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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1 장
기도회

기도회는 집회 가운데서도 가장 흥미 있는 모임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기도회가 빈번히 빈약하게 경영된다. 많은 사람들이 설교 예배에는 참석하나 기도회를 등한히 한다. 여기 재고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여야 하며 집회가 흥미있고 매력적일 수 있도록 그 집회를 경영할 계획을 세워야 한다. 사람들은 생명의 떡에 굶주리고 있다. 저들이 기도회에서 그 생명의 떡을 발견한다면 저들은 그것을 받기 위하여 그 집회에 나갈 것이다.
길고 지루한 얘기와 기도는 어느 곳에서든지 부적당한 것이며 특히 사교 집회에서 그러하다. 앞장서고 항상 말할 태세를 갖춘 자들로 인해 소심하고 수줍어하는 사람들의 간증이 밀어 내어지도록 허용된다. 대개 몹시 천박한 사람들이 말을 가장 많이 한다. 저희의 기도는 길고 기계적이다. 저들은 저들의 말을 듣고 있는 천사들과 사람들을 지루하게 한다. 우리의 기도는 짧아야 하며 요점을 바로잡은 것이라야 한다. 아무라도 그렇게 드릴 기도가 있으면 그 길고 지루한 기도는 골방에서 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대의 마음에 들어오시게 하라. 그리하면 모든 말라빠진 형식은 씻은 듯이 사라질 것이다. ― 4T, 70, 71.
공중 기도는 길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저희의 기도는 짧아야 하며 저희가 꼭 원하는 것을 나타내고 그 이상의 말은 하지 말라는 생각을 명심시키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저희 기도의 길이와 요지를 말씀하시고 세상의 축복과 영적 축복에 대한 저희의 소원과 이 축복에 대한 저희의 감사할 바를 말씀하셨다. 이 표본적인 기도는 얼마나 함축성이 있는 기도인가! 그 기도는 모든 사람의 현실적인 필요를 포괄하고 있다. 일반 기도는 어떤 기도든지 1, 2분이면 족하다. 기도가 특별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인도되고 성령 안에서 기도가 드려지는 실례가 있을 수 있다. 열망적인 영혼은 고민하게 되고 하나님을 찾아 신음한다. 그 심령은 야곱이 씨름하였던 것처럼 씨름하고 하나님의 능력의 특별한 나타나심이 없는 한 편안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되어지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무미건조하고 설교하는 방식으로 기도를 드린다. 이런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기도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저들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다면, 그리고 저희가 어떤 일을 행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저들은 저희의 방약 무인한 행동에 깜짝 놀랄 것이다. 그것은 마치 우주의 창조주께서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하여 일반적인 문제들에 관한 보고라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저들이 기도의 형식으로 주님께 강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든 기도들은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와 같다. 이런 기도는 하늘에서 고려되지 아니한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이런 기도를 부득이 듣게 될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이런 기도에 싫증을 낸다.
예수께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 당신의 원하시는 것들을 알리시기 위하여 한적한 숲속이나 산에 가셨다. 하루의 사업과 볼 일을 마치고 피곤한 사람들이 쉼을 찾을 때에 예수께서는 그 시간을 기도에 바치셨다. 우리는 기도할 마음을 억제하지 말 것이니 그것은 기도와 경성함이 너무나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한 성령의 인도와 깨달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일이 더욱 적다. 열성있고 효력있는 기도는 항상 합당한 것이니 결코 싫증나지 아니할 것이다. 이런 기도는 기도하기를 좋아하는 모든 사람의 흥미를 일으키고 그들을 소성시킬 것이다.
은밀한 기도를 태만히 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모일 때에 그처럼 길고 지루하고 어긋난 기도를 드리는 이유인 것이다. 저들은 저희의 기도로 일주일 동안의 등한히 한 의무를 되풀이해서 말하고 마치 저희의 태만을 보충하고 저들을 괴롭히는 가책받는 양심을 달래기를 원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핵심에서 벗어난 기도를 반복한다. 저들은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서 스스로 기도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이런 기도는 빈번히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저희 자신의 영적 흑암의 낮은 수준으로 끌어 내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리스도인들이 깨어 기도하라는 그리스도의 교훈을 마음에 간직한다면 저들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에 한층 더 슬기롭게 될 것이다. ― 2T, 581, 582.
