것이라 그 손의 열매가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그 행한 일을 인하여 성문에서 칭찬을 받으리라”(잠 31:30, 31)고 하신다.
모든 아이들에게 있어서 최초의 실업 학교는 그 가정이어야 한다. 그리고,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학교마다 노작(勞作) 교육의 설비를 가지도록 해야한다. 이런 교육은 대체로 체육관의 효과와, 그 밖에도 가치 있는 훈련의 특전을 준다.
노작 교육에 대해서는 전보다도 훨씬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최고의 지적·도덕적 교양을 위한 것뿐만 아니라 신체의 발육과 실업 교육도 할수 있는 최상의 설비를 갖춘 학교들이 설립되어야 할 것이다. 농업, 제조업-할 수 있는 대로 가장 유용한 실업을 포함시켜서-또한 가정 경제, 영양 요리, 재봉, 위생적인 의복 만들기, 환자의 치료, 그 밖의 여러 가지 그 비슷한 교육을 해야 한다. 정원, 작업장, 치료실을 준비해야 하며, 모든 일은 반드시 숙련된 교사에 의하여 지도되어야 한다.
일은 일정한 목표가 있어야 하며, 철저하게 처리해야 한다. 누구나 여러가지 방면의 기술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가질 것이나, 적어도 어떤 한 가지에 대하여는 숙련되는 것이 절대로 요긴하다. 모든 청소년들은 학교를 졸업할 때에 어떤 종류의 실업이나 직업의 지식을 수득하여, 필요하면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할 만큼 되어야 한다.
학교에서 실업 교육을 실시하는 데 가장 흔히 부딪치는 장애물은 거기에 필요한 적지 않은 경비 문제이다. 그러나, 그 달성될 목적은 그 비용을 들일만한 가치가 있다. 우리에게 맡겨진 일 중에 청소년의 교육처럼 중요한 사업은 없다. 이 사업을 바로 달성하기에 쓰여진 모든 경비는 유용히 사용된 자금인 것이다.재정적 결과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노작 교육에 사용된 경비는 가장 확실한 경제가 된다는 사실이 입증될 것이다. 많은 우리의 청소년들은 이렇게 하여 길거리와 술집을 멀리하게 되고, 병원과 감화원에 들 비용은 정원과 작업장, 목욕탕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을 내고도 오히려 남을 것이다. 또한, 근면의 습관이 붙어서, 유용하고 생산적인 일에 숙련된 청소년 자신들을 생각할 때,
사회와 국가를 위한 그들의 가치를 누가 다 평가할 수 있으랴!
연구로 인한 피로를 휴식케 하는 예로, 바깥 공기 속에서 일하고 전신으로 운동을 하는 것은 가장 유익한 일이다. 어떤 노작 교육이라도 농업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없다. 농업에 종사하는 데 대한 흥미를 일으키고 이를 조성하기 위해서, 교사는 더 큰 노력을 해야 한다. 교사는 농업에 대하여 말씀하신 성경 구절에 주목해야 한다. 곧, 땅을 가는 것은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경륜이었고, 전세계의 지배자였던 첫째 사람 아담은 농사 지을 동산을 받았으며, 또한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고결한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밭을 가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생애에 찾아오는 기회들을 보여 주어야 한다. 지혜 있는 사람은 말하기를 “왕도 밭의 소산을 받느니라”(전 5:9)하였고, 땅을 일구는 자에 대하여 성경에는 “그의 하나님이 그에게 적당한 방법으로 보이사 가르치셨”(사 28:26)다고 하고, 다시 “무화과나무를 지키는 자는 그 과실을 먹고”(잠 27:18) 하였다. 농업으로 생계를 얻는 사람은 많은 유혹을 면하고, 대도시에서 일하는 자로서는 얻을 수 없는 많은 특권과 축복을 누리게 된다. 거대한 기업가 합동(企業家合同)과 산업 경쟁 시대의 오늘날, 밭을 가는 자처럼 참된 독립과 근로에 대한 공정한 보수를 확실히 받을 수 있는 자는 별로 많지 않다.농업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학생들로 하여금 이론을 배우게 할 뿐만 아니라 이를 실습하게 해야 한다. 토지의 성질과 준비, 또 각종 농작물의 가치, 최상의 생산 방법 등에 대하여 학생들에게 과학적 지식을 배우게 하는 동시에, 그 지식을 실지로 응용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교사들은 학생들과 함께 일하면서, 숙련된 기술과 지식을 가지고 하는 노력이 어떤 결과를 이룩하는지를 실증할 것이다.
