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교회에 보내는 권면

  • List
 
   

서 론

주 만나기를 예비함
모든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은 예수께서 저들을 위하여 예비하러 가신 그 아름다운 본향으로 데려가시려고 오실 그 때를 간절한 마음으로 고대하고 있다. 그 하늘 본향에는 죄나 실망이나 주림이나 가난이나 질고나 사망이 다시는 없을 것이다. 사도 요한이 충성한 자에게 임할 특권을 명상하였을 때에 그는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요일 3:1, 2)느니라고 외칠 수 밖에 없었다.
품성이 예수와 같이 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주신 목표이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함을 받은 인간 가족들이 하나님과 같은 품성으로 화하는 것이 태초부터의 하나님의 계획이셨다. 이 계획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에덴동산의 우리의 처음 조상은 얼굴을 직접 대면하여 이야기하는 방법으로 그리스도와 천사들에게서 교훈을 받을 것이었다. 그러나 사람이 범죄한 후에는 다시는 이런 방법으로 하늘 천사들과 자유로이 이야기할 수 없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지도를 받지 못하는 상태로 두시지 않게 하기 위하여 백성들에게 당신의 뜻을 계시하시는 다른 방법으로 택하셨으니 그 중에서도 뛰어난 방법으로는 선지자들, 곧 하나님께서 전하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기별들을 당신의 백성들에게 그대로 전달하여 주는 남녀 선지자들을 매개로 취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이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민 12:6)하고 설명하셨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알리고 깨우쳐서 저들이 살고 있는 시기를 알고 이해 할 뿐만 아니라 장래 임할 일에 대해서도 깨닫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하시는 바였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리라”(암 3:7). 이것이 “빛의 아들”(살전 5:5)인 하나님의 백성을 세상 사람들과 대조되게 한다.
선지자의 하는 일이란 다만 미래의 예언만 말하는 것이 아니요 그 이상의 것을 포함한다. 성경 중에 여섯 책을 기록한 하나님의 선지자 모세는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거의 기록하지 아니하였다. 모세의 일이 보다 넓은 의미로 묘사된 것은 호세아로 되었으니 이른바 “여호와께서는 선지자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며 선지자로 저를 보호하셨거늘”(호 12:13)이란 말씀이 그것이다.
선지자란 그 동료들에 의하여 지명되거나 혹은 자천(自薦)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택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는 것은 사람의 중심을 보시고 아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신 하나님의 수중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하나님의 백성의 역사에 있어서 남녀가 다 같이 때에 따라 하나님께 택하심을 받아 당신을 대변하는 자가 됐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교통의 통로로서 하나님에게 택함을 받은 이 남녀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거룩한 이상으로 저들에게 계시하신 바를 말로 전하기도 하고 기록하기도 하였다. 하나님의 귀중한 말씀이 저들이 전하는 기별을 이루었다. 이런 선지자들을 통하여 인간 가족들이 그들의 심령에 엄습해 오는 갈등, 곧 그리스도와 그 천사들, 사단과 그 천사들 사이에 있는 쟁투에 대해서 깨달음을 갖게 되었다. 우리는 지상 최후의 날에 행하여지는 이 쟁투에 대해서 알게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업을 돌보시고 또 주 만나기를 기다리는 남녀들의 품성을 온전하게 하시기 위하여 마련해 놓으신 방법들에 대해서 알게 될 것이다.
마지막 성경 기자들인 사도들은 마지막 날의 사건들에 대한 명백한 묘사들을 우리에게 주었다. 바울은 “고통하는 때 “에 대해서 기록하였고 베드로는 자신들의 정욕대로 행하면서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라고 묻는 기롱하는 자들에 대해서 경고하였다. 이 시기에 교회는 투쟁을 만나게 될 것인 바 요한은 사단이 “남은 자손 … 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나오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이 성경 기자들은 예수께서 오시기 전에 당신의 백성들에게 특별한 빛과 도움을 주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심을 알았다. 바울은 기술하기를 그리스도의 오심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교회 곧 재림교회는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고(고전 1:7, 8) 하였다. 교회는 연합하고 온전하며 좋은 지도력과 예언의 신의 선물로 말미암아 축복을 받을 것인 바 곧 사도와 선지자와 복음 전하는 자와 목사와 교사가 교회 안에 있게 될 것이다(엡 4:11). 사도 요한은 말세의 교인들 곧 “남은 교회”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계 12:17)는 자이며 계명을 지키는 교회임을 밝히고 있다. 이 남은 교회는 또한 “대언의 영”(계 19:10)인 “예수의 증거”를 갖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예언의 교회인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가 존립하게 되자 그 교회 안에 예언의 신을 두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셨다는 것은 명백하다. 하나님께서 지나간 여러 세기에 있어서 특히 곤고한 시기에 당신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신 것과 똑같이 쟁투가 치열하여지고 때가 위급하여진 지상 종말의 시기에 당신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은 매우 합당한 일이다.
그리하여 이 예언의 교회인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가 백여년 전, 예언으로 말미암아 지정된 바로 그 시기에 존립하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거룩한 이상으로 내게 보이셨다”고 말하는 음성이 우리 중에 들리게 된 것이다. 이 말은 자랑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여 말하라는 부르심을 받은 17세의 소녀가 한 말이었다. 70년이라는 신실한 봉사를 통하여 지도하며 시정하며 교훈하는 그 음성이 우리들 가운데 들렸다. 그리고 그 음성은 하나님의 택하신 사자 엘렌 G. 화잇의 지칠 줄 모르는 붓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로 온 수많은 책들을 통하여 오늘날에도 여전히 들리고 있다.
그리스도와 사단간에 있는 대쟁투에 대한 이상
1858년 3월 중순의 일요일 오후에 미국 동부의 한 마을에 있는 교사(校舍)는 예배드리기 위하여 모인 남녀들로 가득 차 있었다. 제임스 화잇 장로가 어떤 청년의 장례식을 주장하고 장례 설교를 하고 있었다. 그가 말하기를 마쳤을 때에 엘렌 G. 화잇 부인은 슬퍼하는 자들에게 몇마디 말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는 일어서서 1, 2분가량 이야기하다가 이내 중단하고 말았다. 사람들은 그의 입술에서 나올 다음 말을 들으려고 쳐다보았다.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외침이 점점 강력해지면서 세 번 반복 되는 것을 듣고 어지간히 놀랐다. 화잇 부인은 묵시를 보고 있었다.
화잇 장로는 화잇 부인이 받은 묵시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그는 화잇 부인이 열 일곱 살이 된 어린 때부터 묵시들을 받아 왔다고 설명하였다. 그는 화잇 부인의 눈이 열려 있어서 먼 데 있는 것을 무엇인가 응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가 주위의 사물에 대해서 전혀 의식을 하지 못하고 자기 주위에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그들에게 말하였다. 그는 민수기 24장 4절과 16절을 들어 말하였다. 거기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 전능자의 이상을 보는자 엎드려서 눈을 뜬 자”에 대한 말씀이 있다.
그는 화잇 부인이 묵시를 보는 동안 숨을 쉬지 아니하였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니엘 10장 17절을 펴서 다니엘이 묵시를 보는 동안의 경험에 대해서 읽었다 “내 몸에 힘이 없어졌고 호흡이 남지 아니하였사오니” 라고 그는 읽었다. 그 다음에 화잇 장로는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나와서 화잇 부인이 묵시를 보는 동안 그를 시험해 보라고 청하였다. 그는 항상 이런 시험을 자유롭게 하도록 허락하였고 묵시를 보는 동안 의사를 데리고 와서 시험할 수 있다면 그것도 즐겨 허락하였다.
사람들은 가까이 다가서서 화잇 부인이 숨을 쉬지 않으면서도 그의 심장은 정상적인 고동을 계속하고 그의 뺨 색깔도 보통이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거울을 가져와서 얼굴에 갖다 댔으나 거울에 김이 조금도 서리지 아니하였다. 그 다음에 저들은 초를 가져다가 거기에 불을 댕기고 그의 코와 입 가까이에 갖다 댔다. 그러나 불꽃은 흔들리지 않고 꼿꼿이 서 있었다. 사람들은 화잇 부인이 숨을 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방 주위를 걸어다니며 그에게 계시되는 사물에 대해서 짧은 탄성을 발하며 이야기할 때에 그의 팔을 부드럽게 움직였다. 다니엘과 같이 처음에는 육신의 힘이 없어지고 이어서 초자연적인 능력이 그에게 주어졌다(단 10:7, 8, 18, 19참조).
화잇 부인은 두 시간 동안 묵시를 보았다. 그는 두 시간 동안을 한 번도 호흡하지 아니하였다. 그리하여 묵시가 그칠 무렵에 그는 숨을 깊이 들여마셨다가 약 1 분간 정지하고 호흡을 다시 한 다음에 곧 이어 정상적인 호흡을 하였다. 그와 동시에 그는 주위의 사물을 알아차리기 시작하였고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서도 의식하게 되었다.
화잇 부인이 묵시 보는 것을 종종 본 일이 있는 마르다 아마돈 여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묵시를 보는 동안 그의 눈은 떠 있었다. 호흡은 없었지만 어깨와 팔 다리를 부드럽게 움직여서 그가 묵시 보는 것을 표현하였다. 아무라도 그의 팔 다리를 움직일 수 없었다. 그는 종종 때로는 자기 주위에 전개되는 하늘이나 지상의 광경을 본 대로 표시하는 외마디 말과 또는 몇 마디 이야기를 하는 수도 있었다.
그가 묵시 중에 처음 발한 말은 ‘영광’이란 말이었는데 이 소리는 처음에는 가까이에서 하는 것처럼 들렸다가 그 다음에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들리는 것처럼 사라져버렸다. 이것이 때로는 반복되었다. …
묵시를 받는 동안 참석한 사람 가운데 흥분하는 이가 없었고 공포를 일으키는 일도 없었다. 그 장면은 엄숙하고 조용하였다. …묵시가 끝나서 그가 하늘의 광명에서 벗어나 말하자면 지상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을 때에 그는 최초의 정상적인 호흡을 하면서 긴 한숨과 더불어 ‘어둡다’고 외치곤 하였다.
