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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증언 2권의 시대적 배경

교회증언 1권은 새로 설립된 남은 교회의 가르침과 경험과 사업의 시작과 발전에 주로 관련된 권면을 제시하였고 2권은 교인들의 개인적 경건에 거의 모두를 할애하였다. 증언 1권을 이루는 열 넷의 증언 소책자가 나타난 13년간 출판 사업은 굳은 기반 위에 서게 되었고 교회가 조직되었으며 재정 유지 체제가 이루어졌고, 교회는 큰 건강 프로그램에 뛰어들었다. 마지막 기사가 탈고되었을 때에 미시간 주 배틀크릭의 리뷰앤드 헤랄드 출판소에서는 인쇄물이 계속 흘러나왔고, 근처의 새로 설립된 요양소는 완전 가동중이었다. 남북 전쟁의 암울한 해들은 지나고, 교회에는 기회의 때가 왔다. 주어진 임무는 확고한 토대를 고수하고 경계를 넓혀가는 것이었다. 교회의 계속되는 성공의 열쇠는 신자 개인의 온전한 상태였다.
1868년 초, 1권 끝부분의 기사에서 설명된 대로 엘렌 G. 화잇은 교회 전체의 유익을 위해, 그 때까지만 해도 일반적으로 유포되지 않았던, 개인을 위한 증언들을 출판하기 시작했었다. 이 개인 증언들에 관하여 그녀는 이렇게 진술하였다. “이 증언들에는 유사한 상황에 있는 수천 수만의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책망과 교훈이 다소 들어 있다. 그것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상황에 맞는 빛을 가지고 있다.” 교회증언 1권, 631(영문).1868년 2월부터 1871년 5월까지의 3년동안 교인 개인들에게 전해진 교훈은 현재 증언 2권으로 구성된 증언 15-20호의 거의 전체 내용을 이루고 있다. 교훈은 예리하고 실제적인 것으로 구설수, 식욕의 방종 결혼 관계 등과 오도된 열성, 탐욕, 광신 등에 이르기까지
개인적 경험과 신앙적 취향의 모든 국면을 다루고 있다.
2권에 해당하는 기간의 시작 부분에서 화잇 목사 부부는 화잇 목사의 건강 조건 때문에 미시간 주 그린빌로 얼마간 물러가 있었다. 그들은 곧 미시간에 인접한 주들에 있는 신자들과 함께 모이고, 여행하는 활동을 재개하였다. 1868년 11월 그들은 배틀크릭으로 돌아와 집을 마련하였다.
두달 전인 1868년 9월 미시간 주 라이트에서 야영회가 열렸다. 이런 모임으로는 첫번째 모임이었는데 너무 큰 축복을 얻었기 때문에 다음해부터는 합회들이 야영회를 정규적인 프로그램에 포함시키게 되었다. 화잇 목사 부부는 그 곳에 초청으로 받았고 그 후 수년간 여름은 주로 연례 야영회에서 보내게 되었다. 2권의 후반부에서 그러한 “회합”에 관한 권면을 찾아볼 수 있다.
교회증언 2권의 3년 동안 현대 진리의 사업이 꽤 진전되었다. 배틀크릭의 건강 요양소는 곤란한 침체기를 지나고 전성기에 들어갔다. 1868년 후반부에 J. N. 로프보로우와 D. T.로보도는 태평양 해안에서 재림교위 햇불을 밝혔다. 같은 해 유럽의 안식일 준수 재림교도 50명의 회중이 배틀크릭의 대총회 형제들과 서신을 나누게 되었고 이듬해 그들은 대표자를 파견하여 선교사들을 보내어 달라고 탄원하였다. 그러나 이 모든 이득과 발전에도 불구하고 대적은 교인들의 영성을 저하시키기 위해 꾸준한 노력을 계속하여, 그들이 이 세상에 애착을 갖게하고, 교회 안을 비나의 정신으로 물들이고, 자선의 샘들을 고갈시키며, 특히
젊은이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였다. 이러한 위험한 풍조에 대항하여 하나님의 사자 화잇 여사는 음성과 글로써 교인들이 온전함과 의의 높은 표준에 이르도록 충성되고 열렬하게 기별을 전하였다.