기도로써 더욱 찬양하라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시 50:6). 우리 중에 얼마만큼 감사를 표해야 할 것인지 합당하게 생각해 본 사람이 있는가? 우리는 주님의 자비가 아침마다 새롭다는 것과 그분의 성실이 다함이 없다는 것을 기억 하는가? 우리가 그분에게 의존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분의 모든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고 있는가? 그렇기는커녕 오히려 우리는 너무도 흔히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 내려오”(약 1:17) 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건강한 자들은 얼마나 흔히 날마다, 해마다 그들에게 끊임없이 주어지는 놀라운 자비를 잊어버리는가. 그들은 그분의 모든 은혜에 대하여 하나님께 찬양을 돌리지 않는다. 그러나 질병이 엄습하면 하나님을 기억한다. 회복을 받기위한 강한 욕망은 열렬한 기도를 하게 하는데, 이것은 옳은 일이다. 하나님은 건강할 때와 마찬가지로 병든 때에도 우리의 피난처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사정을 그분께 맡기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에 관한 걱정으로 허약과 질병을 조장한다. 만일 그들이 불평을 그치고 의기소침과 우울에서 벗어날 것 같으면 그들의 회복은 더욱 확실해질 것이다. 그들은 참으로 오랫동안 건강의 축복을 누린 것을 감사한 마음으로 기억해야 한다. 그들이 이 귀중한 은혜를 회복받으면 그들은 그들의 창조주께 새로운 의무를 지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열 사람의 문둥병자가 고침을 받았을 때 오직 한 사람만이 예수님을 찾아서 그분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왔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에 마음이 감동되지 않은 지각 없는 아홉 사람처럼 되지 말아야 한다. ― 교회증언 5권, 318.예상되는 불행을 곰곰이 생각하는 습관은 지혜롭지 않고 그리스도인적이 아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현재의 기회를 이용하지 못한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의무를 이행하고 그 시련들을 견디도록 요구하신다. 우리는 오늘 말과 행동으로 잘못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이지 않으면 안 된다.
오늘 산 믿음을 실천함으로써 우리는 원수를 정복해야 한다. 우리는 오늘 하나님을 찾고 그분의 임재 없이 만족한 채 안식하지 않으리라고 작정해야 한다. 우리는 이 날이 우리에게 허용될 수 있는 마지막 날인 것처럼 경계하고 일하고 기도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생애는 참으로 얼마나 열렬해질 것인가! 우리는 모든 말과 행동으로 예수님을 참으로 밀접하게 따라가게 될 것인가!
하나님께서 작은 일에 관심을 두심
귀중한 기도의 특권을 올바르게 깨닫고 이용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우리는 예수께 가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그분께 알려야 한다. 우리는 더 큰 어려움은 물론이요 우리의 작은 염려와 걱정을 그분께 가져갈 수 있다. 우리를 곤란하게 하고 어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이든지간에 우리는 기도로써 그것을 주님께 가져가야 한다. 우리가 발걸음마다 그리스도의 임재가 필요함을 느낄 때 사단은 그의 시험을 개입시킬 기회를 거의 얻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가장 선량하고 동정 깊은 친구에게서 우리를 분리시키려고 그는 심사 숙고해서 노력한다. 우리는 예수님 외에 아무도 우리의 막역한 친구로 삼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모든 것을 그분께 안심하고 알릴 수 있다.
형제 자매들이여, 그대들이 예배를 위하여 모일 때 예수께서 그대들을 만나신다는 것을 믿고 그분께서 그대들에게 즐겨 복을 주시고자 하신다는 것을 믿으라. 자아에게서 눈을 돌려 예수님을 바라보고 비할 데 없는 그분의 사랑에 대하여 이야기하라. 그분을 바라봄으로써 그대들은 그분의 형상으로 변화 될 것이다. 그대들이 기도할 때는 간단 명료하게 하고 바로 요점으로 들어가라. 그대들의 긴 기도로 주님께 설교하지 말라. 마치 배고픈 어린이가 그의 육신의 아버지께 떡을 구하듯이 생명의 떡을 구하라. 만일 우리가 단순함과 믿음으로 하나님께 구할 것 같으면 그분께서는 필요한 모든 축복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
기도는 가장 거룩한 영혼의 활동이다. 그것은 진실하고 겸손하고, 열렬해야 하며,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발한 새 마음의 욕망이어야 한다. 탄원자가 거룩한 임재 앞에 있음을 느낄 때 자아는 잊어버린 바 된다. 그는 인간적인 재능을 과시하기 위한 욕망을 갖지 않을 것이다. 그는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고자 노력하지 않고, 영혼이 갈망하는 축복을 얻고자 노력할 것이다. ― 교회증언 5권, 204-207.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에는 공중의 앞에서든지 혹은 은밀한 방에서든지 주님 앞에 무릎을 늘 꿇고 하는 것이 우리의 특권이다. 우리의 모본이신 예수께서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눅 22:41)였으며 그분의 제자들도 “무릎을 끓고” 기도하였다고 기록되었다(행 9:40, 20:36, 21:5). 바울은 말하기를 “이러하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엡 3:14, 15)라고 하였고, 에스라는 하나님 앞에 이스라엘의 죄를 고백하려고 “무릎을 꿇”(스 9:5)었다. 다니엘은 “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단 6:10)다. ― 복음 교역자, 178(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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