그리고는 맥없고 힘이 없었다.”
이제 우리는 그 교사(校舍)에서 두 시간이나 묵시를 받은 이야기로 되돌아 가야 되겠다. 이 묵시에 대해서 화잇 부인은 후에 이렇게 기록하였다.
“내가 10년 전에 본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에 있는 각 시대의 대쟁투에 대한 묵시 중 대부분이 반복되었고 나는 그것을 다 쓰라는 지시를 받았다.”
묵시 중에 그는 자기 앞에 전개되는 모든 장면이 실지로 목격하는 것과 같이 생각되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가 하늘에 있었고 죄와 루스벨의 타락을 목도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 다음에 그는 세계의 창조를 목도하였고 우리의 시조가 에덴동산에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저희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것을 보았다. 성경의 역사가 계속해서 빨리 그의 앞을 지나갔다. 그는 부조들과 이스라엘 선지자들이 가진 경험들을 보았다. 그 다음에 그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으심 그리고 하늘로 올라가셔서 대제사장으로서 줄곧 봉사하고 계심을 목도하였다.
그 다음에 그는 제자들이 나아가서 복음 기별을 땅 끝까지 전파하는 것을 보았다. 배도와 이에 따른 암흑 시대가 얼마나 신속히 그 뒤를 따랐던가! 그 다음에 그는 묵시 중에 고상한 남녀들이 저희의 생명을 내걸고 진리를 지키는 개혁 사업을 보았다. 그는 1844년에 하늘에서 시작한 심판의 장면으로 이끌려가서 그 다음에 현 시대로 이끌려 왔으며 다시 미래로 이끌려가서 하늘 구름을 타고 오시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보았다. 그는 천년기의 장면과 지구가 새롭게 되는 광경을 보았다.
화잇 부인은 자기 앞에 전개된 이 선명한 묘사들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간 후 그가 묵시 중에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하는 일에 착수하였다. 약 6개월 후에 219쪽의 작은 책자가 발행되었는데 제목은 곧 “그리스도와 그의 천사들과 그리고 사단과 그의 천사들간의 대쟁투”였다.
이 작은 책은 대환영을 받았다. 왜냐하면 이 책은 교회가 장래 당할 경험을 매우 생생하게 묘사하였고 사단의 계획과 세상의 마지막 투쟁에 교회와 세상을 오도(誤導)하려는 그의 방법을 폭로해 놓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대로 예언의 신을 통하여 말세에 말씀하신다고 하는 것은 재림신도들에게 얼마나 감사한 일이겠는가.
신령한 선물이라는 이 작은 책에 매우 간결하게 기록된 대쟁투에 대한 설명은 후에 초기문집의 마지막 절반에다가 번각(飜刻)하여 현재는 그 책에서 이를 찾아볼 수 있다.그러나 교회가 자라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주께서는 잇따른 많은 묵시를 통하여 더욱 상세히 대쟁투의 이야기를 공개하셨으므로 화잇 부인은 1870년에서 1884년 사이에 예언의 신이라고 불리는 4권의 책에다 이를 고쳐 썼다. 살아남는 이들이라는 책은 대쟁투 이야기의 보다 중요한 부분을 이 네 책에서 뽑아 낸 것이다. 여러 나라 말로 출판된 이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묵시 가운데서 본 대쟁투에 관한 것을 알려 주고 있다. 화잇 부인은 후에 또 각 시대의 쟁투 총서라는 5권의 책-부조와 선지자, 선지자 왕, 시대의 소망, 사도행적
그리고 대쟁투-에서 대쟁투 전반에 관한 것을 매우 세밀하게 제시하였다.
이 책들은 창조로부터 시작하여 그리스도교 시대에 이르기까지 성경의 이야기와 병행하여 그 이야기를 줄곧 종말 시기까지 이끌고 가므로 큰 빛과 용기를 준다. 이 책들이야말로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을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책들이다. 우리는 이 경험 가운데서 다음의 보증의 성취를 보게 된다.“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리라”(암 3:7).
대쟁투 이야기에 대해서 그가 이 책들에 기록한 바 빛이 어떻게 자기에게 임하였던 가를 기록하는 중에 화잇 부인은 이와 같이 말하였다.
“성령의 빛을 통하여 선악간의 오래 지속된 쟁투에 대한 장면이 이 책들의 저자에게 공개되었었다. 나는 때때로 생명의 임금이시요 우리 구원의 주 되시는 그리스도와 악의 임금이요 죄의 창시자이며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제일 먼저 어긴 자인 사단 사이에 벌어진 대쟁투의 역사(役事)를 볼 수 있는 허락을 받았다. … 하나님의 성령께서 당신의 말씀의 위대한 진리와 과거와 미래의 장면에 대해서 나의 마음을 열게 하셨을 때에 나는 이와 같이 계시받은 바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라는 명령을 받았다. 즉 지난 시대에 있어서의 쟁투의 역사를 더듬어 볼 것과 특별히 신속히 다가오는 미래의 쟁투에 대해서 빛을 비춰 주기 위하여 이를 제시하라는 명령을 받은 것이다.”
빛이 어떻게 선지자에게 임하였는가
우리가 이미 본 바와 같이 한 번은 이스라엘 자녀들의 경험 중에 여호와께서 백성들에게 당신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들과 교통하시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이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민 12:6).
이 책 중의 각처에서 그대들은 일정한 육체적 현상이 수반된 대쟁투의 묵시에 관한 이야기를 읽게 된다. 어떤 사람은 왜 묵시가 이런 방법으로 주어졌느냐고 매우 논리적인 질문을 할지 모른다. 그것은 의심할 것 없이 사람들의 신뢰를 확립시켜서 하나님께서 참으로 이 선지자에게 말씀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로 확신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화잇 부인은 묵시를 받는 동안의 신체적 조건에 대해서 자주 언급하지 않았으나 한 번은 이렇게 말하였다. “이 기별들은 모든 사람의 믿음을 구체화하기 위하여 주어진 것이니 곧 이 마지막 시대에 우리로 예언의 신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하려 함이다.”
화잇 부인의 사업이 발달함에 따라서 성경의 시험 방법인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는 시험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열매가 익으려면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주께서는 처음부터 묵시를 주시는 것과 관련이 있는 증거들을 주셔서 사람들이 믿도록 하신 것이었다. 그러나 모든 묵시를 다 공회상에서 받은 것이 아니며 뚜렷한 신체적 현상이 수반된 것도 아니다. 이 장(章)벽두의 성경절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친히 “이상으로” 선지자에게 알리기도 하나 또 한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신다는 것을 보았다. 다음에 다니엘이 언급한 것과 같은 것이 예언적인 꿈이다.
“바벨론 왕 벨사살 원년에 다니엘이 그 침상에서 꿈을 꾸며 뇌 속으로 이상을 받고 그 꿈을 기록하며 그 일의 대략을 진술하니라”(단 7:1).
다니엘은 몇몇 실례들을 가지고 자기에게 계시된 것에 대해서 말할 때에 “내가 밤 이상 가운데 보았다”고 말하고 있다. 화잇 부인의 경험 가운데 밤 시간에 그의 정신 활동이 쉬고 있을 때에 묵시를 받은 적이 종종 있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을 그 서두로 시작한 것을 보게 된다. “밤 이상 가운데서 어떤 사건이 나에게 분명히 제시되었다”고 한 바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선지자에게 예언적 꿈으로 자주 말씀하셨던 것이다. 예언적인 꿈과 밤의 이상 그리고 일반적인 꿈과의 관계에 대해서 의문이 일어날지 모른다. 화잇 부인은 이에 대해서 1868년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일상 생활의 사물에서 기인되는 꿈들이 많이 있다. 이런 꿈에는 하나님의 성령께서 아무런 관계를 하시지 않으신다. 거짓 이상이 있는 것과 같이 거짓 꿈도 또한 있는 바 이런 꿈들은 사단의 영에 충동을 받은 것들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꿈들은 이상이 그러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분류해 낼 수 있다. 이와 같은 꿈들은 이런 꿈을 꾼 인물과 또 그 꿈을 받은 환경을 참작하면 그 꿈이 순수한 것인지의 여부를 스스로 증명하여 준다.”
한 번은 화잇 부인의 만년에 그의 아들 W. C. 화잇 장로가 확실한 지식이 부족한 자들에게 알려 주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질문을 화잇 부인에게 하였다. “어머니, 어머니는 밤에 계시를 받으셨다고 하는 이야기를 종종 하시고 꿈속에 빛이 임한 것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요. 우리는 다 꿈을 꿉니다. 어머니께서 매우 빈번히 말씀하시는 그 꿈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어머니에게 말씀 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어떻게 아십니까?”
그는 이와 같이 답변하였다. “그 까닭은 낮의 이상 가운데 내 곁에 서서 나에게 가르쳤던 바로 그 같은 천사인 사자가 밤의 이상 가운데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가르치기 때문이다.” 여기에 언급된 하늘 천사는 어떤 때에는 “천사”, “내 안내자”, “내 교사” 등의 말로 표시되었다.
그 선지자의 마음 속에는 혼란도 없었고 밤 시간에 임한 계시에 대한 의문도 없었다. 그 까닭은 그 계시와 관련된 환경 자체가 그 계시가 하나님에게서 온 교훈임을 명백히 하였기 때문이다.
다른 어떤 때에는 화잇 부인이 기도하거나 말하거나 혹은 쓰고 있는 동안에 묵시가 그에게 주어졌다. 그가 공석에서 말하거나 기도하는 도중에 잠깐 중단 되지 않는 한 그의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그 묵시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는 한 번 이와 같이 기록하였다.
“열심히 기도하고 있을 때에 나는 주위에 있는 모든 것에 대해서 정신을 잃었다. 방은 빛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나는 대총회인 것처럼 보이는 어떤 회중에게 기별을 들려주고 있었다.”
화잇 부인의 70년이라는 긴 봉사의 생애를 통하여 그에게 주어진 많은 묵시 중에 가장 긴 묵시는 네 시간을 계속하였으며 가장 짧은 묵시는 바로 순식간에 마쳤다. 때때로 그 묵시들은 한 반 시간이나 그보다 좀더 긴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모든 묵시를 통하여 한 가지 규칙이 적용된다고는 말할 수가 없으니 그것은 바울이 기록한 바와 똑같기 때문이다.“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히 1:1)라 하였다.