어떤 경우에 화잇 여사는 어느 한 교회의 여러 교인들의 개인적인 생활과 관계되는 계시들을 받았다. 집회를 통하여 개인적 증언들을 전달한 후에 그 교훈들을 기록하여 관계된 교회에 보내었다. 그러한 편지들이 상당수 증언 2권에 포함되었다.
이 711쪽으로된 증언을 사려 깊게 읽는 자는 다양한 주제 뿐만 아나라 이 짧은 기간에 개인 증언을 위해 할애된 방대한 양에 깊은 감명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발행된 것은 이 기간 화잇 여사가 기록한 것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증언 15호가 나오기 몇 주 전에 화잇 목사는 리뷰 앤드 헤락드 지에 알림의 글을 썼다. 화잇 여사에게서 구두로 증언을 받은 사람들은 기록된 것을 받을 때까지 인내로써 기다려 줄 것을 거기서 당부하였다. 이 일에 있어서 화잇 여사의 근면과 끈기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이 일을 거의 두 달이나 손에 잡고 있다. 동부 지방 여행중에 그녀는 가능한 모든 시간을 그러한 증언들을 필사하는 데 이용하였다. 그녀는 집회 시간에 다른 이들이 설교하고 가르치는 중에 많은 증언들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귀향 후에 이 일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건강과 기력에 손상을 입었다. 그녀는 보통 하루 스무장 내지 마흔장을 기록한다.” 리뷰 앤드 헤랄드, 1868년 3월 3일.화잇 여사는 증언 15호의 발행에 안심하고 절대적을 휴식이 필요하다고 기대했지만, 열흘 후에 그녀는 위탁된 많은 기별들을 전하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다시 투신하게 되었다. 6월 12일 금요일 저녁 그녀는 배틀크릭에서 “청년들에게 공개적으로” 말하였고 여러번
개인적으로 기별을 전하였으며 거의 10시까지 이야기하였다. 화잇 목사는 이렇게 보고한다.
“가장 엄숙하고 감동적인 분위기로 단상 위에서 말하고 있는 동안 하나님의 능력이 그녀 위에 임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난생 처음어로 놀라움 가운데서 이 일을 보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을 알고 온전히 만족하였다. 이상은 20분간 계속되었다.” 리뷰 앤드 헤랄드, 1868년 6월 16일.
교회증언 2권의 120쪽에 해당하는 부분은 1868년 6월 12일의 이상 속에 주어진 교회와 개인을 위한 권면을 전개한 것임이 분명히 진술되었다. 많은 부준이 같은 해 10월 2일 아이오와 파일롯 그로브와. 10월 25일 뉴욕 아담스 센타에서 주어진 이상을 전개하는 것에 할애되었다.
이 많은 이상들 때문에 화잇 여사는 거의 쉬지 않고 기록해야 했다. 1870년 미시시피 강을 따라 올라가는 선편 여행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화잇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화잇 여사는 쓰고 있다. 가련하 여인이다! 그녀는 휴식을 취해야 하며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고 쾌활한 분위기를 만끽해야 하는 이 때에도 이 사람 저 사람을 위해서 거의 영원한 필기가 계속되어야 하다니 너무 지나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유지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에 위안을 얻어야만 한다.” 리뷰 앤드 헤랄드, 1870년 7월 5일.
먼저 개인들에게 전달된 이 많은 증언들은 교회게세 큰 축복으로 남아있다. 어느 교인이나 간에 이 열렬한 권면과 경고를 읽을 때에 초기 재림 교인들의 문제가 오늘의 문제이며, 그들의 시험이 우리의 시험이며, 그 때의 특권이 지금이 특권임을 발견하지 못할 자가 없으리라. 우리는 엘렌 G. 화잇이 증언 2권 도입부에서 진술한 말씀 때문에 더욱 이 기별들을 소중히 여긴다. “주님께서는 내게 보여 주신 것처럼 직접적이며 강하게 제시할 방도가 달리는 없다.”
엘렌G. 화잇 저서
출판 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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