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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4 장
그리스도 우리의 대제사장

하늘 성소에서 행하여지는 봉사 사업에 대한 정당한 이해는 우리 믿음의 근거이다. ― 초기문집, 21(영문).
지상 성소는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식양대로 모세에 의하여 건축되었다. 그것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가” 있었다. 그것의 두 거룩한 곳들은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이었으며 우리의 크신 대제사장 그리스도는 “성소와 참 장막에 부리는 자라 이 장막은 주께서 베푸신 것이 요 사람이 한 것이 아니니라”(히 9:9, 23, 8:2). 사도 요한은 계시 중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을 볼 수 있는 허락을 받았다. 그 때에 그는 “보좌 앞 에 일곱 등불 켠 것”을 보았다.
이 선지자는 하늘 성소의 첫째 칸을 볼 수 있는 허락을 받았다. 거기서 그는 지상 성소에서 금촛대와 향단으로 예표된 “일곱 등불”과 “금단”을 보았다. 다시 “하나님의 성전이 열”렸을 때 그는 안쪽 휘장 안에 있는 지성소를 보았다. 거기서 그는 하나님의 율법을 넣어 두기 위해 모세가 만든 거룩한 궤로 대표된 “하나님의 언약궤”(계 11:19)를 보았다.
그리고 요한은 하늘에 있는 성소를 보았다고 말했다.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봉사하시는 성소는 참 성소이며 모세가 지은 성소는 그것의 모형이었다.
만왕의 왕께서 거하시는 하늘의 성전에는 “그에게 수종하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 시위한 자는 만만이며”(단 7:10) 그 성전은 영원한 영광으로 충만하였다. 빛나는 수호자인 스랍들이 경외심을 가지고 그들의 얼굴을 가리우는 그곳은 지상의 어떠한 건물을 가지고도 그 크기와 영광을 나타낼 수 없다. 그러나 하늘 성소에 관한 중요한 진리와 사람의 구속을 위하여 거기서 행해지는 위대한 사업은 지상 성소와 그 봉사에서 배울 수 있다.
우리 구주께서는 승천하신 후에 우리의 대제사장으로서 그곳에서 당신의 사업을 시작하시기로 되어 있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신”(히 9:24)다고 하였다. 그리스도의 봉사가 두 큰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하늘 성소에서 각 봉사마다 일정한 시간과 구별된 장소를 가지는 것처럼 이 지상의 예표적인 봉사도 매일의 봉사와 연례적인 봉사의 두 부분으로 이루어졌고 각 봉사에 성막의 한 칸 씩이 바쳐졌다.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 회개한 신자를 위해 자기의 피로 탄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는 것처럼 제사장도 매일의 봉사에서 죄인들을 위하여 희생 제물의 피를 성소에 뿌렸다.
그리스도의 피가 회개한 죄인을 율법의 정죄에서 풀어 줄 것이지만 죄를 완전히 없이하지는 못할 것이었다. 그 죄는 최후의 속죄 때까지 성소의 기록에 남아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모형에 있어서도 속죄 제물의 피는 회개한 사람에게 죄를 제거하였으나 그것은 속죄일까지 성소에 남아 있었다.
최후의 보상의 큰 날에 죽은 사람들은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의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계 20:12)을 것이다. 그때에 그리스도의 속죄의 공로로 말미암아 회개한 모든 사람의 죄가 하늘 책에서 도말된다. 이와 같이 하여 성소는 죄의 기록에서 해방 혹은 정결케 되는 것이다. 모형에 있어서 이 속죄의 대사업, 곧 죄를 도말하는 일은 대속죄일의 봉사 곧 속죄 제물의 피의 공로로 말미암아, 성소를 더럽혀 왔었던 죄를 제거함으로써 성취된 지상 성소의 정결로 예표되었다. ― 부조와 선지자, 356-358(영문).
사단은 우리가 가장 잘 알아야 할 일들을 생각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의 마음을 빼앗고자 무수한 간계를 고안한다. 그 기만자의 괴수는 속죄의 희생 제물과 전능하신 중보자를 밝히 보여 주는 위대한 진리를 싫어한다. 그는 그에게 있어서 만사는 사람의 마음을 예수님과 그분의 진리에서 떠나게 하는 일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안다.
예수께서는 찔림을 받은 당신의 손과 상함을 입은 몸으로 인류를 위하여 탄원하시며, 당신을 따르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씀하신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고후 12:9).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 11:28-30). 그러므로 아무도 자기의 결점을 고칠 수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이길 믿음과 은혜를 주신다.
오늘날 우리는 대속죄일에 살고 있다. 표상적 의식에서, 대제사장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속죄의 봉사를 하는 동안 모든 사람은 다 하나님 앞에 죄를 회개하고 겸손한 태도로써 그들의 심령을 괴롭게 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었다. 그와 같이 자기 이름이 생명책에서 도말되기를 원치 아니하는 모든 사람은 그들의 은혜의 시기가 얼마 남지 아니한 오늘날 죄를 슬퍼하고 진정으로 회개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심령을 괴롭게 해야 한다. 그들은 심각하고 철저하게 마음을 살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부허(浮虛)하고 경박한 정신은 반드시 버려져야 한다. 지배권을 장악하고자 일어나는 악한 경향들을 이기고자 하는 모든 사람 앞에는 반드시 격렬한 투쟁이 있다. 준비하는 일은 개인적으로 할 일이다. 우리는 단체적으로 구원을 얻지 않는다. 사람의 순결과 헌신이 다른 사람의 그런 특성의 결함을 보충해 줄 수 없다. 비록 온 인류가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각 개인의 사건을 조사하시기를 마치 세상에 그 한 사람밖에는 다른 사람이 없는 것처럼 세밀히 하실 것이다. 모든 사람이 조사를 받되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어야 한다.
속죄의 봉사가 마칠 무렵의 광경은 실로 엄숙하다. 거기에 관련된 관심은 참으로 심각하다. 심판은 오늘날 하늘에 있는 성소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 사업은 오랫동안 계속되어 왔다. 신속히, 얼마나 신속히 오늘날 살아 있는 자들의 사건이 취급될지 아무도 모른다. 엄위하신 하나님 앞에 우리의 온 생애가 드러날 것이다. 이 시점에서 각 사람이 구주의 권고에 유의하는 것이 무엇보다 요긴하다.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니라”(막 13:33). … 한 구주의 권고를 주의함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조사 심판의 사업이 마치게 되면 모든 사람의 운명은 생사간에 결정될 것이다. 은혜의 시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늘 구름을 타고 재림하시기 조금 전에 마쳐진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때의 일을 미리 내다보시고 요한계시록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1, 12)
의인과 악인은 그들의 생활 상태 그대로 여전히 세상에 살면서 하늘 성소에서 철회할 수 없는 마지막 결정이 내린 것도 모르고 밭갈고 집짓고 먹고 마시고 할 것이다.
각 사람의 운명이 결정되고 범죄한 인류에 대한 은혜의 초청이 철회되는 마지막 시간은 밤중에 도둑이 오는 것처럼 가만히 눈에 뜨이지 않게 올 것이다. ― 각 시대의 대쟁투, 488-491(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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