묵시를 통하여 빛이 선지자에게 주어졌으나 선지자들은 그 묵시를 보는 중에 기록하지는 아니하였다. 그의 일은 기계적인 사무가 아니었다. 드문 예를 제외하고는 주께서 선지자에게 말할 바로 그 말을 지시하시지는 않았다. 또 천사가 선지자의 손을 인도하여 꼭 기록할 그 말을 기록하게 한 것도 아니었다 묵시로 말미암아 빛을 받은 정신을 가지고 선지자는 말을 하거나 기록하여 그 빛이나 교훈을 청중에게 전달하였으며 청중들은 이를 기별로 읽거나 구두로 전하여 듣거나 한 것이다.
우리는 선지자의 마음이 어떻게 빛을 받았는가 어떻게 그 지식과 교훈을 받아서 백성들에게 전하였는가 하고 물을는지 모른다. 묵시를 줄 때에 아무런 규칙이 세워져 있지 않는 것처럼 선지자가 영감적인 기별을 받는 방법을 통제하는 규칙도 또한 세워질 리가 없다. 그러나 묵시를 받을 때마다 그것은 매우 생생한 경험이어서 선지자의 마음 속에 그 경험은 지울 수 없는 감명을 남겼다. 그리고 마치 우리가 보고 경험하는 바가 귀로 듣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은 인상을 우리 마음에 새기는 것처럼 선지자들도 저들에게 나타난 사건의 발생을 실지로 목격한 것처럼 생각되었으므로 저들의 뇌리에 깊고도 영속적인 감명을 주었던 것이다.
전항(前項)의 대쟁투 묵시의 이야기를 말할 때에 우리는 역사적인 사건에 관한 지식이 어떻게 그에게 임하였는지를 말하는 그의 말을 인용하였다. 또 다른 한 번은 빛이 어떻게 그에게 임하였는지를 설명하다가 그는 묵시 중의 상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나의 주의력은 지상에서 일어나는 장면으로 종종 향하여진다. 때로는 나는 먼 미래에로 이끌려가서 일어날 일을 본다. 그 다음에 다시 나는 과거에 일어났던 장면을 보게 된다.”
이 말로 미루어 보아 엘렌 G. 화잇은 마치 실지로 목격한 사람처럼 이런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는 것이 명료하여진다. 사건들이 묵시 중에 그의 앞에 재연되었고 그러므로 그의 뇌리에 생생한 인상을 새겨 준 것이다.
또 다른 어떤 때에는 그에게 나타난 장면에 자기가 실지로 참여하여 느끼고 보고 듣고 순종하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물론 그가 실제로 참여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인상이 그의 뇌리에 잊혀질 수 없는 모습으로 남은 것이다. 52쪽에서 58쪽까지에 실린 그의 맨 첫번 묵시는 이런 성질의 것이었다.
다른 어떤 경우들에는 묵시를 받는 중에 엘렌 G. 화잇이 먼 곳에 위치하고 있는 집회나 가정이나 기관에 참석한 것처럼 느껴지는 때도 있었다. 이런 회집에 참석하였다는 느낌이 너무나 생생하여서 화잇 부인은 각 개인들이 취한 행동이나 말을 자세히 지적할 수가 있었다. 한 번은 묵시를 보는 중에 화잇 부인이 우리 의료 기관 중의 하나에 여행하여 병실을 방문하며 되어 나가는 모든 것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가진 적이 있다. 이 경험에 관하여 그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천박한 이야기, 어리석은 농담, 뜻없는 웃음이 귀에 따갑게 들렸다. … 나는 사람들이 시기심에 빠지는 것을 보았고 또 질투하는 말과 분별없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을 때에 놀랐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의 천사들의 낯을 붉히게 했다.”그 다음에 그와 같은 기관의 보다 더 유쾌한 상태가 드러났다. 그는 “기도의 음성이 들려오는” 병실로 안내함을 받았다. “그 소리는 얼마나 귀를 즐겁게 하였던가!” 이 기관에 가상적인 방문을 한 것과 또 여러 같지 아니한 부분과 병실로 데리고 다니면서 안내하는 듯하던 천사의 말을 기초로 하여 교훈의
기별이 기록되었다.
화잇 부인에게 매우 생생한 상징적인 표시로 빛이 주어지는 때가 자주 있었다. 이와 같은 상징적 표시는 위기 가운데 빠진 듯이 보였던 지도적인 교역자에게 보내진 개인적인 기별에서 발췌된 다음의 세 문장 속에서 분명히 설명되어 있다.
“또 한 번은 당신은 말에 올라타서 깃발을 들고 가는 한 장군처럼 내게 나타났습니다. 한 사람이 와서 당신의 손에서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이라고 씌어진 기를 빼앗아서 진흙속에다 짓밟았습니다. 나는 당신이 세상과 연결시켜 주는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한 때로는 두 개의 같지 아니하는 견해가 화잇 부인 앞에 제시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즉 이런 계획이나 정책을 따르면 이런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예증하는 것이 그 하나요 또 한 의견은 다른 계획 정책을 따라야 일이 더 잘 된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이 사실에 대한 훌륭한 예증은 미국 서부의 로마린다 건강 식료품 공장의 위치 선정 문제와 관련시켜서 찾아볼 수 있다. 총무와 그 협력자들은 위생병원 본관 곁에 큰 건물을 세울 계획을 짜고 있었다. 그 계획이 성숙해 가는 동안 수백 마일 떨어진 자기 집에 있던 화잇 부인이 어느날 밤에 두 개의 묵시를 받았다. 두 개의 묵시 중 첫번째 것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많은 식료품이 만들어지는 큰 건물을 보았다. 빵 제조소 옆에는 또한 작은 건물들이 몇 개 있었다. 내가 곁에 서 있을 때에 행하여지고 있는 일에 대해서 큰 음성으로 다투고 있는 소리를 들었다. 교역자들간에 협력이 결여되어 있었으며 혼란이 들어왔었다.”
그 다음에 화잇 부인은 교역자들을 융합시키기 위하여 이들을 설복시켜 보려고 고민하는 총무의 모습을 보았다. 화잇 부인은 환자들이 이런 다투는 소리를 엿듣고서 병원 바로 이웃인 “이런 아름다운 지역에 식료품 공장이 세워진 것을 유감으로 생각한다는 말을 하는”것을 보았다. “그 후에 한 분이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이 모든 것을 하나의 실물 교훈으로서 네 앞에 지나가게 한 것은 네가 어떤 계획을 수행하는 데 따르는 결과를 볼 수 있게 하기 위함인 것이다’고,”
그 다음에 장면이 바뀌고 그는 식료품 공장이 “병원 건물에서 떨어진 철로로 가는 길가에” 있는 것을 보았다. 여기서는 사업이 겸손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계획에 일치하게 행하여지고 있었다. 묵시를 본 지 몇 시간 내에 화잇 부인은 로마린다의 교역자들에게 편지를 썼고 이 편지로 식료품 공장을 어디에 세우느냐 하는 문제는 일단락을 지었다. 만일 원래의 계획대로 수행하였다면 후년에 병원 바로 곁에 큰 상업 건물을 짓는 데 크게 곤난을 당하였을 것이다.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자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묵시를 통하여 기별과 교훈을 밤낮으로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선지자가 말하기도 하고 혹은 쓰기도 하면서 교훈과 지식의 기별을 백성들에게 전한 것은 빛을 받은 정신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이 일을 행할 때에 화잇 부인은 하나님의 영의 도움을 받았으나 거기엔 기계적인 통제는 없었다.
그에게는 기별을 전달할 수 있는 말을 선택할 자유가 있었다. 그의 봉사 생애의 초년기에 그는 우리 교회 잡지에 이와 같이 기록하였다.
“내가 묵시를 받고 이를 기록할 때에 하나님의 영의 도우심에 의지하긴 하지만 내가 본 것을 설명할 때에 쓰는 말은 내가 스스로 택해서 쓰는 말이다. 만일 그 묵시가 천사로 말미암아 내게 말하여진 것이면 나는 항상 그것을 인용 부호로 표시를 해 놓았다.”
엘렌 G.화잇의 생애와 사업
엘렌 G. 하아몬과 그의 쌍동이 형제는 미국 동북 지방인 메인 주 골함에서 1827년 11월 26일에 탄생하였다. 아홉 살 되던 해에 엘렌은 한 분별없는 동급생이 던진 돌로 말미암아 불의의 사고를 당하였다. 심한 면상(面橡)은 거의 그의 생명을 앗아갈 뻔하였고 그를 허약한 상태에 빠뜨려서 결국 그는 학교를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
열한 살 되던 때에 그는 하나님께 마음을 바치고 그로부터 얼마 안 되어 바다에서 침례를 받아 감리교회의 교인이 되었다. 그는 그의 가족들과 함께 메인 주 포틀랜드에서 열린 재림신자들의 회집에 참석하여 윌리암 밀러와 그의 동료들이 제시하는 바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깝다는 견해를 전적으로 받아들이고 구주의 돌아오심을 확신을 가지고 고대하기 시작하였다.
1844년 12월 어느 아침에 그가 다른 네 여인들과 함께 기도하고 있는 동안에 하나님의 능력이 그에게 임하였다. 처음에 그는 지상의 사물에 대해서 의식을 잃었다. 그 다음에 상징적인 계시를 통하여 그는 재림신도들이 하나님의 성을 향하여 여행하는 것과 충실한 자들이 보상을 받는 것을 목격하였다. 17세의 이 소녀는 무서워하면서 이 묵시와 다음에 계속된 묵시를 포틀랜드에 있는 그의 동료 신자들에게 이야기하였다. 그후 기회가 올 때에 그는 그 묵시들을 메인 주와 그 근방의 주(州)에 있는 재림신도들의 단체에게 자세히 설명하였다.