그리하여, 진심으로 하겠다는 의욕이 생기고, 일을 가능한 최상의 방법으로 하겠다는 욕망이 환기된다. 이런 욕망은 운동, 일광, 맑은공기 등 원기를 주는 효능과 함께 농사에 대한 애착을 일으키고, 필경에는 많은 청소년들이 농업을 자기의 직업으로 선택케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날 대도시를 향하여 너도 나도 이전하는 풍조를 막는 일에 크게 영향을 미쳐야 한다.
이렇게 하여, 우리 학교는 또한 실업자군(失業者群)의 대책에도 효과적인 원조를 줄 수 있다. 속절없이 굶주리는 무수한 무리들이 날마다 범죄율을 증가시키고 있으나, 만일 그들을 지도해서 토지를 경작하게 하여 숙련되고 부지런히 일하도록 할 수만 있다면, 그들은 행복하고 건전한 독립 자급자로 생활할 수 있을 것이다.
노작 교육의 혜택은 지적인 직업을 가진 자에게도 필요하다. 사람이 혹 우수한 두뇌와 민활한 사색력을 가지고 자기가 선택한 직무를 수행할 만한 기량이 있을지라도, 때로 그 직업에 적합한 자격을 갖추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주로 서적에서만 얻은 교육으로는 표면적 사색에 빠지기 쉽다. 실지로 하는 일은 면밀한 관찰력과 독자적인 생각을 조성시킨다. 이 일이 바르게 실행되면, 소위 상식이라는 실제적인 지혜의 발달에 도움이 된다. 그것은 계획하고 실행하는 능력을 발달시키고 용기와 견인성을 강하게 하는데, 거기에는 또한 재치와 숙련이 요구된다.
병실에서 실지로 일함으로 전문적 지식의 기초를 닦은 의사는 예리한 통찰력과 원만한 지식과 응급 조치를 취하는 능력을 가지는데, 이 모든 것은 실지적 훈련에 의해서만이 층분히 얻을 수 있는 요긴한 자격인 것이다.
목사와 선교사와 교사가 일상 생활의 실제적 상황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가진 것이 드러날 때에, 사람들에게 미치는 그들의 감화는 크게 증가될 것이다. 선교사로서의 성공이나 생활 그 자체는 그가 가진 실제적인 지식에 좌우되는 일이 많다. 식사를 준비하고, 사고나 비상 사태에 대처하고, 질병을 치료하며, 집이나 혹은 예배당을 건축할 수 있는 능력 여하가 그의 평생 사업의 성공과 실패를 판가름하기도 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교육을 받으면서 자급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은 가장 귀한 훈련이 될 것이다. 빚을 지거나 부모의 희생에 의지하는 대신에, 청년 남녀들은 자립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 그들은 돈이나 시간, 힘, 기회의 가치를 알고, 게으름에 빠지거나 돈을 낭비하는 습관의 유혹을 받는 일이 훨씬 적어질 것이다. 경제, 근면, 극기, 실제적인 사업 경영, 확고한 목적 등과 같은 교훈이 이렇게 얻어지고, 삶의 투쟁을 위한 그들의 준비가 가장 요긴한 일부분이 되어질 것이다. 학생들이 자조의 공과를 배우게 되면, 많은 학교들을 고전케 하고 학교의 유용성을 너무도 마비시켜 온 빚의 무거운 짐으로부터 학교 기관들을 보존할 수 있을 것이다.교육이란 인생에 있어서 싫은 일이나 무거운 짐으로부터 피하는 길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며, 그 참된 목적은 더욱 좋은 방법과 더욱 높은 목표를 가르침으로 그 일을 가볍게 하는 데 있다는 것을 청소년들에게 감명시켜야 한다. 인생의 참된 목표는 자신만을 위하여 할 수 있는 한 가장 큰 이익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각자가 자기의 할 일을 감당함으로 창조주께 영광을 돌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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