1846년 8월에 엘렌 하아몬은 젊은 재림교 목사 제임스 화잇과 결혼하였다. 그후 35년 동안 화잇 부인의 생애는 1881년 8월 6일 그의 남편이 죽을 때까지 불굴한 복음 사업에 있어서 남편의 생애와 밀접한 연결을 가졌었다. 그들은 설교하고 저술하며 세우고 건축하여 조직하고 행정을 하면서 미국을 광범하게 여행하였다.화잇 장로 부부와 그 동료들이 놓은 기초가 얼마나 광범하고 튼튼하며 또 그들이 얼마나 현명하고도 훌륭하게 세워 놓았느냐 하는 것은 시간과 시련이 이를 증명하였다. 그들은 안식일을 지키는 재림신자들 사이에서 1849년과 1850년에 출판 사업을 시작하여 50년대 후기에는 교회 재정의 건전한 제도를 가진 교회 조직을 발전시키는 일에 지도적 역할을 하였다. 이것은 1863년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의 대총회 조직으로 말미암아 그 절정에 이르렀다. 60년대 중기(中期)에는 우리 의료 사업이 그 시작을 보게 되었고 우리 교회의 대 교육 사업은 70년대 초엽에 그 시작을 보게 되었다. 해마다 천막 집회를 개최할 경영이 1868년에 시작되었고
1874년에는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가 최초의 선교사를 파견하였다.
이런 모든 발달은 하나님께서 엘렌 G. 화잇을 통하여 이 신도들에게 주신 많은 구두(口頭)와 기록된 권면으로 말미암아 지도되었던 것이다.
초기의 대부분의 통신은 개인에게 하는 편지의 형식이나 또는 최초의 정기 간행물이던 현대 진리에 기사를 실림으로 행하여졌다. 화잇 부인은 1851년에 비로소 64쪽으로 된 그의 최초의 책을 “그리스도인의 경험과 엘렌 G. 화잇의 견해의 개요” 라는 제목을 붙여서 발행하였다.
1855년 초에 일련(一連)의 번호를 붙인 소책자가 발행되었는데 각 책마다 교회 증언이라는 제목이 새겨져 있었다. 시시때때로 하나님께서 가려서 보내신 이 교훈과 교정의 기별로 말미암아 당신의 백성들을 축복하고 견책하며 인도하실 수 있었다. 이 교훈에 대한 계속적인 요구에 응하기 위하여 1885년에 네 권으로 묶어서 재발행하였고 1889-1909년에는 다른 권들을 추가 발행하여 교회 증언은 9권으로 한 질(帙)을 이루었다.
화잇 가정에 네 자녀가 태어났다. 장남 헨리는 열여섯 살에 죽었고 막내아들 허버트는 3개월만에 죽었다. 가운데 두 아들 에드손과 윌리암이 장성하여 각각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의 사업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봉사하였다. 대총회의 요청에 따라 화잇 부인은 1885년 여름에 유럽으로 갔다. 거기에서 그는 유럽 대륙에서 새로 발전되는 사업을 굳게 하면서 2년을 보냈다. 스위스의 바셀에다 본거지를 두고 그는 남부, 중앙, 북부 유럽을 광범하게 여행하면서 교회의 총회에 참석하고 신자들의 집회에서 이들과 만났다.
미국에 돌아온 지 4년 후에 63세의 화잇 부인은 대총회의 부름에 응하여 오스트레일리아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그는 9년간을 거주하면서 사업을 개척하고 발전시키는 일을 도와 주었으며 특히 교육, 의료 분야를 도와 주었다. 화잇 부인은 1900년에 돌아와서 미국 서부 지방인 캘리포니아주의 세인트 헬레나에 집을 정하고 1915년에 별세하기까지 거기에서 살았다.
미국에서 60년, 해외에서 10년이라는 긴 봉사의 생애 동안에 화잇 부인은 개인과 교회와 공중 집회와 대총회 회의들에 대하여 지칠 줄 모르는 노력으로 권하고 이 큰 운동의 성장을 크게 성취시킨 거의 2천이나 되는 묵시를 받았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기별에 관련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를 제시하는 과업을 결코 버리지 아니하였다.그의 저서는 총계 10만 페이지 이상에 달하고 있다. 그의 펜으로 쓴 기별은 개인적인 통신을 통하여 또는 우리 교회 기관지에 내는 매주 기사와 그의 많은 책들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전하여졌다. 그 문제들은 성경 역사, 매일의 그리스도인 경험, 건강, 교육, 전도 및 다른 실제적인 논제 등을 취급하고 있다.
그가 쓴 46권의 책 중의 몇 책은 세상의 주요한 방언들로 인쇄되어 여러 백만부가 판매되어 왔다.
81세 때에 화잇 부인은 1909년의 대총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마지막으로 대륙을 횡단하였다. 그의 여생 6년은 그의 문필 사업을 완성하는 데 소비되었다. 그의 생애가 거의 끝날 무렵에 화잇 부인은 이런 말을 기록하였다. “나의 생명이 더 계속되든 말든간에 나의 저서는 계속하여 말할 것이며 그 사업은 시간이 존속하는 한 전진할 것이다.”
불굴의 용기와 구주에 대한 온전한 신뢰를 가지고 그는 1915년 7월 16일 그의 자택에서 별세하여 미시간 주 배틀크릭에 있는 오크힐 묘지에 남편과 아이들의 곁에 매장되었다.
화잇 부인은 그의 동료 교역자와 교회와 가족들에게서 경건한 어머니요 열심 있고 관대하며 지칠 줄 모르는 신앙적 일꾼으로 여김을 받았다. 그는 교회 직원의 공직을 갖지 아니하였다. 그는 교회의 앞에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하여 주신 기별을 가진 “사자”로 알려진 바 되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로 자기를 쳐다보라고 요구하지도 않았고 자신의 받은 선물로 재산이나 인기를 모으려는 데 사용한 적도 없었다. 그의 생애와 그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의 사업을 위하여 바친 바 되었다.
그의 죽음에 대하여 대중 주간지인 인디펜덴트의 편집인은 1915년 8월 23일자 지면에서 부인의 충실한 생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말로 그의 논평을 끝맺었다. “그는 그의 계시를 믿는 일에 전적으로 정직하였다. 그의 생애는 그 계시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는 영적 자만을 보이지 아니하였으며 불결한 이익을 구하지 아니하였다. 그는 보람 있는 여선지자의 생애를 살았고 또 그에 합당한 사업을 하였다.”
화잇 부인은 자기가 죽기 몇 년 전에 교회의 지도자들로 구성된 관리위원회를 만들어서 그의 저서를 그들에게 일임하여 그 관리와 계속적인 출판에 책임을 지도록 하였다. 미국 워싱턴 D. C.에 있는 대총회, 즉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의 세계본부 직원들과 협력하여 이 위원회는 엘렌 G. 화잇의 서적을 영어로 계속적으로 출판 발행하도록 장려하고 그 책의 전체 혹은 일부를 다른 나라 말로 발행하도록 하고 있다. 저들은 또한 정기 간행물에 실린 기사와 원고를 편찬하여 몇 개의 책을 발행하였는데 이것은 화잇 부인의 교훈과 일치하는 처사이다. 이 책도 이 위원회의 인가를 받고 발행된 것이다.
남들이 아는 엘렌 G. 화잇
화잇 부인이 주의 사자로서 비범한 경험을 가진 것을 알고 어떤 이는 이렇게 물었다. 그의 사람됨은 어떠하였는가? 그는 우리가 가지는 바와 같은 문제를 가졌던 사람인가? 그는 부자였는가 혹은 가난하였는가? 그는 항상 미소하고 있었는가?화잇 부인은 사려 깊은 어머니였다. 그는 알뜰한 가정 주부였다. 그는 가끔 신자들을 자기 집에 환대하는 친절한 안주인이었다. 그는 유용한 이웃이었다. 그는 확신의 여인이었고, 명랑한 성격의 소유자요, 태도와 음성이 부드러웠다.
그의 경험 가운데는 침울하거나 웃음과 기쁨이 없는 신앙이 자리를 차지한 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가 옆에 있으면 마음에 온전한 안전감을 느꼈다. 아마 화잇 부인을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가 매일의 일기를 처음으로 기록한 1859년에 그의 가정을 방문하는 것일 것이다.
우리는 화잇 가족이 배틀크릭의 변두리에서 살았던 것을 알게 된다. 작은 농가였으나 대지가 넓어서 정원이 있었으며 몇 개의 과실 나무와 한 마리의 소와 몇 마리의 닭 그리고 아이들이 일하고 놀 수 있는 마당이 있었다. 이 때에 화잇 부인은 서른한 살이었고 화잇 장로는 서른여섯 살이었다. 그 당시에 는 가정에 세 아이가 있었고 그 연령은 각각 넷, 아홉, 열둘이었다.
우리는 또 가정에 선량한 그리스도인 소녀를 고용하여 집안 일을 돕게 한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 까닭은 화잇 부인이 종종 집에서 나가 있어서 설교와 저작에 분망한 때가 잦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화잇 부인이 요리, 청소, 빨래 그리고 바느질 등 가정의 책임을 수행하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출판소에 가서 조용한 곳에서 글을 쓸 때도 여러 날 있었다. 또 다른 날들에는 그가 정원에서 꽃과 채소를 심고 종종 이웃 사람과 꽃을 교환한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자기 가족을 위하여 될 수 있는 한 가정을 명랑하게 만들어 보려고 결심하여 아이들로 가정을 가장 있을 만한 곳이라고 생각하도록 하였다.
화잇 부인은 알뜰한 구매자(購買者)이기도 하여서 이웃 재림신자들은 그와 함께 장보러 갈 수 있게 되면 좋아하였다. 왜냐하면 화잇 부인은 물건의 가치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매우 실무적인 여인이어서 딸들에게 많은 가치 있는 교훈들을 가르쳤던 것이다. 그는 잘못 만들어진 물건은 질이 좋은 상품보다 결국은 훨씬 비싸다는 것을 알았다.
자녀들에게 있어서 안식일은 주일 중 가장 즐거운 날이었다. 물론 가족은 으례 교회 예배에 참석하였고 화잇 장로 부부가 설교를 맡지 아니한 경우에는 예배드리는 동안 가족이 함께 앉곤 하였다. 점심에는 다른 날에는 나오지 아니하는 특찬을 준비하였고 점심이 끝난후 날씨가 명랑하면 화잇 부인은 아이들과 함께 숲이나 강변을 거닐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관찰하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들을 음미하곤 하였다. 비가 오거나 날씨가 추우면 집안의 난로 주위에 아이들을 모아 놓고 책을 읽어 주었으며 때로는 그가 여행하면서 여기 저기에서 모은 재료에서 빼내어 읽어 주기도 하였다. 이 이야기 중의 얼마는 후에 책으로 인쇄되어 다른 부모들이 저희 자녀들에게 읽어 줄 수 있도록 하였다.
이 당시 화잇 부인의 건강은 그다지 양호하지 못하여 낮 동안에는 가끔 현기증을 일으켰으나 이것이 그의 가정 일은 물론 주의 사업을 계속해 하는 것을 막지는 못하였다. 수년 후인 1863년에 그는 건강과 병자의 간호에 대한 묵시를 받았다. 그는 묵시 중에서 적당한 의복을 입는 것과 먹는 식물과 적당한 운동과 휴식의 필요와 아울러 튼튼하고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신뢰함의 중요성을 보았다.음식물에 관하여 하나님에게서 받은 빛과 육식의 유해성이 육식은 건강과 원기에 요긴하다는 화잇 부인 자신의 의견을 취소하게 하였다.
그는 자기의 마음을 비치는 묵시는 빛을 받아 가족의 식사 준비를 돕는 소녀에게 곡식과 채소와 견과와 우유, 크림, 계란 등으로 만들어진 건전하고 단순한 식물만을 식탁에 놓도록 하라고 지시하였다. 거기는 많은 실과가 있었다.
가족이 식탁에 왔을 때에 거기에는 훌륭하고도 건전한 식물이 많았으나 육식은 없었다. 화잇 부인은 고기는 몹시 먹고 싶어도 다른 음식에는 생각이 없었으므로 자기가 다시 돌아와서 단순한 식물을 맛있게 먹을 수 있을 때까지 식탁을 그냥 놔두기로 결정하였다. 다음 식사 때에도 같은 경험을 가졌으나 단순한 식물은 구미가 당기지 아니하였다. 그 후 다시 그들은 식탁에 왔다. 거기에는 건강과 기력과 성장에 가장 좋다고 묵시 속에서 지시를 받은 바 그 단순한 식품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습관화된 고기를 몹시 먹고 싶어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제 고기가 가장 좋은 식물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자기의 손을 배 위에 얹고 “네가 빵을 먹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고 하는 말을 자기의 배더러 말했다고 우리에게 말하여 주고 있다.
그 후 오래지 아니하여 엘렌 G. 화잇은 단순한 식품을 즐겨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이 식사의 변화로 말미암아 그의 건강이 즉시로 양호하여져서 그의 여생은 비교적 좋은 건강 상태를 향유하였다. 이로 보아 화잇 부인도 우리 모두가 당하는 어려운 문제를 역시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모두가 마땅히 승리를 거두어야 하는 것처럼 화잇 부인도 자신의 경험에서 식욕을 극복하여 승리를 거두어야만 했다. 건강 개혁은 전세계를 통하여 수많은 재림교인의 가족에게 축복이 되어 온 것처럼 화잇 가족에게도 큰 축복을 가져다 주었다.
건강 개혁에 관한 묵시를 받고 화잇 가정이 환자를 치료하는 단순한 방법을 채택한 후에 화잇 장로 부부는 이웃 사람이 앓아 누웠을 때에 종종 초청을 받아 치료하는 일을 도와 주었는데 주께서는 그들의 노력에 크게 복을 주셨다. 다른 때에는 환자가 저희 집에 운반되어 완전히 회복할 때까지 친절히 간호를 받은 적도 종종 있었다.
화잇 부인은 산이나 호수나 바다에서의 소창(消暢)이나 휴양하는 시간을 즐겼다. 중년에 이르러 그가 미국 서부 지방의 우리 출판사인 태평양 출판소 근처에서 살고 있을 때에 하루를 휴식과 휴양으로 보내자는 초청을 받았다. 화잇 부인의 가정과 직원 가족은 출판소 가족과 동행하자는 요청을 받고 그 초청을 곧 수락하였다. 그의 남편은 교회 사무로 동부 지방에 출장중이었다. 그가 이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을 발견한 것은 남편에게 보낸 편지에서였다.
해변에서 건전한 점심을 즐긴 후에 모든 무리가 샌프란시스코 만에 보트 놀이를 하러 갔다. 배의 선장은 교인이었으며 명랑한 오후였다. 이어서 그들은 넓은 바다로 나가기를 제의하였다. 그 경험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엘렌 G. 화잇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파도가 높았으므로 우리는 아래 위로 크게 요동하였다. 나의 감정은 부풀었지마는 아무에게도 말을 건네지 아니하였다. 참으로 장쾌하였다! 물보라가 우리에게 부딪쳐 왔다. 금문교 바깥은 바람이 세었으나 나의 생애에 이렇게 즐거워한 적은 없었다!”
그 다음에 그는 선장의 주시하는 눈과 그의 명령에 언제라도 순종할 자세를 갖춘 선원을 바라보고 이렇게 명상하였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손으로 바람을 잡으신다. 그가 물결을 제어하신다. 우리는 깊고 광활한 태평양 바다 위의 조그마한 점에 지나지 아니하다. 그러나 파도 위를 달리는 이 작은 보트를 보호하기 위하여 하늘의 천사들이 보냄을 받았다. 아,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여! 우리의 지식으로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구나! 그는 한눈에 가장 높은 하늘과 바다의 중심을 보시는구나!”
화잇 부인은 일찍부터 명랑한 태도를 취하여 왔다. 한 번은 이렇게 질문하였다. “당신은 내가 우울해 하고 낙담하며 불평하는 일을 본 적이 있습니까? 나는 이것을 막는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결론으로 인도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품성과 봉사의 참다운 이상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 예수께 충심으로 자원해서 하는 봉사는 밝은 신앙을 가져다 줍니다. 그리스도를 가장 밀접하게 따라가는 사람들은 우울한 적이 없습니다.”
또 다른 때에는 이와 같이 기록하였다. “어느 때인가는 명랑이란 그리스도인 품성의 위엄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을 품어 본 적이 있었으나 그것은 잘못이다. 하늘은 모두가 즐거운 것이다.” 그리고 그는 만일 자신이 미소한다면 미소가 자기에게로 되돌아올 것이요, 친절한 말을 한다면 친절한 말을 대신 듣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지만 그가 고통을 크게 당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이와 같은 일이 한 번은 그가 오스트레일리아의 사업을 돕기 위하여 갔던 직후에 있었다. 그는 거의 일 년 동안을 몹시 앓고 심한 고통을 당하였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침상에 누워서 밤에는 두어 시간밖에 잘 수가 없었다. 이 경험에 대해서 그는 한 친구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무기력한 상태에 빠져 있는 내 자신을 처음에 발견하였을 때에 나는 망망한 바다를 건너온 것을 깊이 뉘우쳤다. 내가 왜 미국에 머무르지 않았을까? 이런 손해를 보면서 왜 내가 이 나라에 있을까? 나는 재삼 재사 침상의 이불 속에 얼굴을 파묻고 어지간히 울었다. 그러나 나는 오래도록 이런 화사한 눈물속에 잠겨 있지 아니하였다. 나는 스스로 이렇게 질문하였다. 엘렌 G. 화잇아, 네가 어쩐 일이냐? 네가 오스트레일리아에 온 것은 대총회에서 네가 거기 가는 것이 가장 좋다고 판단한 바로 그 곳으로 가는 것이 네 의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 아니냐? 이것은 네가 이제까지 실천해 온 바가 아니냐?
‘그렇다’고 나는 말하였다.
그렇다면 왜 거의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하며 낙심하고 있느냐? 이것이 원수가 시키는 일이 아니냐? ‘그렇다고 생각한다’고 나는 말하였다.
나는 얼른 눈물을 닦고 말하였다. 이제는 됐다. 나는 이제 다시는 어두운 쪽을 쳐다보지 않았다. 죽든지 살든지 나는 나를 위하여 돌아가신 그분께 내 영혼을 지켜 주시도록 의탁하겠다.
그리하여 나는 주께서 만사를 형통하게 해주시리라고 믿었다. 이 어쩔 수 없는 무기력한 8개월 동안 나는 조금도 낙담하거나 의심하지 아니하였다. 나는 이제 이 일을 이 나라의 당신의 백성들의 유익과 미국에 있는 당신의 백성들과 내 자신의 유익을 위한 주의 크신 계획의 일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혹은 왜 그런지 설명할 수 없으나 그것을 믿는다. 그리고 나는 이 괴로움 가운데서 행복하다. 나는 하늘 아버지를 신뢰할 수 있다. 나는 그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다.”
화잇 부인이 그의 생애의 마지막 15년 동안을 캘리포니아의 자기 집에서 사는 동안 그는 점점 연로하여 갔다. 그러나 그는 작은 농장 주위에서 일하는 것과 그의 일을 보조하여 주는 사람들의 가족들의 행복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그가 저작으로 바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가 일찍 잠자리에 들어갔을 때에는 자정이 지나면 흔히 일을 시작하곤 하였다. 날씨가 좋으면 그의 일이 허용하는 대로 촌으로 잠깐 동안 드라이브를 하는 바 그 도중에 혹 그가 지나는 집의 정원이나 현관에 서 있는 부인을 만나게 되면 거기 멈추어서 그와 더불어 이야기하곤 하였다. 때때로 그는 식량과 의복이 결핍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집에 가서 자기 가정용 비품에서 물건을 가져오곤 하였다. 그가 죽은 지 수년 후에도 그가 살던 산곡의 이웃 사람들은 그를 항상 예수의 이야기를 그렇게 친절하게 이야기하던 작은 백발의 여인으로서 기억하고 있었다.그가 죽을 당시에는 약간 넉넉한 필수품과 생애의 기본적인 안전을 가졌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를 모본으로 쳐다보도록 요청하지 아니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요,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으로서 부활하신 주의 공로에 의지하고 주께서 그에게 위탁하신 사업을 신실히 감행하는 자이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이 하여 그는 마음 속의 신념을 가지고 그리스도인 경험에 일치하는 전생애를 끝마쳤던 것이다.
생애를 변화시킨 기별
한 전도자가 미쉬간 주 부슈넬에서 일련의 집회를 열었다. 그러나 침례를 베풀자 그는 신자들에게 기별에 합당한 지반도 잡아 주지 못한 채 그 신자들에게서 곧 떠나가 버렸다. 그 신자들은 조금씩 낙심하게 되었고 어떤 이는 저희 악습을 다시 행하기 시작하였다. 나중에는 교회가 매우 작아져서 남아 있던 10명내지 12명의 교인들이 이제는 더 계속하여도 소용 없다고 하는 결정을 보았다. 저들이 마지막 집회라고 생각한 모임을 산회시킨 직후에 우편물이 도착하였는데 그 편지 중에 리뷰 앤드 헤랄드지가 있었다. 여행 일기란에 화잇 장로 부부가 1867년 7월 20일에 회집을 열기 위하여 부슈넬에 온다는 통고가 있었다. 그날은 앞으로 1주일밖에 남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다시 불러오게 하기 위하여 아이들을 보냈다. 숲속에 장소를 마련하고 모두 나서서 저희 이웃을 초대하고 특별히 물러선 교인들에게 그리하기로 결정을 보았다.
7월 20일 안식일 아침에 화잇 장로 부부가 60명이 모인 숲에 도착하였다. 화잇 장로가 아침 설교를 하였다. 오후에 화잇 부인이 설교하기 위하여 일어 섰으나 성경절을 읽은 후에 그는 당황해 하는 빛을 보였다. 그는 그이상 성경절을 해석하지 아니하고 성경을 덮고 아주 사사로운 방법으로 그들에게 말하기 시작하였다.
“오늘 오후에 나는 여러분들 앞에 서서 벌써 2년 전 묵시 중에 내게 보여진 사람들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내가 여러분의 얼굴을 들여다볼 때에 여러분의 경험이 내 마음 속에 똑똑히 상기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주에게서 받은 기별을 여러분들에게 전하여 드리겠습니다.”
“저기 소나무 곁에 계신 형제여, 소개를 받지 못하였으니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는 없습니다만 당신의 경험은 내 앞에 분명히 떠오릅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이 형제에게 그가 신앙에서 타락한 것에 대해서 말하였다. 화잇 부인은 그에게 돌아와서 하나님의 백성과 동행하기를 권장하였다.
다음에 청중의 다른 편에 있던 한 자매를 향하여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린 빌교회의 메이지날드 자매 옆에 앉은 자매는 내가 지시를 받지 아니하여 그 이름을 말할 수가 없습니다만 2년 전 묵시 중에 당신의 사정을 보았으므로 당신의 경험에 대해서 내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후에 화잇 부인은 이 자매에게 격려의 말을 주었다.
“그 다음 저 뒷편의 참나무 곁에 계신 형제여, 당신을 대면한 적이 없으니 역시 이름은 부를 수 없습니다만 당신의 입장이 내게 밝혀졌습니다.” 그런 후에 그는 이 형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그의 마음 속에 있는 생각을 거기 있는 모든 사람에게 공개하고 그의 경험을 이야기했다.그리하여 그는 회중의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로 돌아가면서 2년 전에 묵시 가운데서 그에게 보여진 것들을 말하였다. 화잇 부인은 책망의 말은 고사하고 격려의 말을 하면서 자기 설교를 마친 다음 자리에 앉았다. 회중 가운데서 한 명이 일어났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화잇 여사가 오늘 오후에 우리에게 말한 것이 사실인지의 여부를 알고 싶습니다. 화잇 장로 부부는 전에 여기에 와 본 적이 없습니다. 저들은 우리들과 생면부지입니다. 화잇 여사는 우리 대부분의 이름들을 알지도 못합니다.
그런데 그가 오늘 오후에 이곳에 와서 2년 전에 묵시를 받아 그 묵시 중에 우리의 사정들을 보았다고 말을 할 뿐만 아니라 하나씩, 하나씩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계속하여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의 생활하는 것과 속셈을 공개하니 이 모든 것이 각 사람의 입장과 실제로 부합합니까? 그렇잖으면 화잇 자매께서 어떤 실수를 한 것입니까? 알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하나씩, 하나씩 일어섰다. 소나무 곁에 있던 사람은 일어나서 화잇 부인이 자기가 묘사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자기의 입장을 더 잘 묘사하였다고 말하였다. 그는 자기의 자행자지한 것을 고백하였다. 그는 다시 돌아와서 하나님의 백성들과 동행하겠다는 자기의 결심을 피력하였다. 그린빌 교회에서 온 메이날드 자매 옆에 앉았던 자매도 간증하였다. 그는 화잇 여사가 자기의 경험을 자기가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잘 말하여 주었다고 말하였다. 화잇 여사가 견책과 격려의 말을 한 참나무 곁에 있던 사람은 화잇 여사가 자기의 경우를 자기가 묘사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잘 묘사하였다고 말하였다. 그도 자복하였다. 죄가 배척함을 받았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셔서 부슈넬에는 심령의 부흥이 일어났다.
화잇 장로 부부는 그 다음 안식일에 다시 와서 침례를 베풀었고 부슈넬 교회는 든든한 기반을 잡고 존속하였다.
주께서는 당신을 바라는 모든 자들에게 하시는 것과 같이 부슈넬의 당신의 백성들도 사랑하셨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 3:19)는 말씀이 거기 참석한 사람들의 마음 속에 떠올랐음에 틀림없다. 사람들은 주께서 저들을 보시는 것과 같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았을 때에 저들은 자신의 진정한 상태를 깨닫고 저희의 생애가 변화되기를 갈망한 것이었다. 이것이 화잇 부인에게 주어진 많은 묵시의 참된 목적이다.
화잇 장로가 죽은 후 오래지 않아 화잇 부인은 헬즈버그 대학 근처에서 살았다. 몇 명의 젊은 숙녀들이 학교에 다니는 동안 그의 가정에서 머물렀다. 그 당시에는 머리에 간단한 그물을 써서 종일토록 머리를 깨끗하고 단정하게 하는 것이 습관으로 되어 있었다. 어느날 이 소녀들 중의 하나가 화잇 부인의 방을 지나다가 잘 만들어진 머리 그물을 보았는데 그것을 그가 갖고자 했다. 그것을 놓쳐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여 그는 그것을 취하여다가 그의 트렁크를 열고 그 꼭대기에다가 넣어 두었다. 조금 후에 외출하기 위하여 옷을 입으면서 화잇 부인은 그의 머리 그물을 살폈으나 찾지 못하여 그것을 쓰지 못하고 나갈 수 밖에 없었다. 가족이 함께 모인 저녁에 화잇 부인은 없어진 머리 그물에 대해서 채근해 보았으나 아무도 그것이 어디 있는지를 안다고 말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하루쯤이 지난 후 화잇 부인이 학생의 방을 지나가는데 “트렁크를 열어라” 는 음성이 들렸다. 트렁크는 그의 소유가 아니었으므로 그는 그것을 열고 싶지 않았다. 두번째의 지시에 그는 그 음성이 천사의 음성임을 알았다. 뚜껑을 올렸을 때에 그는 천사가 왜 그 말을 하였는지를 알았다. 왜냐하면 거기에 그의 머리 그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족이 다시 상면하였을 때에 화잇 부인은 그 그물이 절로 없어질 리가 없다고 말하면서 다시 물어보았다.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아니하므로 화잇 부인은 채근하는 일을 그만두었다.며칠 후에 화잇 부인이 저술하는 손을 멈추고 쉬고 있을 때에 매우 짤막한 묵시를 받았다. 그는 한 소녀의 손이 머리 그물을 석유 등잔 속에 떨어뜨리는 것을 보았다. 그물은 불길에 닿자 불에 살라져 없어지고 말았다.
그것이 묵시의 끝이었다.
가족이 다음에 다시 모였을 때에 화잇 부인은 머리 그물이 없어진 것을 다시 강조해서 말하였으나 아무도 자복하는 사람이 없었고 그것이 어디에 있는 것을 아는 것 같지도 아니하였다. 좀 후에 화잇 부인은 이 젊은 여성을 불러내어 천사의 음성에 대해서 그에게 말하고 그가 트렁크 속을 본 것과 매우 짤막한 묵시 중에 그 머리 그물이 등잔불에 타 없어지는 것을 보았다고 말하였다. 이 사실이 밝혀지자 그 소녀는 그물을 취하였다가 발각될까봐 그것을 태워버렸다는 것을 자백하였다. 그 소녀는 화잇 부인과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한 일을 뉘우치고 시정하였다.
우리는 머리 그물쯤 하나 가지고 주께서 관여하시고 염려하시기에는 문제가 너무 사소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도둑맞은 물증의 가치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였다. 여기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의 교인인 젊은 여자가 있었다. 그는 자기가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였으나 그는 자신의 품성 속에 있는 결함을 알지 못하였다. 그는 자기를 도둑질하게 하고 속이게 한 이기심이 자기의 품성 중에 있음을 깨닫지 못하였다. 이제 그가 작은 일들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하나님께서 머리 그물 때문에 지상에 있는 당신의 바쁜 사자에게 묵시를 주실 정도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을때에 이 젊은 여성은 그 문제의 참 가치를 깨닫기 시작하였다. 이 경험은 그의 생애의 전환점이 되어 그는 깨끗하고 언행 일치하는 그리스도인 생애를 보냈다.
또 그것이 곧 그 묵시가 화잇 부인에게 주어진 이유이다. 화잇 부인이 쓴 증언의 대부분이 특실한 적용을 가졌었지마는 그러나 그 증언들은 세계 각국에 있는 교회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원칙들을 제시하고 있다. 화잇 부인은 이러한 말로써 증언의 목적과 위치를 명백히 하였다.
“기록된 증언은 새로운 빛을 주기 위함이 아니요, 이미 계시된 영감으로 된 진리를 사람들의 마음 속에 생생하게 새기게 하려는 것이 그 목적이다. 하나님께 대한 의무가 무엇이며 동료 인간에게 대한 의무가 무엇이냐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분명하게 설명되어 있다. 그러나 주어진 빛에 순종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부수적인 진리를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증언을 통하여 벌써 주신 위대한 진리들을 평이하게 해 놓았다. … 증언은 하나님의 말씀을 위축시키지 아니하고 오히려 이를 높이고 사람들의 마음을 이에 끌리게 하여 진리의 아름다운 단순성이 모든 사람에게 감명을 주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 평생을 통하여 화잇 부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 앞에 제시하였다. 그는 그의 첫 책을 이와 같은 생각으로 종결지었다.
“사랑하는 독자여,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들의 신앙과 실천의 표준으로 추천하는 바이다. 우리는 이 말씀으로 심판을 받게 된다. 그 말씀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말세에 묵시를 주실 것을 허락하셨는데 이 묵시는 새로운 믿음의 표준을 위하여 주신 것이 아니요, 당신의 백성을 안위하고 진리를 오해하는 자들을 시정하기 위하여 주어진 것이다.”
발표할 수 없었던 묵시1890년 11월에 뉴욕 살라만카에서 열린 일련의 회집에서 화잇 부인이 대회중에게 공중 설교를 하고 있을 때에 그는 그 도시로 가는 여행 도상에서 심한 감기에 걸렸었으므로 매우 쇠약하게 되었다. 한 회집을 마친 후에 그는 낙심하고 또 아파서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자기의 영혼을 하나님 앞에 송두리째 내놓고 자비와 건강과 기력을 주실 것을 간구하리라 생각하였다. 그는 자기의 의자 옆에 무릎을 꿇고 거기서 생긴 일을 스스로 말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온 방이 부드러운 은빛으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이자 나는 한마디의 말도 말하지 아니하였다. 실망과 낙담의 쓰라림은 제거되었다. 나의 마음은 안위와 소망-그리스도의 평강-으로 충만해 있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한 묵시를 받았다. 묵시를 본 후에는 그는 자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쉬고 싶지가 않았다. 그의 병은 회복이 되었고 그는 휴식을 얻은 것이다.
아침에는 결정을 하여야 했다. 다음 집회가 열리는 장소에 계속해서 나갈수 있느냐, 그렇잖으면 배틀크릭의 그의 집으로 돌아가야만 하느냐를 결정하여야 했다. 일에 책임을 지고 있던 A. T. 로빈손 장로와 화잇 부인의 아들인 윌리암 화잇 장로가 그의 대답을 듣기 위하여 방으로 찾아왔다. 그들은 화잇 부인이 옷을 입고 건강한 모습으로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는 자기의 병이 낳게 된 데 대하여 말하였다. 그는 그 묵시에 대해서 이야기하였다. “어제 저녁에 내게 계시된 묵시를 당신들에게 말하고 싶소. 묵시 중에서 나는 배틀크릭에 있는 것같이 생각되었오. 천사인 사자가 ‘나를 따라오라’고 말하였소” 하고 그는 말하였다. 그 때에 그는 더듬거렸다. 그는 자기에게 보인 바 된 묵시를 생각해 낼 수가 없었다. 두 번이나 그는 말해보려고 하였으나 종래 그에게 보이신 바를 되살릴 수가 없었다. 며칠 후에 그는 자기가 본 묵시에 대해서 기록하였다. 그것은 그 당시 “미국의 파숫꾼”이라고 불리던 우리의 종교 자유지를 만드는 계획에 대한 것이었다.
“저녁에 나는 몇 개의 회의에 참석하여 거기에서 나는 유력한 사람들이 만일 미국의 파숫꾼에서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라는 말을 그 난에서부터 빼버리고 안식일에 대해서 아무 말도 안한다면 세상의 위인들이 그것을 후원할 것이며 그 잡지가 보급되어서 더욱 큰 사업을 하게 될 것이라는 취지로 말을 되풀이하는 것을 들었다. 이것은 매우 그럴 듯하게 보였다.”
“나는 그들의 얼굴이 밝아지는 것을 보았다. 저들은 파숫꾼을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게 하는 노선에 따라서 일을 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모든 일은 심령에 진리가 결핍한 사람들로 말미암아 제출되었다.”화잇 부인은 일단의 사람들이 이 잡지의 편집 노선에 대해서 의논하는 것을 본 것이 분명하다. 1891년 3월에 대총회가 열렸을 때에 화잇 부인은 아침마다 다섯시 반에 교역자들에게 설교를 할 것과 안식일 오후에는 4천명의 총회 회중에게 설교를 하여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가 안식일 오후에 사용한 성경절은 “이 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는 말씀이었다. 설교의 대지는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이 저들의 신앙에 구별된 특성을 견지해야 한다는 호소이었다. 그 회집 동안에 그는 세 번이나 살라만카에서 본 묵시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려다가는 그때마다 제지를 받았다. 묵시에서 본 사건들이 자꾸 그의 뇌리에서 사라질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에 대해서 후에 더 말씀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는 약 한 시간에 걸친 설교를 훌륭하게 끝마쳤고 집회는 그것으로 산회하였다. 모든 사람이 그가 묵시
ø
나는 일단의 사람들이 어떤 일을 열심히 의논하고 있는 방으로 이끌려 갔습니다. 거기에는 열의가 나타나 있었습니다만 지식에 따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저들이 미국의 파숫꾼 지의 편집 규정에 대해서 어떻게 의논들을 하고 있었는지를 말하고 이어서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한 사람이 한 권의 파숫꾼 지를 취하여 머리 위에 높이 쳐들고 안식일과 재림에 관한 기사들이 이 잡지에서 제거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도저히 그 잡지를 종교 자유 협회의 기관지로 사용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엘렌 G. 화잇은 수개월 전에 묵시 중에서 본 바 그 회합을 설명하면서 한 시간을 이야기하고 그 계시에 의거하여 권면하였다. 말을 마치고 그는 앉았다.
대총회 회장은 그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하여야 좋을지 알지 못하였다. 그는 이런 회합에 대해서 하등의 들은 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저들은 설명을 듣기 위해 오래 기다리지 아니하였다. 한 사람이 방의 후면에서 일어나서 이와 같이 말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내가 어제 저녁 그 회합에 있었습니다.”
“어제 저녁이라니!” 화잇 여사가 말을 던졌다. “어제 저녁이라고요? 나는 그 묵시가 내게 보여진 때, 즉 수개월 전에 그 회합이 있은 것으로 생각하였는데요.”
“나는 어제 저녁의 그 회합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머리 위에 잡지를 쳐들고 잡지의 기사에 관하여 비평을 한 바로 그 사람입니다. 내가 그른 쪽에 서 있었음을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는 이 기회에 자신을 정당한 편에 세우도록 하겠습니다”하고 그는 말하면서 앉았다.
또 한 사람이 일어나서 말하였다. 그는 종교 자유 협회의 회장이었다. 그의 말에 주의하여 보라 “나는 그 회합에 있었습니다. 어제 저녁 총회가 끝난 다음 우리 중의 몇 사람이 리뷰 사무소의 내 방에서 회합을 가졌습니다. 우리는 안에서 문을 잠그고 오늘 아침 우리에게 공개된 그 문제와 사건을 꺼내놓고 의논하였습니다.
우리는 그 방에서 오늘 아침 세시까지 머물러 있었습니다. 내가 만일 일어난 사건과 또는 그 방에 있었던 사람들의 개인적인 태도에 대해서 묘사를 하기 시작한다. 하더라도 화잇 자매가 말한 것만큼 똑똑하고 정확하게 묘사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내가 옳지 못하였고 또 내가 취한 입장이 정당하지 못하다는 것을 이제 알았습니다. 오늘 아침 받은 빛을 통하여 나는 내가 옳지 못하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날 다른 사람들도 일어나 말을 하였다. 그 전날 밤 회합에 참석했던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서 간증을 하며 엘렌 G. 화잇이 그 회합과 또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의 태도를 정확하게 묘사 설명하였다고 말하였다. 일요일 아침 회합이 끝나기 전에 종교 자유 협회원들이 같은 자리에 소집되어 불과 다섯 시간 전에 통과시킨 가결 사항을 철회하였다.
만일 화잇 부인이 제지를 받지 아니하고 안식일 오후에 그 묵시를 이야기하였다면 그의 기별은 하나님께서 뜻하신 바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회합은 그 때까지는 아직 있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아무튼 그 사람들은 안식일 오후에 들은 일반적인 권면을 유의하지 아니하였다. 저들은 저희 자신이 더 잘 안다고 생각하였다. 아마 저들은 오늘날의 어떤 사람들이 “글쎄, 아마 화잇 부인은 이해하지 못하였을거야.” “우리는 이제 같지 아니한 시대에 살고 있어.” “그 권면은 예전에나 적용되지 지금은 맞지 않아”라고 말하는 것처럼 판단하였는지 모른다.
사단이 오늘날 우리에게 속삭이는 생각은 1891년에 이 사람들을 시험한 것과 동일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소유하시는 시간과 당신의 방법으로 그것이 당신의 사업이니 친히 인도하시고 지키신다고 하는 것을 명백히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손으로 타륜(舵輪)을 잡으신 것이다. 엘렌 G. 화잇은 하나님께서 “종종 일들을 위기에 직면하게 하사 당신의 간섭하심이 두드러지게 하신다. 그런 후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명시하셨다”고 우리에게 말해 준다.
증언과 독자
엘렌 G. 화잇은 70년 동안 하나님께서 그에게 계시하신 일들을 말하고 기록하였다. 성경의 진리를 오해한 자들을 시정하기 위하여 여러 번 권면이 주어졌다. 여러 번 그 권면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이 따라오기를 원하시는 길을 지시하였다. 때로는 그 증언들이 생활 방법, 가정과 교회 문제를 취급하였다. 교인들이 이 기별들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화잇 부인이 일을 하기 시작한 때부터 책임 있는 지도자들은 예언의 선물의 발표가 순수한 것인지 확인하기 위하여 그의 사업을 검토하였다. 사도 바울은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살전 5:20, 21)라고 권고하였다. 선지자를 알아보는 성경의 시험들이 화잇 부인의 사업에 적용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화잇 부인이 원하던 것이었다. 그는 이렇게 기록하였던 것이다.
“이 사업은 하나님의 사업이든지 혹은 그렇지 않든지 둘 중 하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단과는 전혀 협력하지 않으신다. 지난 30년 동안의 나의 사업은 하나님의 인이 아니면 원수의 인이 찍혀 있다. 어중간한 일이란 있을 수 없다.”
성경에는 선지자가 검토를 받는 네 가지 시험이 있다. 화잇 부인의 사업은 이 시험에 각각 합격하였다.
1. 참 선지자의 기별은 하나님의 율법과 선지자들의 기별에 일치하여야 한다(사 8:20).
엘렌 G. 화잇의 저서는 하나님의 율법을 높이며 사람들을 전폭적으로 인도한다. 그는 성경을 믿음과 실천의 규준이요, 큰 빛으로 지적함과 동시에 그의 저서는 “작은 빛”으로서 읽는 모든 사람들을 큰 빛에로 인도한다고 가르친다.
2. 참 선지자의 예언한 말은 성취되어야 한다(렘 28:9). 화잇 부인의 사업이 백성들을 지도하고 인도하는 면에서 모세의 사업과 매우 비슷한 한편 그는 예언적인 태도로 장차 일어날 많은 사건들에 대해서 기록하였다. 1848년에 우리 출판 사업이 시작될 때에 그는 이 사업이 자라나서 세상을 빛으로 에워쌀 것에 대하여 말하였다. 오늘날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는 2백 개 국어로 서적을 출판하며 이것을 값으로 따지면 1년에 2천만불 이상에 해당된다.
1890년, 세상 사람들이 이제 다시는 전쟁이 없고 복천년의 먼동이 트게 된다고 선언하였을 때에 엘렌 G. 화잇은 이와 같이 기록하였다. “태풍이 불어올 것이니 우리는 그 격노(激怒)함에 대비하여야 한다. … 우리는 사방에서 환난을 보게 될 것이다. 수많은 선박들이 바다 깊숙히 침몰당할 것이다. 군함이 가라앉을 것이요, 인간의 생명이 수백만이나 희생 당할 것이다.” 이 예언은 1차와 2차에 걸친 세계대전에서 성취되었다.
3. 참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육신으로 오심과 하나님이 인간의 육신으로 사람의 모습을 하셨음을 시인할 것이다(요일 4:2).
시대의 소망을 읽으면 엘렌 G. 화잇의 사업이 이 시험에 합격한다는 것이 명백하여진다. 다음의 말에 주의하여라. “예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 곁에 남아계셔도 좋았을 것이다. 그는 하늘의 영광과 천사들의 존중을 그냥 받으셔도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홀을 아버지의 손에 돌려드리고 우주의 보좌로부터 내려오시기를 택하신 것은 흑암에서 헤매는 자들에게는 빛을,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생명을 주시기 위함이었다.”
“거의 2천년 전에 오묘한 뜻을 지닌 음성이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로 부터 들리기를 ‘내가 … 왔나이다’ 하였다.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히 10:5-7). 이 말씀 가운데는 영원한 세대로부터 감추어져 왔던 목적의 성취가 선언되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세상에 내려오셔서 육신이 되시려고 하신 것이다. … 세상의 안목으로는 그는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을 소유하고 계시지 아니하였지만 그는 육신이 되신 하나님이요, 하늘과 땅의 빛이셨다. 그의 영광은 가리워졌다 그의 위대하심과 엄위하심이 감추인 바 된 것은 그가 슬퍼하고 시험당하는 사람들에게 가까이 가려 하심이었다.”
4. 아마도 참 선지자라는 가장 결정적인 시험은 그 생애와 사업과 교훈의 감화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마태복음 7장 15, 16절에 이 시험을 이와 같이 선언하셨다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라.
엘렌 G. 화잇의 생애를 검토하여 볼 때에 우리는 그가 자신의 교훈과 일치하며 우리가 선지자로서 기대하는 바에 어그러지지 않는 훌륭한 그리스도인 생애를 보냈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예언의 신의 권면에 따른 자들의 생애에서 나타난 열매를 볼 때에 우리는 그 열매가 선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증언들은 선한 열매를 낳았다.
우리가 교회를 바라볼 때에 이 권면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다방면의 활동 분야에 인도함을 받았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화잇 부인의 사업이 이 시험에 합격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70년이라는 기간에 쓰여진 저서들 가운데 나타난 교훈의 단일성이 또한 그 선물의 순수함을 강력히 입증하여 주고 있다.
참 선지자의 실제적인 시험
이 네 개의 중요한 성경상 시험에 첨가해서 주께서는 그 사업이 당신의 명령하신 바임을 명백하게 해주는 증거들을 주셨다. 그 가운데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기별의 시의성(時宜性).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떤 특별한 결핍 가운데 있을 때에 화잇 부인에게 최초의 기별이 주어졌던 때와 같이 그 기별이 부족을 채우기 위하여 꼭 시기에 맞게 임하였다.
2. 기별의 실제성. 묵시 중에 화잇 부인에게 계시된 소식은 실제적인 가치가 있는 것으로 실제적인 결핍을 충족시켰다. 증언의 말씀이 실제적인 방법으로 우리의 매일의 생애에 들어오는 경로에 주목하라.
3. 기별의 고상한 영적인 면, 그 기별들은 유치하거나 통속적인 문제들을 취급하지 아니하고 중요하고 고상한 문제들을 취급하고 있다. 언어자체가 숭고하다.4. 묵시가 주어진 방법. 대부분의 묵시에는 이 서론의 앞 부분에 묘사된 바와 같은 신체적 현상이 따랐다.
묵시 중의 화잇 부인의 경험은 성경의 선지자들의 경험과 유사하였다. 시험은 될 수 없지만 이것은 다른 증거들 가운데 한 증거이다.
5. 묵시들은 명확한 경험이요 단지 느낌이 아니었다. 묵시 중에 화잇 부인은 보고 듣고 느끼고 천사가 주는 지시를 받았다. 그 묵시들은 흥분이나 상상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것이었다.
6. 화잇 부인은 주위 사람들의 영향을 받지 아니하였다. 어떤 사람에게 그는 이렇게 글을 써보냈다. “당신은 어떤 이들이 내게 편견을 갖게 하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가 만일 이런 상태에 있다면 나는 하나님의 사업을 맡기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7. 그의 사업은 동시대의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다. 화잇 부인과 생활을 같이 하고 함께 일을 한 교회 내의 사람들이나 또는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화잇 부인을 진정한 “주의 사자”로 인정하였다. 그와 가장 가까이 지내던 사람일수록 그가 부르심을 입은 것과 그의 사업에 최대의 신임을 가졌었다.
이 네 개의 성경상 시험과 또한 그 기별과 그 사자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하기 위하여 주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주신 명백한 증거들은 그 사업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의문의 여지도 없이 확신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확신시켜 준다.
엘렌 G. 화잇의 많은 저서는 교회를 위하여 영구적인 가치가 있는 권면과 교훈으로 충만해 있다. 이 증언들이 보다 더 일반적인 성질의 것이거나 또는 가족과 개인들에게 하는 개인적인 증언이거나 간에 그 증언들은 오늘날 우리를 도와 주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 화잇 부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증언 중에 개인의 경우를 위하여 주어진 경고와 교훈은 이런 방식으로 특별히 지적을 받지 아니한 많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같은 효과를 가지고 적용되므로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개인에게 한 증언을 출판하는 것이 나의 의무처럼 생각된다. … 일반적인 위험과 오류,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모든 사람들의 의무를 제시하는 데 이 증언들을 주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을 나는 알지 못한다.”
증언 가운데서 어떤 점을 찾아내어 이를 근거로 해서 동료 형제들을 비난하기 위하여 저들에게 읽어주는 것은 증언들을 그릇되게 사용하는 것이다. 사물을 이해함에 있어서 우리와 똑같이 형제들로 이해하도록 하기 위하여 증언들을 곤봉으로 사용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거기에는 개인이 하나님과 더불어서만 해결을 지어야 할 문제들이 있다.
오늘날 우리 자신의 생애에 적용되는 기본적인 원칙을 찾기 위하여 권면의 말씀을 연구하여야 한다. 어떤 기별들은 어떤 특정한 시간이나 장소를 위한 경고와 견책으로 주어졌으나 그러나 제시된 원칙은 그 적용과 시의(時宜)를 얻은 사용에 있어서는 매우 광범위하다. 사람의 마음은 세계적으로 거의 공통이다. 즉 한 사람이 당하는 어려운 문제는 종종 다른 사람의 어려운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화잇 부인은 이와 같이 기록하였다. “한 사람의 잘못을 견책하심으로 하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을 시정하시기를 꾀하셨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의 잘못을 밝히 드러내시는 것은 그와 같이 하심으로 다른 사람들을 경고하시기 위함이다.”
화잇 부인은 그의 생애가 마칠 즈음에 다음과 같은 권면을 주었다. “하나님의 음성이 성령을 통하여 경고와 교훈으로 끊임없이 우리에게 임하였다. … 시간과 시련이 그 주어진 교훈을 헛되게 하지 아니하였다. … 기별의 초창기에 주어진 교훈은 종말기에 있어서도 따라가기에 안전한 교훈으로 서게 될 것이다.”여기에 실린 권면의 말씀은 엘렌 G. 화잇의 많은 서적에서 뽑았으나 교회 증언의 세계 보급판인 증언보감 세 권에서 주로 뽑은 것으로 교인수가 적어서 소형판으로
단 한 번밖에 출판하지 못하는 지역의 교회에 매우 유용하다고 생각되는 교훈의 분야를 서술하고 있다. 이 권면의 말씀을 선출하고 정리하는 일은 대위원회에서 하였으며 예언의 신의 말씀의 관리와 광범한 사용에 대한 책임을 맡은 엘렌 G. 화잇 출판물 관리 위원회의 인증하에 일하였다. 발췌는 때때로 간결하고 또 실제적인 기본 원칙에 대한 기사에 한정하므로 광범한 문제가 포함되도록 하였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대하 20:20).
1957년 7월 22일 워싱턴 D. C.
엘렌 G. 화잇 저서 출판관리 위원